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청년들을 맞이하며
그리스도교 다이신집회 야마모토히로시
(キリスト教待晨集会 山本 浩)
한국에서 다섯 명의 청년이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일본의 청년들과 이마이관(今井館)에서 환영회. 그리고 두 집회로 나뉘어 주일예배. 마루키(丸木)미술관과 고려박물관 견학 등 다수가 참가해 주었습니다. 일본학생 대부분은 일한우화회 임원이신 후루카와교코(古川京子) 씨와 따님이신 아야(彩) 양이 불러온 친구들이었습니다. 고치(高知)나 교토(京都)에서 달려와 준 친구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참 좋은 한일청년교류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날 아침, 마루키미술관을 가기 위해 이케부쿠로(池袋)역에 잡합하기로 했었는데 도부도죠선(東武東上線) 철도사고로 일본 친구 두 사람이 제시간에 닿지 못하였습니다. 일행을 먼저 보내고, 그곳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며 곧 합류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둘 중 한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두 친구가 우연히 나리마스(成増)역에서 일행을 만나 마루키미술관으로 가는 급행열차에 타고 있다는 보고였습니다. 나는 그 말에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마루키미술관에서는 학예관으로부터 마루키 씨 부부가 원폭 그림을 시작한 계기를 비롯하여 여러 그림에 깃든 사연들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까마귀'라는 제목의 그림을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오래전 나가사키 원폭자료전시실에서 읽은 이시무레미치코(石牟礼道子) 씨의 이야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피폭된 유해들을 거두고 있을 때, 오랫동안 방치되어 까마귀에게 눈이 파먹힌 시신이 있었다. 한국인의 유해였다. 한국인은 죽어서도 차별을 받았다." 이런 취지의 이야기였습니다.
'까마귀'는 이시무레(石牟礼) 씨의 이야기를 들은 마루키부부가 그림으로 옮긴 것입니다. 검게 그려진 한복이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이 피폭희생자의 그림을 본 어떤 한국사람이 '이 안에 우리 가족이 있다'고 소리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강제징용으로 나가사키(長崎)에 와서 조선소 등에서 일하다가 피폭되어 희생된 그 가족의 일을 생각하니 사과할 말조차 찾지 못하겠습니다. 학예관이 우리가 찾아간 바로 그날, 그 이시무레미치고 씨가 돌아가셨다고 알려주더군요
마루키미술관을 나와 점심을 먹고 다음역까지 걸었습니다. 출발이 조금 늦었던 한국학생을 다른 한국학생들과 함께 기다려 셋이서 먼저간 일행을 따라갔습니다. 한적한 낮 풍경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주위의 풍경이 제주도 같다고 하며 제주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멈춰서서 마을 풍경과 집을 찍느라 또 달리다가 멈추다가 했었습니다.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보고 반해서 손가락으로 건드리기도 하고, 한 친구는 일본의 가옥형태에 흥미가 있었고, 다른 친구는 생태계와 생물의 다양성에 관심이 많은 농업 청년이었습니다. 귀국하던 날, "비와 함께 살기(雨と生きる住まい)", "일본의 초화"라는 작은 사진집을 선물했습니다.
셋째날의 주일집회 참석한 일본친구로부터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하나님께서 끌어낸다. 이번에도 이곳으로 끌어주셨다. 이번에는 오늘만 참석했다." "다시 교회에 가보고 싶어졌다." 하는 소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번 모임을 통해 무엇을 하시려는가 주의 뜻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회원 여러분과 지원해주신 모든 분께 지면을 빌려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준비와 인솔을 위해 수고해주신 한국성서신우회 임원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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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제공하는 마루키미술관에 관한 자료입니다.
서양화가였던 마루키씨 부부는 원폭그림을 비롯해 일본군국주의를 고발하는 그림을 그려 전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참상, 난징대학살, 피폭으로 희생된 조선인 등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아래의 그림이 '까마귀' 시리즈 중 한 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