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벗, 영천 최씨 최원도에게
나는 광주 이씨 이집李集이다. 골방 생활 3년여 만에 신돈이 죽자 나는 개경으로 올라왔다. 벗 최원도와는 지금의 영천시 임고면 선원마을 입구의 다리에서 작별했다. 그때 우리의 우정을 백세토록 잊지 말자고 했는데, 그 다리 이름이 백세교百世橋가 되었다.
“자네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이 은혜를 어찌 다 갚겠나.”
“군자의 사귐은 물과 같아야 하네.”
때는 고려 말, 요승 신돈이 권세를 잡아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충직한 신하들마저 의심과 모함 속에 스러져 갔다. 세상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살던 시절은 중국 원나라 간섭기의 끝자락, 나라의 숨이 가쁘게 끊어졌다가 이어지던 때였다. 왕의 이름 앞에 ‘충’ 자가 붙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 왕은 원나라의 뜻에 맞지 않으면 쫓겨났다. 다시 필요해지면 불려 왔다. 왕의 자리가 이처럼 가벼워지자, 법과 도리는 날마다 닳아갔다. 옳은 말은 점점 더 위험한 것이 되었다.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최원도는 대사간의 자리에 있었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자리가 바로 대사간이었으나, 실상은 무너지는 기둥을 손으로 떠받치는 일에 가까웠다. 하루아침에 왕이 바뀌는 조정에서 직언은 곧 자멸을 뜻했다.
공민왕이 즉위하고 자주를 되찾으려는 뜻을 보였을 때, 세상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그러나 곧 신돈이 등장했다. 신돈은 왕의 총애를 업고 사대부들을 몰아붙였다. 오래된 충절과 절개조차 적폐로 몰렸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누구의 편에 서 있느냐가 모든 것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그때 42세의 최원도가 대사간 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 자리에서, 말로 나라를 살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벼슬을 지키는 것이 충이 아니었다. 벼슬을 버리는 것이 충이 되는 때였다. 그래서 그는 고향 영천으로 내려와 자신을 지켰다. 자기 말과 삶이 끝내 부서지지 않도록.
그의 충은 임금 한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무너져가는 나라 속에서도 끝내 사람으로 남고자 했던, 그 고집스러운 마음을 향한 충이었다.
이 무렵, 영주 지주사知州事 정습인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관청의 객관客館이 오래되어 수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인근에 있던 무신사無信寺라는 절의 불탑을 헐어, 그 벽돌로 객관을 고쳤다.
그 소식이 신돈의 귀에 들어가자, 사정은 단숨에 달라졌다. 불탑이 허물어진 일은 곧 자기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분노는 즉각 칼이 되었다. 정습인은 곧바로 경주의 옥에 갇혔고, 다시 개경으로 압송되었다.
나는 글로써 따졌다. 불탑의 벽돌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옥에 갇히고 죽음 문턱까지 끌려간 일을 정의라 부를 수는 없었다. 불법의 자비를 말하는 자가, 정작 사람의 목숨에는 이토록 무자비할 수 있느냐고 신돈을 정면으로 논박했다. 그 글은 조정의 회랑을 건너 그의 귀에까지 닿았다.
신돈의 얼굴빛이 변했다는 말이 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박령이 내려졌다. 나를 결박하여 압송하라는 명이었다. 나는 더 이상 한 사람의 선비가 아니었다.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죄인이 되었다.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인사는 짧아졌으며, 문밖의 발소리 하나에도 마음이 먼저 달아났다
나는 고향 광주廣州 일자산一字山 '둔골'에 은거했다. 아무래도 불안했다. 늙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수없이 좁은 길과 산을 넘으며 남쪽으로 향했다. 돌부리가 걸리고, 굶주림이 뒤따랐다. 고통의 끝을 가늠할 수 없었으나, 살아야 했고, 아버지를 지켜야 했다. 도망은 곧 생존이었다.
몇 달의 고생 끝에 영천에 다다랐다. 내 벗, 대사간 최원도의 집 문턱에 이르렀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는 저녁, 마침 그 집에서 누군가의 생일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밝은 등불 사이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단한 나의 발걸음이 한층 더 낯설게 느껴졌다.
조정의 살기는 이미 개경을 벗어나 지방의 골목과 대숲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말과 눈빛을 경계했고, 어제의 충직함은 오늘의 죄목이 되었다. 칼은 손에 들려 있지 않아도 되었고, 법전 속에 있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라나, 때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벗이 벗을 숨긴다는 것은, 단순한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이는 선택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간방에 앉아 최 대사간을 찾았다. 그때였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역적 놈이 발을 들여놓으려 하느냐!"
아직 제대로 숨을 고르기도 전이었다. 무리가 몰려나와 나를 에워쌌다. 그들의 눈빛 속엔 잔치의 흥겨움이 아니라 살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망하려면 제 목숨 하나로 족할 것이지, 어찌 감히 남의 집까지 더럽히느냐!"
귀에 익은 최 대사간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나는 순식간에 끌려 나왔다. 내가 앉았던 문간방마저 불길에 태워져 사라졌다. 세상은 나를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리려는 듯했다.
그 순간의 수모와 불안마저도 어쩌면 내 운명이라 여겼다. 신돈의 칼날만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언제든 칼이 자라나, 불쑥 나를 겨누곤 했다. 칼끝은 말 속에도, 눈빛 속에도 숨어 있었다.
그런데 최 대사간의 태도가 아무래도 이상했다. 틀림없이 무슨 곡절이 있을 터였다. 나는 동네 밖 대나무숲으로 몸을 숨긴 채, 마을 사람들의 동정을 살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댓잎 소리가 군사들의 발소리처럼 들렸다. 가슴은 내내 얼어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홀로 동네 골목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살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 순간, 내 안의 망설임은 번개처럼 끊어졌다. 나는 극적으로 그의 소매를 잡아당겨, 어둑한 대숲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한동안 숨을 고르더니 속삭였다.
“벗이여, 조정의 살기가 이미 이 고을까지 뻗어 왔네. 그대의 이름이 그들의 입술에 오르내린다네.”
그 말을 들은 순간, 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은 것은 오직 믿음과 우정뿐이었다. 나와 최원도는 과거 시험에 함께 합격한 동기이자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우리는 젊은 시절 함께 성현의 도를 공부하며 의義를 논했다.
“이제 그대는 내 집 안에 있는 한 내 목숨이다. ”
그날부터 나는 그의 집 다락방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오로지 그만 알고 가족에게도 비밀로 하자니 그는 여간 힘들지 않았다. 우선 밥을 고봉으로 눌러 담고 반찬의 양을 늘리게 했다. 밥시중은 제비라는 몸종이 했다.
제비는 그 많은 밥을 주인 혼자서 다 먹어 치우는 것이 이상했다. 여러 달을 의아하게 생각하던 제비가 주인의 식사 모습을 문틈으로 엿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 둘과 함께 세 명이 식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비는 최 대사간의 부인에게 고하였다. 부인은 그에게 어찌 된 연고인가를 묻게 되었다.
그는 부인과 몸종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비밀을 엄수 할 것을 다짐했다. 만약에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두 집 집안 식구가 모두 멸문의 화를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의 실수로 주인집이 멸문을 당한다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라고 느낀 제비는 몇 날을 고민하다가 결국 스스로 자결을 택했다. 그의 부부는 아무도 모르게 뒷산에 제비를 묻어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무쇠발굽 같은 군사들의 발자국이 마당을 짓이기며 들이닥쳤다. 방마다 창칼이 번뜩이고, 대들보와 이불이 가차 없이 헤집어졌다. 부친과 나는 다락 위에 숨어서 호흡조차 삼키며 서로의 떨림을 느꼈다. 그 아래에서 최 대사간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군사들을 맞았다. 그의 태연이 아니었다면, 다락의 어둠은 피로 물들고 말았을 것이다.
다락방 생활을 하던 부친이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피신하는 신세라 아무런 준비도 할 수 없었다. 장사도 은밀히 치러야 했다. 내 벗 최 대사간은 자신의 수의까지 내주었다. 그는 빈영범절嬪塋凡節을 다 갖추어 친상과 다름없이 했다. 그의 모 부인 묘소 아래에 내 친부를 안장했다. 문중에서는 명당자리를 내준다며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그는 ‘벗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와 같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내 친부는 지금도 경북 영천군 북안면 도유2동 남라현 낫고개에 안장되어 있다.
그 묘 아래에 연아총燕娥冢이 있다. 개경으로 돌아온 나는 그에게 말과 비단, 곡식 등 예물을 보내면서 죽은 연아와 그의 가족을 돌봐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해마다 내 후손들은 조상의 묘제 때 광주 이씨 시조가 된 내 친부의 묘와 내 벗의 친모 묘 그리고 연아총에 제를 올린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 그날의 치욕과 구원은 이제 먼 기억 속에 잠겨 있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내가 세상 앞에 던진 한 줄 글이 칼이 되어 돌아왔던 일, 그 칼날을 막아낸 것은 권력도, 명예도 아니었다. 벗의 의리였다.
무엇이 옳음이며, 무엇이 삶인가. 그 물음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도 나를 향해 미소 짓던 벗의 눈빛이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이 시대를 전부 저주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 마음 하나로, 오늘도 이 글이 오직 그대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바람이 말 대신 전해 주던 그때처럼, 세월을 건너 여전히 우리 사이에 오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