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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일본전국집회 강의2-內村鑑三의 근대 비판(鷲見 誠一)

작성자메나리|작성시간23.10.18|조회수11 목록 댓글 0

주제강연

우치무라 간조의 근대 비판

鷲見 誠一(스미 세이이치)

 

<프로필>

1939년생. 2004년 근무교(게이오대학 법학부 교수)를 정년퇴임.

이후 무교회연수소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요지>

  우치무라는 근대라는 시대를 어떻게 보았는가. 그가 발행한 聖書之硏究에서 살펴 보자. 162(1914.1.)근대인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말한 글이 있다.

 

  “그에게는 다소의 지식이 있다.(주로 좁은 의미의 전문적 지식이다.) 다소의 이상도 있다. 그러나 그의 중심은 자신이다. 근대인은 자기중심의 사람이다. 자기 발견, 자기 수양, 자아실현 등 나, , , 어떤 것도 나 자신이다. 따라서 근대인은 초기 인간이다. 원시 인간이다. 원숭이가 이제 막 사람으로 된 자다. 자아가 발달하여 오늘에 이른 자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자신을 죽인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소위 근대인은 순수하게 야만인이다. 근대인은 실크햇을 쓰고, 프록코트를 입고, 절학과 예술과 사회진보를 말하는 원시적 야만인이라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근대인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그의 파트너다. 그는 철학과 예술과 사회 정책으로 그리스도를 옹호한다. 즉 그는 그리스도에게 구원받은 게 아니라, 자신이 그리스도를 구하려 한다. 그는 생각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변호 없이 현대에서 그 신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이다. 소위 근대인은 자신을 그리스도보다 높은 자리에 두고 그를 비평한다. 근대인은 타락한 아담과 같이 스스로를 신이 되어야 한다. 실로 그는 아담의 후예이다. 선악을 아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눈이 뜨여 하나님처럼 되고싶은 자이다.(창세기 2장을 보라!),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인 것을 버리고 기독신자의 이름은 가지려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피하고, 기독신자의 명예와 이익은 받으려 한다. 근대인은 자기중심의 야만인이라 말하고 싶다. 자신이 중심이어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기독신자로서의 이익은 얻으려 하는 자이다.”

 

  근대, 근대인의 정의는 이로써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이 근대인은 선악과 정의부정의의 궁극적 판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근대인이 살아온 15세기 이후 근대세계는 전쟁이 계속 일어난다. 그중 최대규모는 제1차 세계대전이다. 우치무라 간조는 聖書之硏究 172(1914.11.)에서 유럽의 전란과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썼다.

  “전쟁은 악한 일이다. 그리고 형벌이다. 지는 전쟁뿐만 아니다. 이기는 전쟁 역시 형벌이다. 국가는 전쟁에 종사하고, 지든 이기든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된다. 이번 유럽대전쟁은 유럽인 위에 임한 하나님의 엄벌이라 보는 게 당연하다. 하나님은 특별히 그들을 사랑해주셔서 죄를 묻고 있다. 신자가 확실하다면, 이번 유럽 대전쟁에 대해 사랑의 하나님의 크고 거룩한 손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근현대 일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청일전생의 승리 끝에 약탈한 대만(1895)과 조선(1910)의 식민지화를 비롯하여 유조호 사태가 빌미가 된 노구교 사건(1937)으로 일어난 중일전쟁, 구미 열강에 의한 식민지 해방이라는 명분으로 감행된 남방진출(1940) 등은 근현대 일본인의 원죄이다. 그리고 미일전쟁(1941.12.8.)1945815일의 패전,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300만을 넘는 사망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이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일본인에게 내린 벌이었다.

  그러나 이로써 일본인의 원죄가 용서받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원죄를 자각하고, 동아시아 모든 나라 사람들과 겸허하게 교류해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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