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전화가 오면 이상하게 마음이 막힌다. 평소에 살가운 멘트를 준비해 놓지만, 수화기로 전해져 오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면 어김없이 기어들어가고 그저 드리는 말씀이란 ‘알겠어, 엄마’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형제자매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서인지 우리 식구들은 사진을 찍어도 50년대 사람들처럼 무표정이 많고, 막상 명절 때 얼굴을 대해도 정다운 말을 잘 건네지 못한다.
큰 웃음 한 번 짓는 일 없이, 무표정하거나 담담한 모습으로 살아가시는 어머니에게 먼저 전화를 드릴라 치면, 어김 없이 전화기에 붙은 손가락은 주저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갑자기 멍해진다. 길에 라디오의 “여성시대”를 들으면서 ‘아, 오늘은 꼭 전화 드려야지, 어머니 기쁘게 해드려야지’ 하건만 정작 그래 본적이 별로 없다. 통화가 되어도 무뚝뚝해지기 일쑤다. 표현한다는 것은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누구에게 대하는 태도의 조금만 따라가도 어머니는 기뻐하실 텐데 바보처럼 그러지 못한다.
어머니는 고질적인 노인네의 특성을 하나 갖고 계시는데, 한 번 말씀 하신 이야기를 수십 번 반복한다는 거다. 실제 많은 경영 전문가들이 회사의 주요 목표를 끊임없이 반복해야 임직원들은 ‘우리 회사의 목표가 있긴 있구나’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하는데, 어머니는 이 ‘반복 체득 화법’ 분야에 있어서는 전국 최강자이다.
당신 말씀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 얻어 먹는다’는 스스로의 믿음을 나에게 강요하며 되풀이 하는 다섯 가지의 지침을 처음에는 흘렸다, 어김 없이 오늘도 반복하신다.
첫째, 주변 사람에 대해 가급적 좋은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보기 싫은 사람이 뒤에서 남 욕하는 것인데, 설령 나와 함께 떠들고 험담을 보더라도 상대방 머리 속에는 그 화살이 자신에게도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니, 근본적으로 좋은 점을 얘기 하다 보면 나도 좋아지고, 상대방도 나를 좋아하게 된다는 말씀이셨다. 열 가지 면이 있다면 그 중에 칭찬할 부분들을 먼저 들춰 내는 것이 도리라 하였다.
둘째, 항상 웃고 다니라는 것이다. 고민도 한 두 번이지, 피곤하고 우울한 표정의 사람을 선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씀이었다. 웃는 인상 만으로도 인생의 반은 성공하는 것이라 하면서 사람들과 인사할 때, 얘기할 때 항상 웃는 인상을 각별히 신경 써라 하였다. 또한 그래야 잘 되고 일거리, 밥거리가 생긴다 하셨다.
셋째, 30 번 이상 부탁하지 마라는 것이다. 아무리 막역한 관계도 지나치게 부탁을 자주 하면 번거로움을 느끼게 마련이니, 생각을 곱씹고 곱씹어 정말 부탁할 일만 사정을 전하되, 동일한 사람에게 평생 동안 29 번 이상의 부탁은 절대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그러니, 부탁을 하기 전에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오, 그래도 어렵다면 간청을 하되 평생에 주어진 행운보자기가 단 5 개 밖에 없음을 명심하라는 것이었다.
넷째, 남이 열 번 말할 때 똑 부러지게 한번만 말하라는 것이다. 대화를 할 때, 1/10을 말하고 9/10을 듣는 시간으로 할애하라는 말씀이었다. 웃는 것 이상으로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은 가치가 있고 상대방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길이라는 것인데, 대화를 나눌 때도 너무나 유용한 이 조언을 나는 늘 지키지 못하여 답답해 하는 부분이다.
다섯째, 무조건 어른들에게 잘 하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잘잘못을 따지기 앞서 어른들에게 예의를 똑바로 하고, 먼저 받아들이며 이후에 생각을 전해도 늦지 않으니 절대 사람들 앞에서 어른들이나 모시고 있는 선배, 직장 상사에게 예의 없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말씀이셨다. 또한 상대방의 신분이 무엇이든 간에 일단 어른 분이면 똑바로 하는 것이 순서다라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표현이 시골 스럽고 순박하여 몇 가지 단어를 수정해서 적었지만 수백 번은 듣고 지낸 지침들
어머니의 잔소리가 나를 변화시킴은 부인할 수 없다.
마케팅, 전략, 제휴, 인맥의 관리 등 그 어떤 경영학 교과서의 내용이 이 보다 본질적이고 기본에 충실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잔소리, 주변의 지인들이 보여주는 하나하나의 가르침. 배움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