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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나타난 부활체와 부활생명(한병덕)

작성자메나리|작성시간26.04.07|조회수32 목록 댓글 1

성서에 나타난 부활체와 부활생명

(부활절에 오류동집회에서 말씀한 것)

한병덕

 

* 원고를 그대로 올리기에는 너무 긴 글이어서 본론 부분만을 간결한 문장으로 바꿔 올리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부활체에 대하여

   오늘 저의 관심은 믿는 자, 인간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인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한 모습, 즉 예수의 부활체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부활자의 첫 열매라 했으니 이어지는 우리는 첫 열매를 보고 판단합니다. 인간은 아직 부활자가 없으므로 그리스도가 인간 부활자의 표본이라는 뜻으로, '첫 열매'라 표현했다고 생각됩니다. 첫 열매에 대한 몇 분의 해석을 살펴봅니다.

  - 칼빈 : 모든 수확물은 첫 열매를 따르듯 죽은 자들이 그분을 따를 것이라는 의미

  - 켐브리지 성서 주석 : 첫이삭은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 분, 앞으로 거둘 풍성한 수확을 보증함

  - 풀핏 :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부활의 첫 열매이며, 인류 부활의 보증

  - 벤슨, 랑게, 매튜풀, 로버트슨 등 : 후에 있을 멸매들의 표본이며 보증

 

   부활체에 대한 의견은 크게 영의 부활론과 몸의 부활론으로 나뉩니다.

   1) 영의 부활론

     육은 썩으나 영만은 부활한다는 주장. 즉 영은 선하나 물질인 육이 악하다는 사상에서 나왔습니다. 구원이란 선한 영이 악한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이는 영지주의자들의 가현설에 닿아 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신이신 예수가 육을 입을 리 없으며, 사람 눈에 일시적으로 보였을 뿐이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생기는 육체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생기(루아흐)는 인간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명의 원리입니다.

   이 영적 부활론은이 근세에 와서는 '의미적 부활론'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자유주의 실존철학자 불트만과 크로싼이라는 학자가 말하는 바입니다. 

    - 불트만 : 십자가에 죽었고 부활하신 예수는 말씀 속에서만 만난다. 부활은 말씀이 선포될 때 현재가  된다.

                 즉  예수 부활은 제자의 내면에서 일어난 자신들의 믿음 선포 사건, 즉 케리그마 사건이다.

    - 크로싼(미국) : 제자들의 마음 속에서 예수의 정신이 되살아난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부활이다.

                           즉 예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그 의미를 찾으려는 해석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부활을 사실적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의미적으로 받아, 새로운 부활생명으로 나아가는 결단의 삶을 사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합니다. 

 

   2) 몸의 부활론

    우리가 믿는 부활입니다. 그러나 몸의 부활이라 하여, 죽기 전의 육신 그대로 다시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서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부활이라 하지 않고, 소생이라 합니다. 몸의 부활은 소생이 아닙니다. 영광된 몸의 부활입니다. 인간의 부활체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면 됩니다.

  "하늘에 속한 분(예수)에게 속한 자들(그리스도인들)은 그(예수)의 형상을 입는다(고전 15:48-49)" 

 

   이는 씨앗의 비유와 같습니다. 땅에 뿌려져 죽은 씨앗은 씨앗에서 태어나 자라는 새로운 모습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씨앗은 알갱이인데, 식물이 되어 녹색의 잎, 줄기, 꽃 등 찬란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부활이 있게 하시는 존재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이 그 뜻대로 형체를 주시되, 각 종류대로 형체를 주신다."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를 천적 영생의 존재로 부활시켰으니, 그 영원한 생명에 적합한 몸과 거기에 맞는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2. 부활 생명에 대하여

  부활체는 썩지 않습니다. 죽지 않는 영생의 몸입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즉 영광스러운 몸, 신령한(Spiritual) 몸입니다. 영적인 몸입니다. 이는 영원한 새 생명에 필수적인 몸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영적 생활'이라 합니다. 그러나 신령한 몸으로 사는 생활은 아닙니다. 신앙적으로는 영적 생활이라 표현하지만, 몸은 여전히 물질적 육신에 속한 삶입니다. 먹고 마시는 삶입니다. 우리의 몸은 아직 세상의 삶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몸으로 사는 부활 후의 삶은, '장가나 시집을 가지 않고, 하늘의 천사와 같다(마 22:30)고 하였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문을 닫고 있는 제자들의 방을 오갈 수 있을 만큼, 공간을 초월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만져볼 수 있습니다. 음식도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 식사는 배가 고파서 먹은 식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에서도 육의 사람과 부활 후의 영의 사람을 봅니다. 하나님께 생기를 받아 생령이 된 아담. 그는 생명과 영혼을 가진 존재(life-having soul)입니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는 대속과 부활로써 인류를 살려주는 영(life-giving soul)입니다. 즉 아담에 속한 몸이 육의 삶에 적합한 것 같이, 그리스도로 인해 주어진 몸은 영광스러운 영적 삶에 특화된 몸입니다. 아담의 '흙에 속한 몸'은 이 지상의 사망, 질병, 연약함 등 물질 질서의 제한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을 입어 천적인 삶에 적합한 몸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요한 일서 2:7의 말씀과 상통합니다.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도 그와 같을 줄을 안다."

 

  3. 결론

  부활 후 새 생명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서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5장 35절 이하에 묘사된 신령한 몸에 특화된 생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결국 부활은 이 세상에서 죽음 앞에 떠는 연약한 인간에게 여하한 경우에도 즉 죽음에 임해서도 세상을 이기는 소망을 줍니다. 부활생명은 죽어서 획득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얻습니다. 우리는 마르다에게 주신 말씀에 응답할 수 있는지 늘 점검하는 게 필요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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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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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손현섭 | 작성시간 26.04.10 먼데서 일부러 자청하여 말씀 준비해 주시고 부활에 관한 확고한 귀한 말씀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또 배웁니다. 늘 귀한 말씀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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