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바울의 한계’를 논하다
다카하시 사부로 선생은 생애 마지막에 ‘바울의 한계’라는 쇼킹한 글을 썼습니다. 제목부터가 도전적인 냄새를 풍기는 글이었습니다. 역시나 이글은 금세 논란이 되었죠. 우리 모임도 이글을 주제로 토론했으니까요. 그런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선생의 제자들은 지금도 ‘바울의 한계’에 대한 후속 글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코로나시국에서도 열렸던 ‘高橋三郞 召天10주년 기념 그리스도교 강연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강연이 있었습니다. 그 강연원고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다카하시 선생의 ‘바울의 한계’가 어떤 글인지 알아야겠지요. 이 방의 글 496번(2016.10.5. 바울의 한계)과 제자가 쓴 497번 ‘바울의 한계 再考’를 읽으면 됩니다. 귀차니스트 님들은 제가 요약한 걸 보십시오. ㅋ
< ‘바울의 한계’ 요약 >
1. 바울은 유대인답게 법률적 사유를 한 사람이다.
법률적 사유란, 법률가처럼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고방식이다. 사랑을 가르치신 예수의 복음과는 차이가 있다.
2. 바울은 왜 이런 법률적 사유를 하게 되었을까?
1) 바울은 잘 교육받은 유대인이었다. 모세의 율법을 잘 알았고, 잘 지켰던 사람이라 법률적 사유가 몸에 배어 있었다. 이는 구약을 수없이 인용한 그의 서간에서 드러난다.(특히 로마서)
2) 바울은 다메섹에서 회심을 체험한 후, 예수의 제자들을 찾아가지 않고 독자적으로 즉시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베드로 등을 만나 소통했더라면 예수의 사랑의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였을 텐데...
3. 바울의 법률적 사유가 초래한 결과
바울이 신앙만으로 구원 얻는다고 주장하여, 후세에 ‘바른 신앙이 무엇이냐?’에 대한 의견대립으로 수많은 기독교 분파가 생겨났다. 게다가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으리라”는 말을 하여 다른 분파의 그리스도인을 당당하게 박해하고 처형하는 빌미를 주고 말았다.
4. 이렇게 법률적 사유형식을 취한 것이 바울의 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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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글에서 '종교, 종교的'은 '틀에 갇힌'과 같은 부정적 의미이며, '비종교的'은 긍정의미입니다.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
다카하시 사부로 소천 10주년 강연회에서 말씀함
다나카 겐죠(田中健三)
다카하시 사부로(高橋三郞)가 바울의 ‘율법에서의 해방’을 ‘종교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하여, 그와 관련된 디트리히 본회퍼의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에 언급한 것은 1991년이었다.다카하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뒤로도 몇 번인가 글을 썼다.본 논고는 다카하시와 본회퍼에 의한 ‘종교비판’과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에 대해 고찰하고,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하는 시도이다.
1. 본회퍼에 의한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
본회퍼가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을 언급한 때는 충분한 참고문헌을 이용할 수 없는 옥중에서였다. 따라서 어떻게 구체적인 해석을 전개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취지는, 창조, 타락, 화해, 회개, 신앙, 신생, 궁극적 사건 등의 개념을 ‘타인을 위한 사람’이었던 예수라는 존재를 통해 해석한 점이라는 건 분명하다.여기서는 종래의 기독교 중요 개념 비판을 전제로 한다. 종교비판을 위한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이었다. 기독교 비판을 위해 그는 성서를 도구로 사용하는데, 성서의 본래 취지가 현재의 기독교 이해와 다르다고 역설하였다.
칼 바르트의 종교비판에 영향을 받은 본회퍼는 성서를 들어 종교비판을 하고 있다. 현대 신약성서학 방법론의 기초인 루돌프 불트만은, 신약성서 안에(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신화라 할만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부분을 실존적 현대에 적용시키고자 하였다.
성서 개념 중에 신화가 있다는 불트만의 명제는, 어떤 의미에서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본회퍼는 애초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신약성서의 기적이나 승천은 신화적 개념이 아니라, 종교적 해석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불트만의 신화적 개념을 포장만 할 게 아니라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불트만은 해석방법론으로 접근했고, 본회퍼는 해석자의 자세로 접근하였다.
그가 비판한 성서의 종교적 해석은, 형이상학적 해석과 사적인 해석이었다.이는 본래의 성서 메시지가 아니며, 현대인을 위한 메시지도 될 수 없다. 개인의 구원에 대해서는 구약성서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에서도 중심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이다. 이 세상을 넘어선 것이 이 세상을 위해 온 것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신약성서가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세속주의와 전혀 다르다.
그리스도인은 종교적 인간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이다 한 것은, 자신이 경험했던 ‘종교적 인간’에의 비판이 전제되어 있다. 종교적 행위는 늘 인생의 부분에 그치지만, 신앙은 인생 전체를 꿰뚫는 행위였다. 당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생활의 어느 일부분인 상황이었으므로, 자신과 사회의 상황과 관계없이 신앙을 지켜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회퍼에 의한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은 에버하드 베트게가 말한 대로, 해석학의 한 방법이 아니라, 현실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독교를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려는 시도였으며, 사람이 살아가는 문제였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서에 있는 대로 해석하여 불러내려 하지만, 그 예수를 이미 그 시대의 해석으로 기록하였다는 문제였다. 사실 본회퍼는 성서를 낙관적으로 해석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당시의 기독교나 독일 사회와 맞지 않았다.(이런 이질적 시점이 이후 기독교 사상 다방면에 영향을 준 원인이다.)
2. 다카하시에 의한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
다카하시에 의한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도 방법론이 아니었다. 그가 역사를 통해 성서를 본다고 말한 것은, 불트만 이래 성서학의 주 방법론이었던 역사적·비판적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가 종말을 향해간다는, 역사 흐름 속의 한 장면이라는 관점에서 성서 각 문서를 해석하자는 취지였으며, 본회퍼와 같이 해석자의 실존적 자세를 강조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카하시는 몇 가지 사례를 들고 있다. 성서에서 비종교적 도리를 말한 것이 그 하나이다. 예를 들면, 마태 7장 12절, “무엇이든 자신이 받고 싶은 대로 사람들에게 행하라. 이것이 율법이며, 예언자이다.”라는 예수의 산상수훈과 “마지막으로 형제들이여. 무엇에 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자랑할만하며,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이다. 여기에 비종교성이 들어있는데, 인류를 향한 신약성서의 중요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이어서 ‘종교’를 비판하며 설명하기를,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성역이 있어서 타인을 심판하고 정의감에 불타게 된다. 그리하여 피 흘리는 투쟁도 일어나는데, 이런 현상이야말로 종교가 불러오는 저주라 하였다.
다음도 성서에서 종교성을 비판한 사례이다. 욥기에 나오는 친구들에게서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 욥을 단죄하는 종교성을 발견하고, “욥기는 ‘하나님에 의한 종교를 뛰어넘는 이야기’로 읽어야 하지 않는가? 친구들과 욥은 하나님의 허상을 믿었기에 타인을 공격하였고, 후대의 종교전쟁의 근원을 보는 것 같다. 그 허상에서의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부르심 이외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오늘날 종교가 일으키는 심각한 문제, 인간의 실존적 문제는 벌써 다리를 건너버렸다.
또 복음과 대립하는 ‘인위적 종교성’은 하나님을 인간적 종교성에 가둬버리는 구도이다. 다카하시가 비판한 대로 ‘종교’가 인간에게 단단히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가두어버리는 종교성의 일례로, 구원의 문제를 들고 있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 어느 조건이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이다. 다카하시는 그것을 법률적 사유형식이라 불렀다. 이는 루터의 구원론에 법률적 사유형식이 들어있다고 결론지은 박사논문, ‘루터의 근본 사상과 그 한계’에서 다룬 명제였다.
다카하시는, 이렇게 복음을 인위적으로 축소해 버리는 ‘종교’로부터 탈출의 필요성을 현실의 인간사회문제와 결부시켜 이야기하였다. 그 방법으로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을 주장하였는데, 그 동기가 본회퍼와 같다. 한편 다카하시는 성서의 ‘종교성’에 대해서도 만년에 지적한 글을 썼는데, ‘신약성서의 구조’이다. 이글에서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니케아 신조는, ‘주께서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고 주장하는(주의 탄생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함) 사람들, 다른 존재인 본질에서 나온 피조물이라 말하는 이들, 변하여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교회는 저주한다’라고 명시하였다. 아타나시우스 신조는, ‘이것이 공동의 신앙이다. 이를 충실히 확실하게 믿지 않는 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 이런 ‘바른 신앙’이란 인간이 정하는 법률적 사고이며, 단죄사상이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이 사상이 바울에게서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갈라디아서 1장 8-9절, “우리 자신이든 천사든,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 게 좋다. 나는 다시 말한다. 너희가 받은 것과 반하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으면 저주받는 좋다.”
다카하시가 임종 20일 전에 탈고한 ‘바울의 한계’에서는 바울에게 법률적 사유형식이 잔존하였던 점을 지적하고, 그 속죄론에 의해 당시의 제사장 집단이 예수를 죽였다는 사실이 덮여 버렸다고 말한다. 바울에 의한 ‘종교성’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성서에 대해 다카하시는, “성서 자체도 또한(영의 인도로 쓴 것이라 하나 인간이 쓴 이상) 하나의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렇게 다카하시가 지적한 몇 가지 사례에서 분명한 것은, 그의 주장을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이라 칭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본회퍼처럼 성서 전체를 비종교적으로 해석하려 하지않았기 때문이다. ‘성서에 의한 종교와 탈종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성서 안의 종교적 부분이 실제로 현재 우리의 종교적 부분이며, 거기서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며, 욥기의 종교성 문제도, 바울의 사고적 논리도 현대의 우리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카하시를 이어가는 앞으로의 과제는, 성서 안에 있는 종교성, 탈종교성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긍정적 메시지를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종교비판의 기준으로 성서 자체를 삼고 있다는 점에서 다카하시와 본회퍼는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성서 자체에도 지금까지 말한 대로 종교성이 잠재해 있다고 한 점에서 본회퍼와 차별이 있다. 이는 본회퍼에서의 발전이라 보아도 좋겠다. 즉 본회퍼와 다른 점은 ‘종교의 내실’이다. 본회퍼는 당시의 종교로부터 해방을 목표로 하였는데, 다카하시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이해를 말했기 때문이다. ‘종교성이야말로 죄의 근원’이라는 발언에서 종교로서의 기독교 문제를 넘어, 인간 자체에 내재한 자기신화(自己神化)라는 관점에서 종교를 보았다.
두 사람의 출발점은 종교성이라는 문제가 복음 선교의 숙제라는 인식이다. 종교 안에 속했던 두 사람이 그런 자세를 취한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다. 기독교의 전도, 목회, 예배를 자신의 사명으로 알았던 두 분이 왜 그런 종교비판을 했을까? 그 배경과 의의를 알아보기로 한다.
3. 바울의 안디옥 사건
본회퍼와 다카하시의 종교비판의 계기가 무엇일까. 신약성서 갈라디아서에 기록된 안디옥 사건을 참고해 보자. 갈라디아서 2장에 의하면, 1세기 반 경의 안디옥 신앙공동체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이 함께 식사했다. 이는 유대인 전통에 어긋난 일이었다. 그러나 바울도 베드로도 유대인이지만 공동식사에 참여했다. 그때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 공동체에 왔고, 베드로가 공동식사를 중지했다. 당시 유대인의 종교적 관습상 옳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베드로를 바울이 공공연하게 비판했다.
바울의 후반생은 비유대인을 위한 복음 선교였다. 비유대인 신자에게 유대인 율법을 적용할 것인가는 큰 분제였다. 특히 그중에서 할례와 식사문제가 핵심이었다. 안디옥 사건도 식사규정과 관계된다. 바울은 유대인의 일반적 상식과는 다른 견해를 주장하였다. 그는 안디옥 사건 후에도 계속 율법 문제를 다뤘고, 로마서에서는 매우 논리적·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바울의 전도 초기에 이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을 볼 수 있는 게 안디옥 사건이었다.
그런데 바울이 율법 문제를 독자적으로 본 계기가 무엇일까? 40년대 말에 있었단 안디옥 사건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마서의 ‘율법으로부터의 해방’ 논리는 안디옥 사건에서 찾아볼 수 없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도 의롭지 못하다(롬 3:20)는 대단한 명제에 이르는 로마서의 논증이 아니어서일까, 율법의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다만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이방인처럼 살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방인에게 유대인이 되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라고 베드로에게 묻는다. 이는 율법 문제가 아니라, 베드로의 불성실한 태도 문제이다.
율법 문제였다면 그런 발언이 나왔어야 한다. 안디옥 사건을 기록한 갈라디아서는 율법 문제가 중심 주제이며,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예시로 안디옥 사건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만약 그때 율법에 관한 발언이 있었으면, 당연히 기록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태도에 대한 발언만 기록하고 있다.
결국 안디옥 사건에서 느낀 위화감은 바울에게 율법에 대한 깊은 통찰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런 체험을 함으로써, 율법에 대한 고찰을 시작하여, 로마서의 기술이 나왔으리라. 로마서 구약성서를 인용하면서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을 매우 논리적으로 주장한다.
바울이 율법에 대한 독자적 시점을 가진 계기는 자신의 체험이다.(물론 다메섹에서의 예수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시작이다.) 바울은 안디옥에서 유대인과 비유대인이 깊은 우정으로 연결되고, 그 상징이 공동식사라는 점을 실감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무너뜨리는 일에 강한 반발을 느꼈다. 또한 그것은 예수의 정신에 반한다는 것도 직감한다. 그런 실제 체험이 동기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본회퍼와 다카하시의 종교비판 출발도, 바울과 같다. 논리적 귀결이라기보다 타자에의 실존적 자세였다고 생각한다. 바울이 안디옥에서 예루살렘 유대인에게 당당했던 배경에는 그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4. 종교 비판과 디아스포라 기질
(글쓴이는 '디아스포라性'이라 하였으나, 읽기 쉽게 '디아스포라 기질'로 번역하였습니다.)
바울이 유대의 식사규정을 따르기보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공동체 유지를 택한 것은, 그가 예루살렘 주류파가 아니라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살아왔다는 점과 관련된다. 물론 모든 디아스포라가 반드시 바울처럼 행동하지는 않았다.(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던 바나바는 공동식사에서 빠져나감) 이렇게 주류파에 속하지 않은, 바울 같은 독자 정신을 ‘디아스포라 기질’이라 하자. 디아스포라가 모두 그 기질을 갖지는 않지만, 디아스포라가 그 기질을 갖는 원인이 되는 건 사실이다. 공동체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 공동체 본래의 모습을 계승하면서 공동체에 발전을 가져오는 사상을 제공한다. 이것이 디아스포라 기질이다.
본회퍼와 다카하시는 모두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를 꺼내어 다루면서, 그 돌파구로서 예수에게 돌아가자고 주장하며 기독교 비판을 하였다. 그것이 디아스포라 기질이며, 창조적 비판의 원천이다.
본회퍼는 목사이며 신학자였지만, 나치 정권이라는 정치 상황에 굴복한 당시 독일 교회의 태도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된 데는 쌍둥이였던 자매의 남편이 유대인이었고, 칼바르트의 신학적·신앙적 사색 등의 영향이 있었지만, 어쨌든 본회퍼는 당시의 기독교 주류와는 선을 그은 입장이었다.
다카하시의 경우도 같다. 첫째, 그는 무교회라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둘째, 무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무교회 자체의 문제점에 관심이 있았다. 셋째, 기독교계에서는 외연에 있는 일본인이었다. 이런 요소들이 그가 디아스포라 기질을 가진 요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독일 유학시절, 무교회 기독교인의 모습이 그다지 이해되지 않았다는 경험이 교회와 무교회의 본질을 깊이 고찰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또 루터나 바울의 구원론에서 법률적 사유형식을 발견했던 그의 사상은 아시아의 일본인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본회펴와 다카하시 사부로, 두 사람에게 종교비판은 오늘날의 사회 문제였으며, 자신을 비판 대상과 단절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운명공동체라 여겼기 때문에 나온 비판이었다. 주류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고독한 싸움을 하는 게 디아스포라의 특징이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독특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고수하므로 다수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하나, 다음 세대에 드러난다. 따라서 디아스포라 기질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본회퍼가 말한 성실이 결정한다.
사실 무교회의 존재 의의는 이 디아스포라 기질에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바꿔말하면, 오늘의 무교회 쇠퇴는 디아스포라 기질의 상실 때문이 아닐까? 무교회 신자가 주류에 속해 버리면 본래의 존재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5. 현대에서의 의의
본회퍼의 옥중 서한은 기독교 사상에 다양한 영향을 주었으나,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종교라는 조직이 워낙 견고하여 다양한 문제의 불씨가 되고 있으나, 탈종교의 실현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본회퍼의 탈종교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판에 박힌 하나님이 아니라, '고통받는 신만이 도움을 줄 수 있다'라는 사상은 탈종교가 신관의 재발견임을 보여준다. 예수와의 만남은 엄숙한 일이라고 본회퍼는 부르짖었다. 참으로 그의 종교비판은 기독자로서의 반성이었다.
다카하시가 종교비판을 위해 말한 기독교의 법률적 사유형식 문제도 그리스도의 구원론을 다시 상기시키려는 제언이었다. 이는 ‘대립적 사고’ 즉 어떤 전제 아래 구원이 성취된다는 ‘조건 귀결 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동양인의 발견이며, 교계에는 큰 공헌이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후세대를 위하여 ‘디아스포라 기질’이라 이름붙인 정신이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디아스포라 기질은 외적 환경과 내적 성실함이 교차하는 성령의 활동이며, 그 고독한 싸움에서 새로운 역사가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 디아스포라 기질을 갖고 고독한 중에 소망을 구하는 자는 감춰진 진리를 발견하여 후세에 전하는 사명을 담당할 것이다.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 없는 시대로 들어서는 중이다. 종교 혐오 경향이 가속화되어, 유발·노아·하라리의 말을 인용하면, 알고리즘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과 세상의 기준이 되는 지위를 얻으리라 한다.(호모디우스 참조) 이런 세상에서 새로운 신관을 찾는 일이 가능할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세상을 결정하리라.
앞으로는 더욱더 과학과 이성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본회퍼나 다카하시가 성서의 해석을 고집한 것도 보편성을 가진 이성적 해석을 중시했기 때문이며, 거기에서 새로운 공동체 형성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성서의 해석을 중시하는 자세는 성서 숭배가 아니다. 이성으로, 아니 이성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려는 기도,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의 비종교적 해석’의 취지는 기도와 실제 생활과 이성, 이 3자를 모두 동원하여 우리 자신을 얽어매는 사고의 틀을 버리고, 우리를 둘러싼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절실한 바람이다. 자기 보신과 타자 비판만 하는 ‘인간에 의한 부정’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긍정 아래’로 나아가려는 소망의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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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손현섭 작성시간 21.08.04 엄청 어려운 글이네여 글 중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얼마나 발견할 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세상을 결정하리라.' 라는 글에는 동감이 가지 않네요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가?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에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찾아오셔야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서야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런 복잡한 문제는 신학자들이 많이 논하게 하고 우리는 그저 바보처럼 주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바라고 성령님의 간섭과 이끄심을 간절히 바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