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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자

제13회(1979) 동인문학상-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작성자오솔향|작성시간21.08.17|조회수255 목록 댓글 0

*1968년~1978년 까지는 동인문학상 시상이 중단되었음.

 

13(1979)-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趙世熙]

출생: 1942

출생지: 경기도 가평

 

조세희는 난장이연작을 통하여 197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1965.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돛대없는 장선으로 등단

 

경기도 가평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후, 1965경향신문신춘문예에 소설 돛대없는 장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가 등단한 것은 1960년대 중반의 일이지만, 문단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 칼날(1975), 뫼비우스의 띠(1976), 우주여행(1976),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6), 육교 위에서(1977),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1977),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1977), 클라인씨의 병(1978),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1978) 등으로 이어지는 난장이 연작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그의 난장이 연작은 1970년대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정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기에서 난장이는 정상인과 화해하며 살 수 없는 대립적 존재로 등장하고 있으며, 197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소설적 접근을 통해 작가는 한국의 1970년대가 이 두 대립항의 화해를 가능케 할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난장이 연작을 1970년대적이라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그려내고 있는 난장이 연작에 환상적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계급적인 대립과 갈등이 마치 비논리의 세계나 동화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현실의 냉혹함은 더욱 강조된다.

특히 난장이 시리즈가 연작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되는 요건이다. 연작 형식은 소설 양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면서 이야기 형식의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이 같은 형식이 난장이 연작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소설이 종래의 단편형식으로는 현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장편 양식으로 현실을 개괄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주제와 양식과 기법에 대한 도전과 그 성과는 1970년대 문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오늘 쓰러진 네모(1979), 긴 팽이모자(1979),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1979), 시간여행(1983), 1979년 저녁밥(1984) 등을 발표하고 있다.

소설집으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시간여행(1983),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1995) 등을 간행하였다.

1979년에 난장이 연작으로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학력사항

-경희대학교 - 국어국문학 학사

 

수상내역

-1965년 작품명 '돛대없는 장선' -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돛대없는 장선이 당선

-1979년 작품명 '난장이 연작' - 13회 동인문학상

 

작품목록

-심문

-뫼비우스의 띠

-뫼비우스의 띠[재수록]

-우주여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

-육교 위에서

-우주여행[재수록]

-궤도회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난장이 에필로그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민들레는 없다

-과학자

-에필로그

-긴 팽이모자

-오늘 쓰러진 네모

-철장화 1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

-고맙다, 어린 왕자

-시간여행

-어린 왕자

-시간여행

-1979년 저녁밥

-하얀 저고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작품해설

 

1978년 간행된 조세희의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6년에 발표된 독립된 단편의 명칭이기도 하다. 1978년에 완결된 이 연작은 노동자 계급의 소외로 압축되는 1970년대의 사회적 갈등에 대한 문학적 보고서라고 할 수 있으며, 독립된 단편소설들의 결합을 통해 삽화적인 장편소설에 이르는 전형적인 연작소설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모두 열 두 편의 단편소설들이 결합되어 있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난장이 일가의 삶으로 요약되는데, 산업화의 과정에서 자기 삶의 터전을 일구지 못한 도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과 절망이 인상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 작품이 연작의 형태로 발표되기 시작한 것을 12편의 단편 중의 하나인 칼날뫼비우스의 띠로부터 비롯된다. 이 작품 가운데에서 난장이의 존재는 지극히 상징적인 소설적 장치로 그려진다. 일상의 현실에서 무위의 삶에 부대끼는 한 젊은 주부의 눈을 통해 난장이의 존재가 발견되며 철거민을 상대로 하는 아파트 입주권 사기사건 속에서 난장이의 존재가 정의로운 힘의 존재로 드러난다. 우주여행에서도 난장이는 비참한 삶의 주인공으로 표상된다. 이러한 일련의 방법은 난장이로 표상되는 비극적 존재의 원근법적인 인식에 다름 아니다.

 

난장이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연작소설의 내용을 압도하는 주인공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전체 이야기의 중간 부분에서 난장이 일가의 비참한 몰락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장면은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자본계층의 삶과 대조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어두운 그늘이 있는 만큼 더욱 밝은 부분이 있게 마련이라는 판단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분열되어 있는 대조적인 두 세계의 모습에서, 난장이의 존재는 하나의 좌절된 삶의 상징처럼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그 같은 대조의 효과는 연작성의 방법에서 오는 사건의 병치, 상황의 대립 등을 바탕으로 극대화된다고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문제는 난장이로 대표될 수 있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의 세계와 온갖 재벌로 대표되는 가진 자들의 악덕의 세계의 대립이다. 이 두 가지 세계는 현실 속에서 양립하면서 결코 하나로 통합되지 못한다. 작가는 현실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도전적인 방법들을 동원하지만, 그것은 한낱 이상에 불과하다. 난장이 일가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은 분열된 현실의 통합을 꿈꾸지만, 자기세계의 절대성에 안주하고자 하는 가진 자들의 횡포로 인하여 모두 좌절되고 만다.

 

물신주의의 욕망, 비뚤어진 개인적 이기심 등이 난장이 일가의 사랑에 대한 기대를 모두 짓밟아 버리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이같은 갈등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사회계층의 등장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희망을 갖고 있다. 이른바 증산층의 등장과 그 형평성을 잃지 않는 시각이 바로 거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것이 역동적으로 작용할 만큼 사회적 기반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가능성만을 상정하고 있는 셈이다.

 

 

줄거리(사이버 문학광장 제공)

 

1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나는 불행하게도 그들은 아버지의 모습만 옳게 보았지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는 것을 맹세할 수 있다. 우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하였으며,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허접쓰레기 같은 조반을 드시면서 철거계고장이 날아들자 참기 힘드신 것 같았다. 내용은 낙원구청장으로부터 날아온 강제철거에 관한 경고장이었다. 동네골목은 아파트 입주에 관한 게시판 공고문 앞에 몰려든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아버지는 철거계고장 소리를 듣고 일을 그만두고 돌아오신 듯 했고, 나는 아버지 옆으로가 아버지의 공구들이 들어있는 부대를 둘러메었다. 어머니는 무허가 건물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표찰을 빨리 떼어 간직하지 않으면 나중에 괴로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지 식칼로 표찰이 붙은 못을 뽑고 있었다.

 

아파트에 입주할 돈이 없는 우리에게 철거명령은 죽음과도 같았다. 어떤 놈이든 집을 헐러오는 놈은 그냥 놔두지 않을 거라는 남동생 영호의 다짐소리도 그들 옆엔 법이 있다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사그라들었다.

 

나는 개천 옆 주택가에서 나는 고기냄새를 맡으며 아버지를 나쁜 사람이라 욕했지만 어머니는 화를 내며 아버지는 좋은 분이라 얘기하신다. 충분히 고생하며 살아왔던 아버지를 원망하고 싶진 않았다. 혈연의 연쇄처럼 아버지의 선조 때에도 가난은 벗어나지 못하는 짐이었다. 언젠가 공장에서 이상한 매매문서를 조판하다 조상으로부터 세습되어 온 우리 집의 노비문서를 발견하고 우리의 가난이 아버지하곤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이곳에서 우리의 집을 지을 때는 참으로 행복했었다. 사람들도 우리를 따뜻하게 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고, 동네 건물을 양성화 시켜 주겠다고 계획을 내비쳤다. 정작 그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 줄 사람이었다.

 

어렸을 적 나에게 자기의 작은 가슴을 맡겼던 옆집 명희는 나이가 들고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다 음독자살 예방 센터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때 난 명희에게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약속을 했었지만 지킬 수가 없었다. 늙은 난쟁이 아버지는 더 이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십칠 센티에 삼십이 킬로그램의 몸은 아버지를 온갖 더러운 잡역꾼으로만 몰고 갔었다, 그러나 나이가 드시고 그것마저 체력에 부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더러운 일거리로 연명하던 우리 가족은 당신이 황혼기에 들자 경제를 책임질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인쇄소에 나가 고무 골무를 끼고 접지일을 하였다. 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일을 하면서 세상은 땀 흘리지 않고서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를 해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이질 집단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다. 영호도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죽어라 일을 했다. 영희 또한 빵집에서 일했다. 우리는 공부를 해야지만 우리구역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 구역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아무 책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고 고입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했다.

 

그 해 늦가을 밤 아버지는 나를 작은 나무배에 태우고 노를 저었다. 이상하게도 배에는 물이 차올랐고, 당황한 나는 신발을 벗어서 물을 퍼냈다. 나는 수영을 못했고, 무서웠다. 아버지는 웃으시며 내 신발을 빼앗았다. 아버지는 삼 년 전에 서커스단에서 일을 하려 꼽추 한 명을 데려오셨지만 가족 모두가 반대를 해서 포기했던 일을 어제라 착각하시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지는 당신을 막지 마라셨다. 이제는 늙어서 다른 일은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이제 우리가 일하니 쉬시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너희는 공부를 해야한다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물이 차오르는 배에서 아버지 말씀에 승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다가 신발을 내주었다. 나는 물을 퍼냈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어머니께 맡겼다. 아버지를 어머니 이상으로 간호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어머니께 아버지가 병에 걸리신 것 같다 말하자 어머닌 지쳐서 그런다고 역정을 내신다. 명희 어머니가 와서 입주권이 만 오천 원이나 뛰었다 한다. 아버지가 놓고 나간 책을 펼쳐보았다.

 

그것은 <일 만년 후의 세계>라는 책이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개천 건너 주택가에 사는 지섭이라는 젊은 청년에게 빌린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께 사람들이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으므로 이 땅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이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께 일을 했냐고 물었고 아버지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또 나쁜 짓을 하거나 법을 어긴 적이 없는지 묻자 아버지는 없다고 했다. 또한 아버지는 기도도 올렸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어디로?"

 

"달나라로"

 

나는 책장을 덮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벽돌공장의 높은 굴뚝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그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버지는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2 영희가 사라졌다. 나는 방죽가 풀섶에 엎드려 있었다. 비행접시를 타고 온 외계인들이 영희를 태워 갔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우리 동네 주민들의 삼분의 이 이상이 이미 집을 헐어 버리고 떠났다.

 

대문을 열고 나온 형이 방죽길을 따라 걸어왔다. 형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받아야 할 최소한도의 대우를 위해 싸워야 돼. 싸움은 언제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부딪쳐 일어나는 거야, 우리가 어느 쪽인가 생각해 봐."

 

우리는 한 공장에서 일했지만 격리된 생활을 했다. 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공장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그러나 작업 환경의 악조건과 흘린 땀에 못 미치는 보수가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기 때문에 우리가 금방 죽어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불화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들은 또한 힘껏 일한 후에 누리게 될 부에 대해서도 희망을 주었는데, 우리는 그 희망 대신 간이 알맞은 무말랭이가 우리의 공장 식탁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이었다.

 

형은 영희가 떠난 이유를 우리 때문이라 하였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형은 학자가 될 사람이었다. 난쟁이만 아니었다면형의 공책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도 적혀 있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이다. 누가 감히 폭력에 의해 질서를 세우려는가  -중략지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준다는 것,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목적 없이 공허하고 황량한 삶의 주위를 방황하지 않게 할 어떤 일을 준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날 불렀다. 한 시간 전에 이십이만 원 했던 입주권이 올랐으면 팔 생각이신가 보다.

 

동사무소 앞으로 나갔다. 승용차가 서 있었고, 입주권은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사이의 눈치가 냄새로 느껴졌다. 사라졌던 영희가 햇볕에 발갛게 탄 얼굴로 나의 팔을 끼었다. 잠실까지 시세를 보려 갔다오는 길이었다. 현장 근처의 복덕방 시세도 이십이만 원이라고 했다. 이젠 더 이상 버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집을 사겠다는 아주머니가 나타났다. 이십일만 원으로 깍아 달라는 말에 난 입을 다물었다. 여자가 돌아섰다. 승용차 안에서 한 사나이가 팔지 말고 기다리라며 이십오만 원에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조금만 더 기다리라 했다. 아버지는 개천다리 난간에서 두 다리를 내리고 앉아 술을 마셨다. 아버지를 꼭 술을 마시다 돌아가실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량이 보통사람의 반의반도 안 돼는 당신이 오늘은 보통사람의 주량만큼 술을 마셨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면, 그 후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었다. 나의 생은 아버지만도 못할 것이다. 나의 몸은 아버지보다도 작게 느껴졌다.

 

공장사람들은 우리를 배신했다. 처음엔 함께 일손을 놓고 사장을 만나 담판하기로 했던 아이들이 우리를 배반해 형과 나 이렇게 둘이만 사장과 그의 참모들에게 대항하는 꼴이 되었다. 우리는 이길 수 없었다. 공장사람들은 우리의 일을 빼앗았다. 그날 밤 승용차 안의 사나이가 우리 동네의 나머지 입주권을 모두 사버렸다. 그는 다른 투기업자들이 이십이만 원에 사는 것을 이십오만 원씩 주고 모두 사 버렸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명희 어머니에게 십오만 원의 빚진 돈을 갚았다. 명희 어머니는 집을 헐고 떠나갔다. 아버지는 살기가 너무 힘들다 말하며 달나라로 떠날 공상을 하였다. 지섭이라는 청년이 주었던 책을 왼손에 들고. 아버지는 지섭이란 청년이 미국 휴스턴에 있는 존슨 우주 센터에 편지를 냈고, 후년에 우주 계획 전문가들과 함께 달에 가게 될 거라 했다. 나는 그 책을 돌려주라고 했다. 아버지는 말했다.

 

"넌 학교에서 죽은 교육을 받았어"

 

"어쨌든 그 책을 돌려주세요."

 

"너희들은 왜 지섭에게 아무 것도 배울 생각을 하지 않니?"

 

"도대체 뭘 배우라는 말씀예요?"

 

"로스씨의 편지를 받기 전에 보여 줄 것이 있다. 지섭에게 말해서 쇠공을 쏘아 올려 보여 주마"

 

행복동 생활의 마지막 며칠은 우리에게 악몽과 같았다. 우리는 영희를 찾아 헤매었다. 영희를 본 사람은 없었다. 영희는 가방도 들지 않고 집을 나갔다. 갖고 나간 것은 줄 끊어진 기타와 팬지꽃 두 송이뿐이었다. 얼마 후 집을 헐러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왔다. 우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식사를 했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집을 부수기 시작했다. 아주 쉽게 끝났다. 지섭이 한 일꾼의 얼굴을 때렸다. 수그린 사나이를 지섭이 또 쳤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뒤늦게 달려와 지섭에게 몰려왔다. 형과 내가 나서려 했지만 아버지가 우리를 말렸다. 한참 후 지섭은 땅에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아버지는 달에 가서 천문대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3 내가 죽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사막으로 이어지는 지평선이다. 우리의 생활은 회색이다. 밖에서 회색에 싸인 축소된 집과 축소된 식구들을 들여다보고 늙은 수부를 생각했다.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눈에 아른거렸다. 승용차의 사내에게 갔다. 자신을 기다렸냐는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매매 계약서가 든 검은 가방은 우리 거라고 난 말했다. 그는 이제 자기가 샀으니 나에게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무작정 그의 차에 탔다.

 

"조금 가다 내려 줄 테니까 집으로 돌아가"

 

"싫어요. 돌아갈 집이 없어졌어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이 가방을 강탈해 갈 셈야?"

 

"좋아 네가 할 일을 주지, 말을 잘 들어야 해, 사실은 전부터 너를 봤어. 예뻐서.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든 <안 돼요> 라는 말을 내 앞에서는 쓸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그러면 나는 너에게 내가 고용한 어떤 사람보다 많은 돈을 줄 용의가 있어.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

 

나로선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열일곱 살이 되자 여자가 가져야 할 가족과 가정에 대한 순결을 입이 닳게 강조하셨다. 내 그 동안 집을 나와 그와 함께 한걸 아셨다면 어머니는 목을 맸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잘해 주었다. 옷도 한꺼번에 여러 벌을 맞추어 주었다. 그의 아파트는 영동에 있었다. 그는 은아부동산을 경영했고, 스물아홉에 못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재개발 지구의 표를 거의 몰아 사들이다시피 했다. 그의 집은 부자였다. 태생부터 달랐다.

 

나는 밤마다 꿈을 꾸었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을 왕복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희야, 넌 집을 나가 뭘 하고 있는 거냐?"

 

"그의 금고 속에 우리 아파트 입주권이 들어 있어요. 아직 팔리지 않았어요, 팔리기 전에 그걸 꺼내 가지고 갈래요, 그의 금고 번호를 알아 놨어요"

 

"돌아와"

 

"안돼요. 전 달라요"

 

"같아"

 

"넌 이제 그것 때문에 망한다. 어린 게 그것을 좋아해"

 

"그래요, 전 좋아해요"

 

"망할 것"

 

몸부림치다 눈을 떠보면 밤중이었다. 나의 몸에서는 그의 정액 냄새가 났다. 그는 나를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도덕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의 금고에서 우리의 것을 꺼내 달아났다. 택시를 타고 낙원구에서 내렸다. 나는 곧장 행복동 동사무소를 향해 갔다. 모두들 난쟁이 딸이라며 수군거렸다. 나는 표찰과 철거 계고장을 내주었다. 건설계원이 용지를 내주었다. 아버지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무허가 건물 발생 년도를 써넣으며 나는 손을 떨었다.

 

"거 일시를 모르겠어요"

 

"어디 가 있었어? 이사간 곳도 모르지?"

 

""

 

계원은 도장을 찍고 그것은 안쪽 사무장에게 넘겼다. 사무장은 나를 창가로 데리고 가서 큰길 건너 포도밭 아랫동네를 가리켰다.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주택공사입구에 차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밀려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임대 조건 중 <신청자와 입주자는 동일인이어야 하며 제삼자에게 전대하거나 임차권을 채권의 담보로 제공할 수 없음>이라는 조문을 읽었다. 죽어버림 조문이었다. 신청서를 쓴 후 다음 줄에 가 섰다. 책상의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산 거죠?"

 

나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디 아파요?"

 

"괜찮아요"

 

나는 우리 동네로 갔다. 우리 집이, 이웃집들이, 온 동네의 집들이 보이지 않았다. 방죽도 없어지고, 벽돌 공장의 굴뚝도 없어지고, 모든 난쟁이들이 살다간 흔적들이 없어졌다. 신애의 아주머니네를 찾아 초인종을 눌렀다. 아주머니는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깊은 잠에 빠졌다. 아버지의 몸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내가 큰 소리로 오빠들을 불렀다.

 

"울지마, 영희야"

 

"큰오빠는 화도 안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그래 죽여 버릴게"

 

"꼭 죽여"

 

"그래. "

 

""

 

 

[출처: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재편집: 오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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