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수필 (수상작)

왼손잡이 돌이 (2017 김유정문학상. 우수상)

작성자최상근|작성시간26.06.10|조회수7 목록 댓글 0

                                  왼손잡이 돌이

 

어릴 적, 내 동무 돌이는 동네 외딴집에서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외따로 있으니 동네 아이들이 일부러 돌이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돌이가 동네로 와서 아이들과 어울려야 했으나, 돌이는 별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다 내가 돌이의 집으로 놀러 가보면, 그는 마당에서 개와 놀거나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돌이 어머니는 집에 누가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성격이 까칠해 보였고, 장이라도 보러 가듯 머리와 옷이 단정했다. 돌이와 놀 때 나는 돌이 어머니의 시선이 언제나 내 등 뒤에 와 있음을 의식했다. 돌이 어머니가 돌이를 부르면, 우리는 가지고 놀던 구슬이나 딱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얼른 일어서야 했다.

돌이를 낳기 전, 돌이 어머니는 동네의 도로 옆에 나 있는 주막에서 술을 팔았다. 주막 주변을 키 낮은 토담이 둘러싸고 있었으나, 주막의 속곳을 가리기에는 좀 모자랐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저고리 치마 사이에 맨살이 뻘쭘하게 내비친 단정치 못한 여인네 모습이었다. 허리에 찰까 말까 한 주막의 사립문은 늘 열려 있어서 헤프게 보였다.

돌이 어머니는 돌이를 낳자 주막 일을 청산했다. 그리고 지금의 외딴집으로 이사했다. 돌이 어머니가 주막을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동네 면의원이 뒤를 봐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방 후 면 의원을 지낸 적이 있는 과수원집 주인을 동네 사람들은 면의원이라 불렀다.

면의원은 동네에서 제일 부자였다. 생각이 깊고 인심도 후했다. 결점이라면 술을 너무 좋아한다는 정도였다. 면의원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머슴에게 새경을 넉넉히 쳐준 후, 찬바람이 불 때면 주막으로 거동했는데, 주막의 단골이었다. 그러니 돌이네 뒤를 봐줬다는 소문이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돌이 어머니가 주막을 접자, 면의원도 더는 주막 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새로 이사한 돌이네 집을 드나들었다. 동네 여론이 뒤숭숭하다 싶더니, 돌이가 면 의원 소생이 아니라는 이상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돌이는 면 의원 호적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짚이는 데라도 있는 듯이 의심을 풀지 않았다.

저 아는 도대체 누구의 씨앗이여!”

아 면상을 보고도 몰라? 면 의원이라고 쓰여 있잖아!“

동도골 의원 아냐? 저 턱주가리 좀 보라꼬!”

동도골이란 동네 앞산 골짜기를 말한다. 그 동도골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집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 곳에 가족도 하나 없이 살고 있는 50대 초반의 한의원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동도골 의원이라고 불렀다. 도시의 한약방에서 약재를 썰기만 했다는 이력이 전부인 그가 이 골짜기로 흘러들어 와서는 어엿한 의원이 되었다.

동도골 의원은 아이를 못 낳는 부인에게 아이를 낳게 하는데 용하다는 소문이 났다. 농한기에 접어들면 인근 읍면지역뿐만 아니라 도시의 중년 부인들도 찾아왔다. 환자가 뜸한 여름철이 되면 동도골 의원은 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돌이네 어머니의 주막에 들러서 자주 외상술을 먹었다.

돌이 어머니는 어쩐 일인지 그런 용도골 의원을 문전박대하지는 않았다. 용도골 의원은 동네 사람들이 들에서 한창 일하는 대낮 내내 주막에 앉아 있곤 하였다. 밤이 이슥해지면, 주막에서 떨어진 가게에서 이틀 치의 신문을 찾아들고 골짜기로 올라가거나, 주막에서 밤을 지새운 이튿날 새벽에 갈 때도 있었다.

면의원은 동도골 의원과는 반대로 주로 농한기인 겨울철에 주막을 출입하였다. 가끔은 두 사람이 주막에서 겹치는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서 너 살 아래인 동도골 의원이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았다. 면 의원과 동도골 의원의 이런 희한한 릴레이식 주막 출입은 돌이가 누구 소생인지에 대한 소문의 실마리가 되었다.

그 소문을 돌이 어머니가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돌이 어머니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돌이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돌이를 밖에 나가 놀게 내버려두지도 않았다. 집에 누가 놀러 오는 것도 꺼렸다.

돌이 어머니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돌이의 이목구비는 동네 사람들을 늘 뭉텅한 의문에 빠뜨렸다. 동도골 의원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둥글었는데, 면의원은 메줏덩어리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그런데 돌이는 이도 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얼굴이었다. 외탁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도 하는 등, 돌이의 두상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마다 자기 편할 대로 생각했다.

돌이의 생부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은 동네 아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저 어른들에게서 들은 귀동냥이 전부지만 아이들도 편이 갈라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돌이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물어보거나, 그런 일로 돌이를 놀려먹는 철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시골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남의 아픈 곳을 모질게 건드릴 줄 몰랐다.

돌이의 어머니가 그만둔 주막에는 다른 주모가 들어와 주막을 열어 놓았다. 면의원은 더는 주막 출입은 하지 않았지만, 동도골 의원은 여전히 주막을 찾았다. 새로 온 주모는 외상술을 먹는 동도골 의원을 영 달가워하지 않았다. 주모에게 욕만 얻어먹고 쫓겨나는 모습이 우리들의 눈에 띈 적도 있었다.

한여름 밤이면 우리는 마을과 마을 앞 벌판을 벌침 맞은 망아지처럼 씩씩대며 돌아다녔다. 열서너 살 아이들의 밤마을이라고 해봐야 어른들 몰래 소주를 마셔보거나, 마을 앞 벌판에서 목청껏 유행가를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은 실한 농군이 되기 위한 징표였으니, 마을 어른들은 모르는 체 했다.

밤이 점점 깊어지자, 하얀 돌이 지천으로 깔린 그 벌판 위로 달빛이 부서져 내렸다. 그러자 벌판은 마치 목화를 따다 늘어놓은 것처럼 온통 하얗게 빛났다. 그 벌판에 누워 백열등 불빛으로 붉어진 주막을 바라보면, 큰 별 하나가 땅에 떨어져 발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우리 중 누가 팔을 들어 주막을 가리켰다.

주막의 창호지 문에는 두 개의 실루엣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실루엣은 인형극을 하는 것 같았으나 조금 난잡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곧바로 퍼붓듯이 내리는 달빛을 안으며 주막으로 내달았다. 그 장면이 무슨 상황인지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은근히 호기심도 발동했다.

주막에 가까이 다가가자 방 안에서 투덕거리는 남자와 여인의 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의 남자가 동도골 의원임을 금방 알았다. 우리 중 한 아이가 신작로에 나 있는 자갈을 한 줌 움켜쥐었다. 그리고 주막의 손바닥만 한 마당 안으로 던졌다. 꼭 그래야만 될 것 같은 충동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났다. 거친 욕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주막을 향해 돌팔매질을 시작했다. 주막의 마당에 우두둑 자갈 떨어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내 옆의 돌이도 왼손에 자갈을 쥐었다. 그러나 돌이는 욕을 하지도 자갈을 던지지도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왜 자갈을 던지지 않지? 그 순간 나는 장난기가 확 달아났다. 돌이에 대한 해묵은 소문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그 때 주막집 여닫이문이 후다닥 하며 거칠게 열렸다.

볼 일을 못 봐서 화가 났는지 방 안의 동도골 의원이 이놈들하며 거칠게 소리쳤다. 그리고 벗겨진 웃옷과 허리띠가 풀어져 흘러내리는 바지를 오른손으로 엉거주춤 잡은 채 용수철처럼 밖으로 튀어나왔다. 우리는 어둠 속으로 줄행랑을 쳤다. 뒤따라오는 돌이의 얼굴이 창백하게 일그러졌다.

그날, 나는 돌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았다. 여태껏 아버지를 가슴에 담고 살아야 했던 돌이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살아온 것을 생각하니 내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돌이가 주막을 향해 돌팔매질하지 않았던 사실을 동무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동네 어른들 누구에게도 물론 말하지 않았다. 동도골 의원이 돌이처럼 왼손을 쓴다는 사실까지도.

돌팔매 사건 이후에도 고향 산천은 여전히 맑고 푸르렀다. 낮이면 들녘에 사람들이 들일을 했고, 밤이면 별들이 귀찮을 정도로 반짝였다. 사람들은 돌이의 출생 비밀을 더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의 태도를 다행스럽게 여겼다. 나는 고향의 산과 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사랑했다.

우여곡절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