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함 해 봣써요..
만약에
저렇게 꼭 같이 생긴년이 ..니 네 엄나 미국년이라며??...라고 빈정거렷고
이것에 대고 내 엄마의 족보가 이렇다며 눙깔똥그랗게 뜨고 저리 반응하는 한 유력 정치인의 모습이
cnn를 타고 미국에 퍼저..... 미국인들이 저것을 봣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할까
-한국에서는 미국인 이다는 것이 이렇게 거대한 치욕이다...
-우리 처럼 총기소유가 자유로왓다면 그들은 벌써 총질을 햇을 것이다..
다른소린 이런 비됴가 중국에 까지 퍼지지 않앗스면 좋겟써요..
중국에서도 태극기 부대 만만쟎거덩
중국의 지도부, 주류는 말짱 하다는 것이 저런것에만 미처 날튀는 한국의 지도부 주류와 다르다는 안식처가 잇긴 하지만..
니들이 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 괴물들을 사육햇다고 햇지??
다른소린 이런 자유 민주주의체제 자체가 싫고
우리시대의 반공에 미처 날튀면 미친개때들 보다
이 민주주의에 미처 날튀는 20대 미친개들이 더 싫거덩.....
'조선에서의 중국인 테러 사건' 을 ai에게 물어봣더니 아래와 같은 답을 줫다.
AI 개요
'조선에서의 중국인 테러 사건'은 역사적 사건과 최근의 민폐 논란 사건으로 나뉩니다.
1. 1931년 화교 배척 사건 (역사적 사건)
1931년 7월 중국 지린성 만보산 사건의 여파로, 일제의 조장 아래 조선인들이 평양, 인천,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중국인(화교)을 상대로 대규모 폭행 및 학살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우리역사넷 +2
2. 관광객의 공공장소 무단 용변 사건 (최근 논란)
최근 한국을 방문한 일부 중국인 관광객들이 국가 문화유산 및 공공장소에서 상식 밖의 행동을 벌여 사회적 공분을 샀습니다. 대표적으로 경복궁 돌담길 및 한라산 등산로에서 아이나 성인이 무단으로 대소변을 보고 방치하여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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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은 태러사건 맞는데
2가 왜 테러사건이 되는지 모르겟네....
그래서 격분한 대안망꾺 사람들이 그 중국인을 때려 조잣다는 것이야 뭐야?
그런일에 중국정부는 어떤 반응을 내 놓앗지??
돌연 궁금해 지네....짱꼴라가 이런 테러사건을 그냥 지나갓다는 것이..
또 다시 일제에 독박을 씨웟습니다.,,AI 조차도 일제 독박씨우기 근성이 잇나봐..
조샌징 쥐쇗끼때들의 일제에 독박씨우기도 DNA야....
특히 민족미친개때들의 DNA..노무현교 미친개때들..그리고 AI까장..
이것이 AI의 검색의 오류라고 할수 없는 것이...우린 너무 너무 많은 이런 경우를 알고 잇기 때문입니다.
혀튼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눈꼽 만큼이라도 조선인들이 부끄러운 부분은 다.....일제 강점 때문이라고 뒤집어 씨운것을
다른소린 국민학교 시절 부터 너무 너무 너무 많이 듣고 보고 공부 햇습니다..
한국의 분단과 전쟁과 군사적인 대립까지도 다 일제 강점 때문이라고 하쟎어.....이것이 주류 이론이고
내가 한인것이 단군 할아버지 때문이라는 격이니...
그냥 돌것써......씨발!!...
광주이후 ...모든것을 다시 보기 시작햇고
우리가 그리도 평화를 사랑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종자인가??.....도 함께 생각하기 시작햇고
결론은 너무 쉽고 간단햇습니다..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 햇지요?
누구라도 어떤 특정환경에서는 다 악귀가 될 수 잇다는 것인데
이것이 꼭 독일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경우가 아니고, 영국도 프랑스도 미국도 일본도 조샌징도..
심지어는 흑인 노예들에게도 꼭 같이 적용되는 인류 보편적인 정서라는 것이지요.
조선인들의 악질성이 우리가 그리도 경원해 맞이 않는 쩍팔이 놈들의 악질성에 결코 열등하지 않습니다.
안심하시라..
해방이후 미군정과 이승만이 주도 하여 벌린 "대 민족 학살 작전" 를 생각해 보세요
45년 해방 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 최소 10만에 달하는 한인들이 도륙당햇습니다.
여기엔 미국에서 수입한 할렐루야 개독교가 범죄의식을 희석 시키고 오히려 학살에 대한 정신적인 용기를 주엇고
사후 면죄부 역할을 하엿습니다....
-난 천당간다...11조 냇다..
-활뢜류우야...........취지지지지
개독교는 종교가 아니고 당연히 이념이며, 극단적으로 사악한 악 입니다..
개독교의 번식과 한인들의 악질성은 절대적인 상관관계를 갖고 잇습니다..
이는 꼭 한인들만도 그런것이 아니고....혀튼 개독교가 들어가면 사람들은 다 미친던지 악귀가 됩니다.
미국을 보세요.
해방후 미제들이 개독교가 아닌 이슬람을 갖고 들어 왓다면, 그리도 악질적인 학살극이 가능 햇을까....는 생각도 들게 하는 것이지요.
이승만이 미국에서 개독교가 아닌 이슬람을 받아들엿다면, 개독교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리도 악독하고 악질적인
대민 학살극을 자행 할 수 잇엇을까??
이승만이 타고난 악귀로는 보이지 않쟎어??...
개됵교 말고 이승만과 그 일당들의 악질성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잇나?
아래는 나무위키에서 뽑은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화교배척사건, 1927년 화교배척사건, 1931년 화교배척사건 문서 참고.
1927년~1928년 사이에 중국의 은값은 폭락했고 중국에서 동란이 일어나면서 중국인의 조선 도래가 크게 늘어났다. 1927년 2월 25일에는 중국인 800명이 들어오더니 이후 더욱 증가해 3월까지 들어온 수는 14,000여 명에 이르렀고 4월 한 달 동안에는 5,000명이 조선에 들어왔다. 7월 중 신의주시를 거쳐 들어온 화교의 수는 2,605명에 이르렀고 해가 바뀐 1928년 3월 그믐까지 700명이 들어와 평양 일대의 노동계를 위협했다.[1]
1928년 '평안수리조합'에서는 '조선인 노동자는 게으르고 결심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쫓아내고 대신 화교 노동자를 고용했다. 1929년 평안북도에서는 화교 노동자만 고용하는 사례들이 여러 차례 거듭됐다. 평북수리조합공사(平北水組工事)와 다사도(多獅島) 축항공가현장에서는 화교 노동자만 고용하자 조선인 노동자들이 총독부와 도당국(道當局)에 진정서를 제출해 평안북도가 각 공사장에 시정할 것을 명했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2]
1931년 화교배척 사건 직전 평안남도 지역에선 조선인 노동자와 중국인 노동자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3]
국제조사에 따르면 1925년과 1930년의 5년 사이 평양의 화교 인구 증가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조선인 증가율은 66.8%, 일본인 증가율은 14.5%인데 화교 인구 증가율은 무려 111.8%로 조선인과 일본인의 증가율을 압도했다. 1930년에 평양 부내 1천 명 중 25명은 화교일 정도였고 그만큼 조선인과 화교의 접촉은 많아졌다. 1928년 6월 평남 평원군(平原郡) 동두면(東頭面)의 평안수리조합(平安水利組合) 공사에서 조선인 노동자와 중국인 노동자 간 충돌이 일어났고, 그 이후에도 평안남도에선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의 충돌이 자주 일어났다.[4]
그런 상황에서 전국에서 화교배척사건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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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데쟈뷰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런 상황이 지금의 이민자 사냥판을 벌리고 잇는 미국의 상황이나
미국만큼 악질적이고 구체화 되진 않앗지만, ...니 에미 화교지?? ...라고 빈정거릴 수 잇는 정신상태나
그리고 그런 싸움에 대고 ..우리 의제 아니니 꺼지라...며...태극기 들고 깽깽거려 되는 동종동질의 민주주의 괴물들의 모습에서
어떤 유사함 같은 것이 안 느껴집니까???
이게 대체 나찌놈들과 무슨 차이가 잇나...... 그런 느낌 안 들어요??
참정권 보장??
개,,,죶지나 처 까시고
===1931년 7월 4일 오후 6시 평양 이문리 길가에서 조선인 3명이 지나가던 중국인 2명을 구타했다. 일본 제국 경찰은 이를 제지했고 이때만 해도 큰일은 없었다. 그 날 밤 평양 중국 요리집 동승루에서는 조선인 20여 명이 달려가서 "굳게 닫아걸은 문을 열라"고 소동을 일으켰다.[5] 7월 4일 저녁 진남포(鎭南浦)의 중국 영사 서수(徐隨)는 경성과 인천에 배화[6]사건이 일어난 걸 알고 5일 새벽 평안남도와 황해도, 두 도청의 경찰부장과 평양경찰서장에게 전문을 보내고 진남포 경찰서장과 면담하여 화교와 지역 상회를 보호해 줄 것을 요청했다. 5일 오전 11시 평양경찰서 경찰서장 안도(安藤) 고등계주임은 평양상회 상무위원 장경현(張景賢)에게 이렇게 말했다.
평양에서 격렬한 사건이 벌어졌던 7월 5일 밤 치안 책임자들은 연회에 출석하는 바람에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8] 그리고 안도 주임의 말과는 다르게 밤 11시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손전등과 곤봉, 칼, 도끼, 돌 따위 흉기를 들고는 조를 나눠 화교를 살상하고 화교들의 가게와 집을 파괴, 약탈하였으며 불태워 버렸다. 주일공사가 보기에 군중은 조직이 잘 갖춰진 집단처럼 보였다. 이러한 군중들은 새벽까지 이어졌으나 일본제국 경찰은 무장을 하지 않았기에 제대로 막지 못했다. 7월 8일 기준으로 사망자는 109명, 부상자가 163명, 생사불명자 63명이었다.[9]
이런 사건의 진행사항 중 어디에서 "일제의 조장"을 추정해 볼 수 잇지요??
일제의 무능이라면 또 모르겟써.....선관위 무능 처럼..
이런것은 참 잘들 알고 잇더라고..............
돌것써 증말!!
이놈의 민족주의,,,,,이가 득득 갈린다니까..
개 돼아쥐 쥐쇄끼 심지어는 문재인이 같이 해골만 텅텅빈 무식한 쥐쇗끼도 "위안부"는 다 알고 잇더라고...염뵹
영화를 만들고 어짜고 ....실로 가간이야 가간..
다른소린 단 한번도 위안부 시위에 가지 않앗다고 햇지요?
야들이 정말 위안부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의 문제를 풀어주기 위한 것으로는 도무지 보이지 않고
이미 노골적으로 정치화 되어 날튀는 그 광기가 싫고...그 민족주의란 배타성과 선택성이 싫고...그래서 그려,,
그 근방에도 가기 싫어
지깐 쇗끼들이 언제 부터 위안부를 알앗다고 서니......구역질 나게 ...나중에 뚝 튀어나와 유별나게들 지뤌리야...
그동안 민족 팔아..위안부 팔아 ....잘 해 처 먹 엇 지....뭐..
어떤년은 국회의원까지 해 처 먹엇고..
===중국 상해 시사신보(上海 時事新報)는 이렇게 보도했다.
시사신보(時事新報)는 당시 중국에서 발행되는 신문 중에서 동삼성 민보(東三省民報), 성시보(醒時報)와 함께 반일 색채가 제일 강한 곳으로 평가받는다.[19] 그런데도 일본제국 경찰이 부상당한 것을 보도했는데 그만큼 사건이 격렬했음을 알 수 있다.
니들도 치면 한걸레가 윤석열을 두둔한 것으로 보면되..
===한 일본인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세 소요 사건(3.1 운동 - 정병욱) 때 일본 민간인으로 살해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살해하면 큰일이라는 것을 조선인 폭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소동(반중국인 폭동 - 인용자) 에서 죽은 자가 많은 것을 보면 약자에게는 멋대로 잔학하게 하면서 강한 자에는 약해진다는 것일까』
31운동이 평화 운동이다는 주장다 알고 잇지요?(...이런것이 왜 자랑거리인지 모르겟써..)
그런데 3.1운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후 폭력화 되엇다고 햇지요?
안성에서는 대대적인 일본인 테러가 잇엇습니다...
이들은 다 독입유공자가 되엇고, 그래서 안성은 단일지역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해괴한 기록의 동네가 됫지요.
31 운동의 평화노선에 대한 반성이 무장투쟁으로 발전 하엿고,
평화로은 만세 운동따위로는 할 수 잇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반성이 비로써 무장을 하게 만들엇습니다.
그 무장한 조선인들과 일제와의 첫 무력 충돌이 봉오동 전투이고...이후 청산리 까지 이어졋쓰며
동북항일연군은 처음 부터 무장투쟁으로 시작한 독립운동입니다...
김일성은 여기서 항일투쟁을 통해 거대 정치인으로 성장합니다.
조샌징 쥐쇗끼때들의 근성을 저 일본인의 말 만큼 잘 표현한 것이 잇을까??
그런데 전혀 실망하지 마시라.
우리만 그런것이 아니고....세계의 모든 종들이 다 그런다.....이런것은 보편적인 종의 특징이라고....응??
이 씨발놈들아..
===「유방이 양쪽으로 잘려나가고, 임산부도 참혹하게 살육당했으며 심지어 땅바닥에 엎어져 우는 화교 또한 밟혀 피떡이 되었다」[2
이런것도 광주항쟁때의 군발이들 모습과 너무 같지요?
유방 도려래고 임산부에 유별나게 가혹한 것도 조샌징 쥐쇗끼때들의 DNA인가?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일본이 항복하고 나서 중국인들의 보복을 피해 허둥 지둥 도망가는 한인들의 모습으로 끝을 맺씁니다.
이책은 쓰레기 라고 햇지요?
조정래는 작가의 양심 보다는 민족의 광기를 선택.....처음 부터 끝까지 내용을 비틀엇습니다.
이 책에서 조샌징들은 일제에 이용당한 어리석고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으로 내내 그려지지요.
삶은 돼야지가 덜뻑 일어나 웃다 되질 일입니다.
조샌징들은 지배국가 일본보다 훨씬 더 간악하엿고 야비 하엿고 폭력적이엇습니다.
쩍팔이들에 지배 당한 2등 종자들의 그 열등을 중국인들에게 마구 잡이로 푼 것이지요.
갱상도 쥐쇗끼대들의 전라도 사냥질 정도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니들 조샌징 쥐쇗끼때들의 종자의 품질이...
미안 하지만 니들이 생각하고 잇는 것 보다 ....훨씬...퍽 훨씬 개 죶지란다......
뭐 알고나 민족이니 뭐니 지뤌들을 떨라고 .......응??
조상의 은덕에 힘입어...또는 너무 너무 운이 좋아..
때 마침 중국혁명이 일어낫고....야들이 대체 무슨 판단으로 중국공산당 편을 들엇는지 모르겟지만
어쩟던 중국공산당을 선택 하엿고,
중국 공산당은 과거는 묻지 않겟다며 혁명의 동참을 요구 햇고 혁명이후 그에 상응한 보상-민족 자치-을 약속 햇습니다.
그리고 혁명이후 이들의 약속을 지켜졋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것이 "조선족 자치구" 입니다.
===. 옛날부터 평양 사람은 날쌘 동작과 거친 성격으로 이름이 나 있다. 안중근을 비롯하여 많은 자객이 이 지방에 서 나왔다. 경성, 인천의 소요에 자극 받은 다혈질의 평양사람은 하룻밤에 100리를 뛰어 다니며 이 거리에서 중국인을 증오(이 잘못된 증오!)하는 소리를 높였다.
진짜 재미나는 것은, 이들 중국공산당에 합류한 만주일대의 조선인들이...중국인들에게 퍼 부엇던 그 폭력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어마 어마한 폭력성-전투력-을 보엿다는 것인데,,
중공군 사령관 "임표"는 이 조선인들의 전투력을 보고는 ...저들이 대체 왜 저리 잘 싸우는가??... 그 저의를 의심할 지경이엇습니다.
혀튼 그들은 어마 어마한 무장집단으로 변신 하엿고, 전투마다 혁혁한 전과를 세워 중국공산당의 사랑을 듬북 받앗습니다.
그런데 화북지방의 평정이 끝난후 전선이 장강까지 내려 갓을때 이들은 또 다른 엄청난 변신을 한 것이니..
아예 꿈쩍도 안해.....그야 말로 식량만 축 내는 밥충이가 되 버렷쓰니
중국 쩌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 조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일.............이라는 생각으로 의도적인 태업을 한것.
임표는,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모택통에게 편지를 보네 이 암짝에도 필요없는 조선군들의 본군 송환을 이야기 햇고
이들이 그 무장 그대로 대규모로 조선으로 이주, 북한인민해방군의 주력이 되엇고
이들이 한국전쟁때 38선을 넘은 그 무적의 북괴군의 주력이 되엇습니다.
이들은 죄다 조선인이기 때문에 협정에도 위반되지 않앗고, 본국 귀환이 됩니다.
해방후 임시정부 우익인사들이 자신들이 소지하고 잇던 권총 한자루 소지 하지 못하고
개인자격으로 쓸쓸히 귀국한것과는 너무 차이가 나고,
그들은 당당하게 무장한 그대로 압록강을 넘어 열열한 인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것이지요.
AI 개요
북한학의 권위자인 고(故) 서동만 상지대 교수의 일본인 멘토이자 대학원 은사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입니다. [1, 2]
- 학문적 인연: 서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론을 전공했으며, 와다 하루키 교수의 지도 아래 북한 연구의 역작으로 꼽히는 박사학위 논문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를 완성했습니다. [1]
- 추모와 깊은 교류: 두 사람은 사제지간을 넘어 학문적 동반자로 깊이 교류했습니다. 2009년 서 교수가 세상을 떠난 후, 와다 교수는 유족 및 지인들과 함께 추모문집 발간에 참여하며 제자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1, 2, 3]
와다 하루키는 한국전쟁을 중국혁명의 연장으로 분석한 근거가 그런 것입니다.
한국 전쟁을 김일성의 통일 전쟁 보다는 중국 공산주의 혁명의 수출, 또는 주변국가로의 확대 라고 분석한 것이지요.
만약에 해방후 분단이 되지 않앗다면,
비록 분단은 되엇더라도 한국전쟁이 없엇다면,
한국전쟁이 잇엇다라도 3년씩이 끄는 악질적인 파괴전쟁이 아니엇다면,
한국전쟁이 3년이나 끈 악질적인 파괴전쟁이엇다 하더라도, 이후 정권들이 한국전쟁을
자신들의 권력의 수단으로 악용하지 않앗더라면,
이 시절 만주인들이 왜 국민당이 아닌 공산당을 선택 햇는지에 대한 연구가 잇엇을 것입니다.
해방후 조선으로 돌아왓던 임정요인들-우익들-은 이곳에서 단 한명의 동조자 조차도 데려 오지 못하고 나 홀로 쓸쓸하게 귀국하엿지요.
그들은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햇을까??
이미,,,만주지방의 조선인들의 정서엔 공산당에 우호적이엇던 흐름과 감성이 존재 햇다는 것인데
지금은....중국인들의 이야기가 되엇지요......우리와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는..
오늘날의 북한도 이젠 그들의 이야깁니다.....우리완 아무 상관없는
한때엔 한 나라로 살앗던 아련한 과거의 회상일 뿐이지요..
그때 그들이 "자유 민주주의를 선택햇다면, 그래서 국민당 장개석 편에 섯더라면,
중국 혁명이 끝난후 그들이 살아 남을 수 잇엇을까??
중국 공산당은 자유 민주주의자들 처럼 멍청하지가 않습니다...그들은 머리를 쓰는 두뇌집단입니다.
그들이 인민군을 동원하여 제노사이드를 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고
중국 인민들의 조샌징들에 대한 적개심을 이용햇겟지요..
싸그리 도륙질을 내 버렷을 것이고....그 명분은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사악한 이종 종자들의 중국영토에서의 제거" 라고 붙혓겟지요.
다른소린 운발이 억수로 좋앗다고 말 하지만,
운발도 사람의 선택에 따라 달라집니다....
다른 이유가 잇을 것입니다...지금은 전혀 관심도 없고, 알 수 도 없는...
1978년 민주화 이후 태어나서 사육되고 잇는 20대 민주주의 괴물들에게선
우리 세대가 갖지 못한, 제어되지 않고 자유롭게 사육된 종들 특유의 광기가잇습니다...이것이 새로운 DNA인 것이지요.
야들을 보면...그냥 껍질만 노란 미 양아치 쇗끼들을 보는 것 같아요..
이런것들이 우리의 아들 딸- 손자들이지만- 이란 것이 으시시시 합니다.
이준석에게...니네 엄마 화교라고 빈정 거리는 비됴의 여자의 가늘게 찟겨 치겨 올라간 눈꼬리 만큼이나 재수가 없써.
그런데,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이런 괴물들을 만듭니다..
이것이 더 아프다는 것이지요.
우린 죽어라고 싸워 장엄한 민주화를 이루엇지만, 그 민주화를 통해 이런 미친개때만 키운 것이지요..
민주주의 괴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