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그리하오면 거동 시위를 하오릿까?"
"거동시위를 내 어찌 알겠느냐. 그대로 가리라."
바리공주는 자기가 살던 곳을 정리한 후 대궐을 향해 떠났다. 일행은 몇 날을 걷고 또 걸어서야 대궐에 당도했다.
"궐문 밖에 도달하였나이다."
신하가 먼저 들어가 대왕마마에게 아뢰었다.
"그러냐, 궐문에 들게 하라"
바리공주가 대명전에 읍하고 통곡하니 대왕마마는 용루를 흘리시며
"저 자손아 울음을 그쳐라. 네가 미워 버렸으랴. 역정 끝에 버렸도다. 봄삼월은 어찌 살고 겨울 삼삭은 또 어찌 살았으며, 배고파서 어찌 살았느냐?"
바리공주는 울음을 그치며 말했다.
"추위도 어렵고 더위도 어렵고 배고픔도 어렵더이다."
"그래 어허, 저 자손아 부모 목숨 구하러 가겠느냐?"
"아흔아홉 빗장 속에서 청사 흑사 이불에 진주 안석으로 귀하게 기른 여섯 형님네는 어찌 못 가나이까?"
여섯 형님네가 옆에 있다가.
"뒷동산 후원에 꽃구경 가서도 동서남북을 분간치 못하고 대명전도 찾지 못하는데 서천서역을 어찌 갈 수 있겠느냐"
바리공주가 드디어 가겠다고 나섰다.
"소녀는 열달 동안 부모님 뱃 속에 있었으니 그 은혜가 커서 가도록 하겠나이다."
3. 바리공주의 모험
대왕마마는 바리공주에게 비대 창옥, 비단 고의, 고운 패랭이, 무쇠 질방, 무쇠 주령, 무쇠 신을 내려 주었다. 바리공주는 그것을 받아 몸에 걸친 후 대궐문을 나섰다. 나서니 동서를 분간치 못하고 갈 곳도 아득했다. 망설이고 있는데 까막 까치가 날아와서 길을 인도해 준다. 바리공주가 무쇠 지팡이를 한 번 짚으니 천 리를 가고, 두 번 짚으니 이천 리를, 세 번 짚으니 삼사천 리를 간다.
때는 춘삼월 호시절로 백화는 만발하고 시내는 잔잔했다. 푸른 버들 속에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벗을 부르느라 지저귀고 앵무 공작은 서로 희롱한다. 금바위 밑을 보니 반송이 구부러졌는데 석가여래와 지장보살이 바둑을 두고 있다. 바리공주는 나가 재배하였다. 그러자 석가세존님은 눈을 감으시고 지장보살이 말씀하신다.
"귀신인가 사람인가?
날짐승 길짐승도 못 들어오는데 천궁을 범하였구나"
"소신은 조선국왕의 일곱째 대군인데 부모님 목숨 구할 약수 가지러 왔다가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소신의 길을 인도하소서"
그제서야 석가세존님은 눈을 뜬다.
"나는 국왕의 칠공주란 말은 들었지만 일곱째 대군이란 말은 듣던 중 처음이로다. 네가 하늘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리라. 너를 태양서촌에 버렸을 때 잔명을 구한 게 나인데 나를 속일소냐? 부처님 속인 죄는 팔만사천 지옥을 가는 죄이다. 그래도 네가 용하구나. 육로 육천리를 왔으니 험한 길 삼천리가 남았는데 어찌 가려느냐?"
"가다가 개죽음을 당할지라도 가려 하나이다."
석가세존님은 감동한 듯 머리를 연신 끄덕인다.
"정성이 지극하면 지성이 감천이다. 네 말이 기특하니 내가 길을 인도하리라. 낭화을 가져 왔느냐?"
"촉망중이라 가져오지 못했나이다“
석가세존님은 낭화 세 가지와 금주령을 주시며 일러준다.
"이 주령을 끌고 가면 험로가 평탄해지고 대해는 물이 되느니라"
바리공주는 두 손으로 받고 하직 인사를 올린 후 길을 떠났다. 한 곳에 당도하니 칼산지옥, 불산지옥, 독사지옥, 한빙지옥, 구렁지옥, 배암지옥, 문지옥이 펼쳐져 있었다(팔만 사천지옥).
철성이 하늘에 닿았는데 구름도 쉬어 넘고 바람도 쉬어 넘는 곳이었다. 귀를 기울이니 죄인 다스리는 소리가 나는데 육칠월 악마구리 우는 소리 같았다.
낭화를 흔드니 칠성이 무너지고 죄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눈 없는 죄인, 팔 없는 죄인, 다리 없는 죄인, 목 없는 죄인, 귀졸들이 나와 바리공주에게 매달리며 구제해 달라고 애원한다. 바리공주는 그들을 위해 염불을 외어 극락 가기를 빌어 주었다.
바리공주가 이곳을 지나니 또 커다란 바다가 펼쳐 있다. 이곳은 날짐승의 깃도 가라앉는 곳으로 배도 없는 곳이다. 망설이던 바리공주는 부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금주령을 하늘로 던졌다. 그러자 무지개가 생겨 건너갈 수가 있었다.
건너가니 키는 하늘에 닿고, 눈은 등잔 같고 얼굴은 쟁반 같은 무장승이 서 있다.
"사람인가 귀신인가?
열두 지옥을 어찌 넘어오며 바람도 쉬어 넘고 구름도 쉬어 넘고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도 쉬어 넘는 철성을 어떻게 넘어왔는가? 또 모든 것이 가라앉는 삼천리 바다는 어찌 넘어 왔는가?"
"나는 국왕의 일곱째 대군인데, 무장승의 약수를 얻어다가 부모님 살릴려고 왔나이다"
"그대 길 값을 가져 왔는가"
"촉망 중에 못 가져 왔나이다"
"길 값으로 나무 삼 년 하여 주오"
"그리 하오이다."
"삼값으로 불 삼 년 때 주오"
"그리 하오이다"
"물 값으론 물 삼 년 길어 주오"
"그리 하오이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석삼 년 아홉 해가 되니 하루는 무장승이,
"그대의 상이 남루하여 보이나 앞으로는 국왕의 기상이요, 뒤로는 여인의 몸이니 나와 천생 배필이라. 혼인하여 아들 일곱을 낳아 주오."
한다. 바리공주와 무장승은 천지로 장막을 삼고, 일월로 등촉을 삼고, 썩은 나무 등걸로 원앙금침을 삼고 살림을 시작했다.
세월은 또 흘러서 바리공주는 마침내 아들 입곱을 낳아 주었다. 바리공주는 이제 그만 돌아가겠다고 했다.
"부부의 정도 중하지만 부모님께 효행이 늦어지니 바삐 가야겠나이다."
"앞바다의 물 구경을 하고 가소"
무장승이 청했다.
"물 구경도 싫소"
"뒷동산 꽃 구경하고 가소"
"꽃 구경도 싫소.
초경에 꿈을 꾸니 금관자가 부러져 뵈고 이경에 꿈을 꾸니 신관자가 부러져 뵈더이다. 양전 마마가 승하할 꿈이니 급히 가야겠소"
"그리하면 그대가 길어다 쓰는 물이 약수이니 가져가고, 베던 풀은 개안초이니 가져가오. 뒷동산 후원의 꽃은 숨살이, 뼈살이, 살살이 꽃이니 가져가오. 숨살이, 뼈살이, 살살이의 삼색 꽃은 눈에 넣고 개안초는 몸에 품고 약수는 입에 넣으시오"
바리공주는 물을 넣어 짊어지고 하직 인사를 한 후 길을 떠나려 하자.
"그 전에는 혼자 살았으나 이제는 혼자 살 수 없소. 나도 공주 따라 가리다."
무장승도 가겠다고 나섰다. 갈 때는 한 몸이더니 돌아올 때에는 아홉 몸이었다.
4. 부모님의 회생과 무신이 된 바리공주
갈치산 불치 고개 대세지 고개를 넘어오니 피바다에 배들이 떠다닌다.
"염불을 외우고 아미타불 소리 요란하고, 연꽃이 사방에 바쳐져 있고 거북이 받들고 청룡 황룡이 끄는 배는 어떤 밴고?"
바리공주가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물었다.
"그 배에 오는 망자는 세상에 있을 적에 다리 놓아 만인공덕, 원을 지어 행인 공덕, 절을 지어 중생 공덕, 옷을 벗어 시주하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염불 열심히 하고 만인에게 시주하여 극락세계 연화대로 소원 성취하러 가는 배입니다."
그 뒤에 배 한 척이 또 따르고 있어 바리공주가 물어보았다.
"풍류로 잔치하고 화기가 만발하여 웃음으로 열락하고 고운 향기가 가득하여 맑은 기운을 띠고 오는 배는 어떤 밴고?"
"그 배에 오는 망자는 세상에 있을 적에 나라에 충신이요 부모에 효성하고 동기간에 우애 있고 일가에 화목하고 동네 사람에게 유순하고 가난한 사람 구제하며 선심으로 평생을 살다가 죽은 후에 초단에 사제 삼성 지노귀굿 받고 이단에 새남굿 받고 삼단에 법식 받고 시왕제 사십구제 백일제 받아 극락세계에 왕생극락하러 가는 배로소이다."
"또 그 뒤에 오는 활 든 사람, 창 든 사람이 둘러있고 머리 풀어 산발하고 의복도 벗기고 결박하여 울음소리 가득하고 모진 악기가 충만하니 그것은 또 어떤 배인고?"
"그 배에 오는 망자는 세상에 있을 때에 나라에 역적이요, 부모에게 불효하고, 동기간에 우애 없고, 일가에 살이 세고, 동네 사람에게 불순하고, 시주도 못 하고, 남의 험담 잘하고,남의 말 엿듣고 역매흥정하고, 이간질하여 싸움 붙이기와 사람 죽이기 심하고, 탐이 많아 작은 되로 주고 큰 말로 받고, 짐승 많이 죽이고 불법을 비방하였기에 화탕지옥 칼산지옥으로 가는 배로소이다."
또 한 배가 보이는데 그 배는 불도 없고 달도 없고 임자도 없고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저 배는 어떤 밴고?"
"그 배에 있는 망자는 무자귀신과 해산길에 죽은 망자와 시왕제 사십구제 지노귀 새남도 못받고 길을 잃고 세계를 몰라 임자없이 얹혀 있는 배로소이다."
바리공주는 크게 슬퍼하며 염불하여 그들이 극락왕생하도록 해주었다. 바리공주가 유사강을 지나 세상으로 나오니 소여 대여가 나온다. 산에서 나무를 베는 초등들에게 어떤 연고의 소여, 대여냐고 물었다.
"댓가를 받아야 말하겠오"
바리공주가 아기 업었던 수건, 일곱 자 일곱 치 고를 풀어서 주니 초동들은 그제서야 대답한다.
"양전 마마 한날한시에 승하하셔서 북망산천으로 가시는 상여로이다."
그제서야 명정을 보니 임금 왕자가 뚜렷했다. 바리공주는 머리 풀어 산발하고 무장승과 일곱 아들을 감춘 후 상여 앞으로 나가 소여꾼과 대여꾼을 물리게 하고 관을 뜯어서 양전 마마를 묶은 안 매 일곱 매, 밖 매 일곱 매, 소대렴을 풀고 좌수와 우수를 편안하게 한 후에, 바리공주는 조정 백관과 시녀 상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전마마의 입에 서천 서역에서 가져온 약수를 넣고 또 개안수를 양전 마마의 품에 넣고 또 뼈살이 꽃, 살살이 꽃, 피살이 꽃을 눈에 넣으니, 양전마마가 후 하고 긴 숨을 내쉬며 기지개를 키고 일어나 앉으면서
"이게 잠결이냐 꿈결이냐? 시녀 상궁들이 무슨 일로 다 모였느냐? 앞바다 구경하고 왔느냐? 뒷동산 꽃구경 갔다 왔느냐?"
조정 백관들이 아뢰었다.
"버렸던 자손이 약수를 구해 와서 양전마마 회춘하셨나이다. 바삐 환궁하사이다."
나오실 적에는 곡성을 하며 인산이었는데 돌아가실 제는 거동 시위가 분명했다. 상궁 시녀가 뒤따르고 별감이 시위하여 환궁하는데 녹의홍상이 꽃밭을 이루어 나라 안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환궁하여 정좌한 후에 대왕마마는 바리공주에게 물었다.
"이 나라 반을 베어 너를 주랴?"
"나라도 싫소이다"
"그러면 사대문에 들어오는 재산 반을 나누어 너를 주랴?"
"그도 다 싫소이다. 그간 저는 죄를 지어 왔나이다."
"무슨 죄를 지어 왔는가?"
"부모 위해 약수 구하러 갔다가 무장승을 만나 일곱 아들을 낳아 왔나이다."
"그 죄가 네 죄가 아니라 우리 죄라"
대왕마마는 무장승 입시할 것을 명했다. 잠시 후 신하들이 돌아와 아뢴다.
"광화문에 사모뿔이 걸려 못 들어오나이다."
"옥도끼로 찍고 들어오게 하라"
무장승이 입시하니 대왕마마는 깜짝 놀라
"몸 생김이 저만하고 일곱 아들 있다 하니 먹고 살게 하여 주마"
하자,
"비리공덕 할아비와 할미도 먹고 입게 제도하여 주옵소서"
하고 바리공주는 자신의 양부모인 비리공덕 할아비 할미의 은덕을 아뢰었다. 대왕마마는 모두에게 골고루 은덕을 베풀어 제도해 주었다. 무장승은 산신제 평토제를 받아 먹고 살게 점지하였으며, 비리공덕 할미는 지노귀 새남굿을 할 때 영혼이 저승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 가는 가시문과 쇠문, 시왕문에 지켜 섰다가 별비를 받아 먹고 살게 점지하고, 바리공주의 일곱 아이들은 저승의 십대왕이 되어 먹고 살게 점지하였다.
그리고 바리공주는 인도국 보살이 되어 절에 가면 만반 공양을 받고, 들로 내려오면 큰머리 단장에 은아몽두리 입고 언얼도와 삼지창, 방울과 부채를 손에 든 무당이 되어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도록 마련하였다.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