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전란의 시작
들녘에 보리 이삭이 패었다. 마을 어귀의 뽕나무잎이 한창 검푸를 무렵인 1952년 4월 12일, 밤에 나는 혼자 사랑방에서 자고 있었다. 꿈에 문득 우리 집 뜰 안이 환해졌다. 부산 첨사의 상여가 천천히 마당으로 들어섰다. 첨절제사의 관모가 반쯤 젖혀진 채,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다.
‘이게 무슨 일인가….’
가슴이 두들겨 맞은 듯 쿵쿵 뛰었다.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신음이 났다. 괴상한 탄식이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왜적의 움직임에 관한 은밀한 통신을 들었다. 소문은 이미 사방에 퍼졌다. 단순한 유언비어가 아니었다. 바닷가에 왜군이 상륙했다. 가슴이 서늘했다.
군사를 모으도록 했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운이 없었다. 병졸이라 해도 갑옷과 무기가 온전한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장정들은 집안 어른과 처자를 생각하느라 발길을 떼지 못했다. 나는 대구부중府中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성문 가까이 이르렀다. 장정 몇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왜적이 벌써 근처에 와 있다 하더이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읍성 안에 있는 저잣거리에 들어섰다. 절반은 이미 문을 닫은 듯했다. 좌판 덮개를 내리는 장사꾼이 고개를 저었다.
“장사는 다 소용없나이다. 살길부터 찾아야지요.”
그 곁에 있던 다른 이가 맞장구쳤다.
“사람들이 전부 겁을 먹었으니…, 이래선 물건도 팔 수가 없구려.”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해버렸다. 갑자기 가슴이 뻐근해졌다. 숨이 막혔다. 나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말이 새어 나왔다.
“어째서 이렇게 숨이 가쁜가….”
따르던 아이가 낮게 속삭였다.
“어르신, 저도 그런데요.”
동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황이 급박함을 피부로 느꼈다. 부사를 찾아뵈었다. 나는 민심을 추스르고 군심을 굳게 모아야 한다고 간언했다. 부사의 눈빛에서도 피할 수 없는 불안이 스쳤다.
성 안은 평온했으나, 내면에는 이미 금이 가 있었다. 누구도 내일을 감히 말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서로 눈빛만 나누었다. 언제 이 땅에 화가 미칠 것인가. 그들은 입술 끝에만 불안을 머금은 채 흩어졌다.
나는 성문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짙었다. 바람은 서쪽으로 불었다. 나라의 운명도 그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있는 듯했다.
이튿날, 부사께서 군마를 손수 돌보았다. 먼지를 털고 안장을 고쳐 매었다. 군영으로 달려가 싸움의 계책을 세울 기세였다. 전 함창군수 박경술을 유진장으로 삼아 군사들을 모으고자 했다. 곧 큰일을 도모할 듯 분주했다.
잠시 후, 박 공이 부사에게 청했다. 나 또한 유진의 여러 일에 참여하여 살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사가 첩자를 내어 내게 전했다. 마음이 잠시 얼떨떨해졌다. 유생 정광천과 생원 이종문 역시 같은 전언을 받았다.
“방어사께선 아직 소식이 없느냐?”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곁에 있던 향리가 고개를 숙였다.
“모두 그분들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도성에서 내려오고 있다 들었지만, 아무 기별이 없사옵니다.”
다른 향리가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에야 겨우 병마 한두 부대가 출발했다 하오. 대장들은 오지 않았고… 명령을 누가 내려야 할지 아무도 모르옵니다.”
“한두 부대라니…, 그걸로 어찌 왜적을 물리치겠다는 것인가?”
허술한 인력과 준비였다. 그것으로 거대한 물결을 막겠다고 분주히 손발을 놀렸다. 그 모습은 안쓰러우면서도 허망했다. 싸움의 계책이라 했지만, 실상은 아무도 믿지 않는 임기응변이었다.
그들의 열심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무너져가는 성벽 아래서 발걸음이 너무 가볍고 초라하게만 보였을 따름이었다. 군마의 울음소리와 병영의 부산함이 어우러졌다.
“저기 들었느냐. 부산진이 하루도 버티지 못했다 한다.”
“그리 빨랐단 말이냐! 동래성도 이미 무너졌다지?”
“허나 겁먹을 일만은 아니오. 우리가 경주로 나아가면 군세를 모을 수 있을 것이야.”
“입으로야 그러지. 칼집은 다 삭고 활은 휘었구먼. 저 꼴로 무슨 싸움을 한단 말이냐!”
“그래도 부사께서 직접 군사를 점고하셨어. 오늘 내상內廂으로 들어가신 것도 그 때문이라더라.”
내상이란 치소治所마다 따로 둔 병영이다. 군사들이 기식하고, 병기를 보관하며, 장수들이 군무를 의논하는 곳. 부사께서 그리로 들어갔다는 건, 이제 관군도 본격적으로 전열을 다시 추리겠다는 뜻이다. 전란 초입의 허둥댐에서 조금은 벗어나려는 모양이다.
“내상에 들어갔다고 해서 곧바로 전세가 뒤집히는 건 아니네. 저렇게 병력도 모자라고, 지휘도 혼란스러운데.”
“그러니 부사도 초조한 거야. ‘군영’이라는 이름을 갖추고 있어도, 아직 그 안을 채울 살과 뼈가 없는 형국 아니겠나.”
“하여튼 삼운사까지 줄지어 따라갔어. 군량을 싣느라 아침부터 쌀가마가 뜰을 막더라.”
“어찌 되었든 왜적이 쳐들어왔는데, 우리가 안 나갈 수 있겠나.”
“안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가도 될지 모르겠으니 하는 말이네.”
“부산서 쓸려 올라오는 속도를 보아라. 우리 병기와 기세로 버틸 수 있겠나.”
“그래도 싸워야지. 물러선들 목숨이 남겠느냐.”
“옳은 말이긴 하다만….”
“그저 경주까지 무사히 닿기를 바랄 뿐이야.”
“병영에만 이르면 장수들도 있고 흩어진 군사가 다시 모일 테지?”
“지금 이 꼴로는 바람만 불어도 군심이 흔들리겠다.”
그러나 출정 명령은 오지 않았다. 상관인 경상좌병사 이각이 자취를 감췄다. 관군의 지휘줄은 끊어진 거미줄처럼 허공에 늘어져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를 도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전선이란 말조차 의미를 잃었다. 남쪽에서 흙먼지 일으키며 올라오는 소문만이 진짜 명령처럼 사람들의 발끝을 흔들었다.
“그렇다면 산줄기 아래로 우회하라. 병사들이 뒤따르도록 하고, 민가와 합류하는 자들을 안전하게 안내하고.”
부사가 지휘봉처럼 내린 손짓은 간단했다. 전란 속 실질적 명령의 전부였다. 뒤에 따르는 병졸들은 군대라기보다, 전쟁의 흐름 속에서 흩어진 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갑옷을 입은 관군, 흙 묻은 피란민. 그 모두가 한 줄로 길을 나섰다.
젊은 관속 하나가 부사에게 물었다.
“나리, 이대로 동화사로 들어가면 언제쯤 다시 읍성으로 돌아갈 수 있겠사옵니까?”
그는 잠시 말없이 앞을 바라보았다. 대답은 이미 길 위에 있었다.
“오늘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움직이는 것뿐이니라.”
그 말에는 절망도 희망도 섞이지 않았다. 그저 실현 가능한 최소한의 선택만 담겨 있었다.
이윽고 산길이 나타났다. 산길은 점점 가파르고 좁아졌다. 애초의 목표인 임시 병영 지점은 처음부터 없었는지 모른다. 부사는 병사들에게 쉬도록 명했다. 누구도 뒤처지지 않았고, 앞서 나가지도 않았다. 전란에서 부사의 역할은 싸움이 아니었다. 방향을 정하고 생명을 이어가는 일이었다. 그것이 바로 그날 대구부사의 임무였다.
부산진이 함락되었다는 소문이 더는 소문이 아니었다. 하룻밤 사이에 확신으로 굳어져 있었다. 전령이 전한 말들은 살과 피가 묻은 듯했다.
첨사는 성을 지키다 전사했다고 했다. 그 말이 나를 더 떨리게 했다. 백성을 지키려 했으나, 성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총포와 사다리 앞에서 조선의 오래된 성책이 무슨 소용이 있었던가.
사라져 버린 방비, 준비 없는 나라. 이 전쟁의 시작은 마치 이미 예고된 파국 같았다. 지켜야 할 자가 자리를 비운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죽음이 백성을 지켜내지 못한 사실을 덮어 줄 수는 없었다.
성 하나가 무너진다는 것은 단순히 흙과 돌이 무너지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 깃든 수많은 삶과 희망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동래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도 기정사실이 되었다. 부사가 끝까지 성을 지켰으나, 힘이 모자라 패몰당하고 말았다. 군졸들은 풀잎처럼 쓰러져 베였다. 동래부사의 첩은 사로잡혔다. 그 참상을 듣는 내 귀가 얼얼해졌다.
울산과 언양 등 여러 성도 잇달아 무너졌다는 전언이 이어졌다. 나라의 뿌리가 뽑히는 듯했다.
대구 읍성 안도 술렁였다. 장터의 가게 문은 닫혀 있었다. 사람들의 말소리도 모두 반 토막으로 꺾여 버렸다.
“왜 다들 이리 부산한가?”
“적이 벌써 낙동강을 넘어올 거란 말이 돌고 있소.”
대답하는 장정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문을 걸어 잠갔다. 방 안에서는 대모大母께서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찌할 거냐!”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집안도 반드시!”
“성안도 안전치 못하다 하지 않느냐.”
몸은 집 안에 앉아 있어도, 가슴은 불안의 수렁을 헤매고 있었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급하게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더 크게 밀려왔다.
왜적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불길이 마른 숲을 덮치듯 했다. 여러 고을의 군사들은 한 발의 화살도 제대로 쏘지 못하고 진지를 버렸다 한다. 성문을 지키던 군졸들은 갑옷을 벗어 던졌다. 마음은 이미 싸우기도 전에 무너졌다. 의리와 충절을 말하던 자도, 왜적의 칼끝 앞에서 저마다 제 살길을 좇아 사라졌다. 버티자고 말하는 자는 없었다. 사람들의 신음만이 메아리쳤다.
밀양부사 박진이 용당에서 왜군의 북상을 방어하려 했다. 그러나 수천 명에 달하는 가토 기요마사의 정규군에 밀려 용당에 이어 작원관에서도 지탱하지 못하고 패주했다. 기세 좋은 말발굽 소리와 함께 무너진 진영은 먼지로 변했다. 달아나는 군사들의 흙바람 속에 오직 패색만이 가득했다.
경주 역시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 마음은 천 갈래로 찢어졌다.
경주 부윤 윤인함은 대구부의 화원으로 피해 숨었다. 다시 낙동강을 건너 우도까지 달아났다고 한다. 나라의 큰 고을을 맡은 이가 제 몸을 먼저 보전하려 했다. 분노와 허탈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백성은 버려지고, 성은 무너졌다.
나는 오래도록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산천은 그대로 있어도, 나라의 기둥이 하나씩 쓰러졌다. 비통함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일어서야 한다는 의지만이 내 마음을 떠받쳤다.
적의 선봉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사방의 소란과 사람들의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무엇 하나 제대로 손댈 수 없었다. 사람들의 눈빛은 서로를 향하기보다 허공을 헤맸다. 술렁임이 파도처럼 일어나 발을 뗄 수 없었다.
내 집은 읍성 서문 밖에 인접해 있었다. 나는 집안일을 정리하려고, 박경술에게 청하여 성문을 열게 했다. 문이 열리자 어지럽게 흩어지던 인파가 나타났다. 그것이 곧 피란의 신호처럼 여겨졌다.
여러 숙부와 가속들이 대모님을 수레에 태워 메고 나섰다. 노구의 몸은 이미 오래 고단했다. 자식과 손자들의 눈물 어린 부축에 의지해 전란의 길을 감당해야 했다. 나머지 식솔들은 모두 걸어서 뒤를 따랐다. 어린 것들은 넘어지며 울부짖었다. 장정들은 서로의 짐을 나누어 메느라 진땀을 흘렸다.
나는 조상의 신주를 사랑채 뒤란에 묻었다. 마음이 끊어질 듯하였으나, 더는 지니고 갈 도리가 없었다. 눈물이 저절로 솟구쳐 땅 위에 떨어졌다.
무태 임연의 집으로 몸을 옮겼다. 외가 쪽 친척이었다. 며칠쯤은 신세를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무태는 아직 조용했다. 그 적막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다가왔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들리는 소문이라곤 읍성 안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말뿐이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뭔가를 결정할 힘이 내게는 없었다. 낯선 지붕 아래 낯익은 얼굴들 틈에서 나는 나날이 작아졌다.
저녁 무렵, 나는 다시 대구 부중으로 돌아왔다. 이미 성은 허물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이 부평처럼 떠돌았다.
그날 밤은 첩의 집에서 묵었다. 내가 경성에서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 벼슬을 맡아 궁궐이며 도성의 건축과 수리를 감독한 적이 있었다. 첩은 그때 맞아들였던 여인이었다. 내 몸은 분명 따뜻했으나, 영혼은 차가웠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첩은 병을 앓고 있어 무태까지 피난가지 못했다. 다른 가족들이 짐을 꾸려 피란길에 오를 때, 첩은 기운이 다해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나는 떠나는 발걸음마다 마음이 걸렸다. 지켜줄 여력 또한 없었다. 홀로 남은 첩의 처지가 눈에 밟혔다. 나는 첩의 집에서 하룻밤 몸을 의탁할 뿐,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사람의 인연은 전란 앞에서 가볍게 끊어졌다. 아내와 자식, 친속이 모두 각기 흩어져 피난 갔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고개 너머에서 다시 만날지. 영영 소식조차 모른 채 끊어질지.
제 몸 하나 건사하겠다고 피난길에 오르는 것이 사대부의 도리에 맞는 것인가. 유학으로 마음을 다스려온 나다. 명분을 저버리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도 냉혹했다. 성은 무너지고, 관군은 흩어졌다. 사람들조차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누구도 나서서 왜적과 맞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 혼란 속에서 나는 결국 결단을 내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