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수필 (수상작)

서애의 병산구곡가屛山九曲歌 (2017 경북문화체험문학상. 장려)

작성자최상근|작성시간26.06.10|조회수6 목록 댓글 0

                           서애의 병산구곡가屛山九曲歌

 

 

병산서원의 맞은편에는 해발 이백 미터가 조금 넘는 야트막한 산이 있는데, 이 산이 병산(屛山)이다. 서원과 병산 사이에는 모래벌판이 유장하게 펼쳐져 있다. 모래벌판과 병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만나는 곳을 따라 낙동강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이렇게 풍광이 빼어나건만 회자할만한 구곡가 하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았을 병산서원이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 서원에서 제자를 길렀던 서애 류성룡 선생의 침묵이 의아하기만 하다.

율곡의 고산구곡가는 원조가 무이구곡가다. 무이구곡가는 주자가 성리학을 완성해가는 과정의 힘들고 기쁜 과정을 무이산의 아홉 골짜기의 아름다운 경치에 빗대어 시로 읊은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 시를 읊으며 주자를 흠모하였고, 또 이를 본떠서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산천을 구곡이나 팔곡, 칠곡으로 읊곤 하였다.

안개와 노을로 집을 삼고 / 달과 바람으로 친구 삼아 / 태평성대에 (자연을 사랑하는)병으로 늙어가네 / 이 삶 중에 바라는 것은 허물이나 없었으면

도산십이곡 중의 제2장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이기도 한 서애 선생께서도 이렇게 학문의 어려움과 깨달을 때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싶었을 것이다. 병산과 선생께서 터를 잡은 서원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병산은 중국 송나라 때 성리학을 완성한 주자의 스승 유자휘의 호다. 유자휘는 중국의 무위산에서 병산서원을 짓고 거기서 제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런 학문적 연결고리를 따라가다가 보면 병산의 의미가 사뭇 깊다.

조선 중기는 성리학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다. 선비들은 주자를 성리학의 비조로 여기며 극도로 사모하였고 중국 송나라를 천자의 나라로 떠받들었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결코 송에 뒤지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이렇게 지명의 차용으로 드러난 것이다. 결국, 병산은 주자와 그 스승이 함께 머물며 성리학을 연구한 무이산(武夷山)에 해당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무이산을 통째로 들여놓으면서까지 성리학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려고 했던 선생께서 천하의 구곡가를 남기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나라가 평화스러울 때야 가능한 일이다. 선생은 임진왜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백성의 5할이 사라질 정도로 나라 전체가 참혹한 전쟁터로 변했는데 언제 한가로이 구곡가를 읊겠는가.

왜의 침략을 예견한 선생께서는 숨은 인재를 발굴하는데 노심초사하던 중 충무공과 권율을 천거했다. 그분들이 전쟁의 영웅이 될 줄 어떻게 알았을까. 선생의 선견지명은 하늘에 닿아 있는 듯하다.

전쟁이 끝나도 학문에 몰두할 수 없었다. 병산을 둘러싼 절경의 화룡점정은 선생께서 구곡가로 하실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마는, 다만 뒷날에 경계로 삼아야 하겠기에 자세하게 적어둔다.’ 라며 마지막 힘을 다해 징비록을 저술하는데 몰두하였다. 병산구곡가를 짓는 일은 그야말로 백년하청이었다.

두루마리를 펼쳐 놓은 듯 우물우물한 산세는 묵언 속에 잠겨 있고, 그 밑으로 푸른 강물이 속절없이 흐른다. 강물 위로 밤에는 달이 지고, 별들은 내려와 목을 축이는데, 병산서원이 한 점 혈육인 양 천하의 비경 속에서 고즈넉하다. 여기서 천하의 의리를 두루 살펴, 덕을 쌓고 인을 익혀, 이것으로 낙을 삼으리. 이러한 선생의 병산구곡가는 후학들에게 속절없이 예비될 뿐이었다.

서원의 강당에 앉아 만대루(晩對樓)를 통해 병산과 그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기가 막힌다. 힁으로 늘어선 만대루의 일곱 칸은 병풍을 펼쳐놓은 듯 눈앞의 강 흐름을 각각 다른 모습으로 잘라놓았다. 선생께서는 노도처럼 병산의 절벽을 치는가 하면, 잔잔하게 어우러져 흐르는 강물을 성리학의 칠정(七情-喜怒哀樂愛惡欲)에 빗대어 놓은 것이 아닌가. 인간의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그리고 사랑과 미움, 욕심도 잘 다스리면 물처럼 그침이 없고, 다함도 없는 도()에 이른다. 선생의 가르침이 저절로 넘쳐난다.

압권인 것은 서원과 주변 자연과의 관계다. 서원 건물은 하나같이 텅 비어 있으면서 주위의 비경을 모두 끌어안는가 싶더니, 주위의 자연은 다시 서원을 포용하고 있다.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채움이지만 채움은 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비움과 채움의 공존은 음과 양의 조화를 말하고 있다. 이 음양의 이치 둘에다 만대루의 일곱을 더하니 마침내 선생의 병산구곡가가 후학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음양의 조화는 우주 만물의 생성 원리다. 누구나 그 조화를 바탕으로 칠정을 잘 다스려 도에 이르도록 힘써야 한다. 이것으로 낙을 삼는다면, 그가 바로 군자라. 병산구곡가의 의미가 이러한데, 여기에 그 누가 구태여 또 다른 구곡가를 더하겠나 싶다.

선생께서 가신지 사백여 년. 뭉게구름이 흐르다 머물러 있는 듯한 병산과 활처럼 휘어져 흐르는 강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강물처럼 선생의 병산구곡가가 오늘까지 쉼 없이 흐르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