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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향 고전방

고금소총(106-110화)

작성자오솔향|작성시간26.06.21|조회수25 목록 댓글 0

제106화

저걸 깔아뭉갤까(美女轢戱)

 

어느 한 귀공자가 나그네 되어 남방에 놀적에 동문수학하던 벗이 수령으로 있는 유명한 어느 고을에 당도한 즉, 홍분(紅粉; 기녀)이 만좌(滿座)한 가운데 진수(珍羞)가 그들먹하게 차려진 잔치상을 대접받게 되었다.

 

그러나 마침 그날이 그 부친의 기일(忌日)인지라 굳이 사양하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는데, 수청 기생이 들어와 옆에 앉거늘 촛불 아래서 바라보니 그 아름다움이 이루 형용할 수 없었다. 귀공자가 속으로 은근히 생각하되,

 

"기일이고 무엇이고 저것을 깔아 뭉갤까? 아니면 윤리에 어긋나니 그만두랴?"

 

하고 밤이 깊도록 생각하며 결정치 못하다가, 밤중에 드디어 이불 속으로 수청 기생을 끌어들여 양물(陽物)을 음호에 꽂았다가 곧 빼며 가만히 소근 거리되,

 

"오늘 이같이 일을 치르다가 그만두는 것은 선친(先親)의 기일 때문인 데, 그대는 이 법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고 묻자, 기생이 옷을 떨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르되,

 

"도둑이 이미 집에 들어왔다가 물건을 훔치지 못하고 도망간다고 능히 도둑의 이름을 면할 수 있으리오"

 

하고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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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처첩이 한방에 살다(妻妾同房)

 

기자헌이 일찍이 임진왜란 피난 시 여염집에 살았는데 오성 이항복이 그를 찾았을 때에, 기자헌이 말하기를,

 

"사는 집이 매우 좁아 아내와 첩이 같은 방에 사니 매우 구차하다."

 

고 하였다. 이에 오성이 한 수의 시를 지어 그에게 주었는데, 그 시에서 왈(曰)

 

不熱不寒二月天 _덥지도 춥지도 않은 2월의 날씨에

一妻一妾正堪憐 _아내 하나 첩 하나, 정녕 사랑스러움을 이기기 어렵겠구나.

鴛鴦枕上三頭幷 _원앙 베개 위에는 세 개의 머리가 나란하고

翡翠衾中六譬連 _비취 이불 속에서는 여섯 개의 팔이 이어 있고

開口笑時渾似品 _입을 열어 웃을 때는 서로 섞이어 품(品)자와 비슷하고

側身臥處恰如川 _몸을 기울여 누운 곳은 흡사 내천(川)자와 같고

然忽破東邊事 _겨우 동쪽 변방(처)의 일을 홀연히 끝내고 나면

又被西邊打一擊 _또 서변(첩)을 쳐서 일격을 가해야 하겠구나.

 

주) 기자헌(奇自獻)(1562-1624) : 조선 선조 때 등용되었으며, 광해군을 즉위시키는 데 공헌하여 영의정이 되었으나 이괄의 난때 반란군과 내응할 우려가 있다하여 사사(賜死)됨. 후에 이원익 등의 상소로 복권됨.

 

주) 오성 이항복(鰲城 李恒福) (1556-1618) : 호는 백사(白沙), 오성부원군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로 잘 호송한 공로로 봉군(封君)이 되었으며 임진란 뒤의 수습에도 큰 공을 세웠음. 임진왜란 때 5번의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영의정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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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그 글은 어느 책에 있습니까?(厥書何在)

 

옛날에 한 신랑이 방사(房事)의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매 신부 아버지인 장인이 그것을 민망히 여기니 신부 아버지의 생질이 외삼촌인 신부 아버지에게 일러 말하기를,

 

"제가 신랑에게 방사의 방법을 가르쳐 주어도 좋겠습니까?"

 

하고 여쭈니 신부 아버지가 반가워하며 이를 허락했다. 이윽고 그 생질이 신랑에게 말하기를,

 

"내게 화촉동방편(華燭洞房篇)이 적힌 책이 있는데 밤중에 창밖에서 그것을 읽을 터이니 자네는 그에 따라 시행하게."

 

하니 신랑은 그 말에 따라 방 안에 있고, 생질은 큰 소리로 창밖에서 읽어 가로되,

 

"옷을 벗어라"

 

하니 신랑이 따라 하였다(脫衣新郞依其言). 또 소리치기를

 

"요에 눕혀라."

 

하고(又呼臥褥), 또 소리치기를

 

"두 다리를 들어라"

 

하고(又呼擧兩脚), 또

 

"음혈에 양물을 넣어라"

 

한즉(又呼陰穴納陽物) 신랑이 그 말뜻을 몰라 가만히 물어 가로되(新郞不知其言暗問曰)

 

"음혈이 어느 곳이요"

 

하니(陰穴何處耶) 생질이 웃으며 말하기를

 

"배꼽 아래 세 치(三寸)에 이르되(甥笑曰臍下至三寸) 항문에는 아직 이르지 아니한 곳에(未至糞門) 도끼로 찍은 듯한 구멍이 있으니 그곳에 양물을 넣어라"

 

하니(有斧打穴連陽納焉) 신랑이 그 말과 같이 한 후 신부의 음혈을 어루만지며(新郞如其言撫中孔) 또 묻기를

 

"양물을 넣은 후 또 다른 가르침이 있습니까?"

 

하거늘(又問曰納陽後果有敎乎) 생질이 말하기를

 

"양물의 나아가고 물러감에 절도가 있게 하라"

 

한즉(甥又呼曰進退有節) 한참 후 신랑이 크게 즐거워하며 말하기를(郞大樂曰)

 

"이제는 번거롭게 읽지 마세요. 드디어 묘리를 깨달았습니다(不頻煩讀吾覺妙理矣).“

 

이윽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신랑이 생질에게

 

"그 화촉동방편이라는 글은 도대체 어느 책에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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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장롱 속에 갇힌 목사(籠禁牧使)

 

옛날에 원주에 유명한 기생이 있어 원주로 부임하는 목사(牧使)들마다 기생의 수완에 몸이 녹아 업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였다. 한때 이를 심히 못마땅해하는 중앙의 관리가 있었는데, 여자에게 정신을 빼앗기는 자는 바보라고 무시하고 멸시하였다.

 

마침내 이 관리가 원주목사로 부임해 가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벼르고 있었다. 관리가 원주에 도착하기 전에 이방이 그 기생을 불러 꾀를 묻자 기생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 사또를 몸뚱이 채로 옷장에 넣어 관아에 바치겠다"

 

고 큰소리쳤다. 관리가 원주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자 기생은 일부러 말을 원주관아 내에 풀어 화단과 마당 근처의 꽃과 화초를 다 뜯어 먹게 만들었다. 화가 난 신임 원주목사가 말 주인을 데려오라고 하자 기생이 과부인 척 소복을 입고 나타났다.

 

목사의 추궁에 과부로 분장한 기생은 남편이 집에 없어 말의 관리가 소홀했음을 인정하면서 자못 설움에 복받친 듯 눈물을 찍어누르는 데 목사가 내려다보니 그 자태가 절색인지라 한눈에 반했지만 짐짓 아닌 척 하였다. 그리고 과부의 사정을 감안하여 죄를 묻지 않고 방면하였다.

 

며칠이 지나 과부로 분장한 기생이 은혜에 보답코자 한다는 명분으로 주안(酒案)을 갖추어 원주목사의 처소를 방문하자 목사는 과부와 밤늦도록 수작하다가 마침내 정을 통하였다. 이리하여 밤마다 몰래 정을 통하더니 하루는 여인이 목사에게 자신의 집으로 오기를 청하였다.

 

마침내 목사는 남의 눈을 피해 밤중에 몰래 과부의 집에 들었다. 그리고 옷을 벗고 여인과 즐기는데 바깥에서 갑자기 우렁찬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지금까지 베풀어 준 자신을 배신한 여자를 용서치 않겠다며 화난 음성으로 고래고래 소리치니 놀란 목사는 피할 곳을 찾다가 창졸간에 여인의 장농 속으로 피했다.

 

방문을 성큼 열고 들어선 사내는 자신을 능욕한 여인을 벌주겠다며 그 증거로 장농을 들고 가 관아에서 죄를 묻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기생은 거짓으로 그것만은 안 된다고 매달렸다.

 

그러나 사내가 강제로 옷장을 짊어지고 나가 원주 관아의 앞마당에 내려놓고 장문을 여니

장농 속에서 발가벗은 원주목사가 나오매 후일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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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강남까지 가려면(江南欲行)

 

시골에 사는 한 노파가 귀엽게 기른 외동딸을 혼인시키고, 첫날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신랑 신부가 잠자는 방문 앞에 앉아서 얘기를 엿들으며 방안의 거동을 살피고 있었다.

 

신랑 신부는 들여놓은 술과 음식을 먹은 다음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었다. 곧 신랑의 조종에 따라 딸이 호응을 하는 데,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딸은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그 황홀하고 신비스러운 감동에 젖어 가벼운 신음소리도 내면서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한참 그러다가 딸이 신랑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서방님! 너무 좋네요. 이런 감동이라면 곧바로 쉬지 않고 멀리 강남(江南) 땅 까지도 단숨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신랑은 이렇게 응수하는 것이었다.

 

"아니 여보! 강남이 얼마나 먼데? 강남까지 쉬지 않고 가려면 배가 고파 어쩌려고? 아마 그 먼 강남까지 가려면 배가 많이 고플걸?"

 

딸은 신음소리를 멈추고는 이렇게 받았다.

 

"서방님! 배고픈 것은 걱정 없습니다. 아주 좋은 수가 있으니까요. 우리 어머니에게 광주리에 밥을 담아 이고 뒤따라오시라고 하면 되거든요."

 

이렇게 속삭이는 딸의 정감이 서린 목소리를 듣고 노파는 매우 흐뭇해했다.

 

이윽고 이튿날 아침 노파가 딸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평소와는 달리 밥을 두 그릇 먹는 것이었다. 이를 본 딸이 놀라면서,

 

"엄마! 왜 갑자기 밥을 두 그릇씩이나 먹어? 배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난 몰라 엄마!"

 

하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파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네가 신랑하고 누워서 쉬지 않고 강남까지 갈 때 말이다. 밥 광주리를 이고 뒤따라가려면 힘에 부쳐 어찌 견디겠니? 그래서 미리 밥을 두 그릇씩 먹어 두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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