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신화리-노자영
분야: 어문 > 수필 > 경수필/수필
저작자: 노자영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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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여자시인 사포는
"이 세상에는 내 고향이 없다"
하고 데오카나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러나 반생을 여기저기서 보내버린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자장가와 노래와 동경의 옛터 ── 나의 소년시대를 고이 지켜주던 내 요람 신화리 산악과 나무그늘과 계곡과 수무월(水無月)로 덮어진 산 나라요, 물나라이다.
신화리 범석동! 동네 이름을 범석동이라고 한 것은 기암괴석이 늘어 선 중에 배돗대 모양의 절벽이 동구를 막은 까닭이다. 산악이 서로 어울려 머리를 부빌만한 계곡에는 벽계(碧溪)가 용용(溶溶)히 흐르고 있다.
여름만 되면 나는 한 마리 고기였다. 프랑스 작가 도데를 북해의 고래’라고 평한 사람이 있지만, 나는 고래는 되지 못하여도 계곡 물속에 있는 고기쯤은 된 셈이었다. 틈만 있으면 하 종일 시내에서 고기를 잡고 헤엄을 치고 물장난하는 자연의 야생아! 조밥 한 덩어리와 김치 한 쪽을 싸 가지고 동구 밖 시냇가에서 노는 재미는 그 위에 다시 없었다. 절벽 끝에는 자주빛의 태양이 떠올라 흐르고, 냇가에는 천지만사(千枝萬絲)의 버드나무가 성스러운 여자의 머리가락같이 수면을 적시고 있지 않은가? 유월 조(鳥) 제비는 그 한때를 마음껏 즐기자는 듯이 쪽빛 날개를 물에 적셔 가지고 반공(半空)에서 원을 그리는 것이다.
누구의 노래 하나 그림 하나! 그리고 읊어지지 않는 이 산 나라는 아직 제비와 나와 태양과 송아지만이, 그 여름의 포즈를 못 잊어 하고 사랑스레 껴안는 것이다.
동구 밖에서 인가로 다가오면 조그만 들판이 열리고 거기는 삼십여 채의 초가집이 있다. 계곡을 좌우에 끼고 이곳의 명물인 느티나무가 몇천만 주가 버려져 있어, 여름이면 그 밝은 녹색의 빛난 날개가 하늘을 덮고 은은한 나무 그늘에는, 미풍이 은령(銀鈴) 같은 맑은소리로 밝고 향기롭게 밀어를 빼앗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리마당질에 땀 흘리는 농부 ── 김매기에 피곤한 농부 ── 그들은 점심을 먹은 후에는 밀턴의 ‘실락원’이 아니라, 케오미의 ‘낙원애호’자로, 그 나무 그늘 밑에서 그들의 꿈은 ‘주완탄’ 호반의 녹음 같은 행복의 무리가 되는 것이다.
산 나라의 여름! 여기는 더위와 작열과 염고(炎苦)를 모른다. 별장, 피서지, 안식의 나무 그늘! 그들은 이것을 누구나 소유할 수가 있었다. 도시 사람처럼 몇백 평에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담을 둘러싼 후, 여기만은 나의 천국이라고 버티는 일은 없다. 나도 낮이면 느티나무 아래서 멍석을 깔고 ‘하늘 천 따지’를 읽어 본 일도 있고‘아이 우 에 오’를 불러 본 적도 있다. 덥다! 나는 이 말을 별로 불러보지 못하였다. 조금만 더우면 개천으로 뛰어가 아이들과 헤엄치고, 물장난을 하고 또는 편을 짜 가지고 물싸움을 하는 등 산 나라의 여름은 퍽이나 즐거웠다.
그리고 밤이면 나무 아래 모닥불을 피워놓고 멍석을 깔고 구수한 옛이야기로 서늘한 밤을 맞는 재미도 좋았다. 반딧불을 잡아 호박잎에 넣고 옥수수를 한 입으로 뜯으면서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하고 불러 보는 ── 유쾌한 도시의 사람들이 네온 색채를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지 않았다. 그리고 때로는 모닥불 옆에서 참외를 깍으면서 울타리 밑에 핀 설백(雪白)의 박꽃을 바라보고 다시 오봉산 넘어 북두칠성을 헤어 보는 것도 내 어린 날의 고향에서 맛보던 즐거운 추억의 한 토막이다.
月有淸香, 花有陰(월유청향, 화유음)
이라고 어떤 시인은 불렀거니와 내 고향이야 말로 청향의 달과 녹음의 막으로써 덮인 고요한 산 나라이다. 여름이면 그 고운 청록의 포즈가 맑은 하늘을 안고 구만리 승천을 해볼듯이 밤마다 빛나지 않는가. 오봉산과 돗대바위와 느티나무의 그늘은 금년 여름도 여전히 내 고향의 여름을 단장할 것이다.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