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03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작성자JAZZ(요셉)|작성시간25.11.02|조회수23 목록 댓글 0

 

 

2025년 11월 03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제1독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11,29-36

형제 여러분,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30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은 ‘빗자루 수사’로 널리 알려진 마르티노 데 포레스(1579-1639년) 성인의 기념일입니다.

성인은 리마의 로사(1586-1617년) 성녀와 거의 같은 시대를 산 인물로서

그 지역에서 함께 큰 사랑을 받는 분입니다.

두 성인 모두 참회와 기도의 삶을 살았고 가난한 이와 병든 이들을

정성을 다하여 돌봄으로써 페루 사회사업의 기틀을 놓았지요.
에스파냐계의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리마의 로사는 1617년 선종한 뒤 1671년에

클레멘스 10세 교황께서 시성하시어 아메리카 대륙의 첫 번째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파냐계 귀족 출신의 기사와 유색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나

혼혈에 사생아였던 마르티노는 1962년에 이르러서야 성 요한 23세 교황께 시성되었습니다.

그 또한 살아 있을 때 이미 성인으로 여겨졌고 사람들의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는데도

리마의 로사 성녀보다 삼백 년이나 뒤에 성인품에 올랐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루카 14,12)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그에게 보답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가 대가와 보답을 바라는

셈법이 아닌 순수한 사랑에 이끌리기를 바라셨기 때문이겠지요.
마르티노 성인의 시성이 리마의 로사 성녀보다 늦었다고 하여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교회 또한 세상이 기준으로 삼는 시각과 셈법에 길들여질 수 있음을 늘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빠다킹신부

 

 

냉전 시대에 미국과 구소련 두 나라가 벌인

치열한 우주 탐사 및 기술 개발 경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최고의 인재만 모아서 수백만 달러의 돈을 들여

무중력 상태에서 쓸 수 있는 볼펜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잉크는 중력을 받아 떨어지면서 글씨를 쓸 수 있는 것인데,

우주에는 중력이 없어서 잉크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소련에서는 어떠했을까요?

마찬가지로 그런 볼펜을 개발하고 있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구소련은 그런 볼펜을 개발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연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연필을 통해 충분히 글씨를 쓸 수 있었고,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무중력 상태에서 써지는

볼펜을 개발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해결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자기 사고를 닫아 버려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어려운 일로 만들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하고 바로 옆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진리로 이끌어주십니다.

하지만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서 바라봅니다.

세상은 온갖 거짓과 불의로 우리를 계속 유혹해서 잘못된 길로 이끕니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루카 14,12)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사회적 ‘상부상조’의 관행이 있었습니다.

초대받았으면 나도 초대하는 것이지요.

또한 나중에 초대받을 것을 생각해서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결국 ‘사회적 투자’ 개념입니다. 이런 세상의 경제 논리를 반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익을 바라는 초대는 ‘자선’이 아니라 ‘거래’일 뿐이지요.

 

그래서 참 자선의 모습으로,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루카 14,13)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참 자선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하느님께 보답받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세상은 계산적이지만, 하느님 나라는 자선과 나눔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더 올바른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기준을 철저하게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철저하게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누구도 타인에게 그토록 잔인할 권리가 없다(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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