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작성자JAZZ(요셉)|작성시간25.10.16|조회수24 목록 댓글 0

 

 

2025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4,1-8

형제 여러분, 1 혈육으로 우리 선조인 아브라함이 찾아 얻은 것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2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자랑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3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이 선물이 아니라 당연한 보수로 여겨집니다.

5 그러나 일을 하지 않더라도

불경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받습니다.

6 그래서 다윗도 하느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

의로움을 인정해 주시는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7 “행복하여라,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

8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지 않으시는 사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7

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릴 때 우리나라의 무서운 전설을 다룬 드라마인

“전설의 고향”을 보며 귀신을 무서워하였습니다.

특히나 저는 ‘내 다리 내놔’ 편을 보고 나서는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 저를 잡아갈까 봐 두려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집 안에 화장실이 있지 않고 집 밖에 있어서

밤에 화장실에 가기도 꽤나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이처럼 어릴 때는 귀신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를 무서워하였다면,

어른이 된 지금은 보이는 존재가, 특히 사람이 무섭습니다.

사람들이 무심코 저에게 하는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더 무섭습니다.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볼 때면 사람이 정말 무섭게 느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루카 12,4-5)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하느님만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경외’, 곧 두려워함은 성령 칠은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무서운 분이셔서,

우리가 죽은 뒤에 심판하시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경외란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분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지

자신을 살펴보게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가장 두려워합니까?

사람입니까?

하느님입니까?

하느님을 왜 두려워합니까?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까? 

 

 

(이찬우 다두 신부)

 

 

 

 

 

                          빠다킹신부

 

 

예전에 해외로 성지순례 갔다가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신자들과 함께 해외 성지순례 중이었는데,

가이드가 신자 한 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순례지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분명히 확인했는데,

워낙 사람이 많은 곳이어서 다른 순례팀에 휩쓸려 가신 것 같다고 합니다.

연세가 꽤 있으신 분이어서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이드와 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그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너무 쉽게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분께서 보여주신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어느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드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분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일행을 잃어서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마침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십니다.

 

현명하신 분이었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면 당황해서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시거든요.

그래서 서로 길을 엇갈려서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찾으러 오겠지.’라는 믿음에 자리를 지켜 주시니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살면서 길을 잃었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시 멈춰야 합니다.

그래야 엉뚱한 곳에 가지 않고 제대로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게 됩니다.

멈춰서 우리의 안내자이신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문제는 주님보다 다른 것에 믿음을 둔다는 것이지요.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루카 12,1.2)

 

예수님께서는 이제 잘못된 종교 지도자를 따라서는 안 됨을 이야기하십니다.

먼저 누룩은 아주 적은 양으로도 반죽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하고 그 성질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선’이 바로 이 누룩과 같다는 것입니다.

위선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작은 생각이나 행동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그 사람의 신앙과 삶 전체를 부패시키고 본질을 잃게 만드는 무서운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12,4.5)

 

세상의 권력자들은 기껏해야 우리의 육체적 생명을 앗아갈 뿐,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창조주이자 심판자이신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은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모두 알고 계시며 깊은 사랑으로 돌보고 계십니다.

 

위선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의 사랑에 신뢰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길을 잃어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서 참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자부심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스티브 룬드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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