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문 여행을 마치고
水戶무교회성서집회 고야마 사토시(小山哲司)
<정동의 공중전망대에서, 오른쪽 두 번째가 고야마 사토시>
한국을 방문한 게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처음 방문은 36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소속하고 있던 교회의 방한투어에 참여했었는데, 무교회에 출석하고부터는 아쉽게도 교류가 끊어지고 말아 아쉬웠습니다.
지난해 저는 처음으로 이마이관을 찾아간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일한청년우화회의 회보를 보고,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보내주신 회보에, 방한 여행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있어, 얼른 신청하였습니다.
저는 수년 전부터, 한일관계가 긴장을 안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때야말로 한국말을 배우고, 역사를 배워, 교류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어 독학을 시작하고, 한반도의 근현대사, 그리스도교사를 조금씩 공부하였습니다.
메이지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기간, 특히, 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는 시기에 일본이 행한 죄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북의 국경부근까지 안내를 받아, 분단의 현실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일본이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죄송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구류(拘留)와 고문 상황을 보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한국어가 서툴고, 역사 지식도 부족하여,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전하기는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어로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준비를 하고 갔습니다.
한국어로 사죄를 결행한 건 이틀째 환형회 자리에서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이크를 쥐고, 자기소개를 할 기회가 있어, 사죄의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 사죄에는 두 가지 생각이 들어있었습니다. 일본이 한국에 행한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그리고 일본이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한국 무교회 여러분들은 사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경청하면서, 박수로써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사죄에 더하여, 나에게는 한 가지 과제가 더 있었습니다. 우찌무라 간조가 창립위원으로 참여했던 九連국민고등학교 출신 조선인의 행방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작은 과제였는데, 한국측에서 국회도서관까지 가서 자료를 조사해주어, 고마웠습니다.(노노!! 왜곡된 이해!!! 국회도서관 이너넷 사이트였음.) 아쉽게도 남아있는 자료가 매우 적었지만, 그 의미는 컸습니다.
이번 여행에 한국무교회, 특히 성서신우회와 일심회 여러분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만하 님, 김복례 님, 한정주 님, 박영자 님이 연일 함께 해주었습니다. 또 오영환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것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