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수필 (수상작)

안 내고는 못 삽니다 (2016 좋은 생각)

작성자최상근|작성시간26.06.10|조회수8 목록 댓글 0

                                        안 내고는 못 삽니다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떤 아주머니였다. 지난날 밀린 세금 이백오십 만 원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을 지금 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왔다. 확인해보니 그동안의 가산금이 불어나 사백 만 원으로 늘어나 있었다. 별다른 느낌 없이 밀린 세금이 사백 만원이며, 세무서에 와서 납부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면서 몇 년 동안 모아 이백오십 만 원을 겨우 맞춰놨는데, 이제는 사백 만 원을 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사이 살인적으로 불어나 가는 중가산금을 미처 알지 못했다. 흔히들 제때 못 낸 세금을 정작 내려고 하면 불어난 중가산금 때문에 직원을 향해 삿대질했다. 직원에게 때로는 통사정도 해보지만, 직원의 고충도 늘어나는 현장이 체납세 징수 풍속도다.

사정이 어려운 것을 직감하면서,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지 물어보았다. 파출부, 간호인, 공사장 막노동 등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3년을 꼬박 벌어 모아놓은 돈이라고 했다. 무심한 내 가슴에 찡하게 전류 같은 것이 흐르더니 핑글 눈물이 돌았다.

통화도중 할까 말까 망설이던 말을 마침내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몇 달 후면 조세 소멸시효가 완성되므로, 지금 밀려있는 세금은 안 내도 되니, 그렇게 아시라고 말씀드렸다. 아주머니에게는 분명 놀랄만한 희소식이 될 게 틀림없어 보여서, 길고 장황하게 설명해드렸다. 그런 게 있느냐며 고맙다는 인사를 허리가 휘어질 정도로 내게 할 것이다.

아주머니가 나에 대하여 할 덕담을 듣고만 있을 수는 없다. 나도 아주머니에게 겸손의 말을 건네야지. 나는 대화 도중의 그 찰라 같은 틈 사이에서 잠시 후 일어날 아주머니와 주고받을 공치사를 다 마련해 놓고, 아주머니의 다음 말을 천천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기대는 엉뚱하게 빗나갔다. 아주머니가 세금을 꼭 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내지 않아도 된다는데 기어이 내야 한다는 홍두깨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나의 예상 문답 안은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내가 놀라고 있었다. 내 말귀를 혹시 못 알아들은 것은 아닐까? 차근차근 다시 쉽게 설명할 요량으로 말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주머니가 그간의 절절한 사연을 나직한 목소리로 내게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비감면 신청을 하기 위해 아들이 세무서에 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밀린 세금이 있다는 사실을 아들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아들이 못내 부끄럽게 생각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주머니는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체납된 세금을 꼭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자존심이란 말이 존재하는 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럴 때 쓰이니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자존심. 자식을 위해서는 자신의 시련 따위는 기꺼이 희생하는 부모의 애정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자존심이다. 자식을 위해 이렇게 엄숙한 희생을 경험해본 적이나 있었던가. 아주머니의 자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에 고개가 숙어졌다.

맞장구를 쳐야 할지 소멸시효를 들먹이며 설득(?)을 계속해야 할지 난감했다. 나의 설득은 탄력을 받지 못한 탓인지 뒤숭숭하게 꼬였고, 대화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다. 아주머니와 나는 입장이 서로 뒤바뀐 채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납세를 독려해도 시원찮을 징수기관이 납세자의 납세 의사를 무시하는 진풍경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 세금 안 내고는 못 삽니다.”

납세를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평생을 근무하고도 납세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렇게 알기 쉽고 속 시원한 말을 해준 적이 없다. 들어본 적도 물론 없다. 무수한 법과 제도들이 아주머니의 순수한 양심 앞에서 소리 없이 무너졌다.

잊히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때 그 가난한 모자는 지금 어디서 살아가고 있을까. 세월이 흘러도 생각이 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