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걱정
메 나 리
1. 들어가며
일본의 모리야마(森山浩二) 선생님이 책 한 권을 보내주셨습니다. '동대교수, 젊은 알츠하이머가 되다'라는 책 제목을 보고, 내용이 쉽지 않겠구나 했습니다. 모 선생님은 이렇게 책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뇌전문 의사인 동경대 교수가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죽기까지의 과정인데, 그리스도인의 생애와 신앙은 어떠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고의 명문인 동경대의 의대교수였고 뇌전문 의사였던 와카이 스스무(若井 晉) 씨가 50대 후반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그 후의 일들을 아내 가츠코(若井 克子)가 기록한 책입니다. 이 두 부부는 다카하시 사부로 선생의 집회에서 대학생 시절부터 성경을 배웠고, 일생을 무교회 신자로서 살아간 분들입니다. 특히 부인 가츠코 씨는 애농(愛農)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기도 한 분입니다.
2. 알츠하이머 징후들
와카이 교수는 1947년생입니다. 그 징후가 심각하게 드러난 건 2002년(55세)이었습니다. 대학내 비리를 조사하는 위원회의 책임을 맡았는데, 회의 진행이 두서가 없고 보고서 작성도 서툴러서 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중도 사퇴당한 것입니다. 학교내 은행 ATM기에서 현금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전화하여 돈을 가져오라는 것부터 시작하여, 갑자기 가위질이 안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출근길에 매일 이용하던 자동발매기 조작이 안 되어 표를 살 수 없었고, 여러 해 살던 동네의 동창회 사무실을 찾지 못하고 헤맵니다. 지하철 역 출구를 찾지 못합니다. 운전면허를 갱신하러 가서 집주소를 끝까지 적지 못합니다. 매주 열리는 교수회의 장소를 찾지 못합니다. 글을 쓰는데 단순한 글자도 틀리게 씁니다. 한 번은 해외조사를 위해 자주가던 니콰라과에서 돌아오는 비행 여정 중, 환승하는 미국의 공항에서 갑자기 미아가 되어버린 일도 있었습니다.(그후 해외출장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가 뇌전문 의사였기 때문에 MRI를 촬영하여 상세히 조사해보았지만 뇌는 정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억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드문드문 일어나는 일인데다가, 강의도 감당할 수 있었으며, 업무처리도 조교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저 나이들어 생기는 건망증 때문에 실수를 하는 거라 생각하였습니다.
3. 조기 퇴직
그러나 증상은 더욱 심해져 업무처리는 물론, 외출조차 혼자 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에 부인과 자녀들이 진단을 받자고 설득합니다. 그는 자신이 근무한 병원(동경대 병원)에서는 진료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락합니다. 역시나 결과는 알츠하이머입니다.
그러던 중 오키나와의 류큐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왔습니다. 부인과 딸이 동행하기로 하고 모든 예약까지 마쳤는데 돌연 강의의뢰를 거절하고 오키나와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당황했지만 이미 모든 예약을 마친 상태이니 그냥 여행으로 다녀오자고 설득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오키나와. 오키나와의 바닷가를 거닐던 그가 갑자기 한 문장을 말합니다.
"이곳 오키나와라면 내 병이 나을 것 같아."
아내는 바로 오키나와로 거처를 옮기로 하고, 먼저 퇴직을 감행합니다. 아직 정년까지 기간이 남아있지만 더 이상 근무는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퇴임식에서 하는 마지막 강의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격려해주었습니다. 사실 주위 사람들은 다 그의 상태를 알고 있었지만, 오직 그 자신만 아직 알츠하이머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듯합니다.
그리하여 먼 곳 오키나와에서 얼마 동안 살게 됩니다.
4. 커밍 아웃, 그리고 공개 강연활동
아들의 결혼식을 위해 간 삿포로에서, 알츠하이머 환자 크리스틴 프라이튼의 강연을 듣게 됩니다. 크리스틴은 호주 여성인데, 'Who will I be when I die?' 라는 책의 저자였습니다. 그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바라본 세계를 그린 것입니다. 부부는 그녀의 강연을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강연 말미에 크리스틴이 물었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알츠하이머 환자가 있습니까?"
수많은 청중이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오직 한 사람, 그가 손을 번쩍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인도, 같이간 지인도 깜짝 놀랐습니다. 비로소 자신의 알츠하이머를 받아들이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인정한 것입니다.
이 커밍아웃이 있은 후, 자신이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에 대한 글도 쓰게 되고, 부르는 곳이 많아져 공개 강연도 나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실제 알츠하이머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여 그는 이제 다시 유명인사가 된 듯 하였습니다. 물론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강연이나 인터뷰에는 반드시 부인이 동행하였습니다. 알츠하이어 환자로서 가장 쓰라린 점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라고 솔직하게 답하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5. 신앙으로 함께 한 가족
가족이 모두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최선을 향해 걸어간 것은 바로 그들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 친분이 있던 동료 의사가 부인에게 걱정스러운 듯 말했습니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졌군요."
천국이란 동경대 교수 자리를 말하는 것일 테고, 지옥이란 알츠하이머 환자가 되었다는 사실일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요. 사실 처음엔 그 자신도 부인도 '차라리 죽었으면' 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부부는 질병은 인생의 한 과정이며, 그저 병이 뇌에 왔을 뿐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몸이 병들었을지라도 거기에 깃들어 있는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당연히 의미가 있습니다. 2021년 2월 10일, 그는 평안히 잠들었습니다. 시신은 그의 유언에 따라 의과대학의 해부학 교실에 기증되었습니다.
6. 나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까?
치매! 알츠하이머처럼 기억을 잃어가는 질병을 우리는 '치매'라고 합니다. 어리석을 치(痴), 어리석을 매(呆)입니다. '어리석고 또 어리석다'라니요? 일본도 과거에는 치매라고 했다가 지금은 '인지증(認知症)'으로 고쳐 부릅니다. 어리석어서 생긴 병도 아니고, 그 병에 걸리면 어리석어지는 병도 아니니 우리도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야 할 겁니다. 장애 가진 분들을 좀더 존중하는 이름으로 바꿔부르듯이 말입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니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됩니다. 98세의 어머니에게서 아마도 나의 장래 모습을 미리 봅니다. 어머니는 그 동안 신앙으로 혼자서 잘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자기중심적이 되어서 감사는 사라지고 불평이 부쩍 늘었습니다. 서운함을 표현하기 까지 어머니는 실제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인생의 마지막이 참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의 남은 인생이 모범적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아름답기만 할 리 없습니다. 이분처럼 알츠하이머일 수도 있고, 무서운 사고나 암이나 뇌졸중으로 고통스러울 지도 모릅니다. 내 집을 떠나 남의 손을 빌려 살아갈 수도 있겠지요. 어떻게 인생이 흘러가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엷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마음만은 늘 하늘의 소망으로 가득차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