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의 집
(파라클레토스 2021년 8월호)
세키네요시오(関根義夫)
1. 가나 혼례에서의 예수
예수는 세례요한과 만나 존재의 근본부터 흔들리는 큰 경험을 합니다. 이어서 제자들과 초대받은 가나 혼인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자각했고, 비로소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일을 했습니다.
복음서 기자 요한은 이를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 최초의 증거를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셨다.’
이 최초의 증거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아들 예수 자신의 영광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예수는 제자들과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며칠간 머뭅니다. 가나에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첫 영광을 보이셨고, 피로한 몸과 마음을 어머니와 제자들과 함께 오랜만에 쉬셨습니다. 이때가 바로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메시아로 등장하기 전, 잠깐 가졌던 마지막 휴식이었습니다.
예수는 이 잠깐의 휴식 이후, 어머니 마리아는 물론 육친의 형제들과 완전히 헤어져, 오직 메시아라는 자각 하 십자가를 향해 그리스도로서 생애를 걸어갔습니다.
2. 유월절
그해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은 민족의 기원이며, 출애굽 사건을 절대 잊지 않기 위해 행하는 가장 소중한 명절이었습니다. 애굽에서의 노예 신세에서 나와 여호와 하나님만 따르는 백성으로서의 뜻을 새로이 하는 것이 이 명절의 기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밑바닥에 깊이 새겨진 역사입니다.
제자들과 갈릴리로 돌아온 예수는 이 명절이 다가오던 그때, 기다리기라도 한 듯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요한복음에는 이때의 제자들 동향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성전 경내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습니다.
성전은 수많은 사람으로 분주하고, 난리법석이었습니다. 유서 깊은 이 명절을 축하하기 위해 온 유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경내에는 성전에 바칠 소양과 비둘기 등을 파는 상인 무리도 있었습니다.
3. 신명기가 기록한 유월절
신명기 14장 22-26절에 이 명절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너희는 매년 밭에 씨를 뿌려 얻은 수확물 가운데 10분의 1을 반드시 바쳐야 한다. 너희 하나님 주 앞에, 주가 선택한 장소에서, 너희의 곡물과 새포도주와 올리브유의 10분의 1, 소나 양의 첫 새끼를 먹고 항상 너희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에 살면서 성전과 가까워 곡물이나 새 포도주, 올리브유 그리고 소와 양을 쉽게 준비해 올 수 있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북부 갈릴리 사람들에게 이 제물 준비는 무리한 요구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주께서 너희를 축복했을지라도, 너희 하나님과 주가 그 이름을 위해 택한 장소가 멀리 떨어져 있어, 그 길이 길면 수확물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은으로 바꿔 가져오라. 그 은으로 바라는 것, 즉 소나 양, 포도주, 진한 술, 그 외 필요한 물품을 사서 하나님 앞에서 가족과 함께 먹고 기뻐하며 축하하라.”
그리하여 먼 지방 사람들도 편하게 성전에 올 수 있었습니다. 먼 곳에서 며칠 걸려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은 곡물과 포도주, 올리브유를 비롯해 소나 양을 성전에서 조달하였습니다. 그래서 경내에는 이런 동물과 물품을 파는 상인이 가게를 열고 지방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것입니다.
또 성전 경내에서는 일상생활에서 통용하던 로마화폐를 쓰지 않았습니다. 로마화폐를 세겔 화폐로 바꿔야 했기 때문에 환전상도 가게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명절에 성전은 싸움이라도 난 듯 시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보신 경내의 소란은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4.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요한복음에 의하면, 이때 예수가 한 행동은 제자들과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예수는 성전 경내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하는 자들을 봅니다. 예수는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고, 환전상의 현금을 흩뿌리며 그 판매대를 엎고, 비둘기를 파는 자에게 말했다. “이 물건들을 옮겨 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이를 본 제자들은, ‘당신의 집을 생각하는 열의가 불타오릅니다.’ 하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이는 시편 69편 9절입니다. 그때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시는 거룩한 성전을 당신들은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으니, 하나님이 참으로 슬퍼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서의 생각이 그대로 나타난 사건임이 틀림없습니다.
5. 출애굽기가 기록한 유월절
그런데 출애굽기 12장도 주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애굽에서 주는 모세와 아론에게 말했다.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게 고하라. 이달 10일 각자 아버지 집에서 가족별로 소나 양을 한 마리 준비하라. 그 소나 양은 상처가 없고 생후 1년된 수컷이어야 한다. 14일까지 잘 데리고 있다가, 석양에 그것을 잡아 피를 취하고, 자기 집 입구의 문기둥에 바르라. 그리고 그 밤 고기를 구워서 먹으라. 또 효모를 넣지 않은 빵을 쓴 채소와 함께 먹어라. 그것을 먹을 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고, 지팡이를 손에 들고 빨리 먹어라. 이것이 주의 유월절이다.
그 밤에 나는 애굽을 돌며 사람이든 가축이든 모든 첫째를 치리라. 또 애굽의 모든 신을 심판하겠다. 너희가 사는 집에 칠해진 피는 너희의 표식이다. 피를 보고, 나는 너희를 지나가겠다. 내가 애굽을 칠 때, 멸망하는 자의 재앙이 너희에게는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날을 너희는 기념해야 한다. 주의 명절로 축하하고, 대대로 지켜야 할 명절로서 축하해야 한다.”
이 출애굽기에 기록된 당시의 긴장 가득한 분위기와 요한복음의 유월절 광경은 확연히 다릅니다. 출애굽기가 전하는 당시의 이스라엘 유월절은, 민족의 존망에 관계된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예수 자신도 이때 혹시 자신의 조상이 천몇백 년 전 모세를 따라 출애굽했던 때의 일을 떠올렸을지 모르겠습니다. 그와 비교하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마주한 유월절은 그저 시끄러운 명절이었을 뿐입니다.
성전대청소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단호한 예수에게 유대인들은 화를 냅니다. ‘네가 이렇게 한 것은 어떤 증거라도 보여주려는 것이냐,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일을 했느냐’고 분노가 폭발합니다. 그들은 예수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6. 내 아버지의 집
유대인들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한 예수의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내 아버지의 집’이라는 단어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 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이는 유대인을 자극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예수에게 적대감을 가진 것은 사실,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자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요한은 기록하였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예루살렘 뱃새다의 연못 회랑에서 38년간 병으로 고생하던 남성을 치유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날이 안식일이었다고 티를 잡은 유대인에게 예수가, “나의 아버지가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예수가 안식일 규례를 깼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말하였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예수는 뱃새다 연못 사건 때와 같이 이때도 아버지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불렀고,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임을 당당하게 선언하였습니다.
7. 3일에 지어서 보여주겠다.
그런데 예수는 유대인으로부터, 이런 일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증거를 보여달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그러자 “이 성전을 허물라. 3일 만에 지어서 보여주겠다.” 합니다. 예수의 이 대답은 유대인들의 예상을 완전히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이 3일이라는 단어가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3일째 아침 일찍 부활하셨던 그 3일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어떤 관련이 있을까 깊이는 알 수 없습니다. 이에 그들 유대인은 대답합니다.
“이 성전은 46년 동안 지었는데, 너는 3일 만에 짓는다는 거냐?”
놀랐다기보다 아마도 뜻밖의 대답에 아연실색입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가 말씀하신 깊은 의미는 전혀 알지 못했고, 문자 그대로 실제 재건에 드는 햇수를 들어 예수의 말씀에 당혹감을 나타낸 것입니다.
만일 그날의 행동을 예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 당연히 유대인들의 손에 의해 체포되었을 것이며, 폭거를 진정시키고, 관헌의 손에 넘겨 일단락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최근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말하며,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예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힘으로 제압하지 못하고 주저하지 않았을까요?
그 예수는 무엇보다 아버지 하나님을 제일로 여겨, 갈릴리에서부터 각지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데 온 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예수에게 살의를 품고 있었던 유대인도, 다른 많은 사람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8. 사람들, 그리고 유대인의 반응
이날 예수의 행동은 그날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놀라움이었지만, 그 열의와 진지한 태도에 오히려 예수의 참뜻을 헤아리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성전과 관계있는 유대인들도 그 무렵 예수의 진지한 행보를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가 단순한 치기로 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보지는 않았겠지요. 특히 예수가 채찍을 휘두르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한 일은 사람들의 마음에 강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유대인도 예수의 행동에, ‘어떤 증거라도 보여줄 참인가’라고 말했던 것이겠지요.
예수는 대답으로 3일 만에 성전을 지어 보이겠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 말씀으로 예수는 유대인에게 무엇을 전하려 한 것일까요?
9. 성전신앙에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복음서 기자 요한은 예수가 말씀하신 의미를 꽤 오래 생각한 듯합니다.
“이 성전을 허물라.”
성전은 저 유대인이 말한 대로, 46년이나 걸렸어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눈앞의, 돌로 된 성전입니다. 그것을 3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합니다. 3일. 그들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눈앞의 예수가 묘에 장사된 후 3일 만에 부활하리라는 예언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성전’은 예수 자신을 말한 것이며, ‘허물라’는 유대인 비유대인을 떠나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을 뺏고 말았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만일 이 해석이 맞다면, 예수는 그때 이미 자신의 죽음과 3일 후의 부활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요한의 영적 해석이겠으나, 그것은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 마음에도 깊이 공감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 후의 역사는 놀랍습니다. 기원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면, 다른 쪽에서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바울이 전했던 복음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부활하여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신앙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와 현재에 이르고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