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시절에 올렷던 사진입니다...그러니까 20년도 전에 올린 사진이지요.
이른바 리틀록9의 흑인여학생이엇던 엘리자베스 엑포드(Elizabeth Eckford)를 따라다니며
욕설을 퍼 붇고 잇는 헤이잘 브라이언(Hazal Bryan)
엘리자베스는 위협을 느끼고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을 찾앗고,
나름 친절해 보이는 할머니에게 눈을 돌렷쓰나
그 친철해 보이는 백인 할머니는 그녀에게 침을 뱉엇다...고 회고 햇습니다.
아래는 AI에 검색한 Orval Faubus 입니다.
오벌 포버스(Orval Faubus)는 1955년부터 1967년까지 미국의 제36대 아칸소주 주지사를 지낸 민주당 소속의 정치인으로, 1957년 흑백 분리 교육을 고수하며 '리틀록 나인(Little Rock Nine)' 사건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그에 대한 핵심적인 역사적 사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리틀록 고등학교 등교 거부 사건 (1957)
- 인종 차별 폐지 거부: 1954년 연방대법원의 '브라운 판결'로 공립학교 내 인종 격차가 위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버스 주지사는 아칸소주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의 흑백 통합 교육 조치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 주 방위군 동원: 백인 우월주의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 그는 흑인 학생 9명(리틀록 나인)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아칸소 주 방위군을 동원하여 교문을 봉쇄했습니다.
-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대립: 연방법 선포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이 사태는 미 전역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결국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육군 제101공중강습사단을 파견하고 주 방위군의 지휘권을 연방 정부로 귀속시킨 뒤에야 흑인 학생들이 등교할 수 있었습니다.
2. 정치적 행보와 생애
- 최다선 아칸소 주지사: 인종 차별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백인 보수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그는 아칸소주 역사상 최초로 6선 주지사에 성공하며 12년간 재임했습니다.
- 이후의 삶: 주지사 퇴임 이후에도 세 차례나 더 주지사 선거에 도전했으나 낙선했습니다. 말년에는 자신의 인종 차별적 조치가 흑인을 향한 증오 때문이 아니라, 연방 정부의 과도한 지방 간섭에 맞서고 지역 사회의 폭동을 막기 위한 ' 법과 질서' 차원의 결단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포버스는 미국 현대사 및 민권 운동사에서 '연방 정부의 인종 통합 정책에 폭력과 공권력으로 저항한 대표적인 인종차별주의 정치인'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
브라운 판결이란, 1954년,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재판에서, 분리하되 평등하다」라는 개념을 깬 재판입니다.
시설만 평등하다면 인종을 분리시켜도 연방헌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1896년의 플레시 대 퍼그슨 판례를 깨고
아무리 시설이 백인학교와 다를바 없이 평등하다 하더라도, 인종을 분리시켜 교육시킨다는 그 자체가 차별이라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판결은 나왓지만 집행은 되지 않앗습니다.
남부지역에서는 주시사가 앞장서서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거부 햇고, 백인주민 학부모들이 대거 참여 흑백분리를 강력하게 요구햇습니다.
결국 연방군이 동원 사태를 제압할 수 잇엇습니다.
아이젠하워는 별로 특별하지도 않은 보통의 백인 대통령이엇고, 당연히 인종차별 따위엔 별 신경을 쓰지 않은 통상적인 백인 대통령이엇지만, 연방군인을 동원하여 문제를 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문제가 커저 버린 것이지요.
착검한 M1 총으로 백인 시위대를 해산하고 잇는 연방군.
다른소리가 그때 이 글을 올렷을때의 촛점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햇던 것 처럼
쉽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점을 강조하게 위해섭니다.
지금 다른소리가 이 글을 올리는 목적은
이 사건이 벌어진 해가 1957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전쟁은 1950년 시작되어 1953년에 끝이낫습니다.
이 전쟁이 공산도배들로 부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낸 위대한 전쟁이라고 한다는데..
1954년까지도 미국의 흑인학생들은 백인들과 함께 학교를 다닐수 없엇고,
연방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에도 법은 무시되고(법치? 개가 웃을 일이고) 착검한 연방군인들을 동원해서야 겨우 가능 햇다는 것인데
저 흑인 학생들이 자유 롭고 민주적인 학교 생활을 하는 듯 보입니까?
자유 민주주의 원조 국가 미국이 이 모양이라면,
초근목피하던 그 시절에 우리가 지켜할 "자유" "민주주의" 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엇을까??
요즘애들은 이런 사진을 낭만적으로 볼 수 잇겟지만
다른소리 세대들에겐 이런것이 성장환경이엇습니다.
200여 가구 되는 거대한 마을에서도 장판이라도 깔고 사는 집은 손으로 세엇습니다..
이 모양으로 살고 잇는 사람들에게, 자유, 민주주의, 선거..가 대체 무슨 의미를 갖지요?
다른소린 자유 라는 단어를 국민학교 5학년, 6학년때 처음 들어 봣습니다.
바로 저런 환경치하에서 .....
자유,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학교에서 쇄뇌 교육을 통해 들엇던 것이지요.
그때 그 자유 라는 단어가 상당히 유행을 햇습니다.
요즘의 "내란" 같은
가만히 잇는 동무를 아무 이유 없이 뚝 때린다면..
-왜 그래??....라고 할 것 아닙니까?.
-내 자유다..................그런식이엇습니다.
자유= 내 꼴리는 대로 할 수 잇는 권리.
그런데,
어른들도 이런식으로 싸웟습니다...
시비가 걸리면 서로 목청을 높혀..
-내 자유다.................라고 하엿쓰니
이 찌지리 어른들이-한글도 못 깨우친- 정말 자유가 뭔지나 알고, 한번이라도 고민이라도 해 보고
저리 목 놓아 싸웟을 것이라고는 도무지 생각이 들지 않고..
이런것이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고 덜꺽 혁명부터 해 놓고 본 저들과 무슨 차이가 잇엇을까......싶어.
내 맘이다....라는 표현이 유행을 따라 내 자유다...라고 바뀐것 같고.......잇써보이쟎어..한자고..
차이가 잇다면 우리는 장난으로 자유를 썻는데,
어른들은 진짜로 자유를 가지고 싸우더라고....자유을 위한 투쟁....이 씨발
다른소린 자유가 그런것인 줄 알고 자랏습니다...내 꼴리는 대로 할 수 잇는 권리.
김대중은 그 자유를 ..
-동대문을 가려는 사람은 동쪽으로 가야하고, 남대문을 가려는 사람은 남쪽으로 가야 하는데
-군인들(박정희)에겐 이런것이 다 혼란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유와 혼란을 구분 하지 못한다..
는 식으로 말 햇습니다..
아...존나 쉽고 멋잇게 들렷지요.
다른소린 아직도 김대중을 싫어 하지 않습니다...다른소리가 유일하게 미워하지 않는 정치인+ 목포
다른소리가 가장 싫어 하는 정치인= 노무현....증말 소름끼치게 싫어....갱상도 쥐쇗끼..
광주 항쟁때 시위대들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의 통일을 "자유"로 바꿔 불렷습니다.
6월 항쟁 내내 거리에서 잇엇던 사람들도 "자유", "민주주의" 를 외쳣지요.
-직선제로 자유 쟁취.
-타는 목 마름으로 민주주의 외친다............김지하..
이분들은 덴마크 커플입니다.
영어도 아니고, 프랑스어도 아니고, 독일어도 아니고....뭔가 이야기를 하는데 ...
가끔씩 영어 표현도 들리기도 하고......너무 궁금하여 물어 봣지요
고고이 덴마크어랍니다.
여자분은 딱 봐도 동양인으로 보이지요?
어머니가 고아로 덴마크에 입양이 되엇고, 즉 반쯤은 한국인의 피가 석인 여인..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6개월이 넘도록 교환학생으로 공부중이고
남친은 본 그래로의 바이킹의 후손.
사진이 쫌 그런디.....실물은 좋아요....딱 바이킹 다운...
사진을 찍은 저 곳이....북한의 땅이 참 잘 보이는 곳입니다..
북한의 핵을 이야기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길어졋고
오랫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햇는데..
트럼프가 그린랜드를 처 먹어 버리겟다고 햇쟎하요?
이것이 덴마크인들을 참 심각하게 자극을 햇답니다.
우리로 치면, 일본 수상이 한국을 다시 식민 통치 하겟다....고 말한 것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시민들은 그 분을 삼키지 못하여 각자의 여러가지 방식으로 그 분풀이를 하고 잇다는데
미국의 가치(?) 주장, 정책에 대한 냉소는 말 할 것도 없고, 불매 운동도 하고...
저 여자분은 참 재미나는 표현을 햇습니다.
"그들만의 자유"
즉, 미국인들이 말하는 그 자유가 우리들이 생각하는 자유와 다르다는 것이지요.
남자는 "민주주의" 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도 들어냇습니다.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유럽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 그리고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매우 다르다..
다른소리가 이런 대화를 하고 나면 늘 답답한 것은,
왜 저들과는 어리 버리한 영어로도 이리 이야기가 통 하는데
왜 우리들은 같은 한국어로 이런 이야기 조차 할 수 없게 닫혀 버린 것인가?
-이젠 이란전쟁이 끝낫다....다음은 어디 일까?
-큐바?
-그 다음은?
-그린랜드?
-그 다음은?
-케나다?
-그 다음은??
-Maybe here?
흠!!
우리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햇지요.
-북은 핵을 보유하고 잇고, 그들은 당하고만 잇지 않기 위해 핵을 만들엇다..
-니들도 핵을 갖고 잇엇다면 트럼프가 그린랜드에 대해 함부러 말을 하지 못 햇을 것이다..
이게요..
꼭 이런식으로 말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