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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한 중국인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중국 국가대표 선수와 한 테이블에 마주했다. 다른 경기와 달리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고, 곧 경기가 시작됐다. 일장기를 단 중국인 선수는 득점할 때마다 “요시!(よし: 좋아)”라는 일본어 감탄사로 기쁨을 표현했다. 결국 우승은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에게 돌아갔고, 중국대표팀은 패배의 충격에 빠졌다.
왼쪽에서부터 중국 탁구황제 덩야핑, 일본으로 귀화한 중국인 선수 허즈리,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맞붙은 두 사람 [출처: 바이두]
그런데 이 두 선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솥밥을 먹던 중국 탁구 국가대표팀 선수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중국인 선수 ‘허즈리(何智麗)’.그는 84년부터 각종 세계대회를 석권, 87 뉴델리 세계탁구선수권에서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명불허전 탁구 천재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88년 서울올림픽 중국국가대표팀 선수 선발에서 제외됐다. 당시 장셰린(張謝林)감독은 허즈리의 컨디션이 나쁘다고 판단, 신예인 천징(陳靜)선수를 대표팀에 발탁했다. 그러나 허즈리의 주장은 달랐다. 중국 탁구계를 양분하는 상하이방(上海幇)과 후베이방(湖北幇)간의 싸움에서 상하이방으로 분류된 자신이 희생양이 됐다는 것이다.
18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39회 세계탁구 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참가한 선수단의 모습(왼쪽), 그리고 1987 뉴델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챔피언에 등극한 장지아량(위) 선수와 허즈리(아래) 선수 [출처: 국제탁구연맹]
한 가지 사건이 더 있었다. 1987년 뉴델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감독이 지시한 승부조작에 허즈리가 따르지 않아 중국팀의 눈밖에 났다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그는 준결승에서 또 다른 중국선수 관지엔화(管建華)와 맞붙게 됐다. 중국 대표팀 감독진은 이미 결승에 진출한 한국대표팀 선수 양영자의 전술을 봤을 때 관지엔화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 허즈리에게 져 줄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허즈리는 자신의 실력대로 시합에 임했고 관지엔화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는 그간 관례처럼 행해지던 ‘자국 내 선수 선발 승부조작’에 반기를 든 게 돼버렸다. 허즈리의 이 같은 반항에 감독진은 분노했고, 결승 경기에 감독진 전원이 불참했다. 그녀는 결국 그 경기의 승자가 됐으나 축하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때의 충격과 좌절로 라켓을 놓은 허즈리는 89년 일본으로 귀화해 조국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했다. 허즈리는 이후 중국 선수들만 만나면 유독 독기를 내보였다. 그렇게 일장기를 달고 일본 선수 ‘고야마 지레이(小山智麗)’가 돼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허즈리는 이 경기에서 그간 쌓였던 한을 풀게 된다.
그는 8강전에서 자신의 대표 탈락을 가져온88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천징을3대1로 무난하게 꺾고, 결승에서는 ‘중국의 국보’이자 당시 세계랭킹 1위였던 덩야핑(鄧亞萍)을 3대1로 격파하며 중국 탁구를 여지없이 깨버렸다. 그는 자신의 일본행을 가져온 장셰린 감독이 보는 앞에서 한 맺힌 복수의 라켓을 휘둘렀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허즈리와 덩야핑의 경기장면 [출처: 유튜브 캡쳐]
특히 허즈리는 “요시!” 등 일본식 감탄사를 연발하며 중국 선수들을 자극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중국 탁구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이 경기 이후 중국에서 허즈리는 천하의 ‘漢奸(매국노)’가 됐다. 급기야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 주석은 95년 5월 톈진에서 열린 제 4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중국선수단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허즈리만은 꺾어라”는 특명을 내리기까지 했다. 당시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허즈리가 해당 대회에 불참할 정도로 분위기는 가열돼있었다.
당시 이를 보도했던 홍콩의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장 주석이 이토록 흥분한 것은 이제껏 정치와 스포츠를 연계시켜온 중국의 특수한 사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탁구는 오래전부터 중국인에게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1930년대 대장정 당시, 탁구는 홍군(紅軍·중국공산당 군대)들에게 힘겨운 객지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주었고 마오쩌둥 역시 탁구를 즐겼다. 마오쩌둥은 1950년대부터 탁구를 본격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공장이며 학교, 공원 등 탁구대를 놓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탁구대를 설치했고 10억이 넘는 국민들은 탁구를 생활화했다. 그렇게 탁구는 중국의 국기(國技)로 자리 잡았다.
중국 마오쩌둥(왼쪽) 전 주석과 미국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출처: 위키피디아]
1971년에는 탁구가 외교에도 활용됐다. 당시 냉랭했던 미중 외교관계는 두 나라 국가대표 탁구팀 친선경기 이후 완화돼 1979년 미중수교로 이어졌다.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에는 국민을 애국주의란 이데올로기로 결집시키기 위한 도구로 탁구를 이용했다. 이렇듯 탁구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중국인을 결집시키는 스포츠였다.
중국인의 생활에 녹아있는 스포츠 '탁구' [출처: 이매진차이나]
그래서일까. 국가와 국민이 주목하고 있는 국제 탁구 경기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야 하는 중국 탁구대표팀의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암암리에 '져주기' 혹은 '승부조작'과 같은 어긋난 선택을 하게 된 것도 모두 이 같은 기대와 부담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실력을 갖췄음에도 부당한 이유로 주요대회에 출전한 허즈리가 얼마나 억울했을지도 충분히 느껴진다.
세계 최고 수준의 중국 탁구가 세계 정상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면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할까? 무엇보다 정정당당한 플레이가 곧 중국의 국격을 보여주고, 탁구의 격을 한층 더 높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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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택민 주석 운운하는 것은.... 기자의 조미료 같구요.
중국 정치인들은 매우 바빠요....
선거나 치뤄 대통령이 되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 국가들의 한가하고 할일없는 정치리더들 과는 매우 다르고요.
또, 서양놈들 처럼 스포츠나 보고 대중들과 함께 낄낄걸리고 하는 따위 ....중국 정치문화에서는 오히려 금기 같은 것입니다..
--정정당당한 플레이가 곧 중국의 국격을 보여주고, 탁구의 격을 한층 더 높여줄 것이다.--
이런 훈계조의 말미에서도...짱꼴라 비하 의식과 조샌징국뽕을 느낄 수 잇습니다.
양아치 쇗끼들이 우리들에게 꼭 저런식으로 깔아 뭉겟지요..말 끝에 꼭 꼰대말 하나씩 붙힘시롱.
그 애비의 그 애들이라고.....그 양아치 쇗끼들이 사육한 조샌징 쥐쇗끼들이 뭐 다르겟습니까??
저주기, 승부조작 운운하는것도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저런것이 문제라면 우리나 저런 짖꺼리 하지 말앗쓰면 좋겟습니다.
중국인들의 국가대항전은 또 우리와 다릅니다...
개인의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국가가 우승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상대방에 따라 저주기 승부조작은 당연한 것으로 봅니다..
중국 코치진은 이런것을 공공연히 말 하기도 합니다.
-저놈이 쩌놈에게 약해서 이 시합에서 지라고 햇는데 기어코 말을 안들엇다...
아마추어던 프로던, 국가대항전의 성격을 없에고, 개인의 역량만 겨루는 방식으로 햇쓰면 좋겟습니다.
요즘엔 중국 스포츠도 국가을 빼고, 개인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잇고
일정 기간 단위로 시행 되엇던 운동선수간의 새대 교체도, 각각의 역량에 맡기고 국가는 빠지는 식 입니다.
더 갱인화, 더 오락화, 더 자본화 된 것이지요.
위 기사가 언제 써 젓는가 보니 2017년입니다.
이때도 저런기사를 써요......허
허긴 지금도 그러는데 뭐 ......스포츠 기자 수준에 오히려 당연하지..
혀튼 조샌징 쥐쇗끼들 밥맛떨어지게 하는 것은 절대 달라지지 않아요..
저 시절 중국선수들이 나름의 어떤 매력이 잇엇던것 같아요.
초지민은 한국 탁구선수 안재형과 눈이 맞아...당시로는 불 가능한 국제 결혼에 성공햇고
다이리리는 만화와 꼭 같은 그 특유의 꼭지머리와 스카이서브로 매우 큰 관심을 받앗고
허지리 도 김완과 염문이 돌기도 햇습니다.
허지리는 현정화 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역할도 해 주엇습니다.
19: 11이엇던가...도저히 질래야 질수 없는 시합을 역전패..
당시 막 국제대회에 얼굴을 내 밀엇던 현정화를 한껏 영웅으로 만들어 주엇지요..
당시는 서브권을 5개씩 갖고 잇엇기 때문에...
저런 스코에서 역전이란 거의 불 가능한 일이엿습니다.
현정화는 졋다...생각하고...맘 편하게 모든 공을 다 때렷는데..그것이 다 들어가 버린것..
이 시합을 찾아 봣는데 검색이 안 되네요..
허지리는 몸의 탄력이 좋아 "생고무" 라는 병멸을 갖고 잇엇는데,
다른소리 다니던 회사의 경리직원이 ...등치, 성질잇어 보이는 쌍판, 말 , 행동이 딱이라..
이름도 허ㅈㅅ..... 그래서 "허지리 쌩고무" 라고 햇지요
이거이 과분한 별명이 아닌가 싶엇는데 .......본인은 영 싫어 하더라고..
여자들이 스포츠를 모르쟎어..
영화나 연속극이나 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