피라미드는 초기 왕조시대의 마스타바에서 발전된 것으로, 제18왕조 초에 왕묘가 암굴묘(岩窟墓)의 형식을 취할 때까지 계속된다.
최성기는 제3∼5왕조로 피라미드시대라 부른다. 최고(最古)의 피라미드는 사카라에 있는 제3왕조 제2대 조세르왕의 계단식 피라미드로 재상 임호테프가 설계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 변이 63m인 직사각형 석조 마스타바로, 중앙에 깊이 28m의 견혈(堅穴)을 파고 그 밑에 매장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확장공사가 시작되어, 결국 마스타바를 6단 포개 놓은 모양의 밑변 109×126m, 높이 62m의 계단 피라미드가 완성되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는 헬리오폴리스를 중심으로 예로 부터 존재했던 태양신 숭배가 피안(彼岸)의 신앙과 결부된 결과로, 계단은 죽은 국왕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 기자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지 않고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흔히 기자의 3대 피라미드를 보고 하는 말이다. 기자는 카이로 시내에서 서쪽으로 13km 가량 떨어져 변두리, 사막과의 경계에 홀연히 웅대한 피라미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은 카이로시의 도시확장으로 주변지역까지 주거지역이 확대되어 결코 격리된 외딴 곳이 아니다. 사막이라는 무한의 공간에 놓여진 피라미드는 우주적인 신비를 감추고 있으며 추상예술로 최고의 위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피라미드들은 지금부터 약 4500년 전인 고왕국 제 4왕조시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제 4왕조(BC 2613 - 2494)의 쿠푸왕,카프레왕,멘카우레왕의 무덤등이 있으며, 현존하는 70여개 피라밋중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피라미드의 가장 경이로운 점은 아마도 그 거대한 구조물의 방향일 것이다. 각 능선은 거의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그 각도의 오차는 진북(眞北)에서 5분 밖에 벗어나 있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어서,우연의 배열의 결과라고는 도저히 생각 할 수 없다. 또한 현대 20세기의 건축물로도 따라갈 수 없는 정확성은 도저히 인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이다. 105 m 높이의 '상승통로'는 완벽한 배역! 에서 1 cm 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이 피라미드가 건조될 당시 천구(天球)의 북극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용 자리의 알파 별을 지표로 삼아 이 통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기자는 나일강 델타지역에 있는 도시로 남북으로 111km, 동서로 96km 크기의 도시이다. 나일 강 하류 델타 지역은 풍족한 평야 지대로 건조한 사막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대부분이 아열대성 기후로 겨울(11∼3월)과 여름(5∼9월) 두 계절만 있는데 겨울은 서늘하고 온화하며 여름은 일반적으로 무덥다. 3월부터 5얼에 걸쳐서는 함신이라고 불리는 열풍이 불어오고 때로는 소비아라고 불리는 모래폭풍도 거칠게 불어온다. 우기가 되어 간혹 비가 내리면 대도시라도 하수도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서 거리는 온통 진흙투성이가 된다. 6월부터 9월까지는 대단히 덥다.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쿠푸 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Khufu)
세계 최대의 건축물로 지저부의 1변이 230m, 창건 때의 높이는 146.7m였지만, 지금은 꼭대기 부분이 무너져서 137.2m, 부피는 259만 4914 평방미터이다.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석재의 평균 무게는 1개당 2.5톤으로 추정되고, 사용된 석재 숫자는 230만개라고 하고 268만개라고도 한다. 돌을 쌓은 단층의 수효는 원래 210단인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203개이다. 쿠푸왕의 것을 비롯해 이곳 기제의 3대 피라미드는 약 4500년 전인 BC 26세기 경에 건조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가까이 가보면 겉에 돌을 쌓아 올린 것이 드러나 보이지만, 건축할 때에는 화장석으로 겉을 마루리해서 매끄럽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풍화와 약탈로 인해 화장석이 벗겨져서 지금과 같이 되어 버렸다.
내부 관람을 하려면, 9세기 알마문이 뚫은 북쪽 도굴 구멍으로 들어간다. 이 입구의 위쪽으로 약 10m되는 곳에 원래의 입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입구를 들어가면 곧 오른쪽으로 걲여서 높이 약 1.2m의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오르게 되고, 다시 높이 약 8.5m의 큰 회랑을 거쳐 왕의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피라미드의 석축을 오르고,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올라가야 하므로 여성도 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카프라 왕의 프라미드(Pyramid of Khafra) 3대 피라미드의 중앙에 위치하고, 쿠푸 왕의 피라미드 보다 좀 작은 듯하지만, 높이가 143m로 지금은 가장 높다. 또한 쿠푸 왕의 것보다 좀 높은 곳에 세워져 있으므로, 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좀 더 크게 보인다. 피라미드 가운데 비교적 잘 보존되고 표면의 화장석도 일부 남아있어 가장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이 피라미드의 동쪽에 신전이 축조되어, 스핑크스 남동쪽에 세워진 아안신전과 참배용 도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도 북쪽의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 멘카우라 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Menkaura) 기저부의 1변이 105m, 높이 65m, 3대 피라미드 중에서는 가장 작다. 카프라 왕의 것과 같은 배열의 신전이다. 하안신전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폐허로 변했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의 석재는 대부분 석회암인데, 이는 기자 남동쪽 약 15km 지점의 투라에서 잘라낸 듯하며, 화장석으로 쓰인 화강은 남쪽으로 850Km나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이용하여 운반된 듯하다. 찾아오는 관광객이 적고 도로에 떨어져 있어서 정적에 싸여 있다.
▶스핑크스(Sphinx) 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기자의 스핑크스도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를 매료시켰다.
1735년 마예는 스핑크스를 '사자의 몸통, 여자의 머리'라고 생각하고 '처녀와 사자가 한 몸을 이룬 12궁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려진 스핑크스는 모두 모래 위에 불쑥 튀어나온 기념비적인 머리의 형태만이 묘사되어 있다. 1816년 카비글리아의 지휘로 시작되었던, 모래 제거 작업은 한때 중단되었다가 1886년 마스페로와 브룩슈의 작업으로 파라오 카프렌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된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기제의 사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높이 21m에 길이 57m. 스핑크스 중에 가장 오래되고 큰 것으로 유명한 것은 제 4왕조의 카푸라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이다. 이것은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군데군데 보수되어 있다. 전장은 약 70m,높이 약 20m라는 거상으로, 그 얼굴은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카푸라왕의 생전 얼굴이라고 한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에는 투트메스 4세의 석비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 상의 매>를 나타내고,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통은 사자인 신화적 존재로 날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가 발상지라고 하는데 그 후에는 시리아,아나톨리아와 지중해 그리스 본토 등에 전파되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일찍이 제4왕조기(BC2650무렵)에 기자에 있는 왕 카프레의 피라미드 남동쪽에 조각된 대스핑크스로 등장한다. 이것은 왕자신의 상이라 한다. 애초에 왕을 사자로 여긴 이집트의 옛 관념에서 나왔다 하며 왕비도 여성 스핑크스로 표현되었다. BC2000년대에는 스핑크스는 종종 신, 예컨대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믿어졌다.
BC2000년대 중엽부터 BC1000년대 전반에 걸쳐 아나톨리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키프로스 등에서도 스핑크스가 중요시되었다는 것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밝혀져 왔다. 스핑크스 석상은 문 양쪽에 세워지거나 건조물의 일부로 사용되었으며, 상아의 부조 또는 청동상이 종교색 짙은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모두 날개돋친 상이며,수호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처음에는 죽음으로부터 지켜주는 신학적 존재로서 액막이 목적으로 방패나 무덤 등에 새겼으나, 뒤에 테베의 전설에 흡수되어 유명해졌다.
▶가는방법 :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997번 버스를 탄다.(약 30~40분) 돌아올때는 정문으로 나와서 997번이나 타흐리르 광장 가는 버스를 탄다. ▶개장시간 : 매일 09:00-16: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