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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작)

독도를 넘어 (2025 독도문예대전. 입선)

작성자최상근|작성시간26.06.10|조회수19 목록 댓글 0

                                                       독도를 넘어

 

독도는 내 발길이 닿은 적 없는 섬이다. 그러나 그 이름만으로도 바다의 바람처럼 내 뼛속 깊이 스며들어, 오래 잠들어 있던 기억을 흔들어 깨운다. 파도에 실려 전해 오는 선조들의 목소리, 풍랑 속에서도 꺼지지 않던 눈빛이 그 이름에 겹친다. 독도는 지도의 한 점이 아니다. 세월을 건너와 우리 가슴속에 새겨진 맥박이자,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파문이다.

거센 파도와 맞서며, 외딴섬에서 하루를 버텨내는 삶의 무게를 나는 오직 상상으로만 더듬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바람에 깎인 얼굴의 고단함과 파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빛의 의지가 함께 깃들어 있다. 그래서 내게 독도는 단순한 실체라기보다, 늘 멀리서 나를 부르는 상징에 가까웠다. 손끝으로는 닿을 수 없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파도처럼 일렁이며 존재를 증명하는 섬, 그것이 독도였다.

그러던 내게 그 이름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일본의 집요한 망언 때문이었다. 거리상으로 보아도 독도는 울릉도 인근에 자리한다. 파도가 잦아들면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섬이다. 일본과는 바다 건너 먼 거리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 영토라고 우겨댄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집요하게 만들었을까. 단순한 영토 분쟁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들의 발언 속에서 과거를 부정하려는 의도와 미래를 왜곡하려는 집념을 동시에 읽게 되었다.

일본 인구가 1억이 넘는다. 그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들의 침묵은 곧 역사를 외면하는 선택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면 역사 앞에서 그들의 침묵이 얼마나 길었는지 금세 깨닫게 된다. 수많은 전범의 죄가 흐지부지 덮였다. 위안부 문제 앞에서도 진심 어린 사과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전쟁의 이름 아래서 정의는 무력해진다. 침략의 논리 속에서는 국가 간의 양심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독도는 일본이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방향타다. 바람이 불면 방향타는 부지불식간에 흔들리며 돌아간다. 북풍이면 북풍을, 남풍이면 남풍을 가리킬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독도의 진실은 바람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중심을 놓치지 않는 한, 흔들림 속에서도 바른 방향은 분명히 가리킨다. 그리고 그 방향 끝에 서 있는 땅이 하나 있다. 역사의 기억 속에서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준 땅, 바로 대마도다.

대마도는 애초부터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다.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까지 대마도주는 조선 국왕으로부터 정3품 도지사에 해당하는 좌·우호군, 경상도 병마절제사 등의 관직을 제수 받았다. 세종 25년에는 계해약조를 체결해 대마도에서 파견할 수 있는 무역선의 수까지 규정하였다. 이는 곧 대마도가 단순한 교역지가 아니라 조선의 권역과 질서 속에 편입되어 있었음을 말해준다.

대마도가 일본화된 것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였다. 전쟁의 광풍 속에서 일본의 세력이 대마도에 밀려들었다. 그 여파로 우리의 손길이 멀어지면서 대마도는 점차 일본의 것으로 굳어졌다. 지금으로부터 겨우 40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이전의 수많은 세월 동안 대마도는 우리의 역사와 함께 숨 쉬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이 대마도를 단순한 과거의 흔적으로만 남겨둘 것인가. 독도 문제에서 억지를 부리는 일본 앞에서, 대마도를 우리의 최전방 영토로 주장하는 것은 정당한 대응이다.

울릉도 독도박물관에 세워진 표석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세종실록 206월 조에는 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對馬島本是我國之地)” 이라고 되어 있다. 표석 좌·우면에는 대마도가 경상도에 속해진 조선 땅으로 원래 말을 기르던 땅이었음을 밝히고, 이 땅이 왜구의 침략으로 빼앗겼음을 기록한 내용도 있다.

조선은 대마도를 국토의 한 몸으로 인식한 것이다. 곧 대마도는 우리의 영토일 뿐 아니라, 민족 정체성의 지리적 구성 속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일부였다는 뜻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돌아볼 때, 대마도 문제는 단순히 영토 논쟁의 차원이 아니다. 이 문제는 우리의 역사적 기억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부산에서 불과 50, 후쿠오카에서는 140나 떨어진 대마도.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리에게 더 가까운 이 땅은, 해방 직후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에서도 울려 퍼졌다. 이는 독립한 나라의 첫 외침이자, 국제 사회에 던진 정당한 선언이었다.

그는 1948818, 정부 수립 3일 만에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였다.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대마도는 상도와 하도의 두 섬으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있는 우리 영토인데, 삼백오십 년 전 일본이 불법으로 탈취해 간 것이다.”

이어서 194918일 연두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대마도 반환 문제를 강조했다.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마도 문제는 대일 강화회의 석상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일본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역사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대마도는 그러한 권리의 상징이다. 조선 왕조 시기부터 우리의 질서 안에 있었던 땅이다. 임진왜란과 식민의 격동 속에 비틀려 간 역사를 안고 있는 땅이기도 하다. 따라서 독도를 넘어 대마도까지를 우리의 국토로 간주하는 것은 단순한 영토 확장의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미래를 향해 우리의 정당한 자세를 세우는 일이다.

비록 잃어버린 세월이 길었을지라도, 우리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흔적을 덮을 수 있어도, 민족의 기억 속에서 그것은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는다. 대마도 문제는 바로 그 불씨가 불길로 되살아나는 증표다.

독도와 대마도, 하나는 질문이고 하나는 대답이다. 두 섬은 바다 위에서 마주 보며, 잃어버린 세월을 넘어 다시 깨어나는 불빛이다.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희망을 동시에 비추는 등불로, 우리의 권리와 정체성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는 잃어버린 세월을 넘어, 다시 그 불빛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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