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사학회 제371차 역사문화 유적 답사
강원특별자치도 철원 답사 자료집
일시: 2026년 03월 28일(토)
지역: 강원특별자치도 철원지역
승일교(승일공원), 고석정, 백마고지,
노동당사(철원역사문화공원), 도피안사.
주최: 서울문화사학회
주제: 분단을 넘어서 조국의 통일 염원
일정:
08:00 종로3가역(3,5호선)6번 출구 철원으로 출발
10:00 승일교(승일공원)관람
(철원군 갈말읍 갈말로 358(내대리)
10:40 고석정으로 출발
(철원군 동송읍 태봉로 1825)
10:50 고석정 탐방
11:40 출발
11:50 중식(고석정두부촌)
동승읍 창동로 2407(☎033-455-8848)
13:00 백마고지로 출발(철원군 철원읍 대마1길 72)
13:50 백마고지 관람
14:40 노동당사로 출발(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 265)
14:50 노동당사 및 철원역사문화공원 관람
15:50 도피안사로 출발(철원군 동송읍 도피동길 23)
16:00 도피안사 참배
16:40 서울로 출발
18:40 서울 도봉산역(1,7호선)해산
1. 철원의 지역개관
가. 지명 유래: 무쇠벌
'철원'이라는 이름은 '쇠벌'이라는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옮긴 것입니다. 고구려 시대에는 '철원' 또는 '모을동비(毛乙冬非)'라 불렸는데, 이는 물이 많고 땅이 넓다는 의미와 통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시대에 이 지역에서 철이 많이 났다고 하여 '철원'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나. 역사적 변천: 태봉국의 수도에서 분단의 아픔까지
철원은 한국사에서 매우 굵직한 흔적을 남긴 장소입니다.
태봉국의 도읍:후삼국 시대, 궁예가 905년에 철원을 수도로 정하고 '태봉'을 건국했습니다. 현재도 비무장지대(DMZ) 안에는 당시의 흔적인 궁예도성 터가 남아 있습니다.
근대와 한국전쟁:일제강점기에는 경원선 철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로 번성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철의 삼각지대(철원, 김화, 그리고 북한의 평강을 잇는 삼각형 모양)라 불릴 만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며, 전쟁 결과 군의 북쪽은 북한, 남쪽은 대한민국이 관할하게 되면서 분단된 군이 되었습니다.
다. 지리적 특징: 용암이 만든 평야
철원의 지형은 일반적인 강원도의 험준한 산악 지형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모습을 띱니다.
철원평야:현무암질 용암이 분출하여 평평하게 다져진 용암 대지입니다. 덕분에 강원도임에도 불구하고 드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원 오대쌀'은 전국적으로 유명합니다.
한탄강:용암 대지를 강물이 깎아내며 형성된 수직 주상절리 협곡이 절경을 이룹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지질학적 가치가 높습니다.
기후: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지역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분지 지형이라 겨울철 기온이 매우 낮습니다.
마. 행정구역과 인구(39,818명남-20,558,여-19,260- 2026년 3월11일 현재)
동송읍(13,891명):철원군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상권이 발달.
갈말읍(11,375명):철원군청이 소재한 행정의 중심지.
철원읍(4,688명):과거 태봉국의 도읍이자 경원선 철원의 중심, 안보 관광의 요지임
김화읍(2,936명):과거 김화군이었던 지역이 철원에 편입된 곳, '구 김화' 지역지
2면(서면(1,625명,서면와수출장소3,360명,근남면(1,825명)),5면(근북(95명),근동,원남,원동,임남면-민간인 통제지역-민간 미거주)
2. 승일교(철원군 갈말읍 갈말로358 (내대리)
승일교는 철원이 북한의 관할이던 1948년 공사가 시작되어 절반쯤 지었으나 전쟁으로 중단되었고 10년이 지난 1958년 대한민국 정부가 못다 지었던 다리의 반쪽을 완공했다.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승일교 옆에 있는 철원승일공원은 큰길 옆으로 넓은 주차장이 있어 진입이 쉽다. 초입에 철원이 태봉의 도읍지였음을 알리는 태봉 구문 조형물이 있고 구문을 통해 들어가면 한탄강 주상절리를 표현한 조형물과 한탄강 풍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승일정이 있다. 공원 위쪽에는 승일교까지 걸을 수 있는 탐방로가 갖춰져 있다.
소련식유럽공법의 철근 콘크리트라멘조 아치교로서 교량의 조형미 가 돋보이는 교량높이 35m, 길이120m, 폭 8m 로,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 과장 김명여 교사가 설계한 것으로 1948년에 착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철원 승일교는 1948년 8월 북한이 착공하여 1958년 12월 3일에 남한이 완공한 다리이다. 시작과 완성의 시공법과 주체가 달라 아치의 크기 등 교각의 모양이 겉으로 구별된다. 분단과 한국 전쟁이 빚은 독특한 의의가 있다.
수복 이후 남한이 다른 공법을 사용하여 나머지 구간을 공사하고 완성하면서 ‘승일교’라고 이름하였다. 이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전해져 온다. 하나는 당시 남한과 북한의 통치자 이름을 한 글자씩 따왔다는 것이다. 곧 이승만의 ‘승’ 김일성의 ‘일’을 합하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박승일 장군의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따와서 지었다고 전해져 온다.
승일교가 완공되기 전에는 남한군이 임시로 목조 다리를 놓아 통행하다가 철거하였다. 지금은 승일교를 인도로 사용하되 바로 옆에 한탄대교를 개설하여 차량이 통행하도록 하고 있다. 199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교량 연장 166.8m, 폭 9.5m의 규모로 건설되었다. 한탄대교는 한탄강 협곡에 위치하여 비경이 수려하여 다리만큼이나 그 풍경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3. 고석정
고석정(孤石亭)은 철원 9경 중 하나이며 철원 제일의 명승지이다. 한탄강 한복판에 치솟은 10여 미터 높이의 기암 양쪽 사이로 옥같이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른다. 신라 진평왕 때 한탄강 중류에 10평 정도의 2층 누각을 건립하여 고석정이라 명명했다고 하며 이 정자와 고석바위 주변의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한다. 지방기념물로 지정된 고석정은 신라 때 진평왕이, 고려 때는 충숙왕이 찾아와 노닐던 곳이라고 한다. 고석정이 더욱 유명해진 까닭은 조선시대 명종 때 임꺽정(林巨正)의 배경지로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철원은 신생대 제4기 홍적세에 현무암 분출로 이루어진 용암대지로서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한탄강이 흐르면서 침식 활동을 통해 곳곳에 화강암의 주상절리(柱狀節理)와 수직 절벽을 이루었다. 추가령 구조대의 중심에 위치하여 후에 경원선의 통과지가 되기도 한 철원은 임꺽정 생애 중에도 칩거하기 좋은 장소였는지 고석정 건너편에 돌벽을 높이 쌓고 산성 본거지로 삼았다 한다. 당시 함경도 지방으로부터 이곳을 통과하여 조정에 상납할 조공물을 탈취하여 빈민을 구제하는 등 부패한 사회 계급에 항거하였다. 누각은 6.25 동란 때 소실되었는데, 1971년 지방 유지들의 도움으로 10평의 2층 누각 형식의 정자가 다시 건립되었으나, 96년 수해로 유실되었고 1997년 재건축하였다.
현재도 강 중앙에 위치한 20미터 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자연 석실이 있고 건너편에는 석성이 남아 있다. 이곳은 풍치가 수려하여 철원 9경의 하나로서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국민관광지이다. 이곳에서 상류로 약 2km 지점에 직탕폭포와 하류 약 2km 지점에 순담이 위치해 있으며 넓은 잔디광장과 다목적 운동장 등이 시설되어 있어 사시사철 어느 때나 관광객이 즐겨 찾고 있다.
4. 백마고지 전적비
백마고지 전적지는 백마고지 전투를 기리기 위한 장소입니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해발 395m의 이름 없는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벌였던 전투를 말합니다. 백마고지 위령비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아군과 중공군 등 17,535명(아군 3,146명 중공군 14,389명)의 영혼을 진혼하기 위하여 건립한 위령비이다. 백마고지 전투: 열흘 동안 주인이 24번이나 바뀔 정도로 참혹했던 전투입니다. 저격능선 전투: 김화 지역에서 벌어진 6주간의 혈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5년 6월 6일 육군 제 5사단 장병과 지역주민들이 백마고지 후방에 세운 3.6m높이의 현무암 비석은 오랜 풍상으로 훼손되고 대규모의 위령제를 봉행하는데 장소 협소 등의 어려움이 있어 1990년에 철원군에서 위령비 일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위령비 앞쪽 좌·우로 연결된 기념관은 홍익대 강건희(姜建熙)교수가 설계한 것으로 회고의 장, 기념의 장, 다짐의 장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처절했던 격전의 현장을 재현하고자 설립하였다. 『회고의 장』 에는 피아 전사자를 추도하는 위령비와 분향소가, 『기념의 장』 에는 통일의 염원과 전승을 기념하는 전적비와 함께 당시 백마부대장이었던 김종오(金鍾五)장군의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도 배치하였다.
5. 노동당사
이 건물은 북한의 노동당사로 1946년 초에 북한정권하에서 착공하여 지상3층에 연건평 580평 규모의 건축물로 신축되었다. 조적식 기둥 및 벽체로 수직재를 이루고 있으며, 보 및 스라브는 철근콘크리트 수평재로 수직재와 결구되는 구조로 되어있다.
천장은 목조 삼각형지붕틀을 사용한 흔적이 있으며, 입구의 1층에 원기둥 두개를 세워 현관을 두었으며 그 위에는 아치로 장식하여 정면성을 부각하고 있다.
이 건물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북한이 공산독재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하고 한국전쟁 전까지 사용한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북한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이란 구실로 1개리당 백미(白米) 200가마씩을 착취하였으며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원하는 한편, 특히 건물 내부 작업 때는 비밀 유지를 위하여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멘트와 벽돌로 쌓은 3층 건물 구조인데 당시 이 건물 일대가 철원읍 시가지로써 한국전쟁 당시 여타 건물들이 모두 파괴, 인멸되었음에도 유독 이 건물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견고하고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짐작이 간다. 공산 치하 5년 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애국인 사들을 체포·고문·학살 등 소름 끼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하였으며, 한번 이 곳에 끌려 들어가면 시체가 되거나 반송장이 되어 나올 만치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 곳이기도 하다. 이 건물 뒤 방공호(防空壕)에서 많은 인골(人骨)과 함께 만행에 사용 된 수많은 실탄과 철삿줄 등이 발견되었다. 2002년 5월 31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6. 철원역사문화공원
1930년대 철원군은 인구 8만명 이상이 거주하였던 강원도 3대 도시였으며, 철원읍 시가지에는 철원군청, 철원경찰서, 철원극장, 철원역, 학교, 은행 등 근대적인 시설이 운영되었던 곳이었습니다. 철원역사문화공원은 그 당시 경제적으로 번성했던 철원읍 시가지를 관람 및 체험할 수 있도록 재현하였으며, 특히 철원역에서는 소이산으로 올라가는 모노레일을 탑승할 수 있습니다.
7. 도피안사(철원군 동송읍 도피동길 23)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화개산(花開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이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865년(경문왕 5)에 도선(道詵)이 향도(香徒) 1,000명과 함께 이 절을 창건하고 삼층석탑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다. 도선은 이 절을 800의 비보국찰(裨補國刹) 중의 하나로 삼았으며, 화개산이 마치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석탑과 철불로 산세의 약점을 보완하여 국가의 내실을 굳게 다지고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오래도록 국가의 비보사찰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1898년 봄에 큰 화재로 전소된 뒤 주지 월운(月運)이 강대용(姜大容)의 도움을 받아 법당을 짓고 불상을 봉안하였으며, 승료(僧寮)와 누헌(樓軒) 등을 중수하였다.
6·25 때 소실된 뒤 주지 김상기(金相基)가 중건하였으며, 1959년에는 15사단 장병들이 법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으며, 국가유산으로는 창건 당시 조성된 1962년 국보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이 있다.