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클래스 IT기업으로 가는 길 `B2B`에 있다
ERP·오피스 등 기업 IT솔루션, 5년내 4000조 시장으로 `빅뱅`…한국엔 아직 글로벌주자 없어
수년내 IT예산 80% 빨아들일 B2B 새 성장동력 클라우드서 韓 유니콘 키울 기회 잡아야

기업인 중 `전사적 자원 관리(ERP)`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컨설팅 기업 가트너가 1980년대 키워드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진 ERP는 전 세계 모든 기업이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IT 솔루션이다. 세계 최대 ERP 기업인 독일의 SAP가 만든 프로그램은 전 세계 5만개 기업이 사용하고 있다. 포천 500대 기업의 80% 이상이 사용하고 있다.
SAP는 `인텔리전트 엔터프라이즈`라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ERP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해 3년 내 전 세계 ERP 업무의 절반을 자동화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오피스 프로그램이나 어도비의 PDF 소프트웨어 `어도비 아크로뱃 프로`는 기업은 물론 개인도 거의 매일 쓰고 있다. MS, IBM, 오라클, 시스코, 아마존, 구글 같은 미국 기업들이 만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제품들은 전 세계 모든 기업들이 사용한다. 기업 고객들은 이들 미국 엔터프라이즈 IT 기업에 종속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는 이 같은 시장 지배력을 가진 엔터프라이즈 IT 기업이 단 한 곳도 없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휴대전화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고, 한국은 통신이나 IT 인프라스트럭처 측면에서 전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뒤지지 않지만 기업 간 거래(B2B)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IT 기업은 없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17년 벤처기업 정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벤처기업 매출에서 B2B 비중은 72.9%다. 거래 비중 역시 42.5%를 차지한다. 이 통계만 보더라도 B2B가 얼마나 중요한지 드러난다.
B2B 엔터프라이즈 IT에 주목하는 이유는 보편성과 범용성 때문이다. SAP 사례에서 보듯 경쟁력이 있는 기술은 전 세계 어디서든 누구나 사용한다. 소비재 IT와 다르게 문화적 장벽 없이 오직 기술력 하나로 승부할 수 있다.
시장 규모 자체도 어마어마하다. 가트너에 따르면 전 세계 엔터프라이즈 IT 시장 규모는 2000조원으로 추산된다. 향후 5년 내 4000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해당 분야 선진국인 미국은 이미 관련 스타트업이 대거 생겨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 1월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받은 15개 스타트업 가운데 10개가 B2B 엔터프라이즈 IT 기업이었다. 절반 이상의 미국 벤처캐피털(VC)이 B2B에 투자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016년 들어서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투자는 감소했지만, 미국의 B2B 스타트업 투자는 성장세를 보이며 총 13조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한국은 미국에 비하면 아직은 초보 단계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보이는 스타트업도 드물고 시장 분위기도 미성숙하다. VC와 창업자들이 세계시장보다는 내수시장을 목표로 장기보다는 단기적인 수익 창출에 관심을 두는 것도 이유로 보인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VC는 대체로 B2B 엔터프라이즈 IT 산업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고, 투자 기간도 길지 않다. 통상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이 탄생하려면 5년간 1000억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데, 이 정도 인내력과 꾸준한 투자 여력을 보유한 VC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들에는 클라우드 기반 B2B 서비스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진입조차 하지 못했던 엔터프라이즈 IT 시장에 접근할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시장 전망은 긍정적이다. 마크 허드 오라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자사 세미나에서 2025년까지 모든 애플리케이션의 80%가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IT 예산의 80%가 클라우드 서비스에 지출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2000조원에 달하는 엔터프라이즈 IT 시장에서 클라우드 관리·운영 시장만 10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MS 애저(Azure)로 대변되는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과 맞먹는 규모다.
한국은 여기서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은 AWS와 MS라는 양대산맥이 선점했지만, 이를 관리·운영하는 시장에서는 아직 지배적인 사업자가 없다.
이 시장이야말로 한국 기업들이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곳이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이나 레전드캐피털 같은 중국 투자자들은 이미 이 시장에 눈을 돌려 유망주들을 찾고 있다. B2B 엔터프라이즈 IT에 4차 산업혁명의 답이 있다. 여기에 한국 기업을 위한 기회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