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6일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제1독서
<구세주의 구원이 가난한 모든 사람에게 약속된다.>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2.9-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2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9 그때에 나는 민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모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주님을 섬기게 하리라.
10 에티오피아 강 너머에서 나의 숭배자들, 흩어진 이들이 선물을 가지고 나에게 오리라.
11 그날에는 네가 나를 거역하며 저지른 그 모든 행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때에는 내가 네 가운데에서 거만스레 흥겨워하는 자들을 치워 버리리라.
그러면 네가 나의 거룩한 산에서 다시는 교만을 부리지 않으리라.
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요한이 왔을 때, 죄인들은 그를 믿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예수님께 그리 호감을 느끼는 청중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비난하거나 그분께 시비를 걸기가 일쑤였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깨우쳐 주시고자
두 아들의 비유로 그들의 가면을 벗겨 주십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만이 전하는 이 이야기 속의 두 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대하는 두 부류의 사람을 가리킵니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길을 잃었지만 세례자 요한의 선포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바꾸어”(21,29)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
곧 세리와 창녀들입니다.
둘째 아들은, 말로는 신앙을 과시하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생각을 바꾸지 않[는]”(21,32)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입니다.
이 이야기는 요한 사도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물론 “예.”라고 말하고 실천도 하면 가장 좋겠지요.
그런데 늘 그러지는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일상에서 때때로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기도할 때, 맡은 일을 할 때, 남을 위하여 양보하거나 희생해야 할 때
‘아니오.’와 ‘예.’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전환점은 “생각을 바꾸어”(마태 21,29)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의 거절이 아니라 마지막 선택을 보십니다.
‘아니오.’에 끌릴 때 생각을 바꾸어 봅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빠다킹신부
“조급한 거 없어.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 네 나이가 얼마나 어린지 알게 될 거야.
뭐든 도전해 볼 수 있는 나이지. 그래야 하고….”
소설책을 읽다가 보게 된 구절입니다.
머리를 꽝 때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 지금 우리는 남아 있는 시간 중에서 가장 젊은 나이를 살고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정말로 조급해했던 시간이 참 많았습니다.
10대에도, 20대에도, 신부가 되었던 3~40대에도 있었습니다.
50대 후반으로 달려가는 지금에 와서 그때를 되돌아보니 모두 어릴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7~80대의 나이가 되어 지금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얼라가 뭘 안다고 그렇게 설쳤어?”
조급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조급함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하고,
쓸데없는 다른 것만 하게끔 나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여유 안에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돈, 명예, 사람들의 인정….
이런 세속적인 것의 가치는 그 시간 안에서만 잠시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사는 영원함을 기억하며 지금 해야 할 것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은총과 보호 아래 여유를 느끼며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맏아들은 “싫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갑니다.
다른 아들은 “가겠습니다. 아버지”하고 대답했지만 가지 않지요.
맏아들은 처음에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명백한 거부를 표시했지만,
자기의 뜻을 꺾고 방향을 돌리게 되지요. 바로 회개를 의미합니다.
율법을 모르고 살았거나 공개적인 죄인으로 살았지만,
훗날 요한과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회개한 세리와 창녀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다른 아들은 행동이 따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하느님의 율법을 잘 알고 준수한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 21,31)라는 파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당시 종교관에서 가장 불결하고 죄인 취급받던 이들이
가장 거룩하다는 사제들보다 앞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단순히 말로만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생각을 바꾸는 회개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말로만 고백할 때가 참 많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바치겠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겠습니다.” 등등의 많은 말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행동하는 실천에 있습니다.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이 아닌,
현재에 충실한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공정함이란 남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받지 않는 것이다(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