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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향 소설방

두더지-이무영(2)

작성자오솔향|작성시간26.06.18|조회수44 목록 댓글 0

<이어서> 

 

[3]

 

면서기 동찬이의 말대로는 아니었지만 아들의 집은 훌륭했다. 해방이 되자 남들은 서울을 문턱 드나들 듯 한다지만 젊어서 공진회 구경차 꼭 한 번 와본 일밖에는 없었다. 사실 평생 서울 가야 할 일이 없던 권 서방이기도 했었다.

 

말은 서울 구경을 했다지만 단 이틀에 공진회, 동물원, 한강철교, 남산 ─ 이렇게 끌려다녔었고 누가 마늘을 가져가면 노자를 뜯는다 해서 열 접은 갖고 왔던 터라 그것을 파느라고 야시 구경조차도 못하고 내려온 터라 꿈에 떡맛 보듯 한 서울이었고 보니 옛날과 지금이 어떻게 달라진 것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저 분명한 것은 어마어마한 큰 집들이 많이 생겼다는 정도였다.

 

이런 권 서방한테 아들의 집 가치를 설명하란대도 무리였다.

 

황토흙이었어야 할 봉당에 유리 같은 벽돌이 깔렸고 양회 이층집에 전화도 달렸고 목간통에, 조그만 연못도 있어 금붕어가 십여 마리 한가하니 헤엄치고 있는 것만이 신기할 뿐이다.

 

입으로 불지 않고 단추만 누르면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도 신기했고, 사돈과 칙간만은 멀수록 좋다는데 변소가 바로 건넌방과 붙어 있는 것을 희한해 할 정도다.

 

말은 들었지만 서울 장안은 그만두고 대구 부산과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는 정말 조화속이라고 감탄도 했다.

 

샌님 ─ (권 서방은 서울로 오는 날로 샌님이란 벼슬을 했다)이 차지한 방은 뒤 정원으로 면한 두 칸 방이었다. 무슨 칠을 했는지 장판이 눈이 부시었다.

 

글씨 족자는 까막눈인지라 누구의 글씨인지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었거니와 강태공처럼 낚시를 연못에 드리우고 있는 그림은 정녕 팔자가 좋아 보인다. 아랫목에는 보료가 깔렸고 조그만 탁자에 재떨이며 궐련이며 가 놓이게 마련이었다.

 

아들 내외가 쓰는 안방과는 물론 손님 접대를 하는 사랑과도 등이 져서 한적하기는 했지만 이 한적한 것이 샌님한테는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정말 무료했다.

 

샌님은 서울에 오던 날 밤과 이튿날 아침 아들의 얼굴을 한 번씩 본 후로는 아들을 못 보는 날이 허다했다. 언제 들어오는지도 몰랐고 언제 나가는지도 몰랐다. 아들뿐이 아니다. 무슨 일이 그렇게도 많은지 며느리란 사람도 어느 날 하루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다. 다섯, 셋, 젖먹이 ─ 이렇게 졸망한 것들만 집에 내동댕이치고는 어미란 것은 아침에 나가면 저녁이요, 낮에 나가면 밤중에나 돌아오는 것이다. 손자것들도 무슨 짐승이나 보듯 멀찌감치서 바라다보기만 할 뿐 사흘 나흘이 가도 근접도 않으려 드는 것이다.

 

"이런 떡을 해먹을 집안이 있단 말인가?"

 

샌님은 울안에 갇힌 사자처럼 애꿎은 담배만 피웠다. 무료해지면 뜰로 내려서 본다. 연못가에 서서 금붕어 노는 것을 바라다본다. 그러나 그것도 십분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사흘째 되던 날은 뜰의 풀을 뽑기 시작했다. 땡볕 밑에서도 고추밭을 서너 두럭씩 매던 솜씨의 샌님한테는 불과 오십 평 남짓한 뜨락의 풀쯤 진담배 한 대 내기 일도 못 되었다. 그나마 맨 쓸모없는 상나무에 꽃밭이어서 풀이 날 지면도 없다. 열무솎음질을 하듯 했어도 반나절에 끝이 나고 만다.

 

그러고 나니 또 무료했다. 일년내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궂으면 또 궂은 대로 새벽부터 밤까지 손을 쉬어본 일이 없이 육십 평생을 살아온 샌님 ─ 아니 권 서방한테는 손발 붙들어 맨 채 가만히 앉아 있다는 것처럼 큰 고통은 없었다.

 

닷새도 못 되어서 샌님은 진이 족족 내리는 권태에 견디다 못하여 아들을 붙들고는,

 

"얘야, 나 심심해 못 견디겠구나, 뭐 무슨 소일거리나 없겠느냐?"

 

이렇게 하소연을 했더니 아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웃고만 있다.

 

"아버지, 그러지 마시구 낼부터 어머니하구 구경이나 다니셔요. 애 어머니더러 오늘 동물원에 뫼시구 가라구 그러지요."

 

이렇게 해서 그날은 며느리를 따라 샌님은 마님이 된 할멈과 동물원 구경을 갔었다. 모두가 희한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샌님은 조금도 유쾌한 줄을 몰랐다.

 

첫째 며느리란 것이 엇나간 말망아지처럼 시부모와 겉돌려 드는 것이 괘씸해 견딜 수가 없다.

 

샌님은 이 며느리를 본 첫눈부터 마땅치가 않았다.

 

나이깨나 먹은 것이 대체 머리가 그게 뭐냐 했다. 하릴없는 메추리 궁둥이였다. 쥐 잡아 먹은 고양이처럼 입술은 새빨갛고, 손톱이 그대로 백정의 딸 손톱이었다.

 

시골뜨기와 같이 다니는 것이 분명 창피한 눈치다. 동물원 안에 들어온 뒤로는 마치 동행이

아니기나 한 것처럼 뚝 따고서 따로 다니는 것이었다.

 

"얘, 저게 무슨 새냐?"

 

눈치도 없는 할멈이 물을라치면,

 

"부엉인가봐요."

 

하고는 좌우를 둘러보는 품이 정녕 누가 동행인 것을 눈치나 채지나 않나 해서인 것만 같다.

 

샌님이 수정 앞 연못가에 서서,

 

"거참, 물 많다. 그 물만 가졌으면 저 끝까지 논을 퍼두 물이 딸리진 않겠다! 이런 연못을 그저 놀리다니! 거 잔디에서 콩이 나 팥이 나나? 그 넓은 데다 잔딜 뭘했다구 그렇게 심더람! 저 잔디밭 하나에만두 대두콩 삼백 석은 너끈히 나겠다…"

 

이런 소리를 하자 고기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꺼르르 웃어젖히었다. 한 짓궂은 젊은 친구가,

 

"그래 영감님, 잘 말해드릴게 논 한번 펴보시렵니까?"

 

하고 쓸까스르는데 진국인 샌님은,

 

"허락만 받소! 말이 그렇지 논을 퍼서 졸몰 쭉 심어놔 보오! 아니 그래, 이대루 보는 것만 못할 상싶소! 거기다가 가을이 돼서 벼가 누우러니 익어보구려. 배가 절루 부르지!"

 

"거참, 좋겠는데요!"

 

"암, 희한하지! 서울 사람들은 쌀나무가 어떻게 생겼느냔다면서유? 구경 시키구 추수하구 ─ "

 

샌님은 진정이었지만 또 한 번 웃음판이 되었었다.

 

이 시아버지의 추태가 서울 며느리의 기분을 아주 망쳐버린 것이다.

 

"창피해요! 그만 가셔요!"

 

며느리는 이렇게 독기있게 쏘아붙이고 회작회작 가버렸던 것이다.

 

길을 모르고 보니 천생 따라설 밖에는 없었다.

 

그뒤부터는 샌님은 절대로 며느리를 따라서지 않았다. 아니 며느리 자신부터도 앞장을 서려 들지 않았다. 계가 있다, 친구가 어쨌다. 구실은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샌님은 혼자서 곧잘 집을 나왔다. 물으며 물으며 덕수궁을 찾았고 남산에도 올라가 보았다. 화신상회에는 할멈과 같이 갔었다. 그래도 할멈은 어린것들과 사귀어서 샌님처럼 못 견딜 정도는 아닌 듯싶었다.

 

"즈 할아버지두 고년하구 좀 사귀우. 조잘조잘 장마날 제비처럼 곧잘 지껄이구 새새득대려 들면 또 어떻게 삽삽한지 몰라유, 천상 계집애란 할 수 없다니까유. 가위만 보면 싹똑거리려 들구, 요샌 또 제가 아길 낳는다구 배가 아프다구 재술 하잖겠어유? 이웃집에 갔다가 애 낳은 걸 봤다나봐?"

 

무료하다 못해서 몸을 비비꼬고 있는 영감이 안타깝던지 할멈이 이렇게 위로를 해주었다. 그래서 샌님은 금숙이 년과 사귀기로 했다. 업어도 주고 끌고 나가서 사탕도 사주고 하는 동안에 조손간에 친분이 생기었다. 금숙이 년도 곧잘 샌님 방으로 건너와서는 무릎에 앉아 조잘대게쯤 되었었다.

 

그러나 친해지고 나니 또 걱정이 하나 생겼다. 옛날 이야기를 하라고 졸라대는 것이었다.

 

"어서 해, 할아버지! 응,"

 

"옛날에 옛날에 ─ "

 

"응."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응."

 

"……"

 

"그런데?"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했어!"

 

"……"

 

따분한 노릇이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자랄 수 있는 복도 못 타고 난 샌님이었었다.

 

샌님이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 나이에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장정들처럼 일을 해야 했었다. 어쩌다 할머니를 붙들고 옛날 얘기를 해달라면,

 

"얘가 미쳤나베! 내가 너하구서 얘기하구 있을 팔자가 된다던?"

 

하고 핀잔을 주기가 일쑤였다.

 

"그러지 말구 할머니 한 자루만 해줘! 응, 할머니!"

 

떼를 쓰다가는 볼기짝 얻어치이기가 십상이었다.

 

샌님의 할머니도 오늘의 샌님처럼 들은 이야기가 없었는지도 몰랐다.

 

철나기 전부터도 밭으로 논으로 시중을 들러 따라다녔고, 일곱 살 때는 벌써 소꼴망태가 메어졌었다. 아홉 살에는 까치집 같은 삭정이 짐을 져야만 했던 샌님이었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터고 보니, 평생 또 한 권의 이야기책도 본 것이 없다. 샌님이 아는 이야기란 호랑이가 수수깡에 찔려서 죽었다는 이야기와 놀부와 흥부, 그리고 어련무던하게만 아는 심청이 이야기 정도였다. 이 셋을 다 팔아먹고 나니 그날로 동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며칠을 두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자니까,

 

"또 심청이 얘기지 뭐! 그건 싫어! 한 걸 또 하구 또 하구 그래, 할아버지! 나 갈테야!"

 

이렇게 뺑소니를 치고 만다.

 

눈을 감고도 파밭은 맬 수 있어도 접지 하나 못하는 샌님의 멋없는 손이었다. 색종이를 가지고 와서 접지를 해달라다가는,

 

"할아버진 바보야! 새 하나두 못 접어! 나만큼두 못한 걸 뭐! 무슨 어른이 저래!"

 

어린것의 말이라 그렇지 더없는 모욕이었다.

 

그러나 샌님은 그 어떤 모욕에도 참고 견디어야 했었다. 샌님은 그만큼 무능했던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낫질과 가래질과 모내기와 밭갈이 뿐이었었다.

 

 

[4]

 

요새의 샌님은 구경도 가지 않았다. 서울이 넓고 좋다지만 동물원과 덕수궁, 남산, 화신상회 ─ 이렇게 보고 나니 그만이기도 했으려니와 어디 더 볼 데가 있다 한대도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첫째, 그 숱한 자동차를 피하는 재간이 없었다. 아직 장정 나뭇짐을 지워만 놓으면 살같이 비탈도 탈 수 있는 샌님이었지만 웬일인지 그눔의 자동차만 만나면 맥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 희한두 하더구나!"

 

하고 샌님은 신기해했다.

 

"내가 그렇게 몸이 둔한 사람이 아닌데 아 그눔의 자동차만 보면 고양이 앞에 쥐가 되는구나! 이쪽에서 빵 하기에 저쪽으루 피할라치면 아니 언제 벌썬 딴눔의 차가 또 빵하지 않니? 그래서 갈팡질팡하다가 보면 이건 숫제 자동차가 둘러 있는 한복판에 가 서 있구나! 그냥이나 있더냐? 이눔들 좀 봐! 즈눔들이 날 가운데다 몰아넣고선 제가끔 욕을 퍼붓는구나! ‘이눔의 늙은이가 뒤지구 싶은가!’‘죽구 싶어!’ 이눔 들 좀 봐라! 그래 내가 죽구 싶댔어 언제? 내가 즈눔들한테 치여죽구 싶어서 서울을 왔단 말여?"

 

"그러게 길을 건너실 땐 잘 보구 건너셔요."

 

하고 아들이 일러드리려니까,

 

"아따 얘야, 너두 서울 산다구 서울눔들 편을 드는구나! 내가 암만 빨리 보면 뭘하느냐, 자동차란 눔이 나보다 더 빨리 보구서 살처럼 내닫는 것두 빨리 봐?"

 

"사람 건너가는 길이 있잖아요? 흰 줄을 쳤지요?"

 

"글쎄, 다 그만둬! 자동차가 흰 줄을 그렇게 겁내는 줄 알아? 사람을 장기쪽처럼 넘어뜨리구두 그대루 뺑소니만 잘 치더라! 서울눔두 그러는데 나 같은 시굴 늙은이야 그눔들 눈에 뵈기나 하겠느냐!"

 

샌님은 또 이런 불평도 한다.

 

"그래, 시체 서울 사람들은 모두 발바닥에 가시가 백혔다던? 엎드러지면 코 닿을데두 자동차란 말야! 그 녀석들 그렇게두 자동차에 성화가 나건 숫제 자동차 속에서 살지그랴? 밥두 거기서 먹구 똥두 거기서 싸구! 그럼 될 꺼 아니야? 죽어서두 자동차루만 간다니 아주 차 안에서 죽으면 그 차루 갈 것 아닌가? 그래 동대문서 한강다리까지가 이십리두 안 된다더구나? 사람이 그래 하루 이십 리두 안 걷구 살어? 농군 네가 문전옥답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된다던? 다 오 마장 칠 마장 돼? 가구 오는 데만두 시오리 길이야! 전답에 가선 섰다가만 오던가? 갈아야지, 매야지, 제 논까지 물꼬까지만두 오리 십리 돼요!"

 

그러는가 하면 또,

 

"하긴 걸을 맛두 없긴 하지! 길이란 걸을라치면 발뒤꿈치에서 몬지가 풀썩풀썩 나야 걸을 맛두 있지, 이건 숫제 돌이로구나! 돌! 돌 위에다 집두 짓구, 돌 위루 다니구! 사람이 흙을 봐야 살지! 흙을 보면 사람이 착해지느니라. 서울사람들이 그렇게 모두 이악스럽게 강박한 게 다 흙을 못 봐서 그런 거야! 흙을! 흙을 보구, 흙을 만지면 자연시리 사람의 마음이 어질어지는 법이니라. 그러기에 네 보렴! 착실한 농군치구서 맘 나쁜 사람이 있던! 그런 농군들을 소처럼 일만 하느니, 소처럼 미련하니들 하지만 서두 그게 미련한 게 아니니라, 어진 게지! 착한 거야!"

 

샌님은 이런 불평을 아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었다.

 

‘차차 나어지겠지…’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지금까지 밤낮을 모르고 온종일 일만 하다가 갑자기 손이 무료해져서 그러시니라 했다.

 

그러나 아들의 예상은 어긋났다. 샌님의 불평은 조금도 덜해가지 않는다. 아니 날로 심해갔다.

이제는 숫제 화를 내는 것이었다.

 

"노름꾼들뿐이더라!"

 

하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오셨다는 이튿날 아침 막 신발을 신고 있는 아들의 덜미를 치듯 샌님은 이렇게 화를 내던 것이다.

 

"누가요, 아버지?"

 

"누군 누구겠느냐? 너희눔들 말이다!"

 

"네?"

 

아들도 주춤했다. 간밤 집에서는 늦도록 마작을 했었다. 이기기 위한 마작이 아니라 지기 위한 노름이었다. 뇌물이나 현금을 직접 수교하는 것보다 뒤탈도 없고 받는 사람도 떳떳하다 하여 요새 유행하는 수회 마작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고 하는 소리리라 했다.

 

"술 사주는 것보다 마작에 져주는 것이 일하기에 편해서 한 거야요."

 

아들은 이렇게 설명을 했다.

 

그러나 이 아들의 설명에 되레 샌님을 격노케 했던 것이다.

 

"일부러 져주는 노름이 있다? 아니, 그럼 너 그 사람하구 무슨 못된 짓 궁리하는 게로구나? 너 이 집두 그렇게 해서 산 집이냐? 말을 해봐!"

 

"이 집을 뭐 즈 아범이 재수가 좋아서 산 집인 줄 아세요?"

 

하고 옆에 섰던 며느리가 팩 하고 대어든다.

 

"이 집에 아범 돈이란 단돈 십만환 두 안 들어갔어요! 제가 산 집이어요!"

 

"네가?"

 

"그럼요! 집 한 칸두 없이 셋방으루 굴러다닌다구 오빠가 사준 집이야요!"

 

"아니 그래, 그게 정말이냐?"

 

하고 샌님은 아들한테도 대어든다.

 

"네."

 

"에이끼, 못난 자식, 그래, 여북 못난 자식이 처남이 사준 집에 들어 엎드렸어? 예이끼, 치더린 자식! 난 시골루 간다! 참봉 곳집(상여집)에 가서 잘 망정 사둔네 집에 엎드렸어? 죽으면 죽었지! 난 싫다! 난 싫여! 에이, 퉤! 퉤! 이눔아, 사둔집 덕 본 눔의 송장은 까마귀도 안 먹는다더라! 에이, 퉤 퉤! 아이 더러워!"

 

아들과 며느리는 길길이 뛰는 샌님을 진정시키기에 진땀을 흘렸다.

 

"아무래도 아버진 시골루 도루 내려가시게 해요!"

 

며느리는 이렇게 아들을 구워삶았으나 아들은 들은 체도 않는다. 큰소리를 하고 모셔오기도 했으려니와 지금 세상에 드문 효자라고 친지간에도 소문이 자자했던 것이다. 지금 꾸미는 일 ─ 군수물자 불하를 받는 일에 협력을 하고 있는 한 장교도 술김이기는 했지만,

 

"권 형이 그런 효잔 줄은 정말 몰랐소! 동가홍상이지! 같은 값이면 그런 효자한테 줘야지! 이것두 다 권 형 아버지 덕인 줄 아시오!"

 

이렇게 설설 승낙을 해주었던 것이다.

 

"좀 지나시면 습관이 되니까 괜찮아."

 

이렇게 아내를 달래었다.

 

그러나 샌님의 화풀이는 날로 심해가기만 했다. 서울놈들은 모두가 건달놈들이라는 것이다.

 

"일정한 생화가 없이 빈들빈들 먹구 노는 눔들이 건달이지 뭐냐? 하는 일 없이 뭘 먹구 사는 게냐 말이다!"

 

한번 나갔다 오면 반드시 이런 화풀이를 아들한테고 며느리한테 해대는 것이다.

 

"하는 일이 없긴 왜 없어요, 아버님두!"

 

"아니 그래, 그눔들이 하는 일이 뭐란 말이냐 대관절?"

 

"관리두 있구, 회사원두 있구, 장사하는 사람두 있구 다 있잖아요? 뭐 논 갈구 밭 매구 하는 것만이 일인가요."

 

며느리가 못마땅해서 하는 소리였다.

 

"아니 그래, 이른 새벽부터 공 치는 것이 일이란 말이냐?"

 

"바둑 두는 게 나랏일이구 회사일이란 말이지? 새벽부터 바둑 두구 있는 게?"

 

큰길에 나가면 새로 빌딩이 하나 섰다. 아래층에는 상점이요, 이층에 기원과 다방이 차지를 하고 있던 것이다.

 

거기에를 가본 모양이었다.

 

"그것두 육칠십 노인들이면 모르겠다. 새파라니 젊은 눔들이 그래 뭐 할 일이 없어서 새벽부터 바둑판을 놓구서 끙끙대구 있더란 말이지? 그런 게 나랏일이란 거냐? 나랏일?"

 

"직업들을 못 얻어서 그래요. 지금 취직자리 하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두 더 어렵답니다. 직업이 없으니까 집에 징커니 엎드려 있을 수두없구."

 

"직업이 없다? 왜 없어! 아니, 지금 농촌엔 사람이 없어서 야단인데 직업이 없어?"

 

샌님한테는 서울 사람들의 생활 전부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다방 구경을 하고 와서는,

 

"원, 그런 시러베 아들눔들! 그래, 물 한 잔에 백 환을 주구 사 먹구 앉았어? 거 댓진 풀어논 물 같은 걸 쓰기는 왜 또 그렇게 쓰냐?"

 

"아니 아버지, 차 잡수어보셨어요?"

 

"그렇다! 하두 많이들 들어앉아 사 먹기에 맛이 어떻길래 그렇게 많이 사람이 들끓는가 하구 들어 봤더니만…아니 그래, 그것 장하답시구 사 먹구 있는 거지? 그래 너희들 말마따나 사내눔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와서 자랑삼아 앉았다지만 그 계집년들은 도대체 뭣하는 것들이야?"

 

이번에는 화살이 며느리한테로 갔다.

 

"아니 그래, 계집년들두 직업이 없어서 그런 데 와 쭈그리고 앉았단 말야? 제비새끼들처럼 사내눔하구 머리를 맞대구서 무슨 얘기가 그렇게 많아? 그것들두 그래 직업 구해달라구 그러는 거냐?"

 

"다 그래두 볼일이 있어 나왔겠지요."

 

"흥, 볼일? 아니 그래 ─ 살림하는 계집년이 밖에 나와서 남자하구 봐야 할 볼일이란 도대체 뭐냐? 제 서방 독약이나 먹이자는 궁리 아니면 밖으로 싸다니면서 할 얘기가 뭐냐 말야! 내 하두 기가 막혀서 세어봤다! 세어봤어! 사내눔이 스물하난데 계집년이 열셋이나 되더구나! 그눔의 집 살림 꼴 잘되겠다! 그저 내 성미대루 했으면 머리 끄덩일 끌어내서 한 밧줄에 옭아가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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