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1. 바리공주의 탄생과 부모와의 이별
옛날에 천별산을 다스리는 오구대왕이 있었다. 나라를 잘 다스렸는데, 정전이 비어 있는 것이 흠이었다. 여러 종실과 시신백관이 간택할 것을 권하자 대왕은 간택을 허락하는 전교를 내렸다. 나라에 영을 내려 간택을 하는데, 이간택, 삼간택을 하여 길대부인을 국모로 모시게 되었다.
"국가의 길흉을 알고 싶은데 어디 용한 복자가 있더냐?"
대왕마마가 시녀 상궁에게 물었다.
"천하궁의 갈이박사, 제석궁의 소실악씨, 명도궁의 강림박사가 용하다고 하더이다."
"천하궁에 가서 문복하여라"
대왕의 전교를 받은 상궁은 생진주 석 되 서홉, 금돈 닷 돈, 자금 닷 돈을 간추려 싸 가지고 천하궁의 갈이박사를 찾아갔다. 천하궁의 갈이박사는 백옥반에 백미를 흩어놓고 점을 치기 시작했다.
"초산은 흐튼산이요, 이산은 상하문이요, 세 번째는 이로성이외다."
상궁에게 점괘를 일러 주었는데,
"아뢰옵기 황송하나, 금년에 길례를 하면 칠공주를 보실 것이오, 내년에 길례를 하면 삼동궁를 보시리이다."
상궁은 돌아와 그대로 아뢰었다. 상궁의 말을 들은 대왕은 웃으면서 말했다.
"문복이 용하다고 한들 제 어찌 알소냐, 일각이 여삼추요, 하루가 열흘 같은데 어떻게 기다리겠느냐"
오구대왕은 예조에게 택일을 명했다. 삼 월 삼 일을 초간택을 봉하시고, 오 월 오 일 단오는 이간택을 봉하시고, 칠 월 칠 일 견우직녀가 상봉하는 날을 길례로 정하고 길례도감을 설치한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몇 달이 석 달이 지나가니 길대부인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수라에서는 생쌀내가 나고, 어수에서는 해감내가 나고, 금광초에 풋내가 나고 탕수에서는 날장내가 나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대왕마마에게 아뢰자 대왕마마가 묻는다.
"몽사가 어떠하더이까?"
"예, 품안에 달이 돋아 뵈고 오른손에 청도화 한 짝을 꺾어 들고 있더이다."
대왕마마는 상궁에게 문복 가라 명했다. 천하궁의 갈이박사는 점을 쳐 상궁에게 일러준다.
"길대 중전마마의 태기가 분명하구나. 자식을 보시는데 여공주를 볼 것이요"
그대로 상달하자.
"문복이 용하다고 한들 제 어찌 알소냐"
고 웃어넘긴다. 열 달이 되어 낳으니 공주였다. 공주의 탄생을 대왕마마께 아뢰자
"공주를 낳았으니 세자인들 아니 날소냐, 귀하게 길러라."
하신다. 공주 애기가 태어난 지 석 달이 되자 청대공주라 하고 별호로 달이장 아씨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길대부인은 또 잉태했는데, 몽사를 말하기를
"품안에 칠성별이 떨어져 보이고 오른손에 홍도화 한 가지를 물고 있더이다."
또 딸을 낳아 이름을 홍도공주라 하고 별호로 별이장 아씨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렸는데, 계속 딸이 태어나 딸만 육 형제를 두게 되었다.
육형제를 낳은 후 길대부인은 다시 잉태하였다.
"이번 몽사는 어떠하더이까"
"이번 몽사는 연약한 몸이 부지하기 어려울까 하나이다.
대명전 대들보에 청룡 황룡이 엉켜져 보이고 오른손에 보라매, 왼손에 백마를 받아 보이고 왼 무릎에 흑거북이 앉아 뵈고 양 어깨에는 일월이 돋아 뵈더이다."
길대부인의 말을 들은 대왕은 크게 기뻐했다.
"그대가 이번에는 세자 대군을 낳겠구려."
그리고는 상궁에게 문복 갈 것을 명했다. 문복을 다녀온 상궁이 아뢰었다.
"이번에도 공주를 본다고 합니다."
"점복이 용하다 한들 점복마다 맞출소냐. 이번 몽사는 세자 대군을 얻을 몽사로다."
하며 사대문에 방을 붙어 옥문을 열어 중죄인을 용서하게 하였다. 드디어 열 달이 되어 해산을 하였는데 또 딸이었다. 길대 중전마마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대왕은 길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 전생의 죄가 남아 옥황상제가 일곱 딸을 점지하였구나. 서해 용왕에게 진상이나 보내리다."
옥장이 불러서 옥함을 짜게하여 함 뚜껑에 '국왕공주'라 새기게 했다. 중전마마가 탄식하며 말했다.
"대왕마마는 모질기도 모지시다. 혈육을 버리려 하옵시니, 신하 중 자식 없는 신하에게 양녀로 주시지"
대왕마마는 중전마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버리는 자손 이름이나 지읍시다."
"버려도 버릴 것이요 던져도 던질 것이니 '바리공주'라 지어라."
양 마마의 생월 일시와 아기의 생월생시를 옷고름에 맨 후에 옥병에 젖을 넣어 아기 입에 물린 후 함에 넣었다. 금거북 금자물쇠, 흑거북 흑자물쇠를 채운 후에 신하를 시켜 바다에 버릴 것을 명했다. 앞에는 황천강, 뒤에는 유사강이 흐르는 여울에 한 번 던지니 용솟음하여 뭍으로 다시 나오고, 두 번째 던져도 뭍으로 다시 나온다. 세 번째 던지니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하늘이 안던 자손이라 깊이 가라앉지 않고 금거북이 나타나 지고 간다.
2. 부모와의 재회
이때, 석가세존이 삼천 세자를 거느리고 사해도 구경하고 인간도 제도할 겸 해서 세상으로 나오다가 타향산 서촌을 굽어보니 밤이면 서기가 하늘에 가득하고 낮에는 안개가 자욱한 것이 이상했다.
"목련존자 들어라. 저곳에 하늘이 아는 천인이 있을 것이니, 네가 가서 살펴보아라"
다녀온 목련존자가 석가세존에게 아뢰었다.
"소승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석가 세존은
"네 공부 아직 멀었다."
하시며 돌배를 바삐 저어 가까이 가보니 국왕의 일곱째 공주였다.
"남자 같으면 제자나 삼으련만 여자니 부질없구나."
석가세존은 탄식하였다. 주위를 살펴보니 비리공덕 할아비와 비리공덕 할미가 바랑을 둘러메고 노감투 숙여 쓰고 황천경을 손에 들고 자지곡을 노래 삼아 외우면서 온다. 석가 세존이 묻는다.
"어떤 할아비, 할미가 시름없이 다니는고?"
"저희는 비리공덕 할아비, 비리공덕 할미 입고, 절을 지어 승인공덕, 다리 놓아 만인 공덕, 원을 지어 행인 공덕을 할지라도 옷 벗어 주는 대시주와 부엌 공덕이 가장 크고 젖 없는 자손 젖 먹여 주는 공덕이 제일입니다.“
"여기에 하늘이 아는 자손이 있으니 데려다가 길러라"
석가세존의 말을 듣고 할미가 말했다.
"봄과 가을에는 들에서 머무르고 겨울에는 굴속에 머무는데 어찌 중한 자손을 데려다 기르겠습니까?"
"이 아기를 데려다 기르면 집도 생기고 옷과 밥이 절로 생길 것이니 데려다 길러라."
말을 마친 석가세존은 온데간데없이 바람처럼 어디론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제서야 할아비와 할미는 부처님인 줄 알았다. 함을 굽어보니 국왕 칠공주라 써 있었다. 함 앞에서 효성경과 애정경과 금강경, 법화경, 천지팔양경을 차례로 외우니 함 뚜껑이 열린다. 함 속에 든 아이를 보니 입에는 왕거미가 가득하고 귀에는 불개미가 가득하고 허리에는 구렁이가 감겨 있었다. 아이를 데려다가 물로 깨끗하게 씻겼다. 가사 장삼을 벗어 씻은 아이를 안고 돌아서니 난데없는 초가삼간이 절묘하게 지어져 있다. 비리공덕 할아비, 비리공덕 할미는 거기서 아이를 키우기로 하였다.
아기는 점점 자라나 어느덧 일곱 살이 되니 배우지 않은 학문에도 능통하여 상통천문 하달지리 육도삼략 모두가 무불통지하여 모를 것이 없다. 하루는 아기가 묻는다.
"할미 할아비야, 내 아바마마 어마마마는 어디 계시냐?"
할아비와 할미가 아뢴다.
"아바마마는 하늘이고 어마마마는 땅이로소이다."
"할아비, 할미, 거짓말 마소. 천지가 인간을 골육으로 두던가."
할미는 뜰로 내려가 옷깃을 여민 후 눈물을 흘리며 아뢴다.
"무주고아인 아기씨에게 의탁하려 하였더니 부모를 찾습니까. 전라도 왕대이 아바마마이시고, 뒷동산 옆 넓은 머구나무가 어마마마이십니다."
"할미 거짓말 마소, 금수와 초목도 인간 골육을 두던가, 전라도 왕대는 아바마마 승천하시면 아랫동 윗동 잘라낸 후 두건 숙여 쓰고 짚는 데 쓰는 것이고, 뒷동산 머구나무는 어마마마 승하하시면 아랫동 윗동 잘라내고 두건 숙여 쓰고 짚으라는 것이니 그게 어찌 부모 되겠나."
이럭저럭하여 세월은 자꾸 가고 아가씨는 십오 세의 나이가 되었다. 한편 대왕마마 내외가 한날한시에 똑같이 병이 들어 시녀 상궁들은 걱정이 많았다.
하루는 대왕마마가 상궁을 부르더니
"옛날의 문복이 용하더구나. 가서 점 한 번 쳐 보아라."
하고 문복할 것을 명했다. 상궁이 천하궁의 갈이박사를 찾아가 점괘를 들었다.
"동쪽에는 해가 떨어지고 서쪽에는 달이 떨어지니 양전마마가 한날한시에 승하하리다. 바리공주의 사처를 찾으소서"
상궁으로부터 점괘를 들은 대왕마마는 길게 탄식하였다.
"종묘사직을 뉘게다 전하고 조정 백관은 뉘게 의지할고, 만백성은 뉘게 의탁하고, 시녀 상궁은 뉘게 의지할소냐"
눈물을 흘리다가 언뜻 잠이 들었는데 뜰 가운데에 난데없는 청의동자가 나타나 절을 한다.
"어떠한 동자인데 깊은 궁중에 들어왔느뇨?"
동자가 올라와서 아뢴다.
"양전 마마가 한날한시에 승하하시게 될 것입니다. 지금 사자들이 오고 있습니다."
"조정 백관에 원망이 있더냐? 시녀 상궁에게 원책이 있더냐? 만인에게 원한이 있다더냐?"
대왕이 묻자 동자가 대답한다.
"원책도 아니오. 원망도 아닙니다. 옥황상제가 점지한 칠공주를 버린 죄로 그러합니다."
"그러면, 어찌 다시 회춘하리오?"
"다시 회춘하려면 동해 용왕과 서해 용왕이 있는 용궁에서 약을 잡수시거나, 삼신산 불사약과 봉내방장 무장승의 양현수를 얻어 잡수시면 회춘하리다. 바리공주 사처를 찾으소서"
하고 동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제서야 깨어보니 남가일몽 꿈이었다. 대왕마마는 신하들을 불러 물어보았다.
"약수를 얻어다가 나를 회춘시킬 신하가 있는가?"
"동해 용왕도 용궁이고 서해 용왕은 천궁이고 봉내방장 무장승의 향헌수는 수용궁이라 살아 육신은 못 가고 죽어 혼백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거행할 신하가 없습니다."
신하들이 아뢰는 말을 들은 대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용상을 치며 탄식하였다.
"바리공주 찾는 자는 천금상에 만호후를 봉하리라."
신하들에게 바리공주 찾을 것을 명령했다. 한 신하가 나와 대왕마마에게 아뢴다.
"소신은 대대로 국록을 먹어 국은이 망극합니다. 간밤에 천기를 잠깐 보니 서쪽에 밤이면 서기가 하늘에 가득하고 낮에는 운무가 자욱하니 그곳에 공주가 계신 것 같습니다. 소인이 찾으러 가겠습니다."
그러자 중전마마가
"간 곳도 없이 한번 버린 자손을 어디 가서 찾으리요"
하면서 탄식하였다.
"그리하여도 가려하나이다."
신하는 거듭 청했다.
"그러면 가라"
대왕마마는 어주 삼배를 내린 후에 하직하고 길을 떠나 보냈다. 대궐문을 나서자 어딘지 갈 바를 몰라 신하가 망설이고 있는데, 까막까치가 나타나 고개짓을 하며 길을 인도하고 풀과 나무들도 한곳으로 쏠리며 방향을 알려 인도해 태양 서촌으로 찾아 들어갔다. 마을에 들어가니 월직사자와 일직사자가 나타나 묻는다.
"인내가 나는구나. 그대는 사람인가 귀신인가. 길짐승, 날새도 못 들어오는 곳에 어떻게 왔는가.?"
"나는 양전 마마의 명을 받들고 바리공주를 찾기 위해 생사를 결단하고 왔나이다."
사자들은 신하를 대문으로 안내했다. 쇠문을 두드리며 소리쳐 부르니 비리공덕 할아비, 할미가 나온다.
"귀신이냐 사람이냐? 날새 길짐승도 못 들어오는데 천궁을 범하느냐?"
"저는 국왕마마의 분부로 바리공주를 찾아왔나이다."
바리공주가 나와서 신하에게 묻는다.
"표적을 가져왔는가?"
"아기의 칠일 안저고리를 가져왔습니다. 죄가 많아 국왕 자손을 이 산중에 버렸구나 하시면서 용루를 흘리시며 표적을 주더이다."
바리공주가 표적을 받아보니 양전 마마의 생월생시며 애기의 생월생시가 꼭 같았다.
"그래도 못 가겠구나. 다른 표를 가져오너라"
금쟁반에 정안수를 담고 대왕마마 무명지를 베어 피를 흘리게 하고 아기 무명지를 베어 섞으니 한 데로 합친다. 그제서야 바리공주는
"틀림없는 혈육이니 가겠노라"
고 하며 따라나선다.
"그리하면 금연을 드리릿가. 옥교를 드리릿가?"
공주는 사양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