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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택호(宅號)가 먼데예?

작성자이냐시오|작성시간23.02.12|조회수68 목록 댓글 0

택호(宅號) 성명 대신 집주인의 벼슬 이름이나 처가나 본인의 고향 이름 등을 붙여 그 집을 가리키는 호칭.

 

우리 어무이는 택호가 칠곡댁이다.

친정이 칠곡, 즉 칠곡에서 시집 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실제 부를 때는 사투리 특성상 칠국띠기로 불리웠다.

따라서 아부지도 칠국양반 또는 칠국어른으로 통한다.

집에 있으면 누군가가 삽짝문을 들어서면서

"칠국띠기 기십니꺼?"

"칠국어른 어디 가싰어예?" 이런 식이다.

 

그 명칭은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가만 추정해보니

중매로 혼담이 오갈 때 이미 색시가 산너머 어느 동네 처자라 카더라.

이러면 벌써 그 동네 이름이 회자되면서 결혼하면 ㅇㅇ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한 동네에서는 절대 같은 택호가 없다.

왜냐면 먼 지역이면 큰 도시로 택호를 붙이고 가까우면 동네로 하기 때문이다.

 

서울댁, 청송댁, 대구댁.... 이렇게 나가다가 동네 가까이 오면 작은 단위로 쪼개지니까 중복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택호를 부르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어이요, 저쪽 마실 노리미띠기 큰 딸이 어제 선 봤다 카디요."

"남동띠기 큰 며느리가 4째를 낳았는데 또 딸이라 카네요."

"각산어른이 폐병으로 시상 빌었고 5일장 한다 카드만."

 

그리고 이 택호는 부를 때 뿐만 아니라 가재 도구에도 새겨졌다.

됫박이나 저울, 멍석, 제사 용기, 놋그릇, 다라이 등은 동네 잔치나

이웃에 빌려 쓰기도 해서 임자를 표기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 아랫모산은 동서로 길쭉한 모양새인데 서쪽에서부터 택호를 기억하면 이렇다.

월촌댁, 갖말댁, 고산정댁, 챙기댁, 칠곡댁, 인동댁, 성주댁, 나부람댁, 각산댁,

이화댁, 학국댁, 선산댁, 교장댁, 한실댁, 남동댁, 사촌댁, 대뱅이댁, 언동댁,

사도실댁, 멍지댁,와롱댁, 꽃질댁, 봉동댁, 노리미댁, 대동댁, 홈실댁,나동댁,

중포댁, 새터댁, 도천댁....

아흐~~ 두 집은 생각이 안나네.

그래도 수십년 지나도 이만큼 기억난다는 것은 그만큼 택호가 일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택호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나는 건 설날 차례 지낸 후 세배 다닌 기억이다.

또래들 대여섯이 몰려 다녔는데 그 순서가 어르신 연배별로 대충 정해져 있다.

상노인인 월촌어른, 각산어른, 언동어른, 와롱어른을 먼저 찾아 뵈었다.

모두 완전 백발에 상투를 틀고 긴 대나무 담뱃대를 물고 있었다.

이 집 부인과 며느리들은 세배꾼들에게 낼 상차림 하느라 하루 종일 바빴다.

개다리 소반에는 강정과 부침개 몇 점과 간장 종지, 막걸리 한 주전자가 따라 나왔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 때 이미 막걸리 맛을 보고 자랐다.

 

택호 이미지를 검색해 보니 하노이댁도 있네그랴.

세상이 달라진 요즘의 다문화 시대를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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