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전란의 시작
피난은 내게 도망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저 남겨진 자로서의 체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머리로는 대의를 되뇌고 있으면서, 어느새 피난 행렬에 있었다.
사람들의 말이 들렸다,
“수성해야 한다! 끝까지 남아라!”
그 권고들이 내 귀에 따가운 회초리처럼 스며들었다. 틀리지 않은 말이라는 걸 알기에 더 아팠다.
나 자신을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조롱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명분을 알면서도 현실을 따르는 이 나약함. 나는 그 어정쩡한 자리에 걸려 떨고 있었다.
왜적의 기세는 거센 불길처럼 몰려왔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더없이 급박했다. 나는 첩에게 서둘러 짐을 꾸리게 했다. 손이 떨리는지 보자기 매듭이 몇 번이고 풀어졌다.
“연경서원으로 가자. 그곳이라면 아직 안전할 것이야.”
“나으리, 병든 몸으로 길이 험할까 염려되어요.”
“여러 소리 말게. 길이 끊기기 전에 떠나야 하네.”
집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이미 피난민들의 흐름 속에 합류해 있었다. 울타리 너머로 보이던 마을이 더는 마을이 아니었다. 문짝이 열린 채로 버려진 집, 아이를 끌어안고 울음을 삼키는 여인, 지게에 노모를 모신 채 헐떡이며 내달리는 사내…. 모든 풍경이 흩어진 인간사의 잔해 같았다.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군졸의 신호인지, 패잔병이 남긴 혼란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람들의 걸음은 더 빨라지고 숨은 더 거칠어졌다.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버티자.”
그 말은 첩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공포로 흔들리는 나 자신을 위한 다짐에 가까웠다. 지금 멈추면 모든 것이 끊어진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러 임연의 집으로 갔다. 그곳에 모인 집안 어른들을 두루 배알했다. 모두의 눈가엔 근심이 서려 있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란 속이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솟을 듯했다.
“대모님을 모시고 모두 연경서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래야겠지. 여기는 안전하지 않네.”
우리 일행은 다시 서둘러 길을 나섰다. 짐수레에는 대모님을 태웠다. 나머지 식솔은 걸어서 뒤를 따랐다. 길은 숨이 막히도록 고요했다. 산비탈마다 들꽃이 젖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새 울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출발 이전에 나는 조상의 신주 묻어 두었던 곳을 다시 팠다. 흙을 헤치고 드러난 신주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문의 뿌리, 수백 년 이어온 혈맥의 상징이 지금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이 난세에 그것마저 지켜내지 못한다면 어찌 얼굴을 들 수 있으랴. 황급히 상자에 담아 어깨에 멨다. 신주의 무게는 목숨보다 무거웠다. 어깨에 진 짐은 단순한 나무상자가 아니라 집안의 역사이자 혼백이었다.
“살려면 살고, 죽으려면 죽는 거지요!”
제부諸父 중 어느 분이 앞에서 내뱉듯 중얼거렸다.
“그 말도 사치지. 지금은 그마저 아무 뜻이 없어.”
제부 한 분이 말을 받았다.
피난은 말 그대로 단도직입적이었다. 뒤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살겠다고 발을 내디디면 살고, 숨을 고르다 멈추면 거기서 죽는 것이었다. 삶과 죽음은 경계조차 없었다. 그저 꼬리를 물고 이어질 뿐이었다.
평민, 천민, 하인들이 앞서 걸었다. 그 뒤를 유림의 무리가 이끌리듯 따랐다. 비틀거리는 노인, 아이를 업은 여인, 그리고 묵묵히 짐을 짊어진 사내들. 그 행렬은 조선의 눈물이었다.
“어디로 가시오?”
“살아야지요….”
묻는 말도 대답도 막막했다.
저녁 무렵, 노을이 팔거 너머로 번져갔다. 핏빛으로 번진 하늘이 각혈하듯 서쪽으로 스러졌다. 그 붉음이 들녘과 사람들의 얼굴을 한꺼번에 덮었다.
“저기 저 불빛 같지? 저것도, 사람 목숨이야.”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멀리서 농가 하나가 불타고 있었다.
“불이 꺼지면, 또 누가 살았는지 알겠지.”
어둠이 내리 덮이자, 적의의 그림자도 잠시 숨을 고르듯 멎었다. 그 정적은 결코 평화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도 왜적의 칼끝은 예리했다. 나는 그 예리함을 목덜미에서 먼저 느끼고 있었다.
친속들을 모시고 연경서원의 유학재로 몸을 옮겼다. 배움의 공간이었으나, 그날 밤 유학재는 피난민의 잠자리로 변해 있었다. 책과 강론이 있던 자리에 흐느낌과 두려움이 가득 찼다. 아이들은 어른 곁에서 잠들지 못했다. 노인들은 끊임없이 기침을 했다.
노복의 아이 하나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내 귀를 찢듯 파고들었다.
“왜적이 이미 핍박하여 가까운 거리까지 이르렀소. 진장은 사방의 문을 열어 적을 맞았으나, 어떻게 된 지는 알 길이 없나이다. 불길만 하늘로 치솟았나이다.”
내 심장이 요동쳤다. 발이 저절로 서문 밖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동서남북 성문이 모두 활짝 열려 있었다. 바람은 텅 빈 성안을 스치며 음산한 울음을 흩뿌렸다. 불길이 검붉은 연기를 토해냈다. 동헌과 객사, 군영과 무기고의 기둥과 서까래가 타들어 가며 비명을 질렀다. 그 거대한 불빛은 마치 나라의 숨줄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공물로 받은 곡식 창고인 공곡고公穀庫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근과 전쟁에 대비한 별도 창고인 진휼고賑恤庫에도 불이 붙었다. 왜란에 대비한다며 무기와 곡식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던 곳이었다. 정작 왜적이 들어오자 칼 한 자루 곡식 한 되 건지지 못하고,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이미 북문 밖은 참혹한 광경으로 변해 있었다. 관속들이 살던 초가집마다 화염이 치솟았다. 연기는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자욱했다.
성 안에는 병사도, 관리도,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주히 오가던 거리, 짚신을 팔던 저잣거리, 아이들이 웃으며 달리던 골목이 순식간에 텅 비었다. 불꽃만이 살아 움직이며, 허물어진 성의 빈자리를 채웠다.
급히 말에 올라 미륵당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별감 서응겸이 말을 탄 채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성을 지켜야 할 진장과 향청 좌수의 행방조차 알지 못한다고 했다. 전쟁의 순간, 지휘관이 자취를 감춘 성은 이미 성이 아니었다. 남겨진 자들은 길 잃은 짐승처럼 서로 방향도 모른 채 마구 뛰었다.
나는 서응겸과 함께 다시 연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말발굽이 흙먼지를 일으킬 때마다, 뒤에서 불길이 더 크게 치솟아 올랐다. 읍성이 우리를 밀어내는 듯했다.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울음인지, 성이 무너져 내리는 신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디로 몸을 숨겨야 한단 말인가. 이 불길 속에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두고 떠나야 한단 말인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최초의 대구읍성은 부사 윤현이 선조宣祖 23년(1590)에 선산, 군위, 인동仁同 등 3개 읍민을 징발하여 대구부민과 함께 축성, 이듬해에 완성했다. 비단 대구뿐만이 아니었다. 영천, 청도, 삼가三嘉, 성주, 부산, 동래, 진주, 안동, 상주, 좌우병영左右兵營 등 경상도 일원에 걸친 대역사大役事였다. 왜구의 침략을 우려해서 준비한 평지의 토성이었다. 1592년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1번대 18,725명은 1592년 4월 13일 부산에 상륙, 파죽지세로 북상해 들어와 일주일 만인 4월 21일 대구읍성을 함락했다. 당시 대구읍성은 평지인 데다가 견고하지 못하였으므로 항거 불능이었다.
아침에 공산의 중턱 응봉에 올랐다. 어둠을 밀어내던 여명은 고요했다. 파잠에서 시작된 불꽃이 상동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그것이 거대한 불의 띠처럼 산과 들을 가르며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미 왜적의 무리가 경내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는 증거였다. 한낮의 햇살조차 불빛에 묻혀 희미했다. 들판은 연기로 자욱해 길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멀리 수성현에서도 불꽃은 맹렬했다. 불길은 지붕과 기둥을 삼키며 천지를 울리는 굉음을 냈다. 시커먼 연기는 허공을 밀어 올려 하늘마저 불태울 듯했다. 이윽고 그 불길이 읍내로 번졌다. 낮은 초가든, 높다란 기와집이든 구별 없이 붉은 혀에 휘말려 사라졌다.
내 몸은 살아 있으되, 마음은 이미 잿더미 속에 떨어진 듯했다. 살기가 읍성으로부터 뻗어왔다. 무겁고 차가운 기운이었다. 그 살기 위에 왜적의 발자국과 창끝이 실려 올 것이었다.
여태껏 인의예지를 논하고, 위기지학에 힘써 왔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닥친 것은 수신의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의義를 말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책에서 배운 바를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였다. 마음은 흔들리되 결심은 단단해야 했다. 사람들의 울음소리, 들판에 울려 퍼지는 곡성, 텅 빈 성곽의 적막이 내 가슴을 불태웠다. 나서지 않으면 그것은 비겁이리라.
지금껏 나는 군자의 도를 배우고 가르쳤다. 나 또한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닥친 상황은 의나 수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칼과 불, 울부짖음과 피비린내 앞에서, 도는 너무 멀리 있었다.
“책을 덮을 때가 되었네.”
유생인 듯한 젊은이에게 내가 탄식하듯 말했다.
“덮는다고요?”
“지금은 몸으로 의를 지켜야 할 때일세.”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결심은 확실했다.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판을 가로질러 들려왔다. 곡성이 허공을 흔들었다.
예론을 펴고 음풍농월을 벗하던 날들이 불과 열흘 전이었다. 지금은 그 유희가 천길만길 멀어졌다.
“다시 시회詩會를 열 날이 오겠지요?”
“백성이 웃는 그날이 시회 아니겠나.”
나는 이미 마음속의 책장을 덮고 있었다.
노친을 비롯한 가속들을 모시고 어제 올랐던 응봉으로 향했다. 벗 채응홍 등과 함께였다. 돌길이라 가팔랐다. 숲은 어둑했다. 어둠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행렬을 이어갔다.
채응홍이 앞장서 길을 살폈다. 한 걸음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위를 걷는 듯했다. 서로 기대어 나아가니, 비로소 길이 이어졌다. 마침내 응봉에 도착해 숲속에 몸을 숨겼다.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슴을 조여왔다.
가문의 존속이란 것이 단지 집과 재산에 있지 않았다. 노친과 가속, 벗과 함께하는 데 있었다. 응봉의 나무와 바위가 우리를 감추어 주었다. 하늘이 내려준 은혜였다.
십여 명의 왜적이 팔거 도덕봉 고개를 넘어, 파계사 아래 골짜기로 스며들듯 내려왔다. 처음으로 마주친 왜적이었다. 생각보다 몸이 터무니없이 왜소했다. 장정 하나면 왜적 서넛은 거뜬히 해치울 만했다. 그들의 붉은 갑옷이 햇빛에 번들거렸다. 곳곳이 긁히고 진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칼집 속 장검과 짧은 창이 삐죽이 드러났다. 허리춤에는 날붙이가 몇 개 달린 자루도 보였다. 신발은 진흙으로 흠뻑 젖어 발자국마다 땅을 울렸다.
나는 풀숲에 몸을 낮췄다. 숨이 목구멍에 걸린 듯 가빠졌다. 그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얼굴에는 피로와 초조가 엉켜 있었다. 서로를 재촉하는 거친 손짓, 긴장으로 입술이 굳어 있었다. 그들은 승리자가 아니라, 패잔병 같았다.
앞서 나가던 한 왜적이 낮게 중얼거렸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억양과 손짓으로 보아, 무언가 불편한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들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경계심과 두려움이 전해졌다.
“코노 야마 와 후키츠 다.” (이 산은 불길하다.)
“소-료 노 노로이 가 아루 소-다.” (스님들의 저주가 있다더라.)
“다맛떼 오리요!.” (입 다물고 내려가!)
“야츠라 가 오이카케떼 쿠루.” (놈들이 뒤쫓아 온다.)
나는 심장을 억누르며 풀잎에 등을 기댔다.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그들의 시선이 잠시 풀숲을 스쳤다. 나를 발견할 듯 스산한 눈빛이 느껴졌다. 풀잎과 나무 그림자 속에서 나는 한 점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의 정적 끝에 그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진흙 섞인 갑옷 소리, 쇠날 부딪히는 소리가 골짜기를 채웠다. 공포와 피로가 뒤엉킨 그들의 존재가 이 산의 정적 속에서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들이 골짜기를 지나길 기다렸다. 다음 순간 어디로 움직일지.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불확실함이 내 온몸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산길을 내려갔다. 멀어지는 발소리가 천천히 희미해졌다. 전란의 무서움이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그들의 발걸음이 증언하고 있었다.
산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파계사 지붕 위로 연무가 엷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고요한 산사의 종소리가 멀리서 울려왔다. 죽음과 생존의 선을 긋는 것처럼.
그때 산허리를 울리는 대포 소리가 났다. 굉음은 천둥 같아 바위와 숲을 뒤흔들었다. 몸속 장기도 함께 딸려 나올 듯했다. 산중에 모여 있던 부모와 자식들이 앞다투어 숨을 곳을 찾아 달아났다. 피난 온 부녀자들은 초조한 손길로 풀잎을 잘랐다. 그것으로 햇볕을 가리고 몸을 은폐했다. 아비는 자식을 돌볼 겨를조차 없었다. 남편은 아내의 손을 놓아버렸다. 모두가 오직 자신을 가릴 한 뼘의 구석을 찾을 뿐이었다.
이튿날 북봉으로 몸을 피해 올랐다. 해가 저물 무렵 다시 도로 돌아왔다.
서고동, 채준남 등이 응봉동 동네 앞 당산나무 어귀를 지나던 때였다. 멀리서 흙먼지가 가볍게 피어올랐다. 곧바로 세 사내가 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허름한 왜인 복장을 하고 있었다. 왜적이 이미 산과 들을 넘어 민가 어귀까지 스며든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터였다. 일행은 숨을 삼킨 채 걸음을 멈추었다.
채준남이 활을 겨누었다. 화살이 날기도 전에 세 사내는 무릎을 꿇으며 무너져 내렸다. 두 팔을 모아 앞에 올렸다. 머리를 깊숙이 숙여 스스로 항복의 뜻을 드러냈다. 말은 했으나 무슨 말인지 또렷이 들리지 않았다. 겁먹은 농부에 가까웠다. 왜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누군가 저들이 정탐하러 온 왜종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군중은 삽시간에 들끓었다. 돌과 몽둥이가 마구 휘둘러졌다. 세 사내는 변명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