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교훈
배 은 선
※ 이글은 일본의 '일한청년우화회'의 요청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우화회의 초청으로 일본에 다녀온 지도 벌써 27년이 되어 갑니다. 30대 초반의 청년이었던 저는 여러 부서 이동을 거쳐 이젠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50대 후반의 철도박물관장이 되었습니다. 나이를 보나 외모를 보나 기개를 보아도 청년이라고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중년이 된 것입니다.
4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정치세력은 물러가고 민주화시대를 맞아 국가의 이익보다 국민 개개인의 권리가 더 중요시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무교회 내에서는 노평구 선생님, 이진구 선생님, 유희세 선생님, 송문호 선생님 등 성서모임을 주관하셨던 어른들이 모두 본향으로 가시고, 이제 평신도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셨던 마쓰이 요시코 선생님이나 야마다 나미코 선생님, 이시하라 쇼이치 선생님, 사토 시로 선생님도 하늘나라로 가신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이제 큰 어른들의 시대는 가고 소시민들의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일본방문의 결론으로 <공동운명체>라는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는 장면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의인 열 명이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말씀에 의지해 우리 한국과 일본의 기독자들이 서로를 위한 기도를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제 마음 속에는 일본에 대한 채권자 의식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가해자였고, 채무자이고,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방문 중 제가 얻은 깨달음은 저 역시 죄인이라는 것, 한국 역시 가해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주와 미움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서로를 향한 기도와 사랑의 관계를 이어가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살 것 같고, 그래야 살려주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의 한일관계와 그 이후 두 나라 국민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세상의 많은 과학자와 지식인들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혹은 믿는다고 해도 자연현상과 신의 섭리는 별개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신은 다만 인간을 사랑하고 복을 주며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철저히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을 위로하고 돕는 피조물입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적어도 일본의 정치권은 변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엔 하나님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씌어 있습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공중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것,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당연하게 보이는 것, 혹은 이해되지 않는 사건과 사고 속에도 뜻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계는 2019년 이래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인해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세계화라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을 타고, 역병은 잘사는 나라와 가난한 나라 가리지 않고 편만하게 퍼져나갔습니다. 이 사태의 원인에 대해 의사와 과학자들은 저마다의 주장을 펼치고 나름의 처방전을 내놓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팬데믹은 선진국, 자칭 타칭 문화시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주었습니다. 선진인류가 자랑해온 경제력과 군사력이 얼마나 알량한 것인지, 그것이 한낱 바이러스 앞에 얼마나 덧없이 무너져 내리는 바벨탑에 불과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러시아나 중국을 비롯한 권위주의 국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1억년을 주기로 찾아온다는 대형 행성과 지구의 충돌은 지구에 빙하기를 몰고 오기도 하고 공룡을 멸종시키기도 했습니다. 지진은 원전을 부수기도 하고 쓰나미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시집가고 장가가며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바이러스로 인한 대재난은 2,3년 주기로 찾아올 것이라고 합니다. 아직 코로나19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이것은 절망적인 뉴스입니다. 과연 이 상황에서 인류가 그 옛날 공룡의 멸종으로부터 운 좋게 살아남았던 것처럼 앞으로도 종을 이어갈 수 있을지, 혹은 그 대형파충류의 뒤를 따를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는 일본의 침몰을 관망하고 있습니다. 욱일기를 앞세우고 한없이 낭떠러지로 질주하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보며 목소리를 낮춰 인과응보를 이야기합니다. 역사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지만 그것이 신의 섭리라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진보주의자도 하나 잊은 것이 있습니다. 그 옆의 한국도 별 수 없는 공동운명체라는 것입니다.
역병이 창궐하고 천지가 혼돈에 빠지는 상황은 구약성서나 재난영화 속에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고, 내일 내가 겪어야 할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류는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우리 가운데 의인 몇을 꼽을 수 있는지 헤아려봐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그분은 언제까지 참아주실까요?(한국철도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