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강의>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모든 사람을 향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과 수용”
아라이 카츠히로(荒井 克浩)
<프로필>
1961년생. 立敎대학 경제학부 졸업. 주식회사 도토루커피 근무. 퇴직후 자가원두커피점을 경영했다(현재 폐점). 무교회전도자인 다카하시 사부로에게 사사. 일본성서신학교 졸업. 2009년부터 무교회 고마고메(駒込)그리스도성서집회를 열었다. 2013년 2013년 6월에 개인전도잡지 ‘십자가의 기도’를 창간. 2014년부터 NPO법인 이마이칸교우회 사무국 근무. 2015년 동 법인 상무이사 및 사무국장에 취임하여 오늘에 이름. 2021년 이마이칸을 메구로구 나카네에서 분쿄구 고마고메로 이전하는 일에 진력함. 독립전도자. 2024년 3월 저작 출판 예정.
<요지>
로마서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유대인을 시작으로 그리스인에게. 믿는 자 모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 안에 진실로 믿음으로 계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기록된 대로입니다.
마틴 루터는 로마서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복음을 듣고도 자신의 힘으로 마음속에서 ‘나는 믿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올바른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마음 깊은 데서의 변화가 전혀 없는 인간적 생각이기 때문에 이런 신앙은 아무것도 행하지 못한다. 아무리 신앙을 계속한다 해도 개선도 없고, 따라오는 결과도 없다. 신앙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루터는, 인간 편에서의 ‘믿는다’는 행위는 인간이 만든 ‘생각,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신앙은 아무 열매도 얻지 못한다. 참 신앙, 즉 믿는 일은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루터학원 대학의 명예교수인 德善義和(도쿠젠 요시카즈)도 이 루터의 말에 이렇게 공감하고 있다.
“하나님의 힘이 우리에게 일하도록 하시어,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고, 신앙을 선물로 주신다. 신앙이 어떤 형태로든, 아주 작더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받기 위한 인간 편의 조건이 되어버리는 일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한다는 말이다.”
신공동역의 갈라디아서 2:16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가 된다’는 바울의 말씀이 있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에의 믿음’을 성서협회 공동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이라 번역하고 있다. 나는 그 성서협회 공동역에 공감한다. 전자에서는, 믿는 일이 구원의 조건이 되고 있으나, 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 결국 하나님의 진실에 의해(인간 측의 공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로써(믿는다는 조건이 아니라) 구원하신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인간편에서 믿는가, 믿지 않는가에 관계없이 하나님편의 일로써 일방적으로 무조건 구원하셔서 의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이는 앞의 루터의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다.
먼저 하나님에 의해 무조적 구원받아 의가 된다는 것이기에 그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믿게 된 것이다. 이것을 나는 ‘義認신앙’이라 부른다. 먼저 하나님에게 의로 인정받았고, 그 결과로서 신앙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루터는 이런 의미에서 ‘의란 그런 신앙이며, 하나님의 의나 하나님 앞에서 타당한 의라 말한다’고 했다. 즉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 편의 구원의 작업이며, 일방적으로 무조건, 불경건한 자를 의로, 그 사람에게 믿음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합니다(고전 1:23).
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그리스어 현재완료형). 하나님은 어리석고 약한 자인 채로(고전 1:25), 십자가에 달린 채로 그대로 두셨다. 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대로의 그리스도’가 바울이 만난 부활하신 분이다. 바울이 만난 그분은 어리석고 약한 모습 그대로였고, 결코 빛나는 모습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어리석고 약한 자의 모습이다. 어떤 사람보다 어리석고 약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아무리 어리석어도, 약해도, 그 모습 그대로를 무조건 수용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뛰어나지 못해도, 심지어 불신앙자여도, 모든 사람을 일방적으로 무조건,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며, 의가 되게 하신다. 그 모든 사람을 무조건 의로써 신앙을 갖게 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힘, 그것이 하나님의 의와 능력이다. 16절의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사람을 무조건 있는 그대로 수용하여 신앙을 주시는 하나님의 ‘터무니없는’ 큰 사랑의 수용의 힘이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 수용의 힘.
이것이야말로 어떤 인간도 의로 인정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구원은 약함을 강함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 어리석고 약한 자를, 하나님의 의가 그 어리석고 약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미 무조건 수용하셨음을 알면 된다. 어리석은 채로, 약한 채로, 그러나 동시에 강하게 되는 것이다.
무교회에서도 뛰어난 사람, 출세한 사람이 훌륭한 신앙자로 칭송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착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복음 신앙에서 출세주의를 폐기하고 싶다. 무교회의 부활은 거기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이번 전국집회 주제가 ‘복음에 살다’인데, 복음에 산다는 건 모든 사람을 무조건 사랑하고 수용하는 하나님께서 이미 구원해주셨다는 걸 아는 자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수용하는 자로서 살아가는 걸 말한다. 그 걸음은 참으로 어리석고 약하며, 전혀 빛나지 않는 삶임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