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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생명의 샘 우물

작성자이냐시오|작성시간23.02.22|조회수29 목록 댓글 0

인류 문명이 강에서 시작되었듯이 가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샘물이다.

새벽닭이 울면 어머니는 잠을 쫓으며 이불 속에서 빠져나온다.

부엌문 열리는 소리가 삐거걱 들리고 쌀을 퍼담은 다음 우물가로 간다.

두레박으로 샘물을 길어 올려서 쌀을 벅벅 치대면서 씻고 몇 번 헹구는데

쌀씻은 뜨물은 큼지막한 항아리에 쏟는다.

그 물은 쇠죽 끓이는데 쓰인다.

밥솥에 쌀을 앉히고 물은 손등에 자불자불할 정도로 붓고서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마른 소나무잎 깔비는 최고의 불쏘시개이다.

불이 잘 붙고 불땀이 있어서 나뭇가지에도 금방 불이 붙는다.

밥솥에 김이 나고 뜸들일 시간쯤이면 사랑방에서도 어험! 하고 기척이 난다.

가족들이 순서대로 샘으로 가서 세수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샘물은 밥 짓고 반찬 만들 때는 물론, 빨래할 때에도 없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가끔 여름날 비가 많이 내리고 이삼일 지나면 도랑물이 맑고 수량도 풍부해서

동네 아낙네들이 우리 집앞 개울 빨래터로 모여든다.

그러면 어머니는 일부러 빨래감을 머리에 이고 개울로 가서 빨래를 하는데,

빨랫비누로 옷들을 두들겨패면서 속 응어리도 풀고, 동네 아낙들과 돌아가는

이바구를 나누느라 시끌시끌하다.

뉘집 아들이 선을 봤는데 어째어째 되얐고, 아무개 어른은 어디가 편찮아서

대구 동산병원에 갔다 카더라. 아무개 며누리는 셋째를 낳았고 모두 딸이라서

밥도 안묵고 눈물만 짜고 있다더라.... 등등

때가 쏙 빠진 빨래들은 안마당을 가로질러 매여있는 빨랫줄에 널고 받침대를 중간에 받쳐둔다.

보통 하루 이틀이면 빨래가 뽀송뽀송하게 잘 마르고, 종류에 따라서 풀을 멕여서

다림질을 해서 벽에 걸려진다.

 

전기도 없는 산골동네라 여름철 상하기 쉬운 음식이나 과일은 우물속 물위에 넣어두면

언제나 시원하다. 일종의 천연 냉장고인 셈이다.

 

한여름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샘가로 웃통을 벗고 간다.

바닥에 손짚고 엎드리면 어머니는 샘물을 퍼올려서 등에 확 뿌리는데

어찌나 차가운지 옴마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우물의 깊이는 어른 키로 대여섯길 정도 되니까 대략 10미터쯤 될 것이다.

샘물을 들여다보면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저렇게 크지 않은 돌들이 촘촘히 박혀서 무너지지 않는 걸 보면

그 기술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한번도 샘이 무너졌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이 샘물도 가끔씩은 퍼내고 새 물을 저장한다.

그 때는 우물 위에 도르레를 설치하고 힘좋은 장정 서너명이 교대로

물을 열심히 퍼올리고, 바닥이 보이면 몸집 작은 애들이 도르레를 타고 내려가서

바가지로 깨끗이 청소를 하고 올라온다.

 

어릴 적 기억에 삼사십리 떨어져 사는 고모님이 가끔 오셔서 열흘 정도 머물곤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모집에는 우물이 없어서 매번 다른 집의 우물물을 머리에 이고 

와서 살림을 할려니 얼마나 힘든지 모른단다.

그리고 자식들 혼사가 있으면 우리집 재봉틀로 준비하느라 다녀갔다고 한다.

내가 중학교는 대구에서 다녔고, 주말이나 방학때 한번 시골에 오면 우물 주위 

큰 통에는 두레박으로 물을 가득가득 채워놓고 갔다.

나중에 전기가 들어오고도 한참 지난 후 전기 모터를 설치해서 편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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