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2)
요한복음으로 돌아가다
세키네요시오(関根義夫)
1. 또 다른 요한
요한복음을 썼다고 하는 사도 요한은 원래 갈릴리 어부였습니다. 그가 해변에서 형 야고보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부르셨고 두 형제는 예수를 따라가 사도로서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첫머리에서 주 예수가 말씀이며, 하나님이며, 만물의 창조자, 태초부터 계셨던 분, 생명이며, 사람을 비추는 빛이라 명쾌하게 선언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요한복음과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 또 한 명의 요한이 등장한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세례요한입니다.
복음서 기자인 요한은 세례요한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그는 증인으로 왔다. 모든 사람이 주를 믿도록 빛에 대해 증언하였다. 그는 빛이 아니라, 참빛을 위한 증인이었다(1:6-8).”
2.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세례요한은 유다의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었고, 메뚜기와 들에서 난 꿀로 지내면서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사람들은 그에게로 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유대 모든 지방과 예루살렘 주민이 그에게 와서 죄를 고백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마가복음은 기록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출현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그가 혹시 메시아일지 모른다고 생각이 파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내 뒤에 오는 분이 나보다 먼저 계셨다고 말했던 사람이 바로 이 분이다. 나는 이분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모자란 사람이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이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세례요한의 태도와 자세는 실로 솔직했고, 용감하여 감동적입니다.
3. 마리아와 엘리사벳
세례요한의 어머니는 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친척이었던 듯합니다. 누가복음에 천사 가브리엘이 수태고지(受胎告知)를 듣고 놀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한 장면이 있습니다.
“너의 친척 엘리사벳도 나이가 있지만, 아들을 임신 중이다. 불임이란 말을 들었지만 벌써 6개월이 되었다.”
(눅 1:36)
따라서 세례요한이 주 예수보다 6개월 연장자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천사의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이 ‘아들을 낳으리라’ 한 말을 받아들이며, ‘나는 주의 종이니 말씀대로 이 몸에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비로소 순종합니다. 그리고는 서둘러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천사가 전한 말을 확인합니다. 엘리사벳은 진심으로 마리아를 반기며, 마리아가 인사를 할 때 태내의 아기가 뛰놀았다고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엘리사벳의 사랑 가득한 따뜻한 인사에 큰 위로를 받고, 마리아는 자신의 몸에 일어날 일들을 안심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리하여 주를 향하여 감사를 담아 노래합니다.
나의 혼은 주를 우러르며,
나의 영은 구주이신 하나님을 기뻐 찬송합니다.
이 낮은 주의 여종에게 눈길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모든 세상 사람들이
저를 행복한 자라 할 것입니다.
전능하신 이가
저에게 위대한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눅 1:47-49)
그러나 그 후 성서에서 보면, 이 두 명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서로의 길이 전혀 달랐고, 대략 30년 후 요단강에서 운명의 만남을 갖기까지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습니다.
4. 사가랴와 엘리사벳
누가복음에는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령에 가득 차서, 늦은 나이에 주신 아들 요한의 생애에 대해서 보았던 예언을 기록하였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이야, 너는 가장 높은 이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다.
주에 앞서 길을 준비하고,
주의 백성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다.
그 사랑에 의해 높은 곳에서 빛이 우리를 찾아왔고,
어둠과 죄의 그늘 아래 앉아있던 사람들을 비추어
우리의 걸음을 평화로 이끌었다.”(눅 1:67-79)
아기 요한의 아버지가 자녀의 장래에 대해 얼마나 마음을 기울였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편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기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6개월 후에 태어난 마리아의 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을 겁니다. 늦둥이 요한은 이 부부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한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성장하여 인류의 구원이 걸린 역사의 현실에서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아이는 몸도 마음도 잘 자라’,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 있었다는 내용에 암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5.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세례요한이 부모를 떠난 때가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굳게 믿는 유대인으로서, 세 살이 되자 모세의 십계를 배웠고, 그 후 부모가 차례로 돌아가시자 유다 광야에서 홀로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이스라엘인으로서 천지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계명을 굳게 지키며 살아가도록 배웠고, 광야에서 하나님을 영으로 체험하며 부르실 때까지 홀로 기다리며 준비한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형편은 좋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 눈앞의 안일을 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는 풍조까지 있었습니다. 다행하게도 한편으로는 이런 풍조를 염려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세례요한은 여호와 하나님의 한탄을 깨닫고, 이대로는 백성이 망할 수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이 백성이 구원받으려면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죄를 회개하는 길 외에는 없다고 통감합니다. 그리하여 홀로 유다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날이 지나면서, 동포를 구해야 한다는 비통한 황야의 외침은 서서히 예루살렘 주민은 물론, 멀리 갈릴리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졌고, 요단강 일대로 퍼져갔습니다. 차츰 세례요한의 이름은 이스라엘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에게 세례를 받고자 몰려들었습니다.
6.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
몰려든 사람 중에는 예루살렘 유대인 제사장과 레위인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이 메시아일지 모른다 생각하여 그 정체를 밝히려 합니다. 그리하여 ‘너는 누구냐?’라 묻습니다. 이 질문에 요한은 솔직하게 대답합니다.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
그러자 그들은 다시 확인하듯 묻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너는 자신을 무엇이라 하느냐?”
요한이 대답합니다.
“나보다 훌륭한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엎드려 그분의 신발끈도 풀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7. 나사렛 예수
그 무렵 예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요셉의 목수 일을 이어받아 장남으로서 어머니를 도우며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느라 바쁘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예수에게 저 세례요한의 소문이 들려온 것입니다. 그 소식은 예수의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고 말았습니다. 거의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일들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의 왕으로 태어난 분이 어디 계시는가,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예배하러 왔습니다.” 했던 일. 그리하여 당시의 왕 헤롯이 불안에 싸여 베들레헴 일대의 2세 이하 남자아이 모두를 살해했던 일. 주의 천사가 아버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빨리 이집트로 피하라 알려주어 그 밤에 이집트로 가서 살았던 일. 헤롯이 죽은 것을 천사가 요셉에게 꿈으로 전해주어 이스라엘로 돌아온 일. 그러나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통치한다는 말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 나사렛에서 살게 된 일까지. 어머니에게서 수없이 들었던 일들이었습니다.
마침내 세례요한의 앞에 선 예수는 생각이 복잡했겠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를 도와 한 집의 기둥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청년 예수. 하지만 세례요한은, ‘너의 참 사명은 무엇인가?’ 하는 자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질문을 꺼내주었습니다. 예수는 그 물음을 무시할 수 없어, 지금 요단강 가에 서 있는 것입니다.
8.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가 물에서 올라올 때, 하늘이 예수를 향해 열리며 영이 비둘기같이 자신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시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흡족한 자’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마태는 기록하였습니다. (마 3:12-17)
문득 저는 생각했습니다.
‘주 예수는 왜 굳이 갈릴리에서 요단강까지 가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까?’
생각해보니 이는 그리 어려운 의문이 아니었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공적 활동의 선배였고, 예수는 후배였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는 지상의 인간사회 질서를 겸허하게 따르면서 하나님의 질서도 지켰던 분입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독생자였으므로, 자신을 가리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선언했지만, 아무도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같은 길을 걷는, 즉 준비를 마친 선배에게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인정을 받는다는 일반상식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은 선배로부터의 인증이 필요했고, 예수는 그렇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