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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1.07.11|조회수54 목록 댓글 1

   7월 12일부터 방역수칙 4단계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우려했던 델타변이바이러스도 증가하고, 연일 확진자가 1,000명 이상으로 폭증하니 말입니다. 저희가 기쁨으로 모임을 시작할 때마다, 바로 이렇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마음이 참 아픕니다. 작년 11월엔 그래도 4주간이라도 모일 수 있었는데, 이번엔 7월 4일 한 주 모이고 바로 셧다운이니 참 아쉽습니다. 그러나 한 주만이라도 함께 얼굴을 대하며, 송두용 선생님의 신앙과 생애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이것도 주께서 허락하신 일이라 받아들여야겠지요. 오랫동안 에클레시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 상황이 무척 아쉽습니다.

  저는 매일 짧은 야나이하라 선생의 글을 공책에 옮겨적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습관적으로 무심하게 글을 적기만 할 때도 있는데, 또 어느 날은 폭풍공감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의 글이 그렇습니다. 주제가 부활인데 왜인지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하는 가정(假定)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요즘 마사이케 선생의 전집도 읽기 시작했는데, 같은 내용이 있어 올립니다. '부활의 역사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쓰셨습니다. 세상 종말의 버튼이 이미 작동을 시작했다는 말이겠지요. 주께서 마지막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도록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카페지기)

 

부활이 없다면    야나이하라(矢內原忠雄)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는 성서가 예언한 구주 그리스도가 아니었겠지요.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우리의 죄는 용서받지 못한 책 지금도 죄의 속박 안에 있을 것이고,

하나님과의 화평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를 믿고 잠든 사람도 부활하지 않겠지요.

우리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졌던 천국의 소망은 허망하게 사라져 버립니다.

천국의 소망 없이 이 세상의 고난과 박해를 견디는 신앙의 생애는 참 불쌍한 인생입니다.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부활하지 않겠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천국에서 재회하는 소망이 사라진다면 사별의 아픔은 치유되지 못합니다.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사람의 부활도 없겠지요.

지상에서 신앙을 모른 채 돌아가신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영원히 구원에 들어올 기회도 장소도 없어집니다.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심판도 사람의 생애도 지상에서의 일이 될 뿐입니다.

신앙은 존재 이유를 잃게 되고, 도덕은 영적 가치를 잃으며, 사랑은 영원성을 상실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증할 뿐아니라, 우리의 구원과 신앙과 사랑과 희망의 근거입니다.

 

부활과 속죄    마사이케진(政池仁)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말합니다.

  "너희가 건성으로 믿지 않고, 내가 전한 이것을 단단히 지킨다면 이 복음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건성으로'라는 단어를 다시 설명하면, '대충'이라든가 '생각없이'라는 뜻이겠지요. 영어로는 'in vain', 즉 쓸 데 없이가 되어 나중에 얻는 것이 전혀 없어져 버리는 걸 말합니다. 그래서 건성으로 믿는다는 건 결국 신앙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바울이 말하는 바는, 지금 아무리 신앙에 열심이라도 끝까지 믿고 단단히 최후까지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더 자세히 전합니다.

  "우리가 첫번째로 너희에게 전한 것은, 우리가 받은 바 그리스도께서 성서에서 예언한 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주으셨고, 장사지낸 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나중에 열두 제자에게도 보이셨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과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것 두 가지 입니다. 이 두 가지는 뗄 수 없는 가건이며 어느 하나가 빠져도 복음이 아닙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너희의 신앙은 헛되고, 너희는 아직 죄 중에 있을 것이다."

  죄 중에 있다는 말은 죄를 용서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속죄는 무효가 되는 것이니까요. 왜 그럴까요? 바울이 믿는 바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저 그리스도 1인의 부활이 아니라, 모든 죽은 사람의 부활을 이끌어내는 첫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하나의 운명을 가졌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모든 사람의 죽음의 원인이 됩니다. 또 한 사람의 생(生)이 모두의 삶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죽음이 이 세상에 온 것 같이, 그리스도 한 사람이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가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죄의 대속물이 되어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주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받으셨다 해도 내가 영원히 죄의 죽음에 매여있다면 조금도 감사할 일이 못됩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은 거기서 나와 자유를 얻지 못하는 한, 용서받았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죽음이라 불리는 감옥에 갇혀 있던 우리 인류는 죽음에서 풀려나 처음으로 완전히 용서받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인류의 대표자 그리스도가 이미 죽음에서 풀려나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부활은 벌써 그리스도로 인해 시작되었습니다. 그 부활로 우리는 십자가 속죄의 효과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봄이 되면 나무에 새눈이 나오고, 이윽고 잎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착착 진행되는 순서가 있습니다. 봄이 되었다고 열매부터 맺히지는 않습니다. 부활도 그와 같습니다. 일시에 모든 사람이 다 부활하는 게 아니라 순서가 있습니다. 성서를 보십시다.

  "각인은 그 순서에 따릅니다. 먼저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 다음은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 그 다음에 종말이 옵니다."

   가장 먼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십니다. 이어서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의 크리스천입니다. 즉 마지막까지 신앙을 지키며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세상의 최후가 오고,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첫 번째 일이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부활의 봄, 즉 어린잎이 벌써 나왔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속죄와 그리스도의 부활과 만인의 부활은 한 사건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부활하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죄 안에 그대로 머물 것이며, 우리의 신앙은 헛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내일 죽을 것이니 우리는 오늘 실컷 먹고 마시자." 해도 됩니다. 이곳저곳 쏘다니며 즐기는 자가 현명하고, 주색을 즐기는 그들을 말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부활도 믿지 않고 사는 그들이 진지하게 사람 사람들보다 영리하다 하겠지요.

   그리스도는 결코 정신(사상)으로만 돌아오신 게 아닙니다. 유명인이 죽은 뒤에 오늘날까지 그 정신이 살아남았다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하실 때 육체도 돌아왔습니다. 만일 그것이 거짓말이라면, 바울과 베드로는 의식적으로 거짓을 말한 나쁜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는 자가 되겠지요.(193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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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손현섭 | 작성시간 21.07.11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어떨까요 마구잡이로 닥치는데로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 소망이 없기에 함부러 사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소망이 있어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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