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무교회 쌤들은 왜 신곡에 집착하나요?

작성자메나리|작성시간26.01.02|조회수160 목록 댓글 5

   "무교회 쌤들은 왜 신곡에 집착하나요?"

메 나 리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김교신 아카데미에서 1월 15일부터 3회에 걸쳐 단테의 신곡토론이 있다고 소개하였더니, 돌아온 질문입니다. 약간 비약이 있긴 하나,  맞는 말이라 순간 당황하여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기독교 관련 고전은 신곡 이외에도 아주 많습니다. 신곡만큼 유명한 밀턴의 실락원.  C.S.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어거스틴의 고백록 역시 불멸의 고전이라 인정받고 있지요. 좀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힐티, 본회퍼, 토마스 아 켐피스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저작이 있는데, 왜 그렇게 유독 신곡에 천착( 穿鑿 )하는가 하는 말이었을 겁니다.

   사실 무교회 안의 어떤 선배님은 신곡연구에 평생을 걸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성서와 거의 동급으로 인정하는 것 같은 말씀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교회 잡지들을 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하나같이 신곡 읽기를 권유하고, 실제로 공부하는 모임을 운영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정말 우리는 왜 이렇게 신곡 공부에 진심일까요?

   

  저 역시 그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제대로 읽어보려고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신곡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한계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문장을 읽다가 다시 뒤로 돌아가서 '이게 무슨 뜻이었지?' 하며, 반복읽기를 끝없이 해야 했거든요. 하는 수 없이 비평서를 몇 권 읽은 다음 줄을 쳐가면서(스티커 붙여가면서) 겨우겨우 읽었습니다. 동네도서관에서 단테 관련 책을 매주 빌렸더니, 사서쌤이 '단테 신곡 강의(이마미치 도모노부, 이영미 역)'라는 비평서를 추천해주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어찌어찌 다 읽기는 했지만 전체 줄거리만 이해했을 뿐 남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저뿐만은 아니었는지 A.N.윌슨이라는 분이 '사랑에 빠진 단테'라는 신박한 제목의 책에서 이렇게 위로를 해주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단테의 신곡을 읽으려 시도하다가 연옥편에 이르기도 전에 중도 포기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가까스로 천국편까지 읽은 사람들도 대부분 머릿속에 남은 것이 별로 없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 분들은 단테가 역시 위대한 시인이라고 굳게 믿지만, 다시는 단테를 읽지 않을 것이다."

   단테 자신이 독자를 걸러내려고 의도한 게 아니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ㅠㅠ)

 

  저의 솔직한 경험을 써 보겠습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너무나 긴 문장이었습니다. 단테가 쓴 이탈리아어 원문이 이랬던 걸까요, 아니면 번역이 문제였을까요? 그런데 저희 집에 있는 세 가지 버전이 다 같은 형식이었습니다. 여기 연옥편 32곡에서 예를 들어볼게요.

     거대한 빛이 하늘의 물고기 뒤에서 빛나는 빛과 함께 아래로 비출 때,

     이 세상의 초목들은 부풀어 오르고,

     그런 다음 태양이 자신의 말(馬)을 다른 별 아래에다 매어두기 전에,

     각자 자신의 색깔로 새로워지는 것처럼,

     처음에는 나뭇가지들이 그토록 황량하던 그 나무는

     장미보다 약하고 오랑캐꽃보다 짙은 색깔을 띠면서 새롭게 변하였다.(김운찬 역, 연옥편 32곡)

    이 여섯줄로 된 문장은 '태양이 비추기 시작하자 초목의 선명한 색깔이 드러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길고 긴 문장이다 보니 얼른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신곡을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썼기 때문에 대중이 쉽게 접하였다고 하는데, 과연 그랬을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두 번째 장애물이 되었던 것은 수많은 인물과 지명이었습니다.

   그리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제 기준입니다).  그들의 사연을 찾아읽다 보면 줄거리를 놓치게 되더군요. 또 지명도 예를 들면 콜키스 지방(천국편 1곡)이라든가 엘사(연옥편 33곡)와 같이 전혀 생소한 이름들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피렌체에 있는 강이 아르노강이고, 그 지류가 엘사라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때마다 읽기를 멈추고 설명을 보게 되니, 앞으로 나아가기가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장애물을 뛰어넘어 신곡을 완전정복하신 분들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무교회인들은 왜 신곡읽기에 집착하나요?"

   이 질문에 현타가 와서, 답이 될만한 비평서가 있을까 도서관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부산외대 박상진 교수의 이야기를 인용하기로 합니다.(박상진, 단테)

   "나는 신곡을 읽으며 단테를 만났다. 단테처럼 오래된 시인을 읽는 일은 금방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신곡을 만족스럽게 완독했다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 그래도 나는 계속 읽었고, 번역도 했다. 신기하게도 읽을수록 늘어나는 고통에 비례하여 재미가 붙었고, 그 고통과 재미는 끝이 없는 듯 보였다.

   나는 단테의 무엇에 홀렸던가?

   어느 순간 단테의 언어가 눈앞의 현실 사물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곡은 감각이 소멸한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루지만, 사실은 죽음 이전의 현실 세계를 아주 선명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단테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생각거리를 계속 던져주는 역할을 한다."

 

   단테의 책이 생각거리를 계속 던져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천국과 지옥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죄와 구원의 여정도 궁금합니다. 우리의 신앙선배들이 신곡읽기에 몰두하였던 이유도 죽음 이후의 삶, 죄와 구원의 과정에 대해 탐구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어떤 이유에서 신곡에 관심을 가지셨는지 궁금합니다.

 

   요즘 많이들 쓰는 구글의 제미나이(AI)에게 재미삼아 물었다가 일목요연한 답에 깜짝 놀랐습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은 출간된 지 70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류의 보물'로 불리며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단순히 종교적인 서사시를 넘어, 사람들이 이 작품을 펼쳐 들게 만드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삶과 고뇌를 담은 '보편적인 여정' - 신곡의 첫 문장은 "우리 인생길의 한복판에서"로 시작합니다. 이는 단테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나 살면서 겪는 길을 잃은 듯한 혼란과 방황을 의미합니다.

    둘째, 소름 돋을 정도의 '현실적인 묘사'와 상상력 - 단테는 사후 세계를 마치 어제 다녀온 곳처럼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셋째, 날카로운 '사회 비판'과 정의의 실현 - 단테는 신곡 속에 당시의 부패한 정치인, 교황, 탐욕스러운 부자들을 실명으로 등장시켜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배치했습니다.

     넷째, 지식의 집대성 (중세의 백과사전) - 신곡은 단순한 종교 문학이 아닙니다. 당대의 신학, 철학, 과학, 역사, 천문학이 집대성되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이 신곡을 읽는 이유는 가장 추악한 인간의 밑바닥(지옥)에서 시작해 가장 숭고한 빛(천국)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나약한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손현섭 | 작성시간 26.01.02 저도 동감합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읽고 공부하는 모임도 만들어 공부했다는 말씀을 듣고 몇번 도전했으나 나의 머리는 따라 주지 않아 포기하고 다시 또 도전 하다가 결국 포기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구글의 제미나이가 잘 정리해 주었네요
  • 작성자순례자 | 작성시간 26.01.03 ㅎㅎ
    솔직한 소감문 감사드려요.
    제미나이의 설명보다는
    메나리님의 글을 읽다보니
    신곡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은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치기 위해서
    단테의 신곡을 외우다시피 읽었다고 들었어요.
    목적을 가지고 책을 들면
    독파할 수도 있겠다싶네요.

  • 작성자순례자 | 작성시간 26.01.03 메나리님은 어느 출판사의
    책을 추천해 주시렵니까?
  • 답댓글 작성자메나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1.03 임세영 교수께서 김운찬 역 신곡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주해가 본문과 같은 쪽에 있어서 독자를 배려하였습니다. 그래도 뭐 그리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ㅠㅠ). 대방동집회의 진영선 쌤이 쓰신 신곡은 이탈리아어-영어-한국어로 한 단계를 더 거치다보니 더욱 난해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 작성자stream | 작성시간 26.01.07 좋은 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다음주에 시작될 신곡읽기를 앞두고 있는데, 제게 시의적절한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