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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향 소설방

두더지-이무영(3)

작성자오솔향|작성시간26.06.18|조회수36 목록 댓글 0

<이어서>

 

[5]

 

처음 서슬 같아서는 금방이라두 시골로 되내려 갈 듯싶던 샌님도 한 달 두 달 지나는 동안에 서울 생활에 좀 자리가 잡히던지 체념을 하는지도 몰라도 집 모퉁이 큰길 거리에 나가 앉아서는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으로 일과를 삼았다.

 

아침만 먹으면 복덕방에 나가서 장기 두는 구경을 하구 점심때나 되어 들어오는 수도 있었고, 골목 어귀에 송판을 버티어놓고 담배나 사탕이니를 파는 늙은이한테 가서 몇 시간씩 앉았다 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무료해지면 손녀를 끌고 장충공원 약수터에 가는 것이 일이었다. 약수터에 갔다 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지게 타령이었다.

 

"지겐 뭘 하시게요?"

 

"얘, 말 말어라, 그냥 낙엽이 푹푹 썩는구나! 갈퀴가 묻히겠더라! 그래 서울 사람들은 대체 뭔 궁릴 하기에 나무가 그렇게 썩두룩 보고만 있는 건지 모르겠다. 지게하구 갈퀴만 장만해라, 내 겨우내 나문 대마! 조반 전에 한두 짐은 거뜬하니 하겠더구나! 불꽃은 저까지 구공탄에다 대? 그저 사람 사는 집엔 연기가 나야 하느니라. 연기가 서기란 말두 있잖더냐? 그게 말하자면 사람이 살았다는 표적이거든! 사람의 입김과 마찬가진 거야! 화룻불을 담아두 그렇지! 잎재엔 불이 사는 법이니라! 석탄재에 불 살던? 그저 사람은 재틸 먹어야 하는 법인데…내 언제 한짐 해올께니 때봐라! 불길이 얼마나 존가."

 

"아이, 아버님두!"

 

서울 며느리는 질색을 하면서도 설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설마가 어긋났다. 바람 한 점 없이 강추위가 며칠째 계속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아침이 다 되었어도 밖에 나간 채 들어오지를 않는다. 길에도 나가 보았고 복덕방에도 가보았으나 보이지를 않더니 낙엽 한 짐을 짊어지고 들어왔던 것이다.

 

"아니, 그게 ─ "

 

며느리가 먼저 기급을 했다.

 

"그게 어서 났습니까…"

 

아들도 눈이 휘둥그래졌다.

 

"나긴 어서 나느냐. 했지!"

 

"하다니요."

 

"아 얘야, 약수터루 올라가자면 그저 왼 산이 낙엽에 덮였는데 그러는구나! 발이 푹푹 빠져!"

 

"참 재주두 좋으시우! 서울 한복판에서 어디 가 저런 나물 했을꾸."

 

할멈도 딱해서 하는 소리였다.

 

할멈은 서울 와서 팔자가 늘어졌다. 그 진저리나는 절구질, 땡볕에 밭매기 하나만 않아도 살 것 같았다.

 

"아니, 뭘루 하셨어요?"

 

"뭘루 하긴 뭘루 하냐, 손으로 했지! 농군의 손은 갈퀴만 못할 줄 아더냐? 갈퀴두 농군 손 본따서 만든 거야!"

 

활엽수 낙엽과 솔가리를 새끼 하나로만 맺고 끊은 듯이 깡똥하니 묶었다. 갓에다 청솔 가지를 꺾어 대기는 했다지만 인절미처럼 아담스럽던 것이다.

 

"이렇데 하면 하루 열 짐은 낮잠 자가면서 하겠더라!"

 

"그러나 들키면 망신해요, 아버님! 해드리는 진지 잡숫구 뜨뜻한 방에 계시랬지 누나 나무 해오시랬어요!"

 

땡벌처럼 쏘아붙이건만 샌님은 태연했다.

 

"뭐라구? 그눔들 할일이 없건 가서 바둑을 두든지 공을 치든지 할 꺼지 썩어 문드러지는 낙엽 긁는다구 말을 해?"

 

"글쎄, 제발 좀 그런 일 하지 마세요!"

 

제 성미에 못 이기어 발을 동동 구르던 서울 며느리는,

 

"난 몰라요! 난 몰라요!"

 

푸념을 하며 홀짝댄다.

 

"오냐, 염려들 말아라, 잡혀감 내가 잡혀갔지 너희들더러 뭬라겠느냐."

 

샌님은 딴청만 쓰고 있다.

 

"정말 무슨 일을 저지르실지 알겠어요? 내려가시게 해요. 어머니는 서울 살림에 자밀 좀 붙이신 것 같으니까 그냥 계시게 하구 겨울 동안만이라두 내려가 계시게 했으면 싶군요."

 

그러나 아들은 역시 못 들은 체였다.

 

"그러시다가 괜찮아져."

 

"괜찮아지긴 뭐가 괜찮아져요? 그냥 심심해서 돌아가실려구 하시는데 ─ 옆에서 못 뵙겠어요!

 

글을 아시니 옛날 얘기책이라두 보시나, 하다못해 장기두 못 두시는가 봐요. 그러니 이 긴긴 밤에 당신두 못할 노릇이시지 ─"

 

그러나 아들은 무슨 사정이 있는지 시골 이야기만 하면,

 

"거 쓸데없는 소리 작작해!"

 

하고 입을 틀어 막아버린다.

 

며느리는 처음부터 반대였다. 새삼스럽게 시부모고 누구고 모두가 마뜩치가 않었다.

 

시어머니는 아이들도 맡기고 다닐 수 있고, 식모한테 온통 집을 내주고 다니는 셈이어서 붙들어두고 싶었지만 시아버지만 내려보낼 수 없다면 아쉽지만 함께라도 내려보내는 수밖에 없느니라 했다.

 

마침 핑계도 좋았다. 그래서 남편도 남편이지만 시아버지 당자를 삶아서까지라도 내려보내야 하느니라 했다.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샌님은 샌님대로 지금 딴 궁리를 하고 있었다. 사실 이 이상 더는 무료해 견딜 수가 없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벽 참새소리가 그리웠다.

 

시골에 살 때는 그런 줄도 몰랐고, 몸이라도 괴로워서 좀 늦잠을 자려고 할 때는 귀찮게까지 여겼던 그 참새 소리가 살갑게도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농가에 무엇 하나 보태주는 것이 없는 새였다.

 

채 물기가 걷기도 전부터 눈이 발개서 알곡을 까먹겠노라 염치없이 달려들 때면 그 놈의 주둥이를 응껴도 시원치 않았다.

 

꼭 추녀 끝에 매달려서는 마당에 곡식 널기만 엿보고 있는 참새를 볼 때마다 회초리에 손이 가던 참새 소리가 이렇게도 다정하니 가슴을 파고들 줄을 몰랐다.

 

"영감, 그만 일납시다. 일나서 일 해야지 ─ 응, 영감!"

 

이렇게 속삭여주던 것만 같다.

 

"어디 뭐 붙은 게 있어야 말이지! 광에서 인심 난다구 참새들 얻어 먹을게 있어야 추녀를 찾지! 어디 발붙일 데나 있던가?"

 

새벽잠이 깨어 무료하니 누웠으려면 이런 생각만이 떠오른다. 일어나야 할 일도 없었다. 뜰이라야 온통 시멘 바닥이었다. 애꿎은 담배만 피우다가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가본다. 아래윗집이건만 개가 닭 보듯 하고 보니 말도 붙여볼 도리가 없다. 한번 하도 따분해서 아랫집에 사는 영감을 문턱에서 만나,

 

"아랫댁에 사시지유?"

 

하고 말을 걸었더니,

 

"그렇소? 왜 그러오?"

 

이렇게 따지려 드니 더 말을 붙여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윗집 중년도 그랬고, 건너집 젊은 사람도 근접을 못하게 했다.

 

"아니, 이렇게 서루 이웃간에 척을 짓구서 살아야만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이웃사촌이란 옛말은 개한테 물려 보냈단 말이냐."

 

만만한 것은 오직 담배뿐이었다. 분해도 담배, 괘씸해도 담배, 무료해도 담배였다. 새벽 네시경 채 밝기도 전에 깨어 가지고는 자정이 지나도록 손 잡아매고 가만히 앉았기만 했어야 했다. 입도 봉한 채였다.

 

"입에서 군내가 나서 못 견디겠다!"

 

하고 노인은 아들을 붙들고 하소연이었다.

 

"구경이나 슬슬 다니시지요!"

 

아들도 인제는 상대를 않으려 든다. 할멈도 그랬다.

 

"천생 호밋자루나 찰 팔자라니까! 평생 못 먹던 고깃국에, 생선에, 질질 흐르는 쌀밥에 해다 바치거든 먹구 누웠지, 뭔 잔소리가 그리두 많수? 그래 새벽부터 개똥망태나 지구 다니는 게 그렇게두 소원이어유?"

 

외로워서 할멈이랍시고 좀 위로나 받자고 하면 덮어놓고 쏘아붙이기만 한다.

 

"압따, 이눔의 늙은이가! 뺑득 할멈처럼 쏘아붙이긴 왜 이리 쏘아붙여?"

 

"그럼 뭐요! 뭐가 부족해서 그저 등창 앓는 사람처럼 꿍얼거리는 거여유?"

 

할멈까지 이러니 며느리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망령이시라니까요!"

 

이렇게 망령으로 돌려버린다.

 

손녀년도 그랬다. 뭐라고 하면 제 어미한테 들은 대로,

 

"할아버진 망령이야!"

 

해버리는 것이다.

 

"그 늙은이 왜 그리 주책이 없어? 분수 적기란 ─ 아니 아침부터 냄새나 맡은 개처럼 지싯지싯 붙어볼려구 그러지 않아? 남이 싫어하는지두 모르거든!"

 

이웃은 그만두고 곧잘 말벗이 되어주던 담배장수 늙은이까지도 샌님을 따돌리려 든다.

 

"자리 좀 내주시오. 영감은 눈치도 없소? 손님이 와서 비좁건 자리를 좀 내줄 께지 제삿집 장이나 대듯 버티구 앉았으면 어쩌란 거요?"

 

복덕방에서도 지청구를 댄다. 손님이 와서 북적댈 때라면 또 몰랐다. 저희들 한둘이 있으면서 하는 소리였다.

 

이제는 완전히 주위에서 따돌림을 받고 보니 정말 발길 갈 데가 없다. 어쩌다 지나다가 당구장에 맛을 들여서 공 맞추는 구경을 몇 번 갔더니만 이제는 숫제 근접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누워 담배나 피울밖에는 없었다.

 

시골 같았으면 이럴 때 짚단을 들여다 신이나 푸슬푸슬 삼고 앉았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래서 그런 궁리도 해보았었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 다녀보아도 짚단 파는 집은 없었다. 물역상을 두세 집이나 둘러 보았으나 큰 붓푼수나 되게 짚오리 몇 개 묶어놓고는 십오 환씩을 달라던 것이다.

 

두 단은 가져야만 짚신 한짝거리가 될까말까 하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몇 단밖에는 없다. 밤새도록 궁리한 짚신 타령도 꿈이 되고 말았다.

 

‘자리를 매면…’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자리틀이야 세치각 한 개만 사면 우그려 만들 수가 있었지만 왕골과 청올치를 구하는 재간도 없었고 자릿돌도 만만치가 않았다. 판로도 없다는 것이다.

 

"서울서 왕골자리가 팔리오? 강화 돗자리가 산더미같이 쌓였는데. 영감, 그러지 말구 멍석을 트시오!"

 

"멍석? 멍석은 뭣에들 쓰오?"

 

"아따, 이 영감 보게. 영감 살던 시골장에 갖다 팔면 안 되오?"

 

이런 조롱만 받고 집에 돌아와 버렸다.

 

역시 무료했다. 몸이 비비 뒤틀린다. 정말 못할 노릇이었다.

 

[6]

 

그래도 겨울 동안은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워낙 날이 추워노니까 엄두가 나지 않더니 한식절이 되어 뜰잔디가 뾰족뾰족 싹을 내어 밀기 시작하자 샌님은 생리부터가 완전히 농군으로 돌아가던 것이다.

 

온몸이 봄기운이 풍기었다. 살에서도 잔디가 싹을 트는 성싶어진다. 봄기운이 소물거리면서부터는 온 전신이 근지러워 견딜 수가 없다. 노고지리 소리가 곧 들려오는 성싶어도 진다. 샌님 ─ 아니 완전히 권 서방으로 돌아간 그는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졌다.

 

"이런 이 소! 낄낄!"

 

하는 농부의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물론 착각이었다. 그러나 이 착각에서 온 여음은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권 서방의 귀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농부의 소 모는 소리는 신기할 만큼 대지를 흔드는 듯싶은 우렁찬 황소의 울음소리를 빚어주던 것이다.

 

그 소의 울음소리는 농부한테는 더없이 흥겨운 음악이었었다. 청각을 통한 음악뿐이 아니었다. 그 음악 속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푹 익은 외양간 거름의 훈기를 풍겨주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굶주린 사람 코에 스며드는 검은 밤콩은 듬성듬성 논 시루떡의 그 구수한 냄새와도 같았다.

 

농부에게 있어서는 두엄내가 곧 흙내요, 흙내가 구수한 된장국 냄새였다. 울적하다가는 이 냄새만 맡으면 속이 후련해지던 것이다. 도시 사람들한테는 숨막히는 악취였지만 샌님 ─ 아니 권 서방한테는 신선한 공기와도 같았다. 그러기에 그는 변소에만 들어가면 마음이 푸근해졌다. 한 달에 몇 번씩 거름을 쳐갈 때마다 온 집안이 문을 첩첩이 닫아걸고 숨도 안 쉬고 틀어박혔을 때도 혼자 신바람이 나서 거름통 주변을 빙빙 돌기도 했다.

 

"거 그래서 쓰나. 그러면 멀건 물만 뜨이지. 자, 비키오, 비켜!"

 

이렇게 거름 인부를 떠밀치고는 신이 나서 자신의 거름을 퍼내기도 하는 권 서방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침에 나간 사람이 저녁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서 집안이 발칵 뒤집힌 일도 있다. 혹시 길이나 잃지 않았나 해서 파출소에까지 연락을 하고 법석을 하고 있는데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었다.

 

"아니, 어디 가서 여태 계셨어요?"

 

하고 못마땅해하는 며느리한테 샌님은 신바람이 나서 이야기를 하던 것이었다.

 

"얘, 말 말어라! 나 오늘 참 잘 지냈다. 저 뒤에 산등성이에 방을 한 칸 우거리는데 보자니까, 아 글쎄 욀 얽는데 그야말루 거미줄루 방귀 얽듯이 하는구나, 그게 수수깡 같아두 또 모르겠는데 새끼손꾸락만큼씩 아카시아 호초릴 글쎄 큰 닭장 얽듯기 하니 거기 흙이 붙어 있을 께 뭐냐? 그저 눈속임이지. 겉에 흙만 발라노면 겉보기엔 번지르르하지! 허지만 말라노면 애들이 기대어두 벌렁벌렁 자빠지구 마느니라! 그래 내 덤벼서 다 새루 해줬다! 여물을 많이 섞어야 한데 짚이 없으니까 잔디풀을 뜯어다 하니 그게 무슨 힘을 쓰겠나!"

 

목판장사라도 하겠노라 영감이 애를 먹인 것도 그날부터였다.

 

정말 미치겠다던 것이다.

 

한식이 지나자 샌님은 더욱 못견디어했다. 눈만 뜨면 걱정이,

 

"이 사람이 벱씨나 담구었는가, 원! 벱씨 답답이 일쯔감치 담구어 이른 못자릴 해야 할 법인데 ─ "

 

이런 걱정부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못자리판 물은 답답이 더워야 하는데 물길을 좀 돌려대는지 모르겠꾼! 두엄을 미리 좀 푹 질르지 않구서 암모니아 쓸 생각만 하지 않나? 그 사람 농사엔 이력이 있다지만 땅의 성질을 잘 몰라노니까?"

 

그 사람이란 말할 것도 없이 땅을 맡기고 온 성춘식이다. 사람됨으로나 농사 이력으로나 자기만 못지않은 농군임을 권 서방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성춘식은 권 서방과 달라 눈뜬 장님이 아닌지라 신문이고 잡지에서 얻어들은 새 지식도 권 서방보다는 나았다. 그것이 권 서방한테는 또 걱정이었다.

 

"사람두 성두 각각, 이름도 각각이듯이 땅이면 다 같은 땅인가. 땅에두 성 각각, 이름 각각 있으니. 거 신식 사람들 말이 옳긴 옳지! 허지만 땅에 따라 다 달른 법이니! 사토에 암만 금빌 질러보지! 모래 썩히는 건 두엄밖에 없느니!"

 

무엇이고 새 농사법을 따라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 성춘식의 흠이니라 했다. 작년에는 한식 전 못자리를 해서 보름이나 일찍 추수를 했고, 거기에 또 이백열두 평짜리 한 다랑이에서 정조 열한 가마까지 낸 터라 자기도 한번 성춘식의 지시대로 해보겠노라 벼르기까지 한 권 서방이면서도 마치 어린애한테 칼 쥐어 내보낸 것 같은 불안을 느끼는 것이었다.

 

"가지씬 2월 중순에 묻어두 좋은데 ─ "

 

벼농사뿐이 아니다. 이런 걱정까지 해주고 있는 권 서방이었다.

 

그러나 걱정은 성춘식에 그치지 않았다.

 

"그 게름벵이 녀석이 아직도 꾸물거리구 있을 께라…밤을 패서 돌아댕기니 제눔이 천성 해가 꽁무니를 쑤실 때까지 자빠져 잤지 벨수가 있나! 남들은 몰 낸다구서 들어야 못자리 타령이나 하구 다니구 ─ "

 

김달수 이야기다. 노름꾼으로 유명한 곰보였다.

 

이렇게 시작하면 온 동리 걱정은 혼자 하고 누웠던 것이다. 그러다가는,

 

"에이! 망할 자식들!"

 

하고 벌떡 일어난다.

 

맘이 안 드는 녀석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면 참지를 못하는 성미였다. 언제나 그랬었다. 아무리 바쁜 길을 가다가도 밭에 풀이 우거진 것을 보고는 그대로는 못 지나가는 성미다. 밭머리에 서서 주인 욕을 혼자 퍼붓다가는 와르르 밭으로 뛰어 들어가서 콩이고 팥이고 곡식을 뽑아 던지고야 견딘다.

 

"너 같은 건 애전에 죽어버려야 한다! 애전에! 여북 팔자가 기구했기에 그런 녀석한테 태어났겠느냐…"

 

마치 아이들 데리고 하는 소리다. 그중에서 가장 혼돌림을 당한 것이 김달수였다. 김달수의 밭 한 뙈기는 공교롭게도 권 서방네 밭과 붙어 있었다. 불행, 아니 김달수한테는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권 서방은 나이도 십여 년 차이가 있어 죽일 놈 잡도리 하듯 하면서도 보다보다 못하면 곧 잘 매는 길에 훔쳐주었으니까 ─ 깨밭을 매다가였다. 점심을 날라온 할멈이,

 

"달순지 뭔지 그 사람, 그래 밭을 저꼴을 만들어놓구서 지금은 어느 때라구 천렵을 하구 있어?"

 

무심코 하는 말을 듣더니만 영감은 눈을 까뒤집어 쓰고서,

 

"아니 그래, 그 자식이 고길 잡구 있던가?"

 

"윤보네랑 모두들 물을 돌리구 푸구 있습니다!"

 

"아니, 저런 죽일 눔이 있더란 말야!"

 

영감이 하도 서두르는 바람에 할멈도 질겁을 하고서,

 

"내버려 둬요… 제 땅 제가 안 가꾸는 걸 뭘 참견여유!"

 

"아, 뭣이 어쩌구 어째? 어째서 제 땅이야! 어째서 제 땅이야!"

 

"아주 샀대유!"

 

"샀으면 제 땅이란 말야! 그래 제 땅이면 곡식을 심어놓구서 저 꼴을 만들어놔두 괜찮단 말야? 이눔의 자식 버릇을 알켜놔야지! 동리서 아주 내쫓아 버리던지 ─ 어디야, 어디서 물을 푸던가? 구렛보겠군!"

 

하기가 무섭게 말리는 할멈을 밭머리에다 내동댕이를 치고서 단숨에 달려가서는 다짜고짜 목덜미를 잡아나꾸었던 것이다.

 

"네 이 날도둑눔! 네눔의 심보가 그러구서 이 동리서 살아!"

 

"아니 아저씨, 왜 이러세요!"

 

모두 영문을 몰라 쩔쩔매고만 있었다.

 

"이 날도둑눔들! 풀 키가 곡식 키보다 크게 만들어놓고서 고기잡일 해?"

 

여기까지도 좋았지만 한나절을 퍼서 물이 자작해진 물꼬를 왈칵 터놓고야 말았던 것이다. 눈을 감고 더듬어도 손뼉 같은 붕어가 잡히도록 고기가 시글시글했었다.

 

이런 물꼬를 터놨으니 젊은 놈들이 그대로 있을 리가 만무다. 불량하기로 이름난 윤보가 영감을 물에다 틀어박고는 달아났었다.

 

그래도 나이 먹은 달수가 나았다. 영감을 물에서 붙들어 일으키는 달수의 목덜미를 잡아끌고서 밭에까지 와서는 기어코 그날 해전에 밭을 말끔히 매게 했던 것이다. 권 서방도 같이 매준 것은 물론이다. 그런 후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권 서방네 옆밭만은 김달수도 묵히지 않았었고, 달수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권 서방이었었다.

 

"달수! 숨어라! 숨어! 호랑이 온다!"

 

친구들이 권 서방만 번득해도 이렇게 귀띔을 했다. 숨으라면 벌써 권 서방인 줄 알고 곱이 끼어 숨는 김달수이기도 했다.

 

"그 녀석, 요샌 신바람이 나서 노름이나 하구 돌아다니겠지…천렵이나 하구!"

 

이것저것 달수가 하던 짓을 회상하다가도 금방 뛰어가기나 할 것처럼 벌떡 일어나 앉는 샌님이었다.

 

그러나 그래보았자 도리가 없는 지금의 샌님이었다.

 

그는 벌써 권 서방이 아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며느리가 손수 만들어논 화단이 판판히 되어버렸다. 카네이션, 제라늄, 마카레트, 도라스나, 다알리아 등 며느리가 얻어다 가꾼 서양 화초를 말끔히 뽑아내고는 무씨를 뿌렸다는 것이다. 톱도 얻어다 놓았었다. 웬만한 나무는 잘라버리고 채소를 심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며느리는 홀짝홀짝 울고 있었다.

 

"얘야, 그래 꽃 먹구 사느냐! 푸성귀라두 뜯어먹으면 작히나 좋아서 그러느냐?"

 

"이눔의 집 다 헐어버리구서 보리밭이나 하세요!"

 

며느리가 하도 악을 쓰고 나대니까 영감은 두루마기를 걸치고 어슬렁어슬렁 문 밖으로 나가버린다. 아들도 집에 없던 날이었고 보니 첫째 며느리의 눈총이 살에 들어 박히는 것 같아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아들도 요새 하는 일이 잘 안 되는지 전축도 들고 나갔고 찾아오는 사람마다가 싫은 소리를 하고 가더니 벌써 사흘째 집을 비우고 있던 것이다.

 

할멈은 할멈대로 날뛰었다.

 

이렇게 업 나가듯 한 영감은 그날 밤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샌님은 종무소식이었다.

 

"시굴루 되내려 간 게다. 내버려둬라!"

 

하고 할멈은 남의 말 하듯 하고 있었다.

 

"천생 팔자가 호미나 차구 지게나 질 팔잔걸 고깃국에 쌀밥이 당한 게냐. 인저 진탕 쌀밥을 먹다가 그 꽁보리밥 덩이를 먹어봐야 서울 생각이 나겠지! 웬걸, 요새야 꽁보리밥이나 있다더냐? 질경이나 뜯구 해서 보리알이나 둥둥 띄운 죽국물이나 차지가 가면 다행이지!"

 

할멈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늦도록 대문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 이튿날도 영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인제는 시골로 간 것에 틀림이 없다고 고부가 거의 단념하고 있던 사흘째 되던 날 점심때나 되어서야 나갈 때처럼 풀이 죽어 들어왔다. 두루마기고 옷이고가 말이 아니었다.

 

"아니, 또 어딜 갔다 지금서야 와유?"

 

할멈이 묻는 말에도 못 들은 체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만 자기 입던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다.

 

"왜 그러셔요, 아버님?"

 

며느리가 물어도 대꾸가 없다.

 

"그건 뭘할려구 싸유?"

 

그래도 말이 없다.

 

영감은 반침에 쓸어두었던 헌 버선짝까지를 깡똥하니 동그려놓고서야 며느리를 보고,

 

"나 낮차루 시골 가련다…"

 

"네? 시골은 왜요?"

 

"나 시골루 내려갈 테야. 더러운 눔의 고장!"

 

침을 퉤 뱉는다.

 

"아니, 왜 그래유! 서울이 뭘 또 잘못했시유?"

 

"잘못이면 이만저만 잘못이어?"

 

하더니만 며느리 쪽으로 홱 돌아앉으며 막 퍼부어댄다.

 

"그래, 너 좀 들어봐라! 아니 그래, 사람이 길 가는 데두 간섭을 해? 남이사 왼쪽으로 가건, 바른쪽으로 가건, 제눔들이 상관할 께 뭐냐 말이야! 건너가거라, 돌아가거라, 서라, 어째라, 무슨 상관이냐 말여! 그래, 제 나라 백성이 제 나라 길 다니는데두 무슨 법이 그렇게 많으냐 말이다! 왜 남의 제사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느냐 말여! 응, 그래, 제눔들이 순경이면 순경이었지 남이야 걸어가건, 기어가건, 상관할 것이 없잖으냐 말이다! 그래 늙은일 잡아다놓구서 뭐 어쩌구 어째라?"

 

그제야 며느리도 짐작이 갔다. 필시 횡당도로 아닌 데로 건너가다가 교통순경한테 꾸지람을 들은 모양이었다.

 

"자동차가 하두 많이 다니니까 아버님 다치실까봐 그런 거죠."

 

며느리가 설명을 해도,

 

"뭐가 어떻구 어때? 그래, 이눔의 서울선 제 맘대루 죽지두 못한다더냐? 내가 치여 죽으면 제눔이 거상을 입어줄 테니 걱정이냐, 장사를 치러줄 테니 걱정이냐? 어째서 잔말이 그리두 많으냐 말여? 뭐, 어째구 어째? 무슨 재판? 그래, 제눔이 가란 길루 안 갔다구 재판을 한단 말이지? 이눔들, 백성들이 갖다 바치는 세금으루 국록을 먹거든 할일을 해야지! 수수미꾸라지처럼 말쑥하니들 차리구선, 찻집으루, 공치기 아니면 바둑이나 두구. 뭐 년눔들끼리 부둥켜안구서 춤을 춘다구? 농군들이 그 피땀을 흘려서 농살 지어다 바치면 처먹구선 그래 그런 지랄만 해? 남 길가는 것 참견 말구서 그런 눔들이나 한 두름에 엮어서 시굴루 보내주면 농사나 지어먹잖아? 젊은눔들은 모조리 수대루 잡아가구, 늙은이들보구 저런 눔들 바둑 두라고 농살 짓구 있어? 그래 우리 농군들은 사람이 아니냐 말여! 우리가 밥 처먹구서 피둥피둥 노는 눔들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단 말여? 난 간다! 난 가! 그런 눔들의 꼴 더는 못 보구 살겠어!"

 

며느리가 서울이기나 한 것처럼 이렇게 바가지로 막 퍼붓더니만 그대로 벌떡 일어선다.

 

"또 분수 떠네!"

 

하고 할멈이 혀를 끌끌 차차 영감은,

 

"에이, 숙맥! 그래두 서울이 좋다구?"

 

하더니 할멈의 턱을 본때있게 한 번 추키고서,

 

"난 간다! 가! 내가 너 같은 걸 예편네라구 사십 년이나 더리구 살았지!"

 

정말 문을 젖히고 퇴로 나선다.

 

"아니, 가시더라두 즈 아범이나 오건 가세요! 그냥 가시면 저의가 뭐 잘못이나 한 줄 알구 야단나지 않겠어요?"

 

하고 붙드는 며느리한테도 턱이나 추킬 듯싶은 태세다.

 

"그래, 잘한 건 또 뭐냐? 뭘 잘했어! 시아비가 그렇게 심심해하니 네가 자리틀을 하나 마련해줬단 말이냐, 짚 한 단을 구해다줬단 말이냐, 뭘 잘했어!"

 

이쯤 되면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가시더라도 점심이나 자시고 가시라고 붙들어도 보았으나 홱 뿌리치고서,

 

"안방마님처럼 살이 부등부등 쪄라! 네 시굴로 다시 내려온다구만 해봐라!"

 

대문간 까지 나가다가 다시 홱 돌아서면서 이렇게 소리를 친다.

 

"뒈져서두 오지 말아!"

 

샌님, 아니 완전히 옛날의 권 서방이 되어버린 영감이 버스에서 내린 것은 다섯 시가 지나서였다. 버스 정거장에서 인절미 백환어치를 사서 먹은 것뿐이어서 시장기가 들었지만 여기서도 삼십리 길인지라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는 휭하니 동구 밖으로 나섰다.

 

우선 퍼어런 들만 보아도 답답하던 속이 툭 트인다. 농군들은 벌써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초경을 하는 농부도 있었고, 무엇인지 씨앗을 뿌리는 사람도 눈에 뜨이었다. 먼지 하나만 묻어도 혹혹 불고, 잘못 보고 발등을 좀 밟았다고 눈깔이 멀었느냐고 눈을 울부리던 서울 사람에 기가 질렸던 권 서방은 농군의 옷만 보아도 사람 사는 고장에 온 것만 같았다. 길도 그랬다. 돌부리에 울멍줄멍한 좁다란 길이었어도 앞뒤 좌우를 몸이 달게 돌아다볼 필요도 없었다. 돌아가라, 건너가라, 서라 마라 할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 돼지 목 따는 소리 같은 자동차 소리만 안 들어도 살 것만 같다.

 

동구 밖 마차길로 나오자마자 권 서방은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텁텁하던 내장 속이 말끔히 씻어지는 성싶다. 또 한번 호흡에도 한겨울 동안 내장에 배었던 구공탄 독기가 빠지는 것 같다.

 

"이게 사람 사는 데지!"

 

영감은 놀이 들기 시작한 하늘을 우러러보며 두 팔로 허공을 안아보는 것이었다.

 

"사람 사는 데가 이래야말구!"

 

길이라기보다도 보료 위를 맨발로 거니는 것 같다. 딱딱한 민판길만 걸을 때는 도시 감각이 없던 발바닥을 통하여 흙의 포근함을 감촉할 수 있었다. 춘경을 마친 논의 시커먼 흙덩이에는 아직도 보습날 자위가 남아 있어 비낀 햇볕이 거울처럼 반사가 된다.

 

"그렇지! 사람 사는 맛이 이래야말구…"

 

영감은 또 한번 외치듯 한다.

 

네 시간이나 버스에 흔들림을 했건만 피로한 줄도 몰랐다. 시장기도 몰랐다. 오직 기뻤다. 즐거웠다. 안 먹어도 살 것 같았다.

 

"너희만 논이 있더냐? 나두 있어! 엿 마지기와 또 세 다랑이야!"

 

영감은 들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보고 외치고 싶었다.

 

"이 사람이 춘경은 했을까?"

 

했기를 바랐다. 성춘식이 제일 먼저 했을 것만 같다. 또 그렇기를 바랐다. 춘경은 답답이 이를수록 좋으니라 했다. 두엄을 푹 질러놓고 한번 깊이 뒤집어만 놓으면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푹 썩는다. 보습날 자위가 번쩍이는 논을 눈앞에 그려만 보아도 신바람이 난다.

 

"그러면! 춘식이 그 사람이야 빈틈없지…"

 

이렇게 흐뭇해하는 영감이면서도 또 춘식이가 무슨 일이 있어서 아직 춘경을 미리 안 했으면 하고도 바라는 것이었다.

 

"그랬으면 한번 신바람이 나게 갈아붙여 보지!"

 

이런 권 영감이기도 했다.

 

마치 달이 있기는 했었지만 역시 밤길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발이 재우쳐졌다. 한시라도 빨리 그립던 동리에 들어가고 싶었다. 삼십리 밤길을 어떻게 왔는지 몰랐다. 무너미 고개 마루턱에 썩 올라서니 눈물이 피잉 돈다. 여기서는 담배 한 대 참이었다. 대개 이 고개 마루턱에서는 오다가다 한 대 붙이는 것이 보통이건만 권 영감은 내친걸음에 봇둑 갈림길까지 내려오고 말았다. 곧장 들어가면 장앳말이다.

 

갈림길까지 온 영감은 발을 뚝 멈추었다. 무슨 생각인지 한참 궁리를 하더니만 오른쪽 길로 휙 빠진다.

 

"암! 예까지 와서 그대루 과문불입을 했다간 그 녀석이 노엽다구말구! 그럴 순 없지!"

 

그 녀석이란 영감의 논이었다. 여기서는 그렇게 멀지도 않다. 조금만 돌아가면 그만이던 것이다.

 

논이 저만큼 보이자 영감은 뛰고 있었다. 그립던 녀석이었다. 꿈에도 잊혀지지 않던 녀석이었다.

 

"잘 있었느냐? 내가 왔다! 내가!"

 

영감은 커다랗게 소리를 쳤다.

 

"널 그눔들한테나 대? 그 까투리처럼 입만 깐 서울눔들한테나?"

 

달밤에 보니 더 의젓해 보인다. 보습날을 금방 뗀 것 같았다.

 

"허, 그 사람이 신명풀이를 못하게 했군그랴!"

 

그러면서도 영감은 만족이었다.

 

"품은 곱 쳐서 줘야지! 암, 그러구말구…겨울 동안 봐준 공두 있잖나!"

 

숫제 콧노래다.

 

이렇게 흥겨워 돌아온 권 영감이 춘식이네 사랑방에 썩 들어서자, 앉았던 사람들은 모두 기겁을 하고 놀랐다.

 

이야기를 벌어졌다. 적의까지 보이며 그동안의 서울 이야기를 한 끝에 영감은,

 

"춘식이! 일년 농사두 못 지어보게 돼서 염치가 없네나!"

 

하고 말문을 돌리어 자신이 농사를 지으러 왔다는 말을 하자 방안은 물 친 듯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아니, 거 무슨 말씸이세유, 형님?"

 

"나 혼자라두 농살 짓구 고향엘 살러 왔네. 맷돌이구 뭐구 그런 건 자네다 그냥 쓰게나. 할멈은 죽어두 안 내려온다니까."

 

"그렇지만 전 끝전꺼정 다 치른걸유, 형님!"

 

"뭐? 끝전이라니?"

 

"모르시나유, 형님은? 자, 이걸 보셔요. 이게 그 문서예유!"

 

아들이 내려와서 일체를 백삼십만 환에 팔고 갔다는 것이다.

 

"끝전을 보리 때까지만 참아 달래두 안 된다구 그래서 팔부 변을 얻어서 다 줬어유."

 

청천에 벽력 같은 일이었다.

 

"전 형님이 보내셨다기에 그런 줄만 알구 있었어유!"

 

"음 ─ "

 

그것은 그대로 동물 ─ 그것도 맹수의 신음소리였다.

 

잠이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영감은 춘식이를 보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 자네한테 청이 하나 있네!"

 

"청이라니유?"

 

"나두 이면은 있는 사람이어, 한번 판 걸 되물러 달란 말은 않겠네! 그럴 처지두 못 되구. 그 자식이 아마 실팰 했나보이. 그러니 날 자네 집에 좀 두어주게나!"

 

"네?"

 

"어 이 사람, 뭐 내가 거저 둬달란 말은 아닐세. 나 아직 어느 젊은 눔한테두 지잖을 셈일세! 안 져! 새경두 자네 주는 대루 받을 테여! 난 그눔하구만 살면 그만이니까."

 

"허지만 그렇게야 어떻게…"

 

가슴이 뻐근해서 하는 말에 영감은 춘식의 손을 덥석 잡고서 눈물을 좌르르 쏟으며 숫제 애원을 하는 것이다.

 

"아니 이 사람! 자네 어차피 그만큼 농사가 늘었으니까 사람 하나 둬야 하잖겠는가? 늙었다구 자네 날 타박하는 건가! 엉? 내가 늙었어두 지잖네, 지잖아! 어느 젊은 눔보다두 그 녀석만은 내가 더 잘 다룰 걸세! 안 그런가? 나 그 녀석 딴 사람한테 손대게 하구 싶지가 않네! 자네야 땅 임자니까 도리가 없지만! 이래두 내 맘 못 알아주겠는가, 어, 이 사람!"

 

〈「사상계75, 195910

 

<재편집: 오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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