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나>
내가 겪은 한국·조선인 문제
陳野 守正
'알지못하고 배우지 않았던 일제의 7奪(탈)로 인한 오랜 고통', 지인 宮前初子씨의 노래입니다. 7奪이란 일본의 조선통치 35년(1910-1945)에 일본이 빼앗은 토지, 쌀, 민족의 생명 등을 말합니다. 거기에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바뀌면서, 이름과 말을 빼앗았고, 아시아 태평양 전쟁으로 사람도 빼앗았습니다.
일본의 조선통치가 어떠했는가는, 7奪(탈) 중 하나라도 집중하여 배우게 되면, 그 전체 모습이 상상가능합니다. 제가 관계한 한국·조선인 문제에 대해 연도별로 항목만 열거해 보겠습니다.
1. 1967년, 한국 제암리교회 화재사건 사죄모금 운동(교회 재건)
2. 1971년, 한국의 원폭피폭자를 지원하는 시민모임
3. 1971년, 서형제를 지키는 모임(*서형제는 재일간첩단 조작사건에 연루된 서승, 서준식 형제를 말함)
4. 1975년, 사할린 재판(*사할린의 한인 귀환을 위한 재판)
5. 1976년, 오류문고 지원회
6. 일본의 전쟁책임을 어깨에 짊어진 한국·조선인 BC급 전범을 지원하는 모임
7. 1998년, '역사에서 감춰졌던 조선인 만주개척단과 의용군' 출판
위의 7번을 제외한 항목은 간접적으로 협력했던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 실태와 전후 그에 대한 책임과 사죄를 회피해 온 사실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1987년경 풀무학원에서 일본의 농업도서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농업교사 분들의 도움을 얻어 빌려 본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풀무학원 교장 홍순명 선생이 尾花淸 선생과 공저로 출판한 '함께 살아가는 평민을 키우는 풀무학교 - 학교 공동체와 지역만들기의 도전'(2001)을 받아, 풀무학원의 역사와 기본적 이념 등을 배울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1976년 11월 17일, 풀무학원·독립학원 자매결연식에 풀무학원 교장 대리로 유원상 선생이 참석하였는데, 이를 인연으로 그후로도 몇 번 일본을 방문하시고, 저의 집에서 묵으시면서 여러 곳의 교우를 방문하여 주 안에서의 교류를 가졌습니다.(2008.3.12. 돌아가심)
오류문고의 이진구 선생님도 저의 집에서 두 번 묵으셨는데, 한 번은 나리타공항까지 함께 가기도 했습니다. 스기야마나오(杉山直) 선생의 장례식에도 먼길을 불구하고 찾아와 주시고, 조사도 해주셨습니다. 기소후쿠시마(木曾福島)역에서 헤어질때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2013.11.27. 돌아가심)
지인이 한국에 간다고 하면, 저는 친구집을 소개하여 숙박하며 교제를 가지도록 권해 왔습니다. 한국에 대한 이해와 우정을 보다 깊게 하는 기회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친구가 병환 중이어서 어렵게 되었습니다만, 일한청년우화회가 앞으로도 여러 가지 교류를 하면서, 한국인과의 친선우화를 한층 더 쌓아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