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가리까-김명순
분야: 어문 > 시 > 자유시(현대시)
저작자: 김명순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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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자의 임종같이
흐리던 날이 방금 숨질 그때
왜? 당신은 머리를 돌립니까?
고운 꽃밭에 날이 그몰면은
태양이 꽃 앗긴가 하련마는
아아 그대 앞에 내가 섰을 때
머리 돌리던 그대 위해서 아아
그러면 울던 내가 가리까?
그러면 내가 가리까
한 영혼이 한 영혼에게
기꺼운 만남을 준 것도
한 행복의 끄나풀이
우리를 얽어맨 것도
아아 또 내가 그대 앞에 선 일도
고목(枯木)에 꽃이 핀 일까지도
다 잊어버리고 아아
그러면 웃던 내가 가리까
오오 그대
오오 그대
가시 덩굴 옆의 꽃 장미같이
내가 인생을 헤맬 때
방긋 웃고 머리를 든
오오 그대
문란한 꽃을 사랑치 않는 대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그대
가시 같은 시기(猜忌)를 품고
내 양심을 무찌르지 않는 그대
가시덩굴에 무찔린 나를
인생의 향기로 살려낸 그대
오오 그대여 내 사람이여
《조선일보》, 1926년 8월 19일.
<재편집: 오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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