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영원한 생명
파라클레토스 371호 2022년 2월
세키네 요시오(関根義夫)
전호(370호)에서 요한복음 시작과 함께 5장의 예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예수의 말씀에 온전히 집중하여 한 마디도 흘려듣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건 종종 어렵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도 좋습니다. 오히려 반복하여 읽어보고, 이해하기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시대에는 지금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신약성서라는 게 당연히 없었습니다. 구약성서도 아무나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성직자였던 바리새파 사람들, 성전을 관리하던 사두개파 사람들이 독점하다시피 했었죠.
일반 사람은 안식일이나 명절에 이 사람들이 풀어주는 구약성서 말씀을 들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은 민중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1. 부모를 놀라게 한 소년 예수
12세 소년 예수가 유월절에 갈릴리 시골에서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 뜰에서, 부모를 걱정시키면서, 학자들 가운데 섞여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질문을 했다는 건 부모로서 내심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런 예수를 꾸짖은 어머니에게 예수가,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몰랐다는 말입니까?” 하고 대답했으니까요.
물론 부모는 소년 예수의 대답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하였고, 그저 걱정시키는 아들 정도로 생각했을 겁니다. 나사렛에 돌아와 장남으로서 부모를 열심히 도왔으니까요. 더구나 아버지 요셉이 일찍 세상을 뜬 후로는 한층 더 집안의 기둥으로서 어머니를 섬기고 동생들에게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믿음직한 형 역할을 해냈습니다.
2. 요한에게 세례를 받다
이후 예수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30세가 되어 세례 요한과 만나면서부터입니다. 세례 요한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는 그동안 경험한 적이 없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정신적 충격 같은 걸 감지합니다. 그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매년 유월절에 부모님을 따라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일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는 그때 이후 묻어두었던 일이 서서히 드러나, 드디어 어느 날 자신을 붙잡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나사셀을 떠나 남으로 향하여 요단강에서 선교하며 세례를 베푸는 요한을 만납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습니다.
3.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내려와
마태에 따르면, 예수는 세례를 받고 즉지 물에서 올라왔다. 그때 하늘이 예수를 향해 열렸다. 예수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자신의 위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맞는 자”라는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왔다. (3:12)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그후 예수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40일 동안 악마의 시험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요한이 잡혔다는 것을 듣고 갈릴리로 갑니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는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처음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예수는 다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늘의 장면은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난 때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무대는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옮겨갑니다.
4. 예수의 뒤를 따르는 군중
예수의 뒤에는 큰 무리가 따릅니다. 군중은 예수가 병자에게 한 일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요한은 전합니다. 예수는 산에 올라 제자들과 함께 앉습니다. 이 정경은 문득 마태가 5장에 기록한 산상설교의 장면을 방불케 합니다. 그러나 계절은 봄이었고, 유대인의 유월절이 다가오는 때였습니다.
그때 예수를 따라온 군중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굶어 피곤함을 본 예수는 곁에 있는 빌립에게 묻습니다.
“이 사람들을 먹여야 하는데 어디서 빵을 구할 수 있는가?”
그런데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가 이렇게 말한 것은 빌립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빌립은 예수의 질문에 대답합니다.
“아무리 조금씩 주더라도 200데나리온 어치 빵도 부족하겠지요.”
1데나리온은 당시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그의 눈에 비치는 대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에게, 보리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가진 소년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알린 안드레도, “하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아무 도움이 못 되겠지요?”라고 말합니다.
5. 봄의 갈릴리 호반에서
예수는 안드레의 말을 듣더니 모두를 앉히라고 말합니다. 그곳은 봄의 푸른 풀이 자라고 있었다고 요한은 기록하였습니다. 과연 요한은 사람이 남자만도 5천 명이었다고 덧붙입니다. 그곳에는 당연히 여성도 있었겠지요. 당연히 반반 정도라고 생각하면, 거기 있던 사람은 아무래도 일만 명은 넘지 않았을까요? 빵을 가져온 게 소년이라 했으니, 거기에는 어른 수만큼 아이들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보신 예수는 소년의 손에서 빵을 받아,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신 후 않아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주었습니다. 고기도 그렇게 원하는 만큼 나누었다고 요한은 기록하였습니다.
모두가 다 배부를 정도로 충분히 빵을 받았고, 예수께서 버리지 않도록 남은 빵 조각을 모으라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예수의 말씀을 따라 남은 빵을 모았더니 무려 열두 바구니 가득이었습니다. 이 바구니의 크기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아주 휴대하기 쉽도록 아주 작은 바구니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 남았다는 건 사실이겠지요.
6. 민중에게 모습을 감춘 예수
이 일을 겪은 군중은, “이 사람이야말로 세상에 온 예언자다.”라 말하며 예수를 칭송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군중은 육적인 만족 때문에 자신을 왕으로 만들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는 민중을 떠나 산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사람 마음이 얼마나 뿌리 깊게 지상의 욕심에 박혀 있는지를 깨닫습니다.
7. 태풍을 잠잠케 하신 예수
그후 제자들은 예수를 따라잡지 못하고 그들만 배를 타고 디베랴 호수에 노를 저어 가버나움을 향하여 갔습니다. 그런데 호수 한가운데쯤 왔을 때 그들이 탄 배가 물결에 휘말려 제자들 모두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나 그때 앞을 보니 예수가 물결 위를 걸어서 가까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랍니다. 예수가 점점 제자들의 배에 가까이 오며 격려합니다.
“두려워 말라, 나다.”
제자들은 용기를 내어 급히 예수를 배에 모십니다. 물결은 금방 잔잔해졌고, 배는 무사히 가버나움에 도착했습니다. 전날 배부르게 빵을 먹었던 군중은 다음날, 다시 그곳으로 왔습니다. 그러나 물로 거기에 예수의 제자들으리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배로 가버나움으로 가서 예수를 찾습니다. “선생님, 이곳에 오셨습니까?” 예수가 군중에게 답합니다. “너희들이 나를 따라온 것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 빵을 먹고 만족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 생각을 분명히 지적하신 것입니다.
8. 내가 생명의 빵이다
“썩을 음식이 아니라 언제까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양식을 위해 일하시오. 이것이 인자가 여러분께 주는 참 양식입니다. 그것을 줄 능력이 나에게 있다는 건 아버지 하나님이 보증해 주신다.”
그러자 군중이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양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예수가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게 하나님의 일이다.”
예수 자신을 믿는 일이라 확실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신을 믿을 수 있게 어떤 증거를 보여줄 겁니까?”
이어서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 선조는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하늘에서 온 빵을 먹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믿도록, 모세가 사막에서 만나를 내리게 했듯이 당신도 우리에게 빵을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여 우리를 배부르게 해줄 수 있습니까?”
전날 남은 빵 바구니가 12개나 된다는 사실을 잊은 걸까요? 예수의 대답입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오게 한 건 모세가 아니다. 나의 아버지가 하늘에서 진정한 빵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로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준다.”
“주여 그 빵을 언제나 저희에게 주십시오”
그들이 외쳤습니다.
9. 예수는 참 양식이며 생명수
유대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들의 생각한 바와 다르므로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말씀을 이어갑니다.
“인자의 육체를 먹고, 그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에게는 생명이 없다. 나의 살을 먹고, 나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는 그를 마지막 날 부활하게 하리라. 나의 살은 참 양식이며, 나의 피는 생명수이기 때문이다. 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 자는 항상 내 안에 있고, 나 또한 그 안에 있다.
살아계시는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고, 또 내가 아버지로 인해 사는 것처럼 나를 먹는 자도 나로 인해 살리라. 나는 하늘로부터 온 살아있는 양식이다. 이 빵을 먹는 자, 영원히 살리라.”
10.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
이곳을 여러 번 읽어보면, 예수께서 ‘나의 살을 먹고 나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나는 그 사람을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하리라. 나의 살은 참 양식이며 나의 피는 생명수이기 때문이다.’라고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아 알려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어쩌면 요한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있지 않을까요?
11. 성령으로 예수를 받다
나 세키네는 어느 때부터 요한복음에 이끌렸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요한이 그리는 예수는 그 생명의 보물 창고를 조금씩 열어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 마음 깊이 남은 곳이 있습니다. 6장 48절부터 58절입니다. 유대인과 계속 문답하는 과정에 보이는 예수의 말씀입니다.
“나의 살을 먹고 나의 피를 마시는 자는 항상 내 안에 있고, 나 또한 그 안에 있다.”(6:53)
나는 예수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으라’는 말씀을, 교회에서 중요시하는 성찬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해한 바는 이렇습니다.
“내 피를 마시고 살을 먹으라는 의미는, 나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영으로써 내 안에, 그 전부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살아 일하시는 예수를, 마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듯이 받아들여서 예수를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말이다.”
이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예수를 믿는 자와 예수가 깊이 확실하게 영적으로 연결되었음을 말합니다.
12. 예수의 최대의 슬픔
이야기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예수의 이야기를 들은 유대인들이 격론을 벌입니다.
“어떻게 이 사람은 자신의 살을 우리에게 먹일 수 있는가?”
그들은 예수와의 연합을 육의 차원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의 인간적 매력에 이끌려 모여 들긴 했지만, 예수가 말씀한 영에 의한 구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갔습니다. 예수는 그들을 보고, “생명을 주는 건 영이다. 육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은 영이며 생명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가장 아끼던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나를 떠나려는가?” 묻습니다. 이 순간이 예수의 생애에서 가장 마음이 흔들리고 슬픔을 느꼈던 때가 아니었을까요? 다행히도 그때 시몬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듯이 예수께 고합니다.
“주여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십니다.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았으며, 또 믿고 있습니다.”
이 대답에 예수는 분명히 기쁘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때 이미 열두 제자 중 하나는 마음이 떠나 있었고, 예수께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