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공부 57회
7. 몸과 영(겉사람과 속사람)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롬 8:10)
Yet, even though Christ lives within you, your body will die because of sin,
(아직은,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살고 있어도 죄로 인해 몸은 죽을 것이다. )
but your spirit will live, for Chirist has pardoned it.(LB)
(그러나 영은 산다. 그리스도께서 사면해주셨기 때문이다.)
1) 몸 - 겉사람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에서 ‘몸’이란 말은 우리의 육체적인 몸, 문자 그대로 살이 있고 피가 있고 뼈가 있는 몸 그대로를 말한다. 영과 대비되는 몸이다. 앞에서 ‘육신’이라고 하여 태어난 그대로의 인간(주를 만나지 못한 사람)을 말한 것과는 다르다.
6장 12절 “너희는 죄가 너희의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에서 몸에 대한 두 가지 의미를 공부하였다. ‘너희’와 ‘너희 죽을 몸’을 구분하여 너희(you)는 ‘우리’를 가리키고, 너희 죽을 몸(your mortal body)은 ‘죽을 수밖에 없는 미약한 우리들의 육체’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너희 죽을 몸’에 해당되는 몸을 말한다.
몸은 죄가 가장 용이하게 사용하는 도구다. 몸은 죄에게 기회와 때를 제공한다. 몸은 죄의 유혹을 쉽게 받을만큼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탐심과 정욕을 가졌다. 한편 그리스도인의 몸에는 하나님의 영도 깃들여 살고 있다. 그래서 몸은 죄와 싸우는 전쟁터이다. 영적인 측면에서 보면 고통의 주요 원인이 된다.
그러면 몸이 원래 이렇게 추한 것인가? 아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섯째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후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 조화로운 모습을 보시고 흡족하여 「심히 좋았더라(It was very good : RSV)」하셨다. 아담과 하와도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흠이 없었음을 증명한다.
사실 우리 인간의 몸은 아름답다. 어린아이의 포동포동하고 맑은 눈은 얼마나 예쁜가, 건강한 젊은이들의 몸은 그림보다 아름답다. 심지어 나이들어 늘어가는 백발과 주름진 손도 아름다운 하나님의 축복이다. 인간의 몸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아름다운 우리 몸에 흉악한 죽음이 깃든 것은 무엇때문인가?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다.’ 원인은 죄이다. 5장 12절에서 '한 사람을 통해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해 죽음이 온 것'이라고 말하였다. 아담의 죄가 죽음을 가져왔다. 아담이 범죄 했을 때 아담 자신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몸에도 죽음의 씨앗이 떨어졌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몸이 다시 아름답게 회복될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고린도 전서 15장을 보면 “우리가 지금은 흙으로 빚은 사람의 몸을 지니고 있으나 언젠가는 하늘에서 오신 그리스도와 같은 몸을 갖게 될 것이다.”(49)라고 했다. ‘그리스도와 같은 몸’이 어떤 것인지는 슬쩍 말하고 있어 명확하지 않다. 다만 부활의 생활에 알맞은 몸으로, 지상의 몸처럼 죄에 유혹당하기 쉬운 약한 몸이 아니라 예를 들면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본 예수님의 모습처럼 영광스러운 몸일 것이다.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아내가 늘 하던 말을 생각하고는 웃음이 났다. 아내는 항상 “나는 키도 작고, 예쁘지도 않은데 이 몸으로 다시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면 어떻게 하지?” 하며 우스개소리를 섞어 진심으로 말하곤 한다. 이런 걱정은 필요없다. 우리의 몸은 썩어 없어질 것이다. 주예수님을 만나는 날 홀연히 변화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모습인지 확실히 모르는 편이 오히려 소망과 기대를 갖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몸에 관하여 우리가 알아둘 것이 있다. 흔히 사람들은 금욕하는 사람이거나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더 순결하다고 보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단식이나 독신을 뭔가 선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이단이라고 책망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다 선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죽어 없어질 것이긴 하나 우리의 현재 몸은 ‘훗날 바뀌어질 영의 몸의 담보(쓰카모토)’와 같은 것이므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음행같은 죄로 몸을 더럽히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몸이 악한 게 아니고 몸에 깃들인 죄가 악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생각이었고 기독교 진리이다.
2) 영 - 속사람
그리스도인은 자기 속에 새로운 사람을 가지고 있다. 즉 영이 살아있는 것이다. 그전에 그의 영은 죽어 있었다. 아담으로 인해 모든 사람의 영이 다 타락한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를 다시 살리셨다. 그래서 우리도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긴다.
속사람(영)이 살아있는 우리는 몸을 다시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하나님께 의의 병기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죄의 대가(代價)는 죽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이상 영생을 가지고 있다. 영원한 생명을 받기 위해 노력하며 대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았다.
영 즉 그리스도가 산다는 것은 생명을 가졌다는 뜻이다. 몸이 죄의 둥지인 한 죽음의 운명을 가졌으며, 실제로 죽어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이미 육만 가진 것이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영을 가졌으며, 영에서는 의가 나오기 때문에 순수하다. 이 영의 생명의 힘이 구원받은 자의 새로운 생활을 움직이는 것이다(알트하우스).
나의 영이 죽어 있었을 때는 ‘영’의 일을 생각하지 않았고 오직 육신의 일만 생각하고 살았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하나님의 법에 복종치 않았다. 영적으로 죽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살아났다. 새 생명이 내 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골로새서의 말씀이다. “여러분은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이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3:1-3)
그리스도인은 살아있다. 그러나 몸은 점점 쇠하여 간다. 흙으로 만든 몸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나 영은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서 살아 있다. 그 영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날에 함께 나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몸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학자에 따라서 이렇게 혹은 저렇게 이야기하나 모두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한 이야기들이다. 우리 모두 그때가 되면 베일을 걷고 보는 것같이 선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영이 살아있는 것은 믿음의 씨앗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죄와 타락이 사람을 죽음으로 인도했다. 완벽하고 총체적 죽음이었다. 죄가 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첫 사람이 우리를 위해서 해놓은 일이 바로 죽음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이 와서 이를 바꾸어 생명을 주신 것이다. 그 생명으로의 구원은 완벽하고 철저했다. 예수님은 죄를 없애려고 세상에 오셨으며 그분에게는 죄가 전혀 없었다(요한일서 3:6).
3) 영과 육의 이중생활
크리스천의 생활은 죽음이 정해진 죄의 육체와 영원의 생명의 의를 가진 영과의 공동생활이다. 즉 Simul Justus et Peccator(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다. 죽음과 동시에 생명도 가진 존재다 지상에 살고 있는 한 영과 육의 싸움과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이 싸움은 죽어가는 육체전체와 생명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영과의 싸움이므로 한층 심각하다. 그러나 자신 안에 살고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이미 이기는 싸움이므로 안심할 수 있고 평안을 가질 수 있다.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살아있다."
이 8장 10절에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바울 사도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몸은 죄로 인해 죽어있다」,「영은 의로 인해 살아있다」는 두 개의 대구(對句)에 우리 크리스천의 이중적인 모습이 드러나 있다.
그리스도인은 영을 가졌으므로 확실히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몸은 아직 아니다. 죄가 몸에 남아 있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8장 23절을 보면 명확하다. “첫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다(새번역).” 몸은 아직 구속받지 못했다. 잠깐동안(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죄로 인하여 죽어 있다. 그러나 우리 몸의 구속도 꼭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야나이하라 선생은 그림으로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1) 그리스도의 육신과 우리의 육신, 그리스도의 영과 우리의 영을 각각 파이프로 연결한다. 연결한다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며, 파이프는 믿음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의, 즉 구원의 은혜라는 압력이 가해진다.
(2) 인간의 죄는 밀려나 그리스도의 육신에 옮겨가는데, 그리스도의 영에 침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육신을 죽게하는 동시에 죄 자신도 죽는다.
(3) 죄를 죽인 후에 그리스도의 영은 그의 육신을 다시 살린다.
(4) 이 동일한 그리스도의 영은 믿음의 파이프를 통하여 인간의 영에 깃들어(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압력에 의한다) 인간의 영을 생명으로 인도한다.
(5) 이 생명의 영은 인간의 육에게 효과를 끼쳐 죽어야 할 육체도 살린다.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지 않았을 때에는 이와 반대로 인간의 육신에 깃든 죄의 힘에 의해 인간의 영 자체도 죽음으로 정해져 있었다.
타고난 자연인간은 육적 몸으로 남아 있는 인간으로서, 산 자 같으나 죄로 인하여 실상은 죽어가는 자이며,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므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아니다. 그러나 만일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중생하여 그 사람 안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계신다면, 그의 죄 많은 육적 몸은 이미 죽었으나, 그의 영은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며, 성령 충만함을 받고 있으므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영이 살아 있고, 또한 영원히 살게 될 것은 우리 자신의 행위의 의 때문이거나, 우리의 행위의 의와 믿음의 의와의 합성효과 때문도 아니고, 전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다.
4) 맺는 말
우리는 지금 구원을 받았으되 아직 부분적일 뿐 완전하지 않다. 즉 영에 관한한 구원을 받았지만 내 몸은 여전히 죄로 인하여 죽어 있다. 나는 아직 내 속의 죄와 끊어지지 못했다. 죄는 몸속에 잠재하여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의 유혹을 받는 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겉사람은 힘과 기력이 조금씩 쇠하여 가고, 약한 육체로 인한 고난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의로 인하여 영이 살아 있다. 또한 땅에 있는 육체의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집을 소유하게 될 것을 안다. 그 영원한 집, 하늘나라에서의 육체가 어떠할지 기대하며 사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죄가 없지는 않을지라도, 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다. 함께 섞여 생활하므로 구별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이 더 아름다운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사망일뿐이다. 그리스도의 의가 없으므로 영이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고향 산소에 갔다가 어린 소나무 네 개를 뽑아와서 집 꽃밭에 심었다. 뿌리가 상한 것도 있었는데 처음엔 다 싱싱하더니 결국 두 개가 누렇게 말라버렸다. 뿌리가 살아있지 않으면 결국 죽는다. 우리도 이생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팔려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실제로는 죄인이나, 희망에 있어서는 의인"인 우리들. 그 희망이 비록 이 생에서 완전하게 성취되지는 않을지라도 이미 완성에 다다르고 있음을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