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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상작)

무현금無絃琴 (2018 제21회 공무원문예대전. 동상)

작성자최상근|작성시간26.06.10|조회수23 목록 댓글 0

                                                   무현금無絃琴

 

옛 그림 하나를 보고 있다. 강변의 노송 아래서 백발노인이 줄 없는 거문고를 품은 그림이다. 노인은 거문고에서 흘러가는 강물 소리라도 듣는지 시선을 허공에 풀어놓고 있다. 세상의 희로애락을 극복이나 한 듯 주변의 자연에 젖어 있다.
 살아오면서 손가락이 닳고 줄이 끊어지도록 연주에 몰입하다 마침내 득음得音의 경지에 들었으리라. 이제는 줄 없는 거문고를 품고만 있어도 원하는 음을 듣는다. 우리네 삶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나의 젊은 시절은 질풍노도 같아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그 시절을 보내고 난 후에도 우여곡절이 그치지 않았다. 삶의 의미를 조금 깨닫기 시작한 것은 그 질긴 우여곡절의 줄이 끊어진 후부터였다. 
 아내는 시골 부모님에게 가는 것을 꺼렸다.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드리고 돌아와 크게 다투기도 했다. 용돈도 내 마음대로 드리지 못하다니. 이렇게까지 하며 함께 살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때마다 혼자 살까 하며 고민했다. 
 어머니가 내 의중을 어떻게 알았던지 넌지시 물었다. “네 처가 너에게는 잘 대해주느냐?”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됐다. 이 어미에게 어떻게 하든 그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내와 나 사이에 이어져 있는 모진 갈등의 줄이 툭 하고 끊어지는 것 같았다. 
 그 뒤로는 혼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버렸지만, 아내와의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큰 지슴을 뽑아내면 또 다른 지슴이 자라는 것처럼,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불거졌다. 나의 투병 과정에서 일어난 아내와의 마찰이었다. 
 내가 혈소판 감소증으로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때였다. 따라온 아내가 남편을 살려달라며 의사 앞에서 펑펑 울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양주 한 병을 의사 앞에 내놓았다. 아끼던 양주를 나 몰래 가지고 왔던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상태가 악화하여 병원에 입원했다. 평소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아내가 안절부절못하더니, 그 사이에 몸무게가 6킬로나 줄어들었다. 거기다가 변비가 생겨 동네 병원에 다니는 처지가 되었다. 간호해야 할 아내가 오히려 환자가 되어 있었다. 나를 위한 아내의 마음이 그렇게 간절한지 처음 알았다. 
 아내는 평생 내 병구완으로 긴장하며 살아왔다. 오래전부터 간염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또 다른 병이 겹치니,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세 형도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형들의 전철을 밟는다면 나는 저세상에 가고도 남을 나이가 되었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아내의 마음고생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때로는 살아서 펄펄 뛰는 미꾸라지를 망에 넣어 소금을 뿌리고 비벼댔다. 평소 모기 한 마리도 못 잡는 사람이었다. 하물며 미꾸라지를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이었을까. 그것은 한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노리는 비정함까지 더하는 일이었다. 아내는 이를 악물었다. 나는 과연 아내를 위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도를 넘은 것도 많았다. 
 오늘은 몇 시간 몇 분을 걸었으니 이 정도의 열량을 섭취해야 한다며 이것저것 먹기를 강요했다. 잘 때 수면 양말을 제대로 신고 있는가, 방 안 공기는 적당한지를 살피는 시선은 쉴 틈 없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를 어린아이 돌보듯 했다. 나는 온종일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것은 하지 마라, 이것은 이렇게 하라는 지시어가 남발했다. 아내의 관심 덕에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 안에 갇힌 기분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성화에 못 이겨 아내가 시키는 대로 먹다 보니 체중이 늘어났다. 잘 먹어야 낫는다는 단순 논리에 빠진 아내가 미련스러워 보였다. 
 그즈음 나는 친구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뭐든지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몹시 부러웠다. 자유를 구속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내 마음에 조금씩 울분이 쌓였다. 
 마침내 다툼이 일어났다. 아내는 병간호하느라 온몸이 부서지듯 아픈데 성의도 모른다며 섭섭해 했다. 나는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고 몰아세우며, 집안이 울릴 정도로 고함질렀다.
 그날 이후로 목소리가 이상했다. 몇 마디 말만 해도 음성이 갈라지면서 이내 목이 쉬어버렸다. 성대결절이 생긴 것이었다.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목이 갈라질 정도로 아내가 원망스러운 일이 무엇인가.
 나를 위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후원자였다. 그런데도 큰소리친 일이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아내를 탓했던 원망의 줄이 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날 선 마음이 사라지더니 한없이 편안했다. 
 요사이 아내는 종일 집에서 인터넷을 뒤지거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법을 메모한다. 그 메모를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음식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낸다. 밖에서 친구도 만나지 않는다. 오직 내 건강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병원을 오갈 때면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누가 나를 이처럼 돌보아 줄까. 간섭이 지겹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아내가 내 어머니 같다. 
 여전히 아내와 나는 다투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시작하다가 멈춰버리기 일쑤다. 아내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는 것 같다. 나 역시 주방에서 그릇 부딪는 소리만 들어도 마음을 읽는다. 말이 없어도 서로를 훤히 들여다보는 셈이다. 
 나 때문에 초췌하게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부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부부 사이가 지극하면 서로가 무심無心의 상태에 이르는 것인가. 보이지 않아도 훤히 들여다보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주름진 아내의 손을 슬며시 잡아보았다. 아내도 나와 같은지 반달 같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머니의 충고와 성대결절이 묵은 갈등을 걷어낸 것이 틀림없었다. 
 그 일을 겪고 난 이후에 내 마음속에도 줄 없는 거문고가 들어와 있다. 오랜 세월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졌을 무현금 소리. 은은히 퍼져 나오는 현묘한 소리는 아내의 마음이다. 그 끝 모를 애정은 형용할 길 없다. 그림 속의 노인이 무현금을 뜯으며 듣는 천상의 소리도 이와 같지 않을까.

[출처] 무현금無絃琴 / 최상근 - 제21회 공무원문예대전 동상|작성자 장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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