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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작)

푸른 수의 (2020 공무원문예대전. 은상)

작성자최상근|작성시간26.06.10|조회수20 목록 댓글 0

                                          푸른 수의

 

 

어머니의 수의를 태웠다. 생전에 어머니가 손수 마련한 것인데, 지난해 장례 때 깜빡 잊고 입혀드리지 못했다. 여태껏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텅 빈 시골집 마당에서 때아닌 불길이 세차게 일었다. 착잡한 내 마음이 타오르는 듯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수의를 만들어 놓아야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건강한 어머니에게 그런 불행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아무런 긴장감도 없이 들렸다. 그저 어제 같은 오늘이 있고, 또 내일도 오늘 같으리라고 여길 따름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정말로 수의를 장만해 놓았는지, 나에게 잊어버리지 말 것을 당부했다. 평소 과묵한 어머니가 수의에 대해서만은 다사스러울 정도로 말을 많이 했다. 건성으로 대답하는 내가 못 미더웠던지 창고 안 다락 위에 있다.” 며 다짐이라도 받아 낼 것처럼 말했다.

생전에 만든 수의는 노인에게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한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긍정적인 삶을 살아서 무병장수한다는 것이다. 속설대로라면 연로하신 부모님의 수의는 자식이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수의가 부모님의 건강을 위한다는 그 속설이 왠지 믿기지 않았다. 그저 부모를 위하는 자식의 간절한 마음이 만들어낸 말이겠거니 했었다. 어머니가 손수 수의를 마련한다고 했을 때도, 그것이 단지 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일 거라는 추측만 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어머니가 손수 마련한 수의는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그 대신 장례식장 진열대에 있는 수의 중 하나를 거리낌 없이 사서 쓰고 말았다. 어머니의 당부는 결국 공염불이 되었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수의가 한 해가 지나서야 불현듯 생각났다.

텅 빈 시골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누가 수의를 가져갔을지도 모른다. 빈집이다 보니 고물상이 인사 삼아 들렀다 가곤 하지 않았나. 넝마가 되어 마당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주인이 없으면 물건에 발이라도 달린 것인지 엉뚱한 곳에 놓여 있기가 일쑤였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급해서 연신 자동차의 가속기를 밟았다.

창고 안에는 낯익은 농기구들이 전시물인 양 걸려 있었고, 더러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처진 거미줄을 걷어내며 다락 위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하얀 수의 상자가 나 아직 여기 있다.’라는 듯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리며 여태까지의 조바심에서 벗어났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쓸어내며 상자 뚜껑에 손을 얹었다. 알 수 없는 떨림이 손등에서 일어났다. 무엇을 훔치다 들킨 것처럼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누가 지켜볼 것만 같아, 아무도 없는 창고 안을 휘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은 내 죄의식 같은 어둠뿐이었다.

상자를 열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상자 안에는 뜻밖에도 푸른색 치마저고리 한 벌이 차곡차곡 접혀 있었다. 황토색 삼베 수의가 아니었다. 푸른 수의가 푸르게 피어나 금방이라도 하늘로 올라갈 듯했다. 이것을 어머니가 만들었다니. 하필이면 푸른색의 천일까.

기억 속에서 실오라기 같은 외줄 단서가 잡혔다. 내가 취직해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였다. 그때 어머니에게 푸른색 모본단 옷감을 사드렸다. 어머니는 옷감을 만지면서 감동에 젖었다. 별생각 없이 사 온 옷감 하나에 연신 아이고 곱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그 말뜻 속에는 옷감이 고와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에 대한 안도의 한숨 같은 것이 숨어 있었다.

군에서 갓 제대할 무렵이었다. 하천 건넛마을에서 머슴들이 노름판을 벌이고 있었다. 어머니 몰래 뒤주에서 나락을 퍼내 끼어들었다. 상대는 잘 아는 동네 머슴들이다. 한밑천 잡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워 보였다.

노름판에 가려고 이른 새벽에 어머니 몰래 일어났다. 밤새 비가 많이 와서 마을 앞 하천은 누런 황토물이 도도하게 흘렀다. 옷을 벗어 머리에 이고 겨우 하천을 건넜다. 건너온 하천을 무심결에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하천 건너편에서 나를 지켜보며 서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노름에 잃은 돈 때문에 나는 어머니 몰래 논 한 마지기를 팔았다. 동네 사람들이 내 흉을 보아도, 어머니는 태연했다. 언젠가는 돌아온다며 오히려 나를 두둔했다. 그런 어머니의 믿음을 확인시켜준 것이 그 옷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모본단이 곱기만 했을까. 그것이 긴 세월 동안 어머니의 가슴 어디에 깃들었다가 이렇게 푸른 수의로 현신한 것이었다.

수의를 내려다보는데 내 목에서 꺽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자갈밭 갈아엎는 것처럼 점점 커지더니, 이내 쇄액쇄액하며 숨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변했다. 온몸이 흥건하게 젖는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 상갓집에서 상주를 대할 때마다 내 속은 이상하게 설레었다. 문상하는 동안 스멀거리는 죄의식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상주와 맞절을 한 뒤수의는 어떻게 마련했느냐.’며 물어보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날 밤에는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내가 사다 입혀드린 황토색 수의 대신 어머니가 손수 만든 푸른색 모본단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노름에 빠져 홍수가 난 하천을 건너던 나를 지켜보는 모습 그대로였다. 장례식 때 어머니가 만든 푸른 수의를 쓰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생시 같은 꿈이었다.

깨달음은 언제나 뒤늦게 온다지만, 어머니에 대한 나의 깨우침은 터무니없이 늦었다. 늦었다는 것을 알 때는 결코 늦은 것이 아니라는 말도 궤변 같다. 어머니의 푸른 수의를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수의는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내가 박아 놓은 대못도 사위어 갔을까.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가슴에 박혀 있었다. 아마도 내 삶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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