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関根의 요한복음(11) - 목마른 사람은 누구나

작성자메나리|작성시간22.03.08|조회수30 목록 댓글 0

목마른 자는 누구나

파라클레토스 372호(2022.3)

세키네 요시오(関根義夫)

 

   예수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자리를 뜹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유대인 때문입니다. 조용히 유대인을 피해 갈릴리를 순회하셨습니다. 마침 그때 초막절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그 초막절에 동생들이 우연히 예수를 만납니다. 그들은 빈정대듯이 예수에게 말합니다.

   “여기를 떠나 유다로 가서 형님이 하려는 일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십시오. 대중에게 전하려 하면서, 숨어서 행동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이런 일을 한다고 세상에 확실히 보여주십시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포기하고, 벌써 2년 넘게 집을 나와 지내는 큰형 예수입니다. 형제들은 예수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를 다소 가볍게 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만일 형 예수가 품고 있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열정을 조금이라도 알아챘더라면 이런 실례의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겠지요.

 

   복음서 기자 요한은 동생들의 이 말끝에, “형제들도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굳이 덧붙입니다. 동생들은 예수가 놀며 돌아다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형이 왜 집을 나와 생활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1.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동생들의 그 말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덧붙입니다.

   “너희의 때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세상이 너희는 미워하지 않으나, 나는 미워한다. 세상이 악하다고 외쳤기 때문이다. 너희는 초막절을 지내러 올라가거라. 나는 올라가지 않겠다.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말은 가나의 혼인 잔치 때도 했던 말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안 어머니가 예수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렇게 대답했던 말이지요. 그러나 그때의 대답과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같은 문장이지만 여기서는 그의 비장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두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뜻을 헤아려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때’가 무엇일까? 중요한 때라는 건 확실합니다.

   아무 때나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동생들과 달리, 예수는 이미 어떤 특별한 ‘나의 때’가 정해져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어쩌면 아직 ‘그의 때’는 오지 않았지만, 예수는 ‘그의 때’, 즉 아버지 하나님이 부르신 때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언제나 마음속으로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가 말한 ‘그의 때’는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정한 때였음이 분명합니다. 동생들에게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나중에 예수는 사람의 눈을 피해 숨듯이 조용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요한은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시사합니다.당시 바리새인은 물론이요, 초막절에 참가하는 군중들 사이에서 예수에 관한 소문이 무성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는 언제부턴가 민중이 인정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유대인을 의식했고, 두렵기도 해서 예수의 일을 공공연히 말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2. 군중에게 당당히 주의 말씀을 전한 예수

   그러나 초막절이 지나가고 있을 즈음, 예수는 마음을 정하고, 성전 경내에 나타나 군중 앞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당당히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웠습니다. 예수가 돌연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놀라웠고, 예수가 성서 말씀을 실로 제대로 이해하고 군중이 알기 쉽게 진지하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들은 유대인조차 “이 사람은 학문을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성서를 이리 잘 알고 있는가?” 말하며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말을 들었을까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던 예수가 말을 이어갑니다.

   “나의 가르침은 내가 하는 교훈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교훈이다. 그분의 마음을 따라 행하는 자는 나의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지 내가 하는 것인지 알 것이다.”

 

3.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자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

   예수는 힘을 주어 이야기를 계속해나갑니다.

  “자신을 높이는 자는 자신의 영광만 구한다.

   그러나 보내신 자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진실하며, 그 사람에게 불의는 없다.(7:28)”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 제멋대로 말하는 자와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자, 둘은 완전히 다르다는 말입니다. 예수의 이 말씀은 절대로 간단히 넘길 수 없는 말입니다. 

    ‘제멋대로 말하는 자’와 비교되는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자’. 각각 삶의 방식이 다릅니다.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 구속되는 게 싫어서 제 생각대로 사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고 그 뜻에 따르는 자입니다.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는 두 인생입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제멋대로 말하지 않고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자야말로 진실한 사람이며 그에게 불의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 삶은 어쩌면 극단적 이분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언제나 살아 일하시는 예수의 존재를 아는 사람과 전혀 무관심한 사람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4. 왜 나를 죽이려 하는가?

   예수는 여기서 갑자기 화제를 바꾸어 그들에게 예리한 질문을 던집니다.

   “모세는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는가? 그런데 너희는 누구도 그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왜 나를 죽이려 하는가?

 

   예수가 이렇게 대담한 질문을, 많은 군중이 주목하는 가운데,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유대인에게 직접 정면으로 던지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민중은 예수의 언행, 특히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었다거나,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 불러 유대인들의 미움을 샀던 일까지 잘 알고 있었으나 침묵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예수는 바로 정면에서 그들 유대인에게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드러낸 것입니다.

 

5. 예수, 초막절에 참여하다

   예수는 자신이 유대인에게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에게, ‘나는 초막절 행사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어쨌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유대인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에게 있어, 자신의 생명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것이며, 아버지의 뜻을 따라 쓰일 수밖에 없으므로 절대로 자신의 판단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계획적으로 예수를 죽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는 공공연하게 유대인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피하여, 광야와 가까운 에브라임이라는 마을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머물렀다고 요한은 기록하였습니다.(11:54)

 

   이 초막절과 유월절 행사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셨는가를 상기하기 위한 명절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예수는 이 명절을 숨어서만 보낼 수 없었습니다. 물론 자신이 모습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일은 목숨을 빼앗고자 하는 유대인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어, 크나큰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이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신의 때’가 지금 바로 눈앞에 닥쳐왔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가 바로 그때다! 예수는 확신했고,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인 눈에 띄었고, 예수는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게 되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는가? 그런데 너희는 그 누구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하여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유대인을 향하여, ‘왜 나를 죽이려 하는가?’ 묻고 있습니다.

 

6. 율법을 지키는 자

   나는 이 대목에서 마태가 전한 예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온 것은 율법과 예언자를 폐하기 위해서라 생각하지 말라. 폐지가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서다. 확실히 말한다. 모든 일이 실현되고, 천지가 사라져 없어지기까지 율법의 글자 1점 1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계명 하나라도 없애거나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 부를 것이다. 그러나 이를 지키고 그대로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라 부르리라. 너희 의가 율법학자나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앞서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7. 힘있게 말씀하시는 예수

   군중은 예수의 말씀이 힘이 있고, 내용이 깊은 것에 감동하여, 모두가 그 말하는 바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는 예수의 생명을 뺏고자 노리던 바리새인들도 같아서, 에수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몰입하여 들었습니다. 군중도 바리새인 의원들도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결국 인정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의원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는 유대인을 향하여 날카롭게 파고들었습니다.

   “너희는 누구도 그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런데 왜 나를 죽이려 하는가?”

 

8.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

   율법의 중심에는 십계가 있습니다. 그 여섯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이미 보았듯이 바리새파 사람들은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혀 예수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과 동등한 자로 여겨 신을 모독한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아들 예수가 표현하는 최대의 존경과 사랑입니다. 예수의 아버지에 대한 깊은 생각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늘 입으로 말하지 않습니까? 예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파고든 예수의 예리한 질문에 유대인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당황하여, “너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고 얼버무리며, 나중에는 “네가 악령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런 말을 한다.”고 구차한 변명을 할뿐이었습니다.

 

9. 안식일의 할례 문답

   예수의 공격은 계속됩니다.

   “모세는 너희에게 할례를 명하고 직접 행하여 모범을 보였다. 너희는 태어나면 8일째에 할례를 행한다는 모세의 선례를 깨지 않으려고, 율법을 따라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지 않느냐?”

   잘 생각해봅시다. 태어나서 8일째에 할례를 행하는 건, 그 부모가 하나님께 받은 아기가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라는 것을 확증하기 위함입니다. 즉 영원히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사는 백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원하는 증거로 시행하지 않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나 예수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해서 왜 화를 내는가? 할례를 안식일에도 행할 수 있다면, 할례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 백성의 질병과 부상을 낫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이다. 할례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이 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당신들은 참으로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여 비판한다.”

   이런 말로 유대인의 입을 막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10. 예수는 살아있는 ‘영원한 생명수’

   그러던 중에 명절 마지막 날이 왔습니다. 가장 성대한 행사가 벌어지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예수는 또다시 군중 앞에서 당당하게 외칩니다.

   “목마른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로 와서 마십시오. 나를 믿는 자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그 사람의 안에서 살아있는 생수가 되어 흘러넘치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그 사람 안에서 생수가 흘러넘치게 되리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장사를 치른 후 3일만에 부활하여 지금은 하늘에서 믿는 자들에게 임하십니다. 그 예수가 지금 오늘도 믿고 우러르는 사람들과 함께하십니다.

   "진정 아멘, 주여 감사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