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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전설따라 삼천리

작성자이냐시오|작성시간23.02.10|조회수22 목록 댓글 0

옛날도 아주 먼 옛날

경북 성주에 있는 어느 산골 마을에 정씨 성을 가진 대감이 살았다.

마을 앞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고 거기에는 용이 한마리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녀가 빨랫거리를 들고 못둑으로 가서 빨래를 했는데,

마침 하혈을 한 여인의 옷을 빨았더니 물이 뻘겋게 물들면서 오염이 되었다.

이 때 저수지에 살고 있던 용이 크게 노하여 못둑을 꼬리로 쳐내면서

하늘로 승천하였다.

그 때 떨어져 나간 못둑의 큰 흙더미가 십리 밖까지 날아가서 지금도 남아있다.

 

그래서 저수지가 크게 줄어들었고 마을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도 바로 그 동네이다.

경북 성주군 월항면 지방동 566번지.

慶北 星州郡 月恒面 池方洞 566番地

행정명칭은 지방동인데 못이 있다 해서 못 지(池)자를 쓴다.

그리고 명칭은 모산 동네로 불리웠다.

우리 동네 처녀들이 시집가면 모산댁(宅)이라는 택호로 불린다.

 

뒷산이 해발 285미터의 지산인데 반달형으로 동네를 감싸면서

북풍과 홍수 등을 막아주는 양지바른 곳이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바람이 불면서 초가집도 개량하고 전기도 처음 들어왔으니,

나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호롱불 아래서 자란 전형적인 깡촌 생활이었다.

그러니 어릴 적 고향의 추억은 정말 보따리가 차고 넘친다.

마을 전체는 약 30호 정도로 자그마한 농촌이었고,

집집마다 5남매 자식은 기본이었으니 온 동네가 아이들로 바글바글하였고,

동네 아지매, 할매들은 거의 모두 등뒤에 얼라들을 두디기로 감싸 업고 다녔다.

농사 규모는 몇몇 집을 빼고는 입에 풀칠 하기에도 빠듯한 살림살이였다.

그래도 우리 동네는 크지는 않았지만 인근 5개동의 중심지역이라 

지방국민학교와 방앗간이 있었다.

버스가 들어오는 아래쪽 동네 장산동(철산)은 100호가 훨씬 넘는

큰 동네이고 논농사도 규모가 훨씬 컸지만 학교는 우리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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