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그들이 용덕리 배감관의 하급 노복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왜적의 옷차림은 버려진 옷을 걸친 것뿐이라 했다. 이 말을 들은 이들도 이미 자신들의 손으로 일을 저질러 놓은 뒤였다. 그들은 피란길에서 되돌아온 이들까지 합류한 군중들이었다. 겁과 분노, 며칠째 이어진 피난과 약탈의 소문이 한데 엉켜 모두의 이성이 덮인 상태였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사람들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죄책감, 말할 수 없는 혼란이 엇갈려 있었다. 사람들은 전쟁 이전부터 가혹한 부역에 시달렸다. 재빠르게 왜적에 투항한 사람들이 많았다. 왜적의 상당 부분이 조선 사람들이라 했다. 이들이 적의 향도 노릇하며 돌아다녔다. 고을 사람들에게 낯이 익은 자들은 종이로 얼굴을 가렸다. 적도가 된 사람들에게도 신변 보호가 필요했다. 사람 중에 누가 왜적인지 알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그들은 이름도 모르고 먹는 떡에 체해서 죽는 줄 모르는 듯했다. 소문이 돌아다녔다. “부사께서 병영을 버리고 동화사로 몸을 옮겼다지?” “응, 관아의 관리들은 염불암으로 들어갔대.” “고을을 지키고, 백성을 돌봐야 할 부사께서 먼저 성을 등지고 도망쳤다니!” “우리 같은 사람만 남았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사께서는 처음부터 임시 병영을 동화사로 내정했던 것인가. 멀리서 우는 학의 울음소리, 산중의 정적. 모든 것이 지금 우리의 처지를 비웃는 듯했다. 전란 앞에서 사대부의 글과 말은 무력했다. 성문은 지켜내지 못했다. 한 가지 다짐만큼은 흐려지지 않았다. ‘물러서지 않겠다.’ 방책은 마련하지 못했다. 허리만 곧추세웠다. 동화사와 염불암은 수행과 염불의 산문이지만, 무력한 권력자들의 은신처로 변해 있었다. 경내에 울려 퍼졌을 목탁 소리와 범종 소리가 도망친 이들의 가쁜 숨을 위로해 주었을까. 산중의 고요가 그들의 두려움을 감추는 장막이 되었을지도. 대구부사 윤현은 경상좌병사 이각의 명령에 따라 4월 15일 울산 좌병영을 향해 군대를 이끌고 출전했다. 그러나 이각이 도주해 버렸다. 결국 싸워보지도 못하고 4월 24일 하릴없이 대구로 퇴각했다. 읍성은 이미 고니시 휘하 병력이 점령한 뒤였다. 일본군은 대략 1,600명가량을 대구성에 주둔시키고 곧장 더 북쪽을 향해 진군했다. 대구가 적의 수중에 들어간 이상 부사는 읍성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그는 팔공산 동쪽 기슭의 동화사로 들어가, 그곳을 임시 관군 본영으로 삼았다. 대구부의 관리들과 속관들 또한 산내 암자인 염불암 등지로 흩어져 몸을 피했다. 나는 동화사로 올라가 숙부를 모시고 부사에게 나아가 배알했다. 몸은 피폐했으나 예를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사는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초췌한 얼굴이었다. 눈빛만큼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나으리, 상한 데는 없는지요.” 나는 억울하고 분한 기운을 억눌렀다. “서 공, 지금 그대가 오며 본 것들이 곧 이 나라의 형편일세.” “군사가 흩어지고 백성들이 산으로 몰리니, 고을의 문이 비어버렸소이다.” “패한 것이 아니오. 잠시 흩어진 것이니.” 부사께서는 한숨 같은 숨을 길게 들이켰다. “이각 병사兵使가 도주한 탓에 우리는 발을 붙일 땅을 잃었네.” “싸우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싸울 자리를 빼앗긴 것일 테지요.” “나 역시 읍성으로 돌아갈 수 없었네. 왜적이 먼저 깃발을 꽂아버렸으니.” “이제 우리의 방도는 무엇이옵니까?” “동화사는 일시적인 거처일 뿐이네. 우리는 다시 군을 모아야 하오.” “성을 잃으니 마음까지 잃을까 두렵나이다.” “흩어진 장정들을 불러 모아야 하오. 식량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걱정이구려.” 그의 말투는 단정했다. 현실의 무게가 느껴졌다. “관군이라 하나, 지금 수십 명에 지나지 않소.” “산에는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나이다.” “그들이 곧 병력이고, 희망일 것이지만 내 손에는 없네.” 그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내 손등을 바라보았다. “두려움이 지나가면 결심이 남지 않겠소?” “부사 나리, 미약하나마 저 또한 남은 힘을 다하겠나이다.” “그래주시오. 오늘부터 공은 이곳 동화사 본진의 눈과 귀가 되시오” “예. 왜적의 움직임을 살피고, 산 아래 사람들의 처지를 전해 올리겠나이다.” “작은 일이라도 공이 전하면, 그것이 장차 큰 물줄기를 이룰 것이오.” 그 말은 명령이었지만, 어딘가 위안처럼 들렸다. “기필코 따르겠나이다.” “살아서 따르시오!” “예. 죽음으로 의를 이루려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소. 우리는 의를 세워야 하니,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소.” 동화사 법당의 종소리가 멀리서 울려왔다. 허물어진 고을과 잿빛 흙바람 속에서도, 다시 모으려는 작은 의지들이 퍼져가는 듯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떠올랐다. 노배들이 우마를 몰고 대구읍성 근처인 우리 집으로 가 양식을 가져오다가, 모든 짐을 빼앗기고 말았다. 불시에 왜적을 만났기 때문이다. 우리 손에는 곡식 한 줌 남지 않았다. 함께 나선 사람들은 허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앞날은 끝내 알 수 없는 안개 속에 묻혔다. 밀양 부사였던 박진이 피신 중에 죽패를 차고 있는 무리를 만났다고 했다. “죽패라니, 그게 무슨 패란 말인가?” “왜적에게 항복한 자들이 받는 표식이라오.” “무슨 이득을 얻는가?” “약탈을 면한답니다.” “왜적과 한편이 된다는 거요?” “그러나이다.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글귀가 있사옵니다. ‘군현의 백성들은 속히 옛집으로 돌아가라. 남자는 모를 심고 보리를 거두고, 여자는 누에를 치고 실을 뽑아라. 각각 자기 집 일에만 힘쓰라. 만약 우리 군사가 법을 어기면 반드시 처벌한다. — 평의지.’ 이렇게 서명까지 되어 있었다 하오.” “왜적들이 백성을 다스리는 척하며 나라를 농락하는구나.” “그 패를 받은 자들이 부지기수라 합니다.” “그걸 목에 걸면 왜적의 진영도 드나들 수 있다네요.” 기가 막혔다. 살기 위해 무릎을 꿇다니. 그 무릎 다시 펴는 날이 오겠는가. 백여 명에 이르는 식솔들이 함께 움직였다. 집안의 노인과 어린아이, 부녀와 종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누구도 고향에 남을 수 없었다. 사람이 많은 만큼 곡식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어느새 양식은 동이 났다. 남은 것은 들풀뿐이었다. 고을의 좌수 유화숙을 찾아갔다. 그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요청을 받고 있을 것인가. 내 곤궁한 처지가 죄스러웠다. 유 좌수는 굳이 내 말을 다 듣지 않아도 짐작하고 있었다. “서 공,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오. 나 역시 사방에서 밀려드는 요청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소. 하지만 공의 처지를 듣고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소.” 그는 머슴을 시켜 창고 구석에 남은 곡식을 뒤지게 했다. 이윽고 자루 몇 개가 끌려 나왔다. 보리쌀이었다. 오래 묵은 데다, 벌레가 파먹은 흔적이 역력했다. “이 몸이 넉넉지 못해 이토록 묵은 양식을 내어 드리오. 그래도 여섯 섬 정도는 될 듯하니, 부디 허기를 면하는 데 쓰시오.” 굶주림이 코앞인 우리 식솔들에게는 그것만도 감지덕지였다. 평생 학문을 닦으며 나라에 이바지하고자 했건만, 곡식 한 줌에 기뻐하고 슬퍼하는 범부의 처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왜적이 인근까지 다가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곧바로 연경서원의 북동쪽, 공산의 품속 깊이 자리한 내동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산세가 험해 외부의 눈길이 쉽게 닿지 않았다. 적의 기세는 날로 사납게 번져갔으나, 기이하게도 읍내와의 소문 줄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피난에 지친 이들이 헐떡이며 들고 온 말, 혹은 한밤중을 틈타 목숨을 걸고 성을 빠져나온 자들이 떨리는 입술로 전한 소식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눈빛에는 아직 말로 옮기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했다. 성안에서는 칼과 창이 무자비하게 휘둘러졌다고 했다. 골목마다 죽은 이들이 쓰러져 서로의 몸을 베개 삼듯 겹겹이 쌓여 있었다. 시냇물은 피로 물들어 흐름이 더뎠다. 성루 아래에는 살점이 떨어져 파리 떼가 들끓었다고 했다. 말끝마다 피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사흘 전 아침이었소. 왜적이 성문을 부수고 들어왔소. 처음엔 함성만 들렸지요. 곧 사람들의 비명이 뒤엉켰소. 마치 짐승 우리를 부수고 미친개들이 튀어나온 것만 같았소.” “나는 장터 골목 뒤편에 숨어 있었소. 한 무리의 왜적이 골목으로 몰려왔소. 그들이 칼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지요. 쇠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지금도 귓가를 떠나질 않소. 그 뒤엔 바로….” “백성들이 도망치다가 쓰러졌소. 넘어지면 그대로 끝이었지요. 왜적 하나가 쓰러진 사람을 발로 걷어찼는데, 곧이어 칼을 내려쳤소. 짚단을 자르듯, 망설임이 없었소.” “젊은 여인이 품에 아이를 안고 있었소. 살려달라고 애원하더이다. 칼날이 번쩍이더니 여인은 그대로 쓰러졌다오. 품에서 떨어진 아이만 까르르 울며 바닥을 기었소. 더는 볼 수 없었소.” “왜적들이 집마다 문짝을 걷어차고는 횃불을 던졌지요. 불길이 번지면서, 안에 있던 사람들이 기침하며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칼로 내리쳤소. 피 냄새와 연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오.” “그날 이후로 귀가 멀어버린 것 같소. 살려달라는 소리, 울음, 비명… 모든 게 한데 섞여 웅웅거리오.” “성안에서는 아직도 살아남은 이들을 찾아 끌고 다닌다고 하오. 숨어 있는 이가 있으면 벽을 부수고, 천장을 뜯어냈다오. 마침내 찾아내면 웃으며 칼을 내리쳤다오. 누구 칼이 잘 드는지 시합하는 듯했소.” “그곳에 남아 있는 이들은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오.” 서덕희가 죽임을 당했다는 전언은 내 숨을 거칠게 흔들었다. 평소 함께 글을 논하고 의를 말하던 벗이었다. 도의로 맺은 서약도 있었다. 전란의 소용돌이가 더는 바깥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치 죽음의 서슬이 내 목덜미까지 다가와 냉기 어린 손을 얹은 듯했다. 왜적에게 조선은 생소한 땅이다. 산천도 낯설고, 풍속도 다르다. 여기에 온 까닭조차 모르지 않는가. 적개심을 품을 이유가 없다. 원한을 맺은 바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을을 훑으며 칼춤을 추었다. 불을 지르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배를 갈랐다. 도대체 저자들은 무엇을 원한단 말인가. 살기만 걷잡을 수 없이 흘러넘쳤다. 그들은 벌레 떼처럼 몰려다녔다. 분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무너뜨릴 수 있으니 무너뜨리는 것뿐이었다. 무너지는 것은 집만이 아니었다. 문턱에 남아 있던 체온, 마루에 스며든 숨결, 어제까지 이어지던 말들의 끝자락까지 함께 짓밟았다. 생각은 뒤따르지 않았다. 생각이 닿기 전에 이미 칼이 내려갔고, 불이 번졌으며, 울음은 끊겼다. “저놈들은 사람의 말을 쓰지도 않나이다.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듭니다. 말이 통할 리 없지요. 눈빛을 보면, 그저 미쳐 있는 거나 다름없나이다.” 피난민의 진술은 끊어질 듯 이어졌다. 그들의 살기는 충도 아니고, 의도 아니었다. 도리와 인륜을 아는 인간의 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저 독충들.’ 그 생각이 지나치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포와 분노를 담기에는 너무도 약한 비유였다. 이 땅에 들끓는 독충을 쓸어버리지 않고는,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 절박한 자각이야말로 우리의 마지막 이성이었다. 피난처를 부인사로 옮기려던 계획은 결국 접어야 했다. 산길마다 왜적이 다니며 해를 끼쳤다. 나설 수 있는 길이란 어디에도 없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목숨을 부지하려 숲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늘에 엎드린 얼굴은 서로 알아볼 수도 없었다. ‘왜적의 끄나풀이 아닐까.’ 사람이 사람을 의심했다. 이웃이 이웃을 잃어버렸다. 울창한 숲은 두려움에 잠긴 사람들이 머무는 동굴이었다. 숲과 계곡은 은신처이면서 고립의 공간이었다. 한 사람도 용기를 내어 왜적을 향하지 못했다. 모두의 발걸음이 달랐다. 나는 깊은 애통과 부끄러움에 젖었다. 나라가 기울고 고을이 무너져도 손 놓고 있었다. 그 사실이 칼날보다 더 아프게 내 가슴을 찔렀다. 들려온 소식은 더욱 참담했다. 고을의 창고에는 이미 곡식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떻게 내일을 버티겠는가. 왜적의 칼끝만이 아니었다. 배고픔의 그림자가 더 큰 재앙으로 다가왔다. 읍성 안에서 건어물을 팔던 배지수가 다가왔다. “나으리, 나라님은 씨방 뭐 하고 있을까요?” “잠시 이 왜란을 학이시습하시는 중일 것이네.” “어느 천년에 끝내실는지요. 백성들이 다 죽어가는 판에.” “자네부터 팔 걷고 나서게. 도망 다니며 살 궁리만 하지 말고.” “나으리께서는 씨방 붓으로만 싸우시지요?” ‘이 자者가 ….’ 내가 병기를 몸으로 익힌 바는 없다. 하지만 내 어찌 시들시들 살면서 이불 속에서 명줄을 놓겠는가. 필부의 뜻만은 빼앗을 수 없는 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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