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을 믿는가?"
(4월 5일 오류동집회에서 말씀함)
김복례
1. 들어가며
저는 저녁에 침대에 누우면, 내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까 생각하다가 잠이 들곤 합니다. 이제 더 늙어갈 것이고 나중에는 죽음을 맞이하겠지요. 요즘은 누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분이 참 장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과정을 드디어 마쳤으니까요. 야나이하라 선생은 ‘생사의 문제’라는 강연에서 죽음을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죽음이 이 방에서 저 방으로’라니….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직접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였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셨다(마 16:21, 17:23, 20:19)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후, 마르다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분명히 밝힌 후, 마르다에게 확인하듯 묻고 있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지금 우리에게도 묻는 물음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시겠지요.
2. 예수 부활의 기록
예수께서 부활하여 직접 그 모습을 보이셨던 것은 5회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엄청난 부활 사건이 겨우 다섯 번 기록되고 말았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스케일이 너무 적지 않은가 여겨집니다. 지상에서 40일을 머무셨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중에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인 적이 있고, 그중 대다수가 아직 살아있다고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어 참 다행입니다. 하지만 복음서에는 아주 적은 수의 사람에게만 나타납니다. 몇 번 안 되니, 차례로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기사는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본 장면입니다. 이는 4복음서에 다 나옵니다.
무덤앞의 여자들입니다. 여자들의 전갈을 듣고 달리는 혼자 남은 막달라마리아에게 제자들은 뜻밖에도 허탄한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소리라며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여자들의 전갈을 듣고난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여자들이 허탄한 소리를 한다고 않습니다. 일반상식으로는 그만큼 부활 사건은 믿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그날 낮에(눅 24:13)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사람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둘도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여자들이 전하는 부활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이었던 것을 깨달았지요.
| 오던 길로 돌아가 제자들에게 전합니다. | 그러나 역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부활할 거라 직접 들었잖아요. 안타깝...) |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예루살렘의 골방입니다. -부활하신 날 저녁, 8일 후 방으로 오셨습니다.
| 제자들은 유대인이 두려워서 문을 꼭 닫고 있었습니다. 그리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 도마가 예수님을 만지며 믿음을 고백합니다. | 숨을 내쉬며(불어넣으며) "성령을 받으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다섯 번째, 디베랴 바다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합니다.
| 식사하는 모습입니다. | 감람산 정상의 승천교회입니다. |
이 일 후에야 제자들이 움직입니다. 예수를 따라 갈릴리에서 예루살렘 근교 베다니로 올라갑니다. 그곳에서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 저는 바울 사도가 말한 오백여 형제에게 보인 사건이 이 승천 때인가 생각하였습니다. 주해서들은 디베랴에서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3. 나는 부활을 믿는가?
요한은 자기가 요한복음 쓴 까닭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요한이 쓴 이 두 가지가 곧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아니었나 생각하였습니다. 수많은 병고침, 수많은 기적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알리기 위함이었고, 결국 아버지께서 내게(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자들에게 생명(영생)을 주기 위함(요 17:9)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뒤에 예수께서 생명을 주어 마지막까지 잘 보전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버지께 기도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제자들)만 위함이 아닙니다.
그들(제자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입니다(요 17:20).”
당시의 제자들이 1번이라면, ‘제자들의 말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2번이겠지요. 바로 우리가 2번 아니겠습니까?
마사이케 진(政池 仁) 선생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 선생의 고백에 깊이 공감하여 인용하며 마칩니다.
“부활이 있으므로 나는 정의 편에 설 수가 있고, 용기를 내어 이 세상 불의와 싸울 수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가 사랑했던 먼저 가신 분들이 일어나며, 또 나 역시 죽더라도 다시 살게 될 것이니 죽음이 무섭거나 슬프지 않습니다. 희망이 있으니 오히려 유쾌하게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