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의 나라
태고에 배움을 사랑하는 종족이 있었다. 그들은 구석기에서 신석기, 청동기와 철기로 이어지는 시대를 지나며 무수한 침략과 굴욕을 겪었다. 그러나 배우려는 마음만은 꺾이지 않았다. 혼란 속에서도 호학의 기운은 땅속 불씨처럼 은밀히 이어졌다. 그 전승의 긴 숨결 위에 찍힌 하나의 흔적, 그것이 ‘직지’였다.
그러나 누적되는 시간 속에서 직지는 잊혔다. 마치 누군가가 먼 훗날을 위해 감춰둔 약속처럼 침묵의 세월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책은 먼 타국의 서가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 고서 구역의 한켠이었다. 누렇게 바랜 종이에 투박한 표지를 두른 채 오래도록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 침묵은 단지 소멸이 아니었다. 귀환을 위한 기다림이었다. 직지, 그 한 권의 책 안에는 여섯 세기도 넘게 거슬러 오른 장인들의 손끝과 눈빛이 살아 움직였다, 금속활자 위에 맺힌 숨결까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던 그 책이 우리를 향해 말을 건넸다.
직지는 왜 만들어졌을까. 고려 말, 나라의 숨이 가빠오던 시절이었다. 쇠퇴와 혼란의 그림자 속에서도 구도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진리를 전하려는 의지는 복사나 필사라는 느리고 불완전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목판은 쉽게 망가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은 촉박했다. 궁즉통(窮則通) 막다른 절박함은 마침내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들은 쇳물로 글자를 주조하고, 사람의 손대신 차가운 금속이 진리의 문장을 찍어냈다. 직지는 그렇게 태어났다. 두려움과 절망 사이에서 인간의 사유와 기술이 함께 건너간 간절함의 증거이자, 시대를 건너는 용기의 문서였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였다. 나는 마치 오래전 내 몸 어디에선가 울려오던 메아리를 다시 듣는 것 같았다. 긴 잠복기를 거쳐 마침내 깨어나는 호학의 기질이 발현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현상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너와 나에게도 여전히 맥박쳐오는 현실이었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곧장 공장에 취직한 친구가 있다. 거친 산업현장에서 온몸으로 실력을 쌓아왔다. 수입한 원자재의 매뉴얼은 모두 영어였다. 그걸 해석하지 못하면 직원들에게 업무지시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영어를 쓰지도 읽지도 못했다. 모른다는 건 곧 밀려난다는 뜻이었다. 그날부터 그는 야근 후 밤마다 사전을 펼쳤다. 모르는 단어는 줄을 그었다. 다시 쓰고 입으로 되뇌기를 수도 없이 했다. 책상 하나 없이 기계 소음에 둘러싸인 작업장 한켠에서 그는 천천히 영어를 익혔다.
책상 위엔 빛바랜 설명서와 빨간 줄이 빼곡히 그어진 공책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 낡은 줄 하나하나에서 나는 직지의 마음을 보았다. 배움에 대한 갈망은 어떤 학벌도 뛰어넘었다. 이 민족의 저변을 흐르는 호학의 기운이 그에게만 없을 리 없었다.
‘향학열’이라는 말이 다소 낡은 표현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 정신은 여전히 오늘의 우리를 움직이는 거대하고 깊은 동력이다. 조선업과 중공업 현장에서 시작된 기술과 땀의 도전은 이제 영화, 음악, 게임, 음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어느덧 세계가 주목하는 콘텐츠 강국이 되었다. 우리의 글자와 목소리, 몸짓과 웃음은 지구 곳곳을 밝히는 K-컬처로 우뚝 섰다. 이 찬란함의 뿌리를 더듬어가다 보면 언제나 그 시작과 마주치게 된다. 한 권의 책과 한 줌의 금속 활자 그리고 그 위에 스민 배움의 혼이 겹쳐졌다. 그 끝엔 언제나 직지가 있었다.
내 친구는 마침내 이사(理事)가 되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길이었다. 학력의 벽 앞에서도 그는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가 올라선 자리는 단순한 직책의 정점이 아니었다. 배움의 불씨를 품은 채 하루하루를 견디고 이겨낸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고지였다. 그것은 이 민족의 기질 속에 잠재된 꺼지지 않는 염원의 층위였다.
수억 년 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지식에 대한 염원은 마침내 이 민족을 나타내는 기질이 되었다. 그것이 뛰어난 문화를 만드는 바탕이었다. 그 속에서 남긴 조용한 혁명이 직지다.
직지의 DNA는 지금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 정신은 누군가의 낡은 사전 위에서 조용히 증명되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질적 특성은 감춰지기 어렵게 되었다. 세상이 문명화될수록 반응할 수밖에 없다. 앞날은 무궁무진하다.
직지는 삶을 향한 간절함과 배움의 열망이 응축된 유산이다. 우리는 지금 그 유산의 선상 위를 조용히 걷고 있다. 호학적 기질의 잠복기가 끝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우리는 배움을 사랑하는 종족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가고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