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 앞에서
꽃집 유리창 너머에는 계절이 정리되어 있었다. 튤립은 가지런히 묶여 있고, 장미는 가장 앞줄에서 고개를 세웠다. 안개꽃은 그 사이를 메우며 비어 있는 공간을 감췄다.
그 아래, 작은 종이. 아름다움에도 가격이 붙나? 나는 꽃보다 먼저 가격표를 보았다. 튤립 두 송이 1만 원. 장미 세 송이 2만 원. 안개꽃을 둘러 묶은 다발은 2만 5천 원. 이 꽃집에서 아름다움은 늘 이 범위 안에서 거래된다.
꽃집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유난히 기품 있는 꽃이 있었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시선을 끌었다. 향은 거의 없는데, 가까이 가면 공기가 미묘하게 달랐다. 구석에 자리했는데도,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가격표가 없었다. 값을 묻기 어려웠다. 묻는 순간 어딘가 어색해질 것 같은 존재 같았다.
나는 그 앞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다. 지극한 것은 드러나지 않는 것인가. 계산의 바깥에 머문 듯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는 않을 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감춰진 채로만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준비된 눈길이 닿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듯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곁에 남는 사람처럼.
그런 사람의 품격은 얼마쯤일까. 값으로 환산되는 순간, 이미 그것과는 멀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존재는 소유되기보다 스며들고, 가지는 것보다 기억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다가서면서도 끝내 묻지 못한 채, 그 앞에서 잠시 머무는 쪽을 택했었다.
나는 결국 다시 가격을 떠올린다. 2만 5천 원쯤. 시간을 오래 들여 묶어온 관계. 사소한 침묵까지 이해해주는 사이. 말 없어도 버텨준다. 그만큼의 공이 들어가서, 책임이 따른다.
1만 원쯤일 사람은 가끔 안부를 묻고, 만나 밥을 먹는 사이다. 부담이 적어서, 상처도 깊지 않다. 적당히 환하고, 적당히 잊힌다.
인간관계를 가격으로 나누다니 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이미 진열을 끝낸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앞줄에, 덜 가까운 이는 뒤쪽 선반에. 필요에 따라 꺼내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넣는다.
누군가에게 나는 1만 원 정도의 사람일 것이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정도. 가끔 생각나지만 굳이 찾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2만 원쯤일 것이다. 약간의 애정과 기대가 섞인 위치. 나 자신을 쉽게 대체되지 않는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누구에게나 남는 명문처럼 단단하지 않다.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실처럼 분명하지도 않다. 나는 상황에 따라 다른 표정을 하고,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른 말투로 말한다. 어제의 확신을 오늘 조용히 접어둘 줄도 안다. 필요하다면 침묵으로 스스로를 수정한다. 나는 증명이라기보다 해석에 가깝고, 결론이라기보다 과정에 가까운 존재다. 진실처럼 단단히 고정되기보다는 누군가의 곁에서 잠시 머무는 쪽에 더 어울린다.
꽃집 주인이 묻는다. “어떤 용도세요?” “그냥요.”
그냥이라는 말은 가장 값싼 이유이면서, 동시에 가장 흔한 동기다. 나는 튤립을 집어 든다. 1만 원. 적당한 아름다움. 며칠이면 시들 것을 아는 선택이다.
집에 돌아와 꽃병에 꽂는다. 물은 맑고, 유리는 투명하다. 나는 줄기 끝을 사선으로 자른다. 물이 더 잘 스며들도록. 튤립이 아니라 나 자신이 꽂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노란 꽃잎 대신 내 얼굴이 물 위에 떠 있다. 가느다란 줄기처럼 내 하루가 길게 잠겨 있다. 적당히 환하고, 며칠이면 시들어도 크게 아깝지 않은 존재다.
친한 친구와의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는 한때 서로를 비싸게 여겼다. 쉽게 대체되지 않는 존재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각자의 선반으로 이동했다. 서로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가격이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할인했다.
덜 친한 친구의 메시지는 가볍다. 부담이 없다. 나는 그 가벼움에 안도한다. 깊어질수록 값이 오르고, 값이 오를수록 책임이 따른다. 나는 비싼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대충의 아름다움만 사고판다. 적당히 웃고, 적당히 위로하고, 적당히 멀어진다.
그렇게 관계를 조절하며 살아왔는데도, 하루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침은 오고, 일은 돌아갔다. 저녁은 또 어김없이 찾아왔다. 삶에도 지장이 없었다. 지장이 없다는 말 속에는 체념과 능숙함이 함께 들어 있었다. 상처를 최소화했다. 깊어지지 않음으로써 덜 아팠다. 덜 아픔으로써 더 오래 버텼다.
나와 사람들과의 관계는 고정된 값이 아니라 흐름인지도 모른다. 붙박이 가격표 같은 것이 없었다. 관계 값은 오르고 내렸다. 세일이 되었다가 품절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진열되었다. 관계란 하나의 실체라기보다 상태에 가까웠다. 어느 시기의 밀도이고, 어느 순간의 깊이였다.
손익을 따지면 저울이 멈출 것 같고, 계산하면 문장이 끊어질 것 같은 존재. 아주 잠깐이라도 그 온도에 가까워졌으면, 채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을 듯하다.
내가 버티는 힘은 거기서 오는지도 모른다. 매일의 안전함이 아니라, 그 설명할 수 없는 기울어짐. 닿지 못해도 좋다고 말하면서도 무작정 기대고 싶은 기울기.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꽃집의 안쪽에 있는 것과 같았다. 사지 못한 채로도 여전히 나를 끌어당기는 꽃. 1만원, 2만원, 2만 5천원의 아름다움을 고르게 하는 힘도 그 꽃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닿지 못한 채 돌아섰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손에 쥐지 못할 꽃을 한 번 바라보았다는 사실. 그것이 내가 끝내 가지지 못할 종류의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앞에서 한 번 멈춰본 사람으로 남았다. 그 경험은 나를 바꾸기에는 부족하지만, 완전히 이전으로 돌아가게 두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적당한 것을 고르면서, 가끔은 감당하지 못할 것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